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38화 (38/270)

제38화

“…올라갔네.”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서도화 대신 아덴이 말했다. 이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주상현이 신나서 이 멤버 저 멤버 번갈아 가며 달라붙어 좋아하는 건 물론이고 늘 여유롭던 한야도 이번 만큼은 놀랐는지 서도화와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주상현에 의해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한 결과다!니다! 내가 얼굴을 맡은 그룹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고 말고!”

케이는 처음엔 별 반응 없다가 주상현이 달라붙어 좋아하자 갑자기 기고만장해져선, 그러나 교육받은 대로 작게 자랑을 속닥였다.

아덴은 잠시 심드렁하게 케이를 보다 서도화에게 시선을 옮기며 씨익 웃었다.

반응도 못 할 정도로 기뻐하는 얼굴. 이런 숫자 따위에 연연하는 건 아덴으로선 이해 못 할 일이지만 어쨌든 동료가, 친구가 이토록 기뻐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3위는 56번 그룹입니다. 여기서부턴 연습생들이 이 그룹을 인상깊게 생각한 이유도 조명해볼까 하는데요.”

서영이 말하자 화면엔 3위 이외의 슬롯이 사라지고 대신 아래로 연습생들이 56번을 인상깊게 생각한 이유 세 가지가 간단히 적혀있었다.

1. 소름이 돋을 정도의 보컬 실력!

2. 시선을 확 사로잡는 비주얼!

3. 개성 있는 무대 구성!

인터뷰 때 연습생들이 말했던 걸 간추려 팝넷식 문장으로 정리해놓은 듯하다.

얼빠진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던 서도화의 입도 간신히 다물어졌다.

그룹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무척 복잡했을 터인데 이걸 저렇게 간추려놓으니 또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유야 어떻든 이들은 서도화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순위를 받았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그룹인 양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서영은 이유에 대해 적당히 보충 설명을 하곤 바로 다음 순위로 넘어갔다.

2위는 아니나 다를까 밀리언 아이돌 참가 그룹 중 너튜버 그룹을 제외하고 가장 버즈량이 많았던 데스티니 소속 1번 그룹이, 1위는 당연하게도 너튜버 그룹 49번이었다.

49번만 표현해낼 수 있는 독특한 무대는 시청자, 케이뿐만 아니고 모든 연습생들에게 깊은 귀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위였다.

1위까지 그룹 소개를 모두 끝낸 서영이 말했다.

“순위에 오른 그룹들은 특별히 1위부터 3위까지 추가점수 5,000점, 4위부터 10위까지 3,000점씩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연습생들이 크게 웅성였다. 간단한 설문으로 주어진 순위 치고 보상이 너무 컸다.

원래부터 올라갔던 서도화의 입꼬리가 더욱 크게 올라갔다.

배네핏으로 추가점수를 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려 5,000점이나 줄 줄은 몰랐다. 이 정도 점수면 이번 라운드 순위를 크게 뒤흔들 만한 점수다.

‘진짜 이번 라운드 할 만하겠는데?’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순위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기쁜, 혹은 당혹스러운 연습생들의 목소리 사이 서영의 힘찬 멘트가 울려 퍼졌다.

“간혹 이렇게 서프라이즈로 추가점수도 지급될 예정이니 연습생 여러분들!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연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서영이 다시 무대의 가운데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정말로 2라운드 키워드 경연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1일 차 경연은 지난 라운드 A 키워드를 고른 그룹들이 치르게 됩니다. A 키워드의 주제는 [새벽과 여행]. A키워드를 고른 참가자들은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경연을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 A 키워드를 고른 그룹들이 지난 1라운드의 순위를 순서로 삼아 차례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치열한 참가 그룹들, 지난 라운드 높은 순위를 받았던 그룹들이 대거 포진되어있는 키워드다.

본격적인 경연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C키워드를 선택한 멤버들은 이번에도 당연히, 별거 없이 촬영을 끝내고 연습실로 향했다.

“피로한 건 덜한데 대신 몰입도 완전 떨어지지 않아요?”

A키워드 그룹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현장에서 퇴장하는 동안, 전 시즌의 긴박감이 사라졌다는 주상현의 나지막한 투덜거림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 * *

며칠 후 A, B 키워드의 경연이 모두 끝나고 C키워드 그룹들의 경연일.

멤버들은 아침 일찍 숍에 들려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얘네는 이런 어두운 색조도 되게 잘 받네? 역시 아이돌은 잘생기고 볼 일이야. 잘생기니까 무대 메이크업이 이렇게 잘 어울리잖아.”

메이크업을 끝마친 숍 담당 실장이 계속해서 서도화의 헤어를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레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에 반해 무덤덤하게 인사를 건넨 서도화의 표정은 미묘했다.

전체적으로 톤이 어둡다. 색조가 짙다. 지난 라운드에서 보였던 화사한 메이크업과는 완전히 상반된 강렬한 인상의 메이크업과 헤어였다.

‘뭐라고 해야 하나.’

굳이 비유를 하자면 뮤지컬? 뮤지컬에서나 볼법한 과장된 메이크업? 아무튼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다.

컨셉이 컨셉이니 어쩔 수 없지만. 서도화의 취향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장의 말대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서면 그럭저럭 멋지게 잘 나오긴 할 듯했다.

다만 이 메이크업을 한 채로 오늘 경연이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한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서도화가 조용히 납득하고 체념하는 사이 그 대신 아덴과 케이가 말했다.

“실장님. 얼굴이 너무 답답한데요?”

“이 꼴로 내가 인간들 앞에 온종일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이 꼴로라니!”

케이의 말에 실장이 쿨하게 소리치며 케이의 등을 찰싹 때렸다. 소리만 컸지 그리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케이는 ‘아윽!’하는 소리와 함께 휘청였다.

서도화는 조용히 케이의 추태를 즐겼다.

“오오, 다들.”

그러는 사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온 이병수가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너희 이제 진짜 아이돌 같다. 오늘은 완전히 컨셉에 푹 절여졌네.”

“감사합니다.”

한야가 공손히 대답했고.

“그거 칭찬이에요?”

아덴이 시비를 걸었다. 아덴의 퉁명스러운 말에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이병수가 ‘허허’ 너털웃음을 짓곤 손짓했다.

“윤지 씨 이제 다 됐죠? 가면 되죠?”

이병수가 묻고서야 서도화의 헤어를 계속해서 손보던 실장의 손이 떨어졌다.

“네! 잘하고 와라. 얘들아.”

실장이 가볍게 양손을 쥐어 보였다.

“우리가 바빠서 너희 공연 보지는 못해도 응원은 열심히 하고 있을게. 파이팅!”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그녀에게 인사하며 이병수를 따라 경연장으로 향했다.

* * *

3일 만에 다시 찾은 경연장.

경연을 준비 중인 제작진들은 오늘도 여전히 정신없어 보였지만 서도화는 현장이 묘하게 조용하게 느껴졌다.

약 30팀, 전 시즌보다 훨씬 많은 인원수임에도 오프닝에 비해 2/3가 줄어든 만큼 뭔가 공간이 텅 비어 보였다.

무대 앞쪽으로 배치된 의자들도 확연히 줄었다.

연습하느라 지난 A, B 키워드 팀의 경연을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지난 1라운드보단 관객석의 연습생들의 리액션도 그럭저럭 카메라에 잘 들어올 듯했다.

특히 1라운드 순위에 따라 앞쪽에 앉게 된 서도화와 멤버들의 리액션은 더더욱.

‘그리고 표정도 더 카메라에 잘 비치겠지.’

서도화는 좌석 바로 앞에 배치된 카메라를 보며 다시금 자신을 포함해, 아덴과 케이의 표정관리에 힘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병수가 멤버들을 자리에 앉히자 제작진이 다가와 오늘 경연 진행에 대한 짧은 설명을 해주었다.

“오늘은 경연 끝날 때까지 자리이탈 안되는 거 아시죠?”

“네!”

“중간에 휴식 시간 있긴 한데 후반까지는 못 움직이니까 화장실 다녀올 거면 지금 다녀오시고요. 56번 그룹은 오프닝 끝나자마자 바로 무대 뒤로 이동하면 돼요.”

간단히 말을 마친 제작진은 멤버들을 아래위로 한번 훑곤 사라졌다.

‘그래 신기하겠지.’

이들의 의상과 메이크업이 말이다.

“하하.”

서도화가 멋쩍게 웃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그룹들도 공연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을 갖추고 있지만 56번 그룹만큼 독보적인 컨셉의 의상은 보이지 않았다.

저쪽에 있는 연습생들의 의상이 왕족, 혹의 귀족에 가까운 복장이라면 이곳은 히피하다.

편해 보이기도, 껄렁해 보이기도, 힙해 보이기도, 언뜻 보면 멋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의상. 참 눈에 띈다.

‘이건 모 아니면 도다.’

서도화가 생각했다. 무대를 얼마나 잘 살리냐에 따라서 이 의상이 멋으로 보일 수도, 그냥 거지꼴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아, 각 기획사 관계자분들은 물러나 지정된 위치로 이동해주시고 연습생들은 모두 착석하세요.”

감독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장내는 금방 조용해졌고 이내 연습생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착석했다.

여기서부터는 익숙한 절차가 이어졌다. 연습생 모두가 자리에 앉으니 제작진들의 인원 체크가 이루어졌고 곧 사방에 배치된 모니터를 통해 채팅창과 스트리밍 화면이 나타났다.

화면엔 밀리언 아이돌 로고와 함께 경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카운트하고 있었다.

앞으로 5분. 서서히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괜찮다. 이번만큼은 정말 자신 있으니까. 서도화는 조용히 자신을 다독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후 전자음의 카운트 소리가 들려왔다.

두껍게 가공된 목소리에 채팅창 올라가는 속도가 몇배는 빨라지고 곧 카운트가 끝난 뒤 커다란 대형 스크린 속 서영이 경연의 시작을 알렸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팝넷 사상 최대 규모의 라이브 프로젝트. 밀리언 아이돌 2라운드 3일 차. C 키워드 경연을 시작합니다. 이번 키워드의 주제는 ‘정글과 나’입니다.

화려하게 울려 퍼지는 BGM.

그보다 현란한 조명.

오늘도 역시나 눈을 꽉 감은 채 손뼉 치는 서도화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아 끌었다. 아덴이었다.

“가자.”

오프닝이 끝나고 순위에 따라 두 번째 무대가 이들 56번 그룹의 순서였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제작진을 따라 무대 뒤로 향했다.

드디어 이들의 경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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