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0화 (40/270)

제40화

멤버들이 다시 무대로 돌아왔을 때 여전히 경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서도화는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무대 위에 선 그룹을 보았다.

저들은 ‘나’를 주제로 무대를 가져왔는데 이제 막 꿈의 시작점에 선 이들답게 나에 대한 가능성, 희망을 담은 곡을 더 활기차게 편곡해왔다.

그럭저럭 무난히 잘했다. 딱딱 잘 맞아떨어지는 안무를 제외하면 지난 라운드 괜찮은 순위를 받았던 그룹치곤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지만.

서도화가 채팅창과 하트 아이콘을 확인했다. 하트 아이콘은 그럭저럭 잘 올라가고 있었지만 채팅창의 반응은 그닥. 좋고 나쁘고를 떠나 뜨뜻미지근했다.

공연은 쉼 없이 이어졌다.

다수의 인원으로 이루어지는 안무가 매력적인 그룹, 편곡과 안무 모두 멤버 본인들이 직접 한 그룹, 보컬에 무척 뛰어난 실력을 가진 그룹.

특히 편곡을 직접 했다는 그룹은 그 자신감답게 무척 독특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편곡을 보여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러모로 도전적이었던 너튜버 그룹의 1위를 목격한 뒤 치루는 라운드라 그런가? 확실히 서도화의 56번 그룹을 포함해 지난 라운드보다 공격적인 무대를 가져온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주제 자체가 살리기 난해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키워드랑 비교해 순위가 낮았던 연습생들이 많기 때문일까.

‘각 그룹만의 매력과 강점은 확실해 보이지만.’

서도화에게 크게 위협적인 그룹은 아직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C키워드 경연의 마지막 무대.

91번 그룹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이쯤 되니 피로감에 슬그머니 집중력이 흐려지기 시작한 서도화는 눈을 감았다 부릅떴다.

아무리 밤샘 연습, 공연으로 지쳤더라도 언제 어디서 클로즈업이 될지 모르니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안 되었다.

그러나 91번 그룹의 무대를 보는 순간 서도화의 피곤함은 급격하게 사그라들었다. 대신 다른 이유로 스트레스가 급하게 몰려왔다.

그가 나지막이 생각했다.

‘아, 컨셉 겹쳤네.’

91번 그룹의 댄스 브레이크 구간, 두 명의 멤버가 다른 멤버의 무릎을 밟고 뛰어올랐다. 공중제비, 그리고 백텀블링. 누가 봐도 아크로바틱으로 이루어진 댄스 브레이크가 이어졌다.

하필이면 주제 또한 ‘정글’로 겹치는 바람에 56번 그룹과 컨셉이 상당히 중복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서도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컨셉이야 겹칠 수는 있지.’

벌써부터 컨셉이 중복된 건 아쉽지만 뭐 어쩌겠는가. 아크로바틱이 56번만의 것은 아니니 앞으로도 이걸 잘하는 그룹이 있다면 언제든 중복될 것이다.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지언정 크게 걱정되는 일은 아니었다.

컨셉이야 몇 번이고 겹칠 수 있다. 하지만 아크로바틱의 경우 케이와 아덴을 따라잡을 수 있는 그룹은 없을 것이다.

도움닫기도 없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건 그것들이 인간이 아니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결에 채팅창을 확인한 서도화는 순간 움찔거리며 시선을 바로 했다.

-갑자기 컨셉을 바꾼다고???ㅋㅋㅋㅋㅋㅋ

-이건 너무 빼박 아니냨ㅋㅋㅋ

-?이해 안 가는 게 그럼 텀블링은 56번 아니면 하면 안 됨?

-다른 그룹도 할 수 있죠;; 텀블링 하는 게 뭐라고 난리임?

서도화가 단순히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채팅창은 다소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 잘한다

-ㅋㅋㅋㅋ아니 따라 한 게 아니라도 조사 안 함? 56번이 이걸로 화제 된 거 누가 모름?

-당장 바로 전에 되도 않은 몽환 가져왔다가 갑자기 어설픈 아크로바틱을 한다?

-어그로임?

-어설픈 거 ㅇㅈ... 잘하기라도 하면 몰라 이 정도면 따라 한 거 맞는 거 아닌가...

컨셉을 따라 했다느니 이 정도는 누구나 하는 거라느니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도화는 빠르게 모른 척했다.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르는 클로즈업을 대비하며 음악에 맞춰 목으로 리듬이나 탔다.

“저기 저, 우리와 같은-!”

“아니야. 쉿, 아니야.”

채팅창을 봤는지 혼자 판단을 내린 건지 케이가 몹시 씩씩거리며 작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서도화는 그를 조용히 시키며 말하지 말라 어깨를 꾹 눌렀다.

“말조심하자니까.”

케이의 말을 막는 서도화를 본 아덴이 슬쩍 손을 뻗어 굳이 케이를 한 대 때렸다.

저들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어지간히 멍청한 게 아닌 이상 경연에서 컨셉 따라잡기로 어그로를 끄는 그룹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따라 했든 아니든 곤란하네.’

56번 그룹을 참고해 계획한 구성이든 별 의도 없이 잘하는 걸 보여주려 넣은 것이든 솔직히 아크로바틱 하나는 56번이 훨씬 잘하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팬덤 간 부스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91번도 91번의 팬이 있을 것이며 서도화의 그룹 56번 또한 주상현을 위해 응원하는 팬 그리고 1라운드를 거치며 유입된 팬이 있을 테니까.

의도가 없었다면 91번에게도 괜히 언급되어버린 56번에게도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괜한 오해 받지 않도록.’

리듬이나 타고 있어야지.

서도화가 91번의 무대를 보며 목으로 몸으로 리듬을 타자 그를 아덴이 따라 했고 양반은 못 되는지 이때 서도화 본인은 눈치 못 챘지만 그는 생애 첫 클로즈업이 찍혔다.

그리고 91번의 공연이 끝이 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채팅창은 혼란했지만 그들도 그럭저럭 마음 점수를 나쁘지 않게 받아 어쨌든 이번 라운드 탈락은 면할 듯 보였다.

91번은 이러한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큰 동요 없이 자세를 바로 하고 곧 인사를 마쳤다.

C키워드 그룹들의 경연이 마침내 종료되었다.

91번이 무대 위에서 내려가는 동안 BGM과 함께 조명의 색이 바뀌었으며 카메라는 드라마틱하게 허공을 가로질러 서영을 비추었다.

서도화가 복잡한 마음을 숨긴 채 무대를 무사히 치룬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어?”

서도화의 옆자리에 있던 주상현이 몹시 당황한 목소리를 내며 움직임을 굳혔다. 갑작스러운 막내의 목소리에 서도화를 포함한 네 멤버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다.

주상현은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91번 멤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동공이 떨리고 있었다.

그에 네 멤버의 고개가 동시에 91번 멤버들에게로 향했다.

‘……아하.’

그러곤 빠르게 상황파악을 끝냈다.

“밀리언 스트리밍 시청자 여러분. C 키워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2라운드의 모든 경연이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영이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동안 서도화와 멤버들은 여전히 무대에서 완전히 내려온 91번 그룹을 보고 있었다. 박수는 멈추었다.

91번은 56번, 그중에서도 주상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놀리듯 샐쭉거리고 있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럼 잠깐의 휴식 후 순위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카메라가 줌아웃 되더니 사방에 배치된 스트리밍 화면이 대기 화면으로 바뀌었다.

아주 잠시 시청자들에게도, 출연자들에게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와 동시에 서도화가 주상현에게 물었다.

“아는 사이야?”

“아, 그, 아는 사이라기 보다는…….”

주상현은 난감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 시즌에 같은 소속사로 출연했던 연습생들이에요.”

“아…….”

서도화는 더 묻지 않았다. 주상현의 표정이 몹시 곤란해 보였기 때문이다. 장래가 유망하던 주상현이 왜 굳이 유제이로 들어왔나 했더니 주상현 또한 무슨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케이도 슬그머니 자신이 아는 것을 말했다.

“저들이 리허설 때 상현의 험담을 하던 이들이다.”

그 말을 들은 서도화와 아덴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한편 현장의 제작진들은 다음 라이브 준비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닫혔던 체육관의 문이 열리고 지금의 두 배 남짓한 인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와 일사불란하게 관객석에 마련된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부족한 의자들이 채워져 가고, 제작진들이 마이크를 들고 인원 체크를 시작했다.

경연이 모두 끝나며 A, B 키워드 경연을 치뤘던 그룹들이 현장으로 모인 것이다. 조용했던 체육관은 어느새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모든 공연이 끝났음에도 연습생들과 스태프들의 얼굴엔 긴장이 가득했다.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서가 남았지 않은가.

곧 현장은 소란이 진정되고 방송하기 적절한 광경으로 바뀌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변화였다.

그리고 얼마 뒤 라이브 스트리밍이 재개되었다.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서영이 미소 지었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팝넷 사상 최대 규모의 라이브 프로젝트. 밀리언 아이돌 이제 2라운드 순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서영이 말하는 와중 카메라는 오랜만의 정수리샷과 함께 A, B키워드 참가자들을 찍어주어 이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과연 2라운드의 1위는 누가 될 것인지! 이번 2라운드는 키워드별 경연이 치러진 만큼 각 팀의 키워드별 순위와 전체 순위가 함께 공개됩니다.”

서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진행석에서 메인 스테이지 대형 스크린의 앞으로 이동했다.

“키워드별 순위는 다음 라운드를 위한 베네핏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니 시청자 여러분 끝까지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영의 뒤 대형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그럼 대망의 2라운드 순위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키워드별 순위 발표하겠습니다. A키워드를 선택한 참가 그룹 33팀의 순위부터 공개합니다.”

대형스크린 속 참가 그룹의 수대로 총 33개의 슬롯이 아래순위부터 공개되기 시작했다.

1위부터 34위까지의 순위가 한번에 공개되는 바람에 빠르게 그들의 희비가 갈렸다. 처음으로 탈락자가 나오는 순위발표식. 이번엔 훌쩍이는 그룹들이 좀 많이 보였다.

1위는 데스티니에서 내놓은 1번 그룹이 차지했으며 반대로 지난 라운드 1위였던 너튜버 그룹은 오늘 2위로 떨어졌다. 또한 하차한 몇몇 그룹들은 순위의 가장 하단에 위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대중적인 키워드를 소화하느라 본연의 유니크한 컨셉이 가려져 시청자들로 하여금 재미가 반감된 것도 순위 변동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도, 심지어 그들의 울먹이는 얼굴이 카메라에 크게 잡혀도 서영은 단호히 진행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그저 탈락자. 밀리언 아이돌이란 방송은 철저히 주목받는 연습생들만을 조명하며 욕을 먹고 역으로 화제를 모으는 방송이었다.

“B 키워드를 선택한 참가 그룹팀 34팀의 순위 공개합니다.”

B 키워드 참가자의 순위가 공개되었다.

B키워드의 상위권엔 대거 이름있는 중견 기업 소속의 연습생들이 차지했다.

“흠…….”

공개된 순위에 서도화가 작게 떨떠름한 소리를 냈다.

1라운드와 비교해 너무 순위 변동이 없었다.

아무리 팬층이 탄탄하다고 할지언정 이를 파고들어 높은 순위를 기록할 그룹이 아예 없지는 않을 터인데.

그러고 보면 A팀도 너튜버 그룹을 제외하면 큰 순위 변동이 없었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 하지만 서도화의 의심은 서영의 다음 멘트로 말끔히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으로 C 키워드를 선택한 참가 그룹 33팀의 순위를 공개합니다.”

서도화가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노력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그리고 밀리언 아이돌의 첫 번째 탈락자가 탄생하는 때이기도 했다.

물론 탈락은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선보인 공연도 자신 있었지만 순위 앞에 작아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월말평가마다 1위는 손쉽게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서도화가 이젠 여러 경험을 거치며 ‘만에 하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혹여나 순위가 예상보다 훨씬 낮으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도화가 긴장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 손길의 방향을 보자 한야가 서도화와 주상현의 손을 잡고 무대를 보고 있었다.

멤버 중 가장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긴장을 풀라는 그 나름의 배려였다.

곧 빠르게 슬롯이 뒤집히며 C키워드 순위가 공개되어갔다.

슬롯을 따라 시선을 올리던 서도화가 이내 자신의 순위를 확인하고 눈을 키웠다.

[2위] 56번(유제이 엔터테인번트)

아직 전체 순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키워드 내 순위가 무려 2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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