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2화 (42/270)

제42화

이곳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덴이 주인공이었던 그 세계에선 이런 플래그가 백이면 백 맞아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안색이 창백해지던 서도화는 다음에 이어지는 서영의 말에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이쯤에서 베네핏을 알려드려야겠죠? 여러분 키워드별 순위로 베네핏을 제공한다는 말 기억하시나요?”

커다란 화면에 떡하니 [Benefit]이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3라운드의 베네핏. 각 키워드별 1위부터 3위까지의 그룹은 제비뽑기에서 제외, 함께 공연할 그룹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위부터 3위. 그렇다면 C 키워드의 2위였던 유제이의 그룹 56번도 베네핏을 제공받는다는 말이었다.

서도화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다. 그의 입가에 평온한 미소가 올려졌다.

역시 이세계는 이세계. 이곳은 이곳이다.

* * *

3라운드의 규칙 설명이 모두 끝나고 베네핏 제공을 위한 잠깐의 자유시간. 서도화 멤버들이 머리를 모았다.

“어떤 그룹이랑 같이 하는 게 좋을까요?”

주상현의 물음에 한야가 말했다.

“넌 어떤 그룹이랑 하고 싶어?”

주상현은 무척 어려운 숙제를 떠맡은 듯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다. 베네핏으로 함께할 그룹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고민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사실 연습에 몰두하느라 다른 그룹의 경연을 제대로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 발등이 활활 타들어 가는데 다른 곳에 시선이 갈 리가 없었다.

함께 경연을 치른 C그룹과 상위권에 있는 몇몇 그룹 외엔 그 실력도, 하다못해 컨셉조차 모르는 그룹들이 줄을 이었다.

또한 참가 팀이 너무 많았기에, 상위권 그룹을 제외하곤 일일이 연습시간을 할애해서 모니터링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생각이 많았다. 어떤 그룹이 이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분석되지 않았다.

“형은 같이 하고 싶은 그룹 있어요?”

주상현이 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케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49번. 그 외에는 없다.”

그의 단호함에 주상현과 한야가 나란히 케이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케이가 그렇게나 인상 깊게 봤다는 너튜버 그룹 49번. 그러나 아쉽게도 멤버들은 케이의 바람을 이루어줄 수 없었다.

A키워드에서 2위를 한 49번 또한 선택받는 입장이 아닌 선택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56번이 아닌 본인들이 원하는 팀과 짝을 이룰 것이다. 물론 49번이 이들 56번과 짝을 이루려는 의사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멤버들이 고민에 빠진 사이 서도화는 주변의 그룹들을 둘러보았다.

“흐음.”

어떤 그룹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

A, B 키워드 팀은 상위권 그룹들이 많아서 눈에 익고 C 키워드 그룹들은 경연을 봤으니 어느 정도 실력이 파악되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던 서도화의 시선에 어느 한 그룹이 들어 왔다.

“오.”

서도화가 그들을 보며 작은 탄성을 내뱉었을 때 아덴 또한 그와 같은 방향의 같은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아덴.”

“어.”

“저분들 어때?”

서도화와 아덴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씨익 동시에 웃었다.

마치 악동 같은 미소였다.

“좋은데?”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용사파티 내에서 하이넬과 함께 가장 정상인, 이성적인 역할을 맡고 있던 서도화라고 할지라도 그는 사이코 용사 아덴의 친구였다.

본디 친구는 서로 친구인 이유가 있는 법.

이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비슷하게 잘하는 그룹을 데려와 시너지를 폭발시킬 것인가. 혹은 자신들만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만만한 그룹을 선택할 것인가.

아주 다행히도 56번 그룹에게는 그 두 가지 전부 충족시킬 상대가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 같이하고 싶은 그룹 있어?”

때마침 한야가 서도화와 아덴에게 물었다. 서도화와 아덴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아덴이 그들의 번호를 말했다.

그러자 고민이 많아 보이던 멤버들의 얼굴에도 그들과 같은 개구진 미소가 지어졌다.

“혀, 형 진짜로요? 진짜 저 사람들이랑 하게요?”

당혹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이들의 사랑스러운 막내 주상현뿐이었다.

* * *

잠시 후 자유시간이 끝나고 서영이 연습생들을 향해 말했다.

“베네핏을 받은 각 그룹의 리더는 앞으로 나와서 함께할 그룹을 선택해주세요.”

그에 한야를 포함해 해당하는 총 아홉 그룹의 리더가 무대 위로 향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웅성거리던 현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서도화는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심각한 얼굴로 무대 위 리더들을 살피는 연습생들. 함께하고 싶은지 되도록 피하고 싶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꽤나 속이 타는 얼굴들이었다.

그런 와중 A키워드의 1위부터 차례대로 각자 함께하길 원하는 그룹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저희는 20번 그룹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당연하게도 같은 키워드 내에서 호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그룹의 멤버들 또한 유제이의 멤버들처럼 함께 경연을 치른 키워드를 제외하곤 다른 그룹에 대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키워드 내에서는 중복 호명이 조금 있었지만 아직 유제이 멤버들이 고른 그룹을 원하는 이들은 없었다.

“…….”

서도화가 말없이 자신들이 지목할 그룹을 힐끗 쳐다보았다.

뭐, 걱정하지 않아도 저들을 지목할 이들은 없겠지만.

잠시 후 서영이 마이크를 한야에게 건네주었다. 드디어 한야가 호명할 차례였다.

“56번 그룹의 리더가 직접 함께 공연하고 싶은 그룹을 호명해주세요.”

“네, 저희는.”

한야가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우직한 말을 내뱉었다.

“91번 그룹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갑자기 컨셉을 바꿔 아크로바틱을 펼쳤던 그들이었다. 한야의 시선이 91번 그룹에게 닿았다. 그들은 무척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다 이내 리더로 보이는 이가 마른세수를 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서도화와 아덴, 케이와 주상현까지 똑같은 표정으로 씨익 미소 지었다.

이건 승리의 미소였다.

저들이 어떤 성향의 그룹인지는 모르지만 컨셉이 겹친다면 같이 하면 되지. 김에 누가 더 잘하는지 뽐내면 되지.

제3자가 보기엔 선전포고, 혹은 도전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그냥 팝넷에게 분량 아깝지 않은 좋은 그림 하나 보여준다 생각하고 이들을 선택했다.

컨셉도 겹치고 순위도 서도화와 멤버들이 더 높긴 하지만 저들도 C 키워드 7위까지 올라섰으니 재수는 좀 없어도 역량은 충분하고.

어차피 이들 그룹 외엔 그다지 눈에 띄는 그룹도 같이 하고 싶은 그룹도 없었다.

91번 그룹의 리더가 무대 위로 올라오는 동안 짧게 한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56번 그룹은 91번 그룹을 선택했는데요. 한야 씨, 91번 그룹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서영의 물음에 한야는 조금도 떨리는 기색 없이 차분히 대답했다.

“오늘 하신 공연을 저희 멤버 모두가 무척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특히 91번 그룹 분들도 아크로바틱을 하실 수 있으니까 같이 하면 더 좋은 구성을 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때 화면이 전환되어 무대 바로 앞에 선 서도화와 멤버들을 비추었다. 서도화와 주상현, 아덴이 활짝 웃으며 동시에 양손을 주먹 쥐며 파이팅 동작을 취해 보였다. 케이 또한 동작은 못 맞췄지만 실컷 연습했던 미소를 선보였다.

항상 뒤죽박죽 오합지졸이다가 이럴 때만 잘 맞는 56번 그룹이었다.

한야는 엉망진창인 그들을 기특하게 바라보곤 말했다.

“실력도 비슷하고 함께 했을 때 저희와 가장 조합이 맞을 것같은 그룹을 선택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91번에 대한 견제만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컨셉이 맞으니 더불어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고 컨셉이 겹치기에 합동 공연 준비를 하면서 경쟁할 수 있다.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두 그룹이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으로 분량을 가져가기 참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편 떨지 않고 평온하게 말하는 한야와 멤버들과는 달리 91번 그룹은 여러모로 짜증스러웠다. 절로 심각해지는 표정을 애써 담담하게 숨기느라 한야의 지목 이유를 들을 여유따위 없었다.

당연했다. 저들의 입장에선 키워드 경연에서 무려 2위, 화제의 그룹에게, 그리고 본인들이 도발한 이들에게 러브콜을 받은 것이었을 테니.

물론 그 복잡함을 담은 얼굴을 카메라 앞에서 그것도 그룹의 리더가 드러낸다는 건 가히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아마 이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91번 리더의 저 표정만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터였다.

……어쨌거나 유제이 그룹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순수하게 열정으로 그룹 컨셉을 바꾼 거면 어쩌나 했더니 음, 딱히 좋은 성격을 가진 놈들은 아닌 듯했으니까.

91번 리더는 한야와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만 올린 채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에 반해 한야는 다정히 웃으며 그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무척 예의바른 인사였다.

“91번 그룹, 56번에게 지목되었는데요. 기분이 어떤지, 포부와 함께 말씀해주실까요?”

서영의 말에 91번의 리더는 고민과 걱정이 많은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조금 걱정도 되는데 56번 그룹 멤버분들과 열심히 좋은 무대 만들어서 경연에 임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56번과 91번, 좋은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다음은 C키워드 3위였던-”

서영은 서둘러 다음 그룹으로 진행을 넘겼다. 그리고 해당되는 그룹 모두에게 베네핏이 제공된 뒤 곧바로 그룹별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제비뽑기는 별다른 멘트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고 매치 결과 또한 그때그때 바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정해져 있던 모든 순서가 끝났다. 마지막 그룹이 제비뽑기를 마치자 스트리밍 화면이 전환되었고 서영이 기다렸다는 듯 멘트를 했다.

“이로서 밀리언 아이돌 2라운드 라이브 스트리밍을 종료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희는 3라운드 경연에서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영의 엔딩 멘트와 함께 마침내 밀리언 아이돌의 2라운드 라이브 스트리밍이 종료되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피곤에 찌든 감독의 목소리에 연습생들의 힘찬 대답이 돌아왔다.

연습생들과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합숙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들은 후 각 스태프들과 함께 하나둘씩 체육관을 나섰다.

“얘들아, 정말 수고했어! 형이 진짜 너네 순위 보고…….”

“……매니저 형, 울었어요?”

달려온 이병수의 눈가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주상현이 놀리듯 묻자 이병수는 순순히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곤 멤버들을 챙겨 밖으로 향했다.

서도화는 이병수에게 밀려 나가며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집요하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린 시선에 눈이 딱 마주친 이는 91번의 멤버였다. 그는 서도화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인사, 또는 머쓱함, 혹은 시선 피함도 없이 그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그래서 서도화도 그를 뚫어지게 바라봐 주었다.

‘뭘 봐.’

그러자 91번 그룹의 멤버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곤 멤버들과 함께 현장을 나섰다.

그때 케이가 슬그머니 서도화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협조하겠다. 저 인간이 너에게 했던 말.”

“뭐라던데? 욕이면 하지 마.”

“개무서워.”

“……뭐?”

서도화가 당황하며 케이를 바라보자 케이는 태평하게 한 번 더 저들의 중얼거림을 읊어주었다.

“왜 우리 지목하고 지랄이야, 주상현이랑 또 비교돼야 해? 라고 했다. 그런데 욕이라면 어떤 욕을 말하느냐? 이곳의 욕은 무엇이냐?”

당황한 서도화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자 대신 지나가던 아덴이 케이의 귓가에 손수 욕을 속삭여주었다.

“케이클랍스에 무덤 짓고 싶냐?”

“……그건, 그건 나에게 욕이 아니다! 오히려 영광된 일이지! 내가 일군 땅에 묻힌다는 것은……!”

“아예.”

아덴은 케이를 무시하고 서도화만 챙겨 밖으로 향했다. 무척 억울해하는 케이는 한야와 주상현이 챙겼다.

“아. 아아.”

서도화는 아덴에게 끌려가며 케이의 말을 복기했다. 케이에게 들은 저들의 중얼거림은 꽤나 허접했다.

왜 주상현을 그딴 식으로 보나 했더니 열등감이었나.

체육관에서 나갈 때쯤 서도화는 91번에 대한 판단을 끝마치고 피식 웃었다.

3박 4일간의 합숙이 기대되었다.

한편 스트리밍 이후 각 커뮤니티는 크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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