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4화 (44/270)

제44화

“안녕하세요!”

훅 다가온 카메라를 주상현은 익숙하게 반겼다.

“오늘 날씨 되게 맑죠?”

서도화는 감탄했다. 너무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늘 걱정이 많고 소심하고 또 유순해서 멤버들의 보호를 받던 주상현은 카메라 앞에만 서면 멤버 중 가장 든든한 사람이 되었다.

멤버들은 제작진들의 도움을 받아 마이크를 착용하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렇네요. 상현 씨 이곳엔 오랜만이죠?

“네, 엄청 오랜만이에요. 왔는데 너무 많이 바뀌어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희 멤버 형들한테 여기저기 바뀐 걸 말하고 있었어요.”

-예전에는 다른 형들이랑 왔었잖아요.

“그랬죠. 그때 재밌었는데.”

제작진 또한 주상현은 반가운 얼굴이었다. 제작진은 한결 편하게 질문을 이어갔고 주상현은 성실히 대답하며 이따금 멤버를 끌어들여 대화에 참여시켰다.

서도화가 주상현을 기특하게 쳐다보았다. 정말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자 주상현에게 머물던 카메라가 이번엔 서도화를 찍으며 다가왔다.

-도화 씨는 이곳이 처음이시죠?

어, 내 이름 알고 있네? 서도화는 그 수많은 그룹의 멤버 중 제작진이 자신의 이름을 외우고 있다는 것에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가 1, 2라운드에서 보였던 모습을 생각하면 제작진과 참가자들 중 서도화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네, 처음입니다. 엄청… 넓네요.”

참고로 서도화는 주상현과 달리 카메라가 그리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5년간 카메라와 담쌓고 산 이유도 있지만 애초에 데스티니 엔터 연습생 시절부터 예능감은 부족하단 평을 많이 들었었다.

뭐, 그때는 확실히 연습과 실력향상에 집중하다 보니 내향적이긴 했다. 하지만 제2세계에서의 경험으로 도화는 어떤 의미로든 강해졌다.

그래도 천성이 쉽게 변할까. 그렇기에 자신을 따라오는 카메라가 무척 난감했지만 그래도 아덴과 케이에게 접근하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성의있게 그리고 길게 인터뷰를 붙잡았다.

나름 열심히 했어도 화면으로 보면 아마 어색한 티 제대로 날 것 같아 좀 민망하긴 했다.

서도화가 슬쩍 멤버들을 살폈다. 아덴과 케이는 김유진이 시켰던 대로 한야에게 딱 붙어있었다.

‘카메라가 인터뷰를 시도하면 아덴이랑 케이는 리더나 상현이한테 붙어있어. 그럼 너희가 대답할 일이 배는 줄어들 거야. 물론 대답하고 싶으면 대답해도 돼. 아니, 대답은 할수록 좋아. 대신 예의 바르게. 조심해서.’

간단하면서도 참 좋은 방법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멤버들이 마침내 건물의 입구에 다다랐다.

-그럼 56번 그룹, 파이팅 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들을 에스코트하듯 따라오던 카메라는 입구에 도착함과 동시에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자아.”

멤버들은 나란히 선 채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예쁜 건물. 이곳이 3박 4일간의 전쟁터였다.

마치 던전 입구를 앞둔 것 같은 비장함이 느껴졌다.

“우리 잘해보자 얘들아.”

“네!”

한야의 부드러우면서도 우직한 말에 멤버들이 힘차게 대답하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비장함은 건물 내부 으리으리한 인테리어를 보며 빠르게 무너졌다.

“와아…….”

“엄청 높다…….”

“형! 저기! 휴식실 좀 봐봐요.”

재벌 3세 한야와 마족의 소굴 케이클랍스의 화려한 성에 살았던 케이를 제외한 멤버들이 고급스럽게 꾸며놓은 공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려 3층 높이를 터서 만든 가운데 로비, 거대한 샹들리에와 금테까지 두른 분수대.

과하게 새하얀 바닥과 벽.

겉으로 보기엔 초등학교 같더니 내부는 화려한 재벌가의 저택, 혹은 귀족의 성처럼 꾸며두었다.

산속 이곳만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식당, 연습실, 휴게실, 그리고 이상한 화폐 단위로 가격이 적혀있는 매점까지 모든 것이 사치스러워 보였다.

멤버들이 숙소 구경을 하는 동안 조금씩 삼삼오오 모여 내부를 돌아다니는 연습생들이 늘어났다.

“연습생들은 모두 숙소 맞은편 강당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잠시 후 숙소 내 방송으로 울려 퍼지는 제작진의 목소리에 서도화와 멤버들은 운동장 건너 강당으로 향했다.

비록 카메라 앞이긴 하지만 강당 안은 경연 현장보단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서도화와 멤버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 인기척에 시선을 보내는 몇몇 그룹들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앗, 네. 안녕하세요.”

경연 때를 제외하면 처음 보는 그룹들, 경연 땐 다른 그룹과 크게 만날 일이 없어서 이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경연 날엔 하나같이 날이 선 모습들이었는데 편안한 분위기에서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어리고 여리고 순해 보이고 또 잘 웃는 연습생들이 대다수였다.

“안녕하십니까.”

서도화와 멤버들은 그들의 시선을 전부 받아 공손하게 인사하며 강당의 구석, 그러나 카메라 한 대가 가까이 배치된 장소에 자리 잡았다.

굉장히 자유롭고 좋은데 왠지 조용히 사리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서로의 교류가 없었던 각 그룹들, 거기에 개인이 아닌 각자의 그룹이 있으니 크게 말을 걸고 친해져야 할 이유도 못 느꼈다.

그래서 그런가 강당 안은 떠들썩하면서도 삭막했다. 그런데 그때 이들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살가운 목소리에 멤버들이 돌아보았다. 합동 공연을 함께하기로 한 91번 그룹이었다. 그들은 웃으며 인사하곤 멤버들의 앞에 주섬주섬 자리 잡았다.

그래, 먼저 인사 올 줄 알았다. 순위로 보나 화제성으로 보나 우위에 있는 건 56번 그룹이었다. 조금이라도 방송에 얼굴을 더 비치려면 하다못해 인사 나누는 모습이라도 카메라에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멤버들의 표정에 영업용 환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안녕하세요.”

“우와! 안 그래도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어요?”

“……예? 네. 잘, 지냈어요.”

91번 그룹의 리더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패기 좋게 자신들을 지목한 이들이 이렇게까지 반겨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너희가 선전포고 비스무리한 걸 했지만 그렇다고 만나서 싸울 기세로 굴면 안 되는 거 알지? 걔네가 도발은 했든 안 했든 예의 바르게 친구 하자고 말해. 기 싸움 할 생각도 하지 마. 알겠지? 싸울 것 같으면 부드럽게 양보하고 그냥 져줘.

라던 김유진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멤버들은 이를 철저히 지켜 91번 그룹에게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을 붙였다. 그런데 사실 김유진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이들은 예의 바르게 그들과 대화하려 애썼을 것이다.

이미 방송을 잘 아는 멤버와 한 가식 하는 멤버들은 카메라 앞에서 결코 흠 잡힐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91번 그룹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56번과 마찬가지로 씨익 웃었다.

“시작 전에 인사 먼저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저희 서로 공연하는 것만 봤지 대화는 처음이죠? 전 91번 리더 지한입니다.”

서도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전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가며 의미심장하게 웃던 지한의 표정을 떠올렸다.

‘저놈 저거, 그때 참 야비해 보였는데…….’

91번 또한 만만치 않은 철가면을 두르고 있었다.

“56번 그룹 리더 한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야를 필두로 멤버들이 서로 통성명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훈훈해 보이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상대를 이겨 먹기 위해선 우선 그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양측 다 속은 새카매도 지금 강당에 모여있는 그룹 중엔 가장 먼저 짝이 된 그룹과 이름을 튼 사이가 되었다.

일단 케이는 김유진의 말에 따라 인사와 통성명 뒤 미소만 띄운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도 미소를 유지하고 있으려니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마치 도화의 불안한 마음을 반영하는 듯했다.

그렇게 세 명의 인간 멤버들과 용사가 힘을 내 어색하게나마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좋은 아침이죠?”

강당의 단상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목소리에 연습생 모두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와!”

“우와, 선배님.”

연습생들이 감탄사와 함께 단상 쪽으로 모여들었다. 경연의 진행자 서영이 비교적 편한 복장으로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어, 저희도 얼른.”

한야가 91번의 리더에게 말하며 자신의 멤버들을 일으켜 세우곤 단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서영은 연습생 전원이 자신의 주위로 모여든 것을 확인한 뒤 진행할 때보다 편한 말투로 말했다.

“자유시간 동안 다들 짝꿍 그룹과 대화 많이 나눴어요?”

서영의 말에 연습생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강당에 도착해서 서로 조심하느라 다른 그룹과 말 붙인 그룹은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런 와중 56번과 91번은 서로 싱긋 웃으며 가식적으로 시선을 마주했다.

우린 적어도 인사는 했다. 그렇게 말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이 훈훈한 모습을 발견한 서영은 흐뭇하게 웃곤 해야 할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부터 3박 4일간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지내며 합동 무대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녀의 말투는 어느샌가 경연 때와 같이 변했다. 서영은 제 손에 든 큐카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여러분 그냥 준비만 하면 재미가 없죠? 악명 높은 이곳까지 왔는데.”

서영은 호쾌하게 말하며 웃었다. 팝넷의 합숙 프로그램은 이전부터 연습생들을 괴랄하게 굴리기로 악명이 자자했다.

참고로 주상현은 지난 시즌 합숙 중 댄스 트레이너에게 실컷 악평을 들은 후 메인 댄서 자리에서 밀려 폭풍오열하며 형들에게 위로받는 장면이 상당히 유명한 클립으로 남았었다.

한결 누그러졌던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서영의 말에 다시 얼어붙었다.

서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럼 이번 합숙의 의의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번 합숙은 바로 ‘파트 배분 경쟁’을 위한 합숙입니다.”

“……파트 배분 경쟁?”

연습생들이 웅성였다.

“설마.”

“파트 배분으로 경쟁한다고?”

서영은 ‘쉿’ 검지를 입에 가져다대 연습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합동 무대에서 선보일 곡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파트 배분은 연습생 스스로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럼?

완전히 벙찐 표정의 연습생들을 향해 서영이 미소 지었다.

“모든 것은 경쟁으로, 보컬과 댄스 모두 3박 4일 동안 여러분들의 실력을 평가할 심사위원들이 직접 여러분들의 파트를 결정하게 됩니다.”

그러니 원하는 파트를 차지하고 싶다면 최선을 다해 잘 부르고 잘 춰야 할 것이다.

악독한 시스템에 어지간히 충격을 받은 듯한 연습생들을 향해 서영은 마지막 화룡점정까지 성실히 찍었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면 단 한 소절의 파트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습생들은 그대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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