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8화 (48/270)

제48화

“여기서 바위처럼, 인원이 많으니 한 세 단 쌓아 올려야겠어요. 멤버들이 동굴을 만들고 료타 형이 뒤에서 나오면서-”

91번 그룹의 멤버 료타는 주상현이 시키는 대로 제 파트를 부르며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음 파트 담당 멤버가 원곡의 안무대로 등장하며 힐끔 자신들의 메인 댄서 손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손지가 그에게 다음 안무와 동선을 지시했다.

주상현은 그동안 다른 연습생들의 자세를 일일이 고쳐주었다.

“음, 팔을 더 직각으로 굽혀야 하는데, 멀리서 보면 좀 찌그러진 것 같아요. 어깨를 더-”

“저도 그건 아는데 받치는 등이 너무 낮아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그의 말에 주상현의 표정이 굳었다.

91번 그룹의 멤버 김진석. 서도화의 그룹으로 치면 아덴과 같은 애매하게 못 하는 포지션의 멤버였다.

연습생들이 몸으로 표현한 동굴은, 원래는 상체를 숙인 연습생의 등에 팔을 올린 채 직각을 유지해야 하는 자세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싸해진 분위기.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에서 자주 보던 연습생들 간의 부스럼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1차 심사를 대차게 말아먹은 연습생들은 예민함의 극치를 달렸다.

서도화는 거울을 통해 김진석을 보았다.

그의 아래엔 한야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별 이상 없이 자세를 잡고 있었건만, 김진석의 어깨가 돌아가야 하는 만큼 돌아가지 않아 팔이 곧게 직각이 되지 못했다.

주상현은 그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김진석은 그의 지적을 듣는 게 어지간히 자존심 상한 모양이다.

“……한야 형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요.”

주상현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서도화는 슬그머니 자세를 풀고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 별거라고 그냥 어깨만 돌리면 되는 걸 이렇게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나 싶긴 한데, 또 저 두 사람의 관계와 방금 서로의 파트가 바뀌었다는 특이사항을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저들은 주상현과 함께 전 시즌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가장 늦게 들어온 막내 주상현이 인기를 얻고 급기야 프로젝트 그룹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자 거기서부터 조금씩 사이가 벌어졌다고 했다.

‘유니드 활동 종료하고 혼자 데뷔 못 하고 있으니까 엄청 비꼬더라고요. 저랑 같이 데뷔하기 싫다고도 하고.’

원래는 유니드 활동 종료와 동시에 함께 데뷔하려 준비 중이었지만 주상현은 그들의 괴롭힘과 소속사의 방관을 참지 못하고 결국 계약 해지. 그리고 김유진의 소속사로 입사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서도화와 멤버들은 대놓고 주상현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표출하는 그들이 상당히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서도화는 숨을 내쉬곤 기 싸움 중인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그러곤 김진석과 주상현의 사이에 끼어들어 한야의 등에 손을 댔다. 그리고 팔을 굽혀 직각 자세를 만들어 보였다.

아주 교과서적으로 완벽한 직각이었다.

“높이가 문제가 아니네요. 상현이 말대로 진석 씨 어깨가 조금만 더 돌아가면 충분히 될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네?”

김진석이 어이없다는 듯 서도화를 쳐다보았고 서도화는 그저 미소만 지었다.

“우리 그냥 좋게 좋게 해요.”

아직 갈 길 멀었으니 벌써부터 싸우지 말자.

서로 기 싸움 하다 결국 단합해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무척 매력적인 장면이겠지만 일단 이 팀은 무대가 끝날 때까지 단합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저들은 몰라도 일단 서도화의 멤버들은 그랬다.

동료가 당하는 건 못 참는 용사와, 수하가 당하는 꼴은 못 보는 마왕이 벌써부터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으니.

그러니 되도록 싸우지 말고 좋게 좋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편이 나았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해볼게요.”

김진석도 그럭저럭 상황을 파악했는지 91번 멤버들의 눈치를 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양쪽 모두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선 안 되는 걸 깨달은 덕분에 그 이후 조용한 분위기 속 댄스 브레이크를 제외한 안무 숙달은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안무 숙달이 끝났다고 해서 모두 끝난 건 아니었다.

“……우리 연습 많이 해야겠다.”

잠깐의 쉬는 시간, 한야가 멤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멤버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도화 또한 동감하는 바이다.

안무와 동선을 달달 외웠지만 이들은 2절을 제외하고 케이의 전 파트를 뺏겼음을 잊어선 안 된다.

2절이라고 해봐야 케이의 파트는 딱 한 소절뿐이라 그것마저 뺏기면 진짜로 케이는 잘생긴 병풍이 되어버린다.

“알겠습니다.”

어째 우중충해진 멤버들의 분위기에 케이가 짧게 대답하고 일어났다. 그의 다리가 조금 떨렸다. 그러곤 당연스레 연습실 가운데에 섰다.

멤버들의 반응,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케이는 딱히 크게 상처 입지는 않았다. 그는 나머지 공부가 익숙한 연습생이었다.

다만 협조하기로 한 이상 더이상 민폐 취급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멤버들의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으면 더 연습하면 된다. 더 많이 연습하면 언젠가는 만족할 만큼의 성과가 나온다.

비록 제 세뇌의 힘을 사용하긴 했지만 이 낯선 세계에서 머물 곳을 만들어준 이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이번 경연만큼은 열심히 해야 했다.

케이가 연습을 다시 시작하자 아덴이 슬쩍 그의 옆으로 가 연습을 함께했다. 아덴도 꽤 많은 파트를 뺏겼었다.

“저희도 할게요.”

“저도.”

이를 본 91번의 안무 구멍들도 목만 축이곤 케이와 아덴의 근처로 다가왔다. 네 사람 중 지치지 않은 이는 아덴뿐이었다.

“열심히 하네.”

“그러게요.”

서도화와 주상현이 조금 지친 목소리로 건조하게 대화를 나눴다.

“열심히 연습하네요.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는 조금만 쉬다가 가자.”

“그럴까요.”

무미건조한 대화 속 서도화 한야, 주상현의 눈빛은 불타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아덴과 케이에게로 향했다.

정말 열심히 한다. 열심히는 한다. 열심히만 한다. 잘할 생각은 안 하고.

솔직히 말해서 다른 그룹과 함께 보니 확실히 알겠다. 91번의 댄스 구멍들도 아덴과 케이보다는 훨씬 잘하는 축에 속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두 사람은 다른 것 없이 오직 얼굴로만, 얼굴이 너무나 잘나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외모이기 때문에 캐스팅되었을 뿐이니까.

함께 연습하고 있는 91번 연습생과 비교하니 더 못하는 게 티가 났다.

“아덴과 케이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요.”

서도화가 중얼거리자 한야의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갔다.

그러곤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하지만…….”

“오늘은 두 사람 실수 안 할 때까지 잠잘 생각 하지 말자. 그러면 어떻게든 될 거야.”

“……예?”

서도화와 주상현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한야를 바라보았다. 한야는 그게 진짜 위로라는 듯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다.

“예에…….”

완벽해질 때까지 밤샘 연습하자는 것을 아주 상냥하게 말하는 한야였다.

무섭게.

* * *

2차 연습은 저녁 식사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 이후 모든 연습생들이 배정받은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2층 침대 세 개에 커다란 수납장 하나로 이루어진 새하얗고 깔끔한 방이었다.

비록 침대가 꽉꽉 들어차 있기는 해도 짐을 풀 수 있는 수납장이 있어 그럭저럭 넓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허! 방 엄청 넓네?”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주상현이 현관에 탁! 짐을 던져준 채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침대 어디 쓰지? 형들 침대 어디 쓸래요? 저는 2층! 2층 제가 써도 돼요?”

아까 전 연습할 때까지만 해도 91번과 함께 연습하느라 감정도 진도 다 빼더니 금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 상현이가 쓰고 싶은 곳으로 써.”

한야는 자상하게 말하곤 주상현의 짐을 대신 챙겨 들더니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너희들도 짐 정리하고 각자 쓰고 싶은 침대 써. 형은 아무 데나 괜찮아.”

“네!”

서도화는 한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납장에 대충 캐리어를 쑤셔 넣고 2층 침대로 향했다. 연습실에서 샤워까지 끝마치고 와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바로 침대에 뛰어들 수 있으니.

서도화가 베개에 완전히 얼굴을 묻고 눈을 감자 아래서 누군가 침대 프레임을 두드렸다.

“1층 안 쓰고?”

서도화가 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덴이었다. 사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2층보다 1층이 더 편하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어디든 동료 잠자리 하나는 열심히 챙기는 아덴이었다.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2층 쓸래.”

물론 번거롭지 않은 건 1층 침대겠지만 이곳은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다. 밤새 왔다 갔다 하는 인기척을 느낄 생각을 하면 2층이 좋았다.

아덴은 고개를 끄덕이곤 당연스럽게 서도화 아래층 침대를 택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 조금 있으면 저녁 식사를 위한 안내 방송이 들릴 것이고 그 이후 또 자유시간이었다.

하지만 자유시간은 자유시간이 아니니…….

서도화는 아까 전 한야, 주상현과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며 저녁 식사를 포기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중을 위해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해야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