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9화 (49/270)

제49화

“우리 연습 어디서-”

아덴이 하던 말을 멈췄다. 서도화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부동자세였다. 대화를 나누다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녁은 먹고 자는 게 좋을 텐데.”

저녁에도 연습을 할 거라고 했으니 뭐라도 든든히 챙겨먹는 것이 좋을 터다.

그러나 아덴은 잠든 서도화가 숨 쉬기 편하도록 고개만 살짝 돌려줄 뿐 그를 깨우진 않았다.

“형, 도화 형 저희 밥 먹으러 오래요. ……도화 형 주무세요?”

“쉿. 어.”

그는 저녁 식사를 위해 서도화와 자신을 데리러 온 주상현에게도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와 만난 지 5년, 그가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언제나 무심하거나 겁을 먹거나 혹은 슬픔에 점철된 채로 노래 부르는 모습만 보았었지.

그래서 서도화에게 노래란 그저 하나의 생존 수단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도화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온 이후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또 노래를 찾았다. 춤도 췄다.

그의 눈은 더이상 슬프지 않았으며 목소리 또한 애달프지 않았다.

요즘 보는 서도와는 원래의 세계에서 보던 그와 많이 달랐다. 그렇게 싫어하던 땀 흘리는 행위, 우울하기만 했던 노래를 부르며 무척 즐거워했다. 매우 열심히 했다.

익숙하지 않은 열정을 태웠으니 당연하게 몸이 지쳤을 거다. 그 세계에선 거의 움직이지 않았으니 오래 몸을 움직이는 데 적응이 필요할 거다.

‘쉴 때는 쉬어야지.’

아덴이 미소 지었다. 그는 드물게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의 모습이 꽤 보기 좋았다.

“먹을 거나 좀 챙겨오자. 경험상 저 녀석 새벽쯤 되게 배고파해.”

“그런 것도 알아요? 소꿉친구라더니 역시.”

주상현은 가볍게 엄지를 추켜세우곤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 주상현의 머리에 아덴의 손이 올라갔다.

“너도 밥 많이 먹어. 쉬기도 좀 쉬고. 오늘 새벽까지 같이 해주기로 했잖아.”

그렇다. 이들은 오늘 새벽까지 잘 생각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멤버들의 실력을 평준화 시키기 위해, 아덴과 케이가 한 소절이라도 더 부를 수 있도록 단체 밤샘을 감행하기로 한 그들이었다.

* * *

서도화가 잠에서 깨어난 건 저녁식사가 끝나고도 한 시간 가량이 지난 뒤였다.

‘……아무도 안깨웠냐.’

물론 밥 안 먹을 생각이긴 했지만 멤버들에게 밥 안 먹겠다고 한 적은 없었는데.

‘배려인가, 아니면 내 존재를 까먹은 건가.’

서도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 꺼진 숙소는 조용했고 서도화 혼자였다. 대신 그가 누워있던 2층 침대 머리맡에 간식으로 나온 듯한 빵이 무려 다섯 개가 우유와 함께 쌓여있었다.

우르르 무너져내리는 빵의 산을 보며 서도화가 피식 웃었다.

‘어쩐지 자는 동안 무언가 거슬린다 했더니.’

멤버들이 밥 못 먹었다고 본인들 것, 서도화 것까지 싹 다 몰아준 듯하다. 그는 픽 웃곤 빵을 챙겨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에 우뚝 멈춰 섰다.

“잠깐…….”

그런데 진짜 왜 나밖에 없지?

서도화가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식사 후 자유시간. 이들은 자유시간을 할애해 추가 연습을 하기로 했으니 식사 때는 까먹었을지언정 연습할 때가 되면 서도화를 깨워야만 했다.

“다들 어디 갔지?”

품에 한 아름 빵과 우유를 들고 멈춰선 서도화는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한 발짝 앞으로 향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침대에 달린 카메라를 보며 흠칫했다. 어두워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겠지만 이 모습을 방송에서 보게 된다면 상당히 바보같이 보일 터였다.

하지만 서도화가 갈 곳을 잃은 건 맞았다. 합숙에 들어오기 전 휴대폰은 반납했고 멤버는 없다.

‘찾으러 가볼까?’

고민하던 서도화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 방 불을 켠 후 침대에 걸터앉았다. 멤버들이 연습하러 가는데 서도화를 안 깨울 리 없으니까.

‘다시 돌아오겠지.’

덤덤히 생각하며 빵 포장지를 뜯어 천천히 먹고 있는데 방 밖 복도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멤버들이 단체로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큰일- 어? 형 언제 일어났어요?”

“방금? 왜 무슨 일인데?”

“빵 맛있어요?”

“먹을래?”

서도화가 새 빵을 건네자 주상현에 이어 아덴, 케이도 주섬주섬 다가와 빵을 나눠 먹었다.

도화를 배려해 주긴 했지만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많이 먹어.”

상당히 맛있었는지 급 말을 멈추곤 오물거리는 두 사람과 마왕 한 마리에게 서도화가 빵을 하나 더 건네고 있을 때, 한야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너 자는 동안 연습실 남는 곳 있는지 둘러보고 왔어.”

“있어요?”

한야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데도 없네. 강당은 가능하려나 했는데 거긴 연습하는 인원이 너무 많더라.”

오로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위해 만들어진 합숙소. 그런 만큼 연습실도 많았지만 그보다 연습생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그래서 합숙의 초반 팀별로 연습실에서 연습할 시간을 제한해 정해두었다. 덕분에 이미 제 시간을 사용한 팀들은 연습실 사용이 무척 어려웠다.

그렇기에 연습실 사용이 막힌 몇몇 연습생들이 1차 심사 이후 강당에서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요?”

연습실은 못 쓰고, 강당도 못 쓰고 그럼 어디서 연습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아덴이 말했다.

“연습할 곳 많은데?”

그는 창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서도화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푸르른 나무와 인공잔디 운동장, 운동장 바깥을 메운 흙바닥. 야외였다.

“야외에서?”

“어, 내가 아까 둘러보고 왔는데 안전해. 밖에서 자도 되겠더라.”

“밖에서요?”

주상현이 떨떠름하게 바깥을 바라보았다. 음악은 틀지 않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흙바닥도, 인공잔디가 깔린 바닥도 연습을 하기에 그다지 적절한 환경은 아니었다.

주상현이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케이가 버럭 말했다.

“고, 공기도 맑다! 그러니 밖에선 해도 돼. 안전하니까…….”

“예?”

“공기가… 맑으니까.”

이곳은 독기가 없으니까. 케이가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을 어쩐지 서도화는 알 것만 같았다.

서도화는 먹던 빵을 다 먹고 일어났다.

“그래 그럼 야외에서 하자. 잔디 있는 곳보단 흙바닥이 좋겠지?”

댄스구멍 두 녀석이 열정을 불태우는데 어디든 연습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

“흙바닥이 낫긴… 하죠?”

스멀스멀 시무룩 태세에 들어가려던 주상현은 당장이라도 나갈 기세인 서도화와 멤버들을 멍하니 보더니 고개를 확 내젓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밖에서 해요 그럼! 별도 보고 좋겠다!”

저들과 함께하며 참 안 해본 짓 많이 해보는 주상현이었다.

“가요. 흙바닥에서 안무 연습은 또 엄청 새롭네요.”

“그래도 너무 눈에 띄는 곳에서 하진 말자. 부끄러우니까.”

대화를 나누며 숙소를 나서는 멤버들에게 한야가 말했다.

“숙소 뒤에 연습할 만한 테라스 있어. 흙바닥보단 거기가 나을 거야.”

“오, 숙소에 테라스도 있었구나.”

그곳은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이지만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어 평평할뿐더러 넓다.

무엇보다 그곳에도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멤버들이 의견을 모으기 전부터, 아덴이 야외를 가리킨 이후 곧바로 야외에서 연습할 만한 장소가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둔 한야였다.

* * *

연습을 진행하기로 한 테라스로 가기 전 멤버들이 들려야 하는 곳이 있었다. 필수는 아니지만 어째 안 들리기엔 찝찝한 곳.

91번의 숙소였다.

‘함께하면 좋은 시너지를 일으킬 것 같아서’ 91번을 지목한 서도화와 멤버들인 만큼 합동 무대를 연습하는데 56번끼리만 따로 연습하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다.

어차피 안무 완성도 높이는 거 연습만큼은 협력하되 파트를 안 뺏기고자 발버둥치는 방향으로 함께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스레 권유라도 한번 해보고자 했다.

“91번 분들 숙소가 어디였더라.”

“위층으로 올라가야 할걸요?”

멤버들의 말에 아덴과 케이가 동시에 말했다.

“302호.”

“302호라고 했다.”

그러더니 서로를 보곤 입술을 삐죽 내민 채 고개를 돌려버렸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그들의 반응을 뒤로한 채 이번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계단을 찾았다.

“302호면 계단 올라가자마자 바로 보이겠네.”

이 합숙소는 전 시즌과는 달리 순위에 따라 식사, 연습 시간 등에 차이를 두지는 않았다. 대신 방에 차이를 두었다.

상위권 그룹들의 방은 휴게실, 연습실 등 1층의 편의시설을 쓰기 쉽도록 2층에 위치했고 넓을뿐더러 충분한 크기의 수납장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 방을 쓸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한다.

중간 순위 그룹들의 방은 3층에 위치했으며 2층에 비해 좀 더 좁아지고 수납장이 사라진다.

하위권 순위 그룹의 방들은 4층에 있으며 수납장은 물론이고 그룹별 침대 수, 방 개수를 맞춰주지 않아 때때로 다른 그룹 연습생들과 섞여 자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서도화의 그룹은 상위권 그룹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2층이었고 91번은 3층의 방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멤버들은 중앙 계단으로 오르자마자 바로 보이는 302호 방의 문을 두드렸다.

“91번 분들 계세요? 지한 씨?”

한야가 그들을 불렀으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없으신가?”

그후 몇 번 더 문을 두드렸으나 아예 인기척이 없었다.

“따로 연습하러 가신 건가?”

“……따로요?”

서도화의 말에 잠시 정적이 일었다. 이 시간에 숙소에 없다면 합숙소 분위기상 놀고 있진 않을 것이고, 그럼 그들끼리 따로 연습하러 갔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경쟁자이긴 해도 함께할 짝그룹이고 같이 공연해야 하는 사람들끼리 연습은 같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연습 중인 다른 그룹들은 다 같이 하는 그룹이 대다수건만.

거기다 이들 그룹은 1차 심사에서 2절을 부르지도 못하고 끝났으니 더더욱 함께해야 맞았다. 그래서 서도화와 멤버들도 껄끄러움을 뒤로하고 온 것이건만.

그런데 부스럼에 아주 불을 지피는구만?

별것 아닌데 괜스레 기분 나빠진 서도화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 그 자체였다. 잔잔히 깔린 미소. 그래 카메라 앞이다. 표정 관리 열심히 해야지. 별것도 아닌데.

그때 주상현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같이 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누가 봐도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이를 들은 아덴이 심각하던 얼굴을 펴곤 입술을 꿈틀거렸다.

어느새 주상현도 서도화와 한야의 성격을 많이 닮아간다.

한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고 멤버들을 챙겨 테라스로 향했다.

“그럼 이번엔 따로 해야겠네. 연습하러 가자.”

“네.”

3층까지 올라온 시간이 아까우니 기가 존나 쎄 보이는 멤버들은 알고 보니 리더 말 잘 듣고 짝그룹 배려도 잘하는 착한 연습생들이었다는 이미지라도 챙기고 내려가자.

김유진의 말대로 틈틈이 차근차근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는 멤버들은 만들어진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표정으로 생각했다.

‘파트 꼭 뺏어오자.’

촬영 스탭들도 시청자들도 아직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56번은 생긴 것과 다르게 밴댕이 소갈머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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