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50화 (50/270)

제50화

쓰레기 재활용 구역의 테라스에서 56번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힘 더 줘요. 더 빠르게 해요!”

“어.”

“형 그거 아니에요. 1절은-”

“아, 이거였다. 그렇지?”

“맞아요!”

주상현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연습은 저녁 식사 전 91번과 함께한 1차 연습보다 훨씬 빡빡했다. 멤버 모두가 열의에 불타고 있었다.

딱히 91번이 잘못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자기들끼리 연습하러 가겠다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는가.

다만 56번이 이렇게 승질이 난건 본인들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냥 91번 숙소 찾지 말고 우리도 우리들끼리 바로 연습하러 갈걸.

상대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는데 그래도 같이 해야지 하며 굳이, 굳이 91번 방에 찾아간 게 너무 자존심 상했다.

별거 아니지만 속이 좁아서, 속이 밴댕이만큼 좁아서 그런다.

서도화는 안무를 계속하며 검술 훈련하듯 안무 연습, 아니 안무를 훈련하는 아덴과 케이, 그리고 단장 주상현, 부단장 한야를 살폈다.

‘그래, 이유가 무엇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계기가 뭐든 열정이 불타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연습의 중반부, 한야는 편곡과 댄스브레이크 논의를 위해 합숙소의 회의실로 향했고 멤버들의 연습은 계속되었다.

“지금부터는 따로따로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후우.”

말을 잇기 전 주상현은 하늘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쉰 후 급하게 물을 마셨다. 그러곤 바로 돌아와 케이를 붙들었다.

“케이 형은 제가 볼게요. 도화 형은 아덴 형 좀 부탁해요.”

연습이 시작된 이후 주상현의 눈빛은 한층 달라져 있었다. 이들이 평소에 알던 귀엽고 말 많고 가끔 시무룩해지는 막내는 어디로 가고 댄스 트레이너 도로시 버금가는 카리스마로 멤버들을 연습시켰다.

“상현이 대단하다. 많이 지쳤는데. 근육이 떨리고 있거든.”

아덴이 서도화에게 다가오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주상현은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주상현은 댄스 멤버인 만큼 무척 체력이 좋은 편인데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좀 무리하고 있었다.

‘평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러나 주상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멤버들이 91번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부터 보였던 그들의 무시와 비아냥.

1차 연습 때 보였던 주상현과 91번 그룹의 이상한 기류.

그리고 이제 멤버들은 주상현과 91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주상현은 그들과 악연이 있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지기 싫은 것이리라.

“도화, 나 동작 순서 너무 헷갈리는데 네가 천천히 다시 보여줘.”

“오케이.”

아덴의 말에 서도화가 그의 파트 안무를 보여주며 부족한 점과 디테일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아덴은 서도화의 동작과 말을 심각한 얼굴로 듣고는 모든 지적을 고쳐 천천히 다시 춤췄다. 거기다 더해 노래까지 불렀다.

“이렇게 하면 돼?”

“어 맞아. 잘하네. 야… 너 노래도 늘었다.”

서도화의 칭찬에 아덴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명색이 용사가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칭찬 받는데 기분이 좋아야 하는지 나빠야 하는지 애매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아덴은 이를 티 내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그는 동료가 이기고자 하면 이기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하는 자였다.

그리고 케이 또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했다. 아마 주상현을 이 세계에서 생긴 유일한 수하라고 생각해서가 아닐까 하고 서도화는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가차없지만 또 수하는 지랄맞게 챙기는 마왕이었으니까.

그렇게 연습이 계속되었다. 연습을 하고 또 했다.

연습을 하고 있으니 회의를 끝낸 한야가 돌아왔고 그 이후 개인마크 연습을 끝내고 단체로 또 연습했다.

그렇게 얼마나 연습했을까. 문이 벌컥 열리며 무척 피곤해 보이는 제작진이 테라스로 얼굴을 내밀었다.

“56번, 지금 몇 시인 줄 알아요?”

“예에?”

지금? 멤버들이 서로를 바라보다 제작진에게 고개를 저었다. 시계를 가진 이가 없으니 당연히 몇 시인 줄 알 리가 없다.

그러자 제작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 휴대폰을 켜 시간을 보여주었다.

서도화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신 차리고 보니 새벽 2시였다.

“벌써 새벽 2시에요. 연습생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라고 방송했는데 안 들렸어요?”

멤버들은 또 서로를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전혀 안 들렸어요…….”

이곳은 숙소 밖이라서 숙소 내 방송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쩐지 좀 더 어두워지고 조용해졌다 싶었는데 다들 방으로 복귀해서 그런 거였나보다.

제작진은 무척 졸려 보였지만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밖이라서 잘 안 들렸나 보다. 알아서 돌아가려나 좀 지켜보다가 못 들은 것 같아서 들렀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첫날부터 너무 힘 빼지 말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세요. 앞으로는 야외에서 늦게까지 연습하는 거 안 돼요.”

어째 방송에서 자주 보던 제작진 말투였다. 멤버들은 연습을 중지하고 서둘러 샤워를 끝마친 뒤 방으로 돌아왔다.

* * *

서도화는 침대에 누워 눈을 꿈뻑거렸다.

의도는 없었지만 아까 전 제작진과의 만남은 어쩐지 방송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황 자체도 어이가 없었고 제작진의 개입도 흔치 않은 일일 테니.

‘나올 거면 되도록 귀엽게 편집돼서 나오면 좋겠는데…….’

욕심낸다고 숙소 복귀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연습했다는 식으로 나오면 어떻게 하지…….

‘팝넷은 그럴 수도 있어…… 방송 내 이미지가 어떠냐에 따라…….’

서도화가 슬슬 내려앉는 졸음을 맞아들이며 눈을 감는 찰나 조용한 방안 주상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들 자요?”

“아니.”

“안 자.”

그의 말에 한야와 아덴이 대답했다. 이미 꿈나라로 가기 직전인 서도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 다시 조용해진 방안 또 한 번 주상현이 말했다.

“아까 죄송해요. 저 때문에 너무 오래 연습해서. 방송 못 듣는 바람에 혼나고.”

서도화가 졸음에 취한 와중에도 피식 웃었다. 또 시무룩한 목소리다.

“하고 싶어서 한 건데 뭐가 죄송해? 같이 못 듣고 같이 잘못해서 혼난 건데.”

“연습해야 하니까 계속한 거야. 내가 시간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 얘들아.”

아덴과 한야가 주상현에게 말했다 제작진에게 혼난 것에 대해 서로 미안해하는 멤버들, 특히 주상현에게 서도화 또한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데뷔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한 거야.”

그래 주상현의 일만으로, 자존심이 상해서, 마음이 소갈머리라, 온갖 이유를 들어 연습을 불태웠지만 어쨌든 이들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연습한 건 데뷔하고 싶어서였다.

그냥 데뷔 말고 잘 데뷔하고 싶었다.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원과 소속사의 지원을 팝넷의 도움으로 메꾸고자. 양질의 글로벌 마케팅과 인지도를 얻고 성공적으로 데뷔해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그러니 주상현은 쓸데없이 미안해할 필요 없었다. 모두가 원해서 열심히 한 거니까.

“우리 1차 심사 잘 해내자.”

“네.”

한야에게 대답한 서도화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멤버들은 1차 심사 전 마지막 연습을 위해 지정된 연습실로 향했다.

“아, 오셨어요?”

“좋은 아침입니다.”

먼저 와 있던 91번의 리더 지한이 이들을 맞이하였고 다른 멤버들 또한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했다.

서도화와 멤버들 또한 그들에게 활기차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1차 연습 이후 91번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두 그룹은 가타부타 잡담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일단 어제 안무 숙지는 끝났으니까요. 오늘은 심사 전까지 반복 연습만 계속하는 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1차 심사 전 마지막 연습이니까 노래도 같이 부르는 걸로 할게요.”

“넵!”

연습이 시작되었다.

멤버 전원이 대형에 맞춰 서고 노래가 재생되었다. 곧바로 안무가 시작되었고 거울을 통해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한 서도화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두 그룹 다 아주 칼을 갈았다.

어제의 미숙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따로 연습했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들이 좀 따로 노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1차 심사 이후 포지션이 한번 바뀌고 손봐도 될 문제들이었다.

“오, 오오!”

“우와!”

다른 연습생들 또한 어제와 확연히 달라진 완성도에 감탄하며 안무를 이어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하룻밤만의 성취치곤 56번도 91번도 상당히 발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주의 안무가 끝나고 도입부 첫 소절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곡이 잠깐 멈추었을 때 두 그룹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각자의 자리에 서서 사선으로 고개를 숙인 멤버들 사이 오현민이 앞으로 나오며 제 파트를 부를 때였다.

서늘한 불꽃

화려한 성의 색색 Glass

어두운 달빛이 쏟아지는 밤

오색의 선율이 들려오네

가장 치열한 경쟁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서도화는 곧 자신이 뺏어올 오현민의 파트에 귀 기울였다. 지한이 자랑하던 대로 허스키한 음색이 도입부에 무척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서도화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뺏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겠지만 도입부만큼은 굳이 정화 스킬이 발동되지 않아도 거뜬히 뺏을 수 있을 파트였다.

서도화의 음색은 오현민과는 다른 맑고 고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음유시인이 되기 전부터 그의 보컬이 메인보컬 감이라고 칭찬받았던 이유는 목소리 덕분만은 아니었다.

곡의 분위기에 적절한 감정을 노래로 쏟아내는 데에 탁월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고로 도입부는 자신이 더 살릴 수 있다고 서도화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긴 한데…….’

오현민 다음으로 서도화의 파트가 이어졌다.

그대는 아직도 나를 몰라

You say you don't love

You are gone

[패시브 : 정화] 발동!

……아오. 제길.

서도화는 스킬 발동과 동시에 입술을 잘근거렸다. 아쉽게도 패시브 스킬이 있는 한 제 표현력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겠지. 스킬에 내성이 생기지 않는 한 그들은 오로지 노랫소리만으로 큰 감명을 받을 터이니.

분명 정화 스킬을 두들겨 맞고 멍때리고 있겠…….

“어?”

서도화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분명 정화 스킬이 발동되었는데 연습생들은 표정만 조금 더 굳었을 뿐 아무렇지 않게 연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뭐지?’

스킬이 발동되었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던 서도화는 곧이어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스킬 내성. 그러고 보면 유제이의 연습생들도 제2세계의 민간인보다 빠르게 내성이 생겼었다.

정화 스킬은 타락할수록 고통의 강도가 강해지고 내성이 잘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타락의 끝에 선 마왕은 아직도 내성이 없었고, 제2세계의 민간인과 영웅들의 내성은 그보다 빨리 생겼다.

아직도 서도화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건 정화 스킬에 미미한 영향을 받음과 더불어 그냥 서도화의 노랫소리가 좋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 91번 그룹의 연습생 또한 유제이 연습생들과 비슷한 속도로 내성이 생긴 듯했다.

1, 2라운드를 거쳐서 C 키워드 리허설에 본방, 짝그룹이 된 이후 회의, 연습까지. 생각해보면 제2세계의 민간인보다도 훨씬 타락의 강도가 옅은 일반 사람들이라면 내성이 생기고도 남을 횟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