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51화 (51/270)

제51화

91번에게 정화 스킬 내성이 생겼더라도 그게 큰 타격이 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합숙이 끝날 때까지는 비상식적으로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게 되거나 이상한 관경이 카메라에 찍히는 등 원치 않는 스킬 발동으로 난감해지는 상황이 없을 듯하여 안심했다.

‘정화 스킬 없다고 잘 부르던 노래 못 부르게 되는 건 아니고.’

정화 스킬은 말 그대로 타락을 정화해주는 것뿐 노래 실력을 향상해주는 기능이 아니다.

91번이 패시브 스킬에 반응하지 않게 되며 연습의 진행은 조금 더 빨라졌고 멤버들은 그룹간 합을 맞추는 데에 집중하며 밤 연습을 끝마쳤다.

* * *

합숙의 두 번째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강당으로 향하던 멤버들은 입구에 설치된 부스 여러 채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뭐야?”

처음 보는 광경에 멤버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경험자 주상현에게로 향했다.

이전 촬영과 전 시즌 촬영 내용이 같을 리는 없겠지만 프로그램 관련해선 주상현이 제일 빠삭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상현은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을 넘어 꽤 반가워 하는 기색이었다.

“와 이번에도 나오네 저게.”

“저게 뭔데?”

서도화가 묻자 주상현은 방긋 웃으며 멤버들을 부스로 이끌었다.

가까이서 보니 증명사진 찍는 기계 또는 예전에 유행한 스티커 사진 기계처럼 생기기도 했다.

“여기서 줄 서 있다가 한 명씩 들어가는 거예요. …아마 맞을걸요? 뭐 안 바뀌었으면.”

“상현이 말이 맞는 것 같아. 다른 연습생들도 줄 서서 한명씩 들어가네.”

한야가 앞서 부스에 들어가는 연습생들을 보며 말하곤 멤버들을 이끌어 일렬로 줄을 세웠다.

“사진 찍는 거야?”

서도화가 나름 추리해 말하자 주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말했다.

“전 시즌이랑 똑같은 거면 안에 들어가서 질문 몇가지에 대답하는 걸 텐데… 아니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서도화가 부스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서도화의 시점으론 7-8년 전, 현재 시점으론 2년 전 주상현이 출연했던 프로그램 연습생들의 질답 영상이 너튜브에 짧게 올라온 걸 본 것도 같았다.

그때 봤던 영상과 같은 것이라면 저 부스 속에서 할 무언가도 너튜브 동영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서도화와 한야의 눈빛이 바뀌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아덴과 케이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만약에 저기서 무언가 물어본다면 대답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한야의 물음에 아덴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잘 알아요.”

합숙소에 오기 전엔 김유진이, 오고 나선 서도화가 질리도록 잔소리를 해댄 탓에 안그래도 제 성깔 싹다 죽이고 말 잘 듣는 연습생 행세를 잘 하고 있는 중이다.

이어서 한야의 시선은 케이에게로 향했다.

역시 케이는 한야에게 몹시 고분고분했다. 그는 한야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하지요.”

“…저번부터 되게 궁금했는데 협조한다는게 무슨 의미에요?”

그러자 아덴이 물었다.

“상현이, 협조라는 단어를 모르는 거야? 아니지? 내가 아는데.”

“아니 단어는 알죠. 근데 케이 형이 뭘 협조하겠다고 하는 건지 궁금해서요.”

“…그런 게 있다.”

케이는 적당히 주상현에게 얼버무렸다. 그 무엇이든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하기 싫었다. 협조하기로 한 만큼만 대화에 어울리면 되리라.

“그냥 이 그룹에 머물기 위한 협조다.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다시 그 세계에서 모든 걸 되돌릴 힘을 되찾을 때까지, 내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최소한의 협조를 하는 것이다.”

“…아, 네.”

주상현이 괜한 걸 물었다는 듯 대충 대답하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주상현의 뒤에 있던 서도화가 헛웃음 쳤다. 본인에 대해 말하기 싫은 것 치곤 TMI가 과했다.

멤버들끼리 조용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은 줄어들었고 마침내 주상현부터 한 명씩 부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잠시 후 서도화는 부스에서 나온 주상현이 남은 멤버들에게 오케이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서도화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네.”

이 좁은 곳이 사람이 들어가 있고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상상했더니 아무도 없고 대신 정말 여권 사진 찍는 곳처럼 간이 의자가 달랑 카메라 앞에 세워져 있었다.

여기에 앉으면 되겠지?

서도화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괜한 눈치를 보며 의자에 앉았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순간 부스 안으로 크게 변조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간단히 그룹 번호와 이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변조된 목소리로도 뚫고 나오는 특유의 무기력한 말투, 감독이 틀림없었다.

“안녕하세요. 56번 그룹의 메인보컬 서도화라고 합니다.”

서도화는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곤 좁은 부스 안에서 일어나 어떻게든 꾸역꾸역 상체를 접어 인사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도로 자리에 앉자 감독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번 합숙을 통해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대하는 것이요?”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가볍게 들어온 것치곤 무거운 질문을 해왔다.

기대하는 것? 딱히. 악랄하기로 유명한 합숙이었으니 기대보단 각오를 더 하고 왔다.

그러나 생각한 적 없는 질문이라고 말문이 막히지는 않았다.

“저희 56번만의 매력을 이번 기회에 전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이니까요.”

데스티니에서 춤과 노래 이외에 이런 인터뷰 연습도 자주 했었기에 그는 당황하지 않고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었다.

-그룹만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장점이 정말 많은 그룹인데요. 탄탄한 춤, 보컬 실력과 뚜렷한 개성, 그리고 독특한 무대 컨셉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멤버 개개인의 개성과 매력이 확실한 그룹이거든요. 저희 그룹이. 이번 기회로 그 부분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같아 무척 기쁩니다.”

서도화의 말에 상대는 말이 없었다.

‘……끝난 건가?’

당황하며 일어나야 하나 망설이던 차 감독이 말했다.

-인터뷰할 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죠?

“네?”

-하하, 너무 깔끔한 대답이라 놀라서요.

“아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냥….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가.”

예능감 부족하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 또한 춤, 노래만큼이나 열심히 연습했었다. 이젠 이정도 표본적인 질문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이 튀어나올 수준은 된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 질문. 서도화 씨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만의 매력이요? 저는 일단 노래를 잘 부릅니다.”

서도화는 잠깐 말을 멈추고 즉석에서 노래를 몇 소절 불렀다. 딱봐도 이전 시즌처럼 너튜브에 올라갈 것같은데 할 수 있는 어필은 다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춤도 좀 잘 춥니다. 저희 그룹의 비주얼 멤버 케이 정도는 아니지만 외모도 꽤 괜찮지 않나…….”

서도화는 진지하게 말했다. 자고로 이런 때엔 겸손할 필요 없다고 데스티니의 이미지 메이킹 시간에 배웠다.

“재미없다는 소리는 많이 듣지만 적어도 여러분들이 무대 위에서 저를 볼 때 결코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으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서도화가 말을 끝마쳤는데 또 감독이 말이 없었다. 혼자 이렇게 인터뷰 시간이 좀 길어진 것같은데 생각하던 그는 이내 서둘러 대답하는 감독의 말에 미묘하게 미소지었다.

-어, 언제 들어도 도화 씨의 노래는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아직 감독은 91번처럼 정화 스킬에 내성이 생기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십대 청소년보단 어른이, 사회물 거하게 마셔본 사회인이 타락도는 더 높은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타락의 정도에 따라 내성이 생기는 시기도 늦어진다. 케이가 아직도 서도화의 노래를 들으면 힘들어하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그룹 내에서 본인을 나타낼 수 있는 별명을 짓는다면?

“별명이요?”

거침없이 인터뷰에 대답하던 서도화가 말을 멈췄다. 별명? 별명이 뭐였더라?

“어…….”

데스티니에서 연습생을 할 때 도로시나 연습생들에게 불렸던 별명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욕이 섞여 있었나?

연습벌레? 연퀴벌레? 재수없는 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광적으로 연습하는 것에 대한 별명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서도화 시점으로 5년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별명이다 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2세계에선 그 별명보다는 다른 별칭으로 불렸기에.

‘……뭐 상관없나?’

잠시 생각하던 서도화가 입을 열었다.

“제 별명은… 음, 음유시인입니다.”

그래도 입 밖으로 내려니까 조금 부끄럽긴 하다.

-음유시인이요?

“네, 노래를 잘 부르니까. 아덴이랑 케이가 그렇게 부르더라고요.”

대충 그곳에선 이름대신 음유시인이라고 불리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것도 별명이라면 별명이다.

거기다 아덴과 케이가 실수로 자신을 음유시인이라고 불렀을 때 별명을 부른 것이라고 얼버무릴 수도 있고.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서도화의 별명에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도화 씨는 정말 노래를 잘 부르시니까. 도화 씨에게 딱 맞는 별명이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오른쪽 문으로 나가 강당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넵,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감독님, 좋은 하루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서도화는 부스를 나와 멤버들을 기다리는 주상현에게로 향했다.

“형, 인터뷰 엄청 오래했네요? 연습생들 중에 형이 제일 길게 인터뷰한 것 같아요.”

주상현이 자기가 더 뿌듯해하며 말했다.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뒤이어 들어가는 아덴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노래 불렀거든.”

“아, 어쩐지! 형이 노래를 부르면 인터뷰 더 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죠!”

어째 주상현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주상현의 주책이 늘어나는 것 같다? 실제론 추가 인터뷰보단 노래를 부른 직후 감독의 질문이 잠시 멈췄던 것뿐이지만 서도화는 또 주상현이 괜히 시무룩해질까 봐 굳이 그의 말을 정정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부스 안에서 아덴이 나왔다. 아덴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서도화와 주상현에게 다가왔다.

주상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형은 무슨 인터뷰 했어요? 도화 형은 안에서 노래 불렀대요.”

“별 질문 없었는데? 그냥 평범하게, 자신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냐, 멤버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냐 이런 거.”

“그래서 뭐라고 했어?”

서도화는 본인이 인터뷰 했을 때보다 더 긴장하며 물었다. 그러자 아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 내 매력은 잘생겼고 몸을 잘 쓴다?”

오, 그럭저럭 대답 잘 했는데? 꽤 만족하는 서도화의 얼굴을 보고 아덴이 말을 이었다.

“멤버들이 뭐라고 부르냐길래 그냥 아덴, 아덴 형, 용사라고 불린다고 했지.”

“……용사요?”

주상현이 의아한 듯 되묻자 아덴은 서도화를 가리켰다.

“얘도 자기 별명 음유시인이라고 말했다던데? 그래서 나도 그냥 말했지.”

그러더니 슬쩍 서도화의 눈치를 보며 말을 바꾸었다.

“내 별명으로 말했어.”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이거… 이 세계에서도 용사 파티라고 불릴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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