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52화 (52/270)

제52화

아덴에 이어 케이와 한야도 인터뷰를 끝마치고 합류했다.

“형들은 질문 뭐 받았어요?”

주상현의 물음에 서도화의 시선은 자연스레 케이에게로 향했다. 서도화의 음유시인, 아덴의 용사에 이어 케이마저 제 별칭을 별명처럼 말해버렸으면 어쩌지?

다행히 케이는 그러지 않았다.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합숙은 어떤지, 멤버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잘생긴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간단히 대답해주었지.”

케이의 말을 들어보아 다행히 마왕이라는 단어가 나올 만한 질문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서도화는 안심하며 물었다.

“뭐라고 대답했는데?”

케이는 뿌듯하게 웃으며 자신이 한 대답을 멤버들에게 말해주었다.

“합숙은 평화롭고 좋다.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서 좋다. 멤버들은 오염되지 않고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잘생긴 걸 알고 있냐고 하니 독보적으로 잘생겼음을 알고 있다고 했지.”

“…….”

이것 참.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멤버들의 표정이 애매모호해졌다. 그러나 케이는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하등, 하! 아니, 사람 같은 대답이 아닌가?”

“……뭐 그렇긴 한데.”

대답을 보아 차라리 별명이 마왕이라고 말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멤버들의 떨떠름한 반응에 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 탄성을 내뱉으며 한마디를 더 했다.

“난 아주 협조를 잘했다. 후후, 잘했고말고. 보이지 않는 목소리는 나에게 윙크를 해보라고 하더군. 그래서 특별히 그것도 해주었다.”

멤버들은 반응도 못 하고 있는데 쟤는 뭐가 저렇게 신났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멤버 모두가 굳어있는 사이 한야만이 기특하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윙크도 했어? 잘했어. 어떻게 했는데?”

“우선 목소리에게 윙크는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지요.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만 감으면 된다길래 그리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목소리의 반응은 어땠어?”

“잘 봤다고 하던데요.”

“그랬어? 잘했네. 사람들에게 케이만의 매력으로 잘 어필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한야는 미소로 케이를 다독이며 멤버들과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서도화와 주상현은 두 사람을 해탈한 듯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리더가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겠지 뭐. 걱정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침 소집은 인터뷰를 위한 것이었는지 막상 강당에 들어서자 제작진들은 2차 심사 시간과 연습실 분배, 점심시간 등 일정 설명만 해주고 곧바로 연습생들을 해산시켰다.

지금부터는 다시 자유 연습 시간이었다.

56번과 91번은 연습실에서 다시 모였다.

“연습 많이 하셨어요?”

“새벽까지요. 91번 그룹 여러분들은 어디서 연습하셨어요? 찾아도 안 보이시던데.”

“저희요? 그냥 강당에서요. 케이 씨는 연습 많이 하셨어요?”

지한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케이를 비꼬는 듯한 말투였다. 그에 주상현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서도화가 주상현을 힐끔거렸다. 오늘 아침 강당에서만 해도 무척 기분 좋은 듯 말이 많아졌던 주상현이었는데.

그러나 정작 당사자 케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제 더는 틀리지 않아요.”

“아하, 그래요? 그럼 연습 시작할까요?”

멤버들을 대하는 지한의 태도가 한결 심드렁해졌다. 참 이상한 느낌의 사람이었다. 주상현을 괴롭히고 그 연장선으로 컨셉을 따라 했다는 걸 알아서 그의 행동이 삐딱하게 받아들여지는 걸까?

주상현에 이어서 케이마저 무시하는 것 같은데? 아니 확실히 그런데? 마치 감정 컨트롤 못 하고 남 깔아보며 즐기는 고등학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

‘아.’

아덴과 케이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껏해야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이었다. 고등학생을 보는 듯한 게 아니고 진짜 고딩이 대부분이다.

그제야 지한과 그들 멤버의 이해할 수 없던 행동이 납득된 서도화다. 어리니까 카메라보다, 미래보다 자존심 세우기가 먼저일 수 있지 그래.

지체 없이 연습이 시작되었다. 1차 심사의 피드백을 받은 이후라 연습생들의 신경은 지난 심사에서 주로 파트를 뺏기거나 크게 지적받았던 멤버들을 위주로 돌아갔다.

다행히 지난 밤의 연습이 헛된 건 아니었는지 이젠 1절, 2절 모두 노래도 댄스도 큰 실수 없이 곡을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아직 실수 없이 곡을 끝낼 수 있었을 뿐 뺏겼던 파트를 다시 뺏어올 정도는 아니었다.

케이와 멤버들이 밤샘 연습을 해서 실력을 쌓은 만큼 91번 또한 연습해 불안정한 부분을 완벽히 고쳐왔다.

유지는 가능해도 뺏기는 쉽지 않은 상태가 지금의 56번과 91번 그룹이었다.

“케이, 목에 힘 빡 주고 자신 있게 불러. 한 파트라도 열심히 불러야 심사위원분들이 가능성을 봐주실 거야.”

“알겠다.”

일단 다른 멤버들의 파트보다 케이, 2차 심사에서의 목표는 케이가 마지막 남은 한 파트를 뺏기지 않고 대신 한 파트라도 뺏어오는 것이다.

서도화가 말했다.

“케이, 예전에 했던 것처럼 박력 있게 움직여. 발 안무는 2차 심사 끝나고 다시 연습하고 일단 다른 곳은 꽤 발전했으니까 디테일까지 챙겨야 하거든 이제?”

“그래.”

그에게 대답하는 케이의 의지는 조용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상대 팀을 이기기 위해 서도화가 적인 마왕에게 아낌없이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케이는 이제 더이상 음유시인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신을 업신여기고, 최고라고 칭송받았던 그의 명성과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졌다. 급기야 머무는 것을 대가로 하는 이 간단한 몸동작과 노래마저 못 해서 인간들에게 짐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더해 라이벌인 91번 그룹은 이들을 비웃고 비꼬아대니 이렇게 된 이상 인간에게 가르침 받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케이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태도가 서서히 바뀌어나가고 있음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조용히 열정을 불태웠다. 뺏겼던 파트, 그래봐야 두 소절 남짓이지만 다시 뺏어오고 말리라.

‘케이 씨는 연습 많이 하셨어요?’

“허!”

배배 꼬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묻던 지한의 목소리가 케이의 머릿속을 점령했다.

뺏어와서 91번의 저 늙은 뱀 같은 미소를 짓뭉개버리리라.

그러나 점심시간 직후 치러진 2차 심사. 현실은 녹록지 않다.

안타깝게도 2차 심사에서마저 케이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 * *

곡을 끝마친 56번과 91번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 했다.

“헉… 허억…. 헉….”

연습생들을 마주 보고 앉아있는 심사위원들의 얼굴은 오늘도 굳어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도중에 곡이 끊기는 일이 없었지만 분위기를 보아 오늘도 역시 좋은 말 듣기는 그른 모양이었다.

“흠, 확실히 많이 늘었어. 늘긴 했는데.”

지소희는 영 못마땅한지 볼펜으로 툭툭 종이를 두드렸다.

“너희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알겠거든? 근데 딱히 잘했다는 생각은 안들어. 어떻게 된 거야?”

지소희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안에 진심이 있었다.

“잘하는 애들은 여전히 잘하고, 저번 심사에 지적받았던 사람들도 연습 열심히 해서 고쳐온 거 보여. 그건 충분히 칭찬해줄 만해.”

지소희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런데 이번엔 크게 파트 변경은 없을 거예요. 91번도, 케이도. 파트 분배를 다시 할 만큼 잘한 친구는 아쉽게도 없다.”

지소희의 말이 끝나자 도로시가 이어서 말했다. 굉장히 심각한 지소희와는 달리 그는 꽤 호의적인 표정이었다.

도로시는 기가 잔뜩 죽은 연습생들을 빤히 바라보더니 픽 웃었다.

“뭐 너희한테 희소식이면 희소식인가? 나는 그럭저럭 괜찮게 봤어요. 다행이지?”

도로시는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

“소희 쌤 말대로 너희 연습 많이 한 거 느껴져서 너무 기특하고 아직 두 팀 간 합이 안 맞기는 한데 이대로 연습하면 이번 경연에서 충분히 좋은 점수 받을 수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다만 방금 말했듯이 너희 같이 연습한 것치곤 상당히 합이 안 맞거든? 듣기로는 어젯밤에 따로 연습했다던데… 왜 따로 연습했어?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

“아닙니다.”

56번은 억울한 점이 없지 않았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지금 입을 열어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로시는 이들의 껄끄러운 분위기를 다 안다는 듯 잠시 말없이 웃다 서류를 뒤적거렸다.

“뭐 그건 너희 알아서 하고. 어차피 같이 연습 안 해서 손해 보는 건 너희니까. 안무 포지션은 많이 바뀔 거예요.”

“네에….”

심사위원들이 파트 배분 회의에 들어갔다. 댄스 포지션도 그렇지만 56번의 주요 관심사는 보컬 파트 배분이었다.

물론 파트 배분은 거의 없을 거라고 지소희가 딱 잘라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케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한 소절은 되돌려주지 않을까.

‘저 녀석이 91번 멤버들을 뛰어넘을 만큼 잘하지는 못했어도.’

오디션 프로에서는 노력 참작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비록 파트 변경은 많이 없더라도 하다못해 케이에게 뺏겼던 파트 한 소절이라도 넘겨주는 결정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이들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일단 전주의 댄브는 손지랑 상현이가 같이했는데 상현이 대신 도화가 하는 걸로 할게.”

“……예에.”

“아아, 상현이가 못했다는 뜻이 아니고.”

주상현이 당황하다 이내 시무룩해지자 도로시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손지가 메인에 섰던데 어쨌든 너희 댄브 돌아가면서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손지보다 상현이 동작이 커서 시선을 상현이가 자꾸 가져가. 도화가 손지 뒤에 서고 상현이는 바로 센터로 들어오는 게 보기에 좋을 것 같고 또-”

도로시는 탁탁 책상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너무 두 그룹이 따로 노는 것 같아서 56번 멤버가 노래를 부르면 91번이 백을 서고 이런 식으로 좀 섞을게요.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 넣을 거지?”

“네.”

“그거 다음 심사까지는 미완이라도 가져오고. 시작 안무에 케이가 중간에 서는 건 잘 노렸네. 아직 케이가 잘 살리진 못하는데 일단 유지할게.”

“네!”

유한 분위기에서 이어진 도로시의 파트 재분배와는 달리 지소희는 짧게 말을 끝내곤 심사를 마쳤다.

“1절 프리 코러스, 현민이에서 도화로 변경. 1절 후렴구 후에 댄스 브레이크 넣는다고 했으니 1절 마지막 파트 상현이로 변경. 그 외에는 유지입니다. 이상이에요.”

“감사합니다!”

힘차게 대답한 것에 비해 56번과 91번의 표정은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91번은 이번에도 56번에게 두 파트나 뺏겼다. 1차 심사 전 임시파트 배분에서 56번보다 많은 파트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젠 56번이 훨씬 많은 파트를 보유하게 되었다.

특히 하이라이트, 도입부, 프리코러스 등 메인보컬이 투입되었던 중요한 파트를 모조리 서도화에게 빼앗긴 게 너무 타격이 컸다.

정작 메인보컬 오현민의 파트가 턱없이 부족해져 버린 탓이었다.

56번의 경우는 새벽까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케이의 파트는 결국 얻지 못해 무척 아쉬운 결과가 되었다.

“고생했어요. 연습 잘 하고 3차 심사에서 봐요.”

“감사합니다!”

멤버들이 심사장에서 나왔다. 각 그룹의 리더들은 도로시의 지적에 따라 함께 연습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 시작했다.

“음유시인, 할 말이 있다.”

“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별칭에 놀란 서도화가 획 고개를 돌리자 케이가 세상 심각한 표정을 한 채 창백한 안색으로 서도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노려보는 거야 그냥 보는 거야.

서도화가 구분할 수 없는 험악한 인상에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케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한참 말이 없더니 무척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를 도와다오. 음유시인.”

그는 서도화를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하는지 까먹을 정도로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