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55화 (55/270)

제55화

잠깐의 휴식 시간. 56번과 91번 그룹의 모습을 지켜보는 7번 연습실 담당 구대준 PD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은 56번 그룹에 머문 지 꽤 오래되었다.

“아니에요. 형, 그 부분은 그렇게가 아니고 좀 통통 튀게! 장난꾸러기처럼 해야 해요.”

“장난…… 함정을 말하는 건가?”

“네?”

주상현이 자연스럽게 서도화와 아덴을 바라보자 서도화가 무언가 많은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상현아.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고 네가 직접 보여줘. 내가 5년간 쟤를 지켜본 결과 케이는 네가 생각하는 장난을 모르고 자란 친구야.”

“아하……. 그럼……이렇게요?”

주상현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서도화의 말에 금방 납득하고 케이에게 제 표정, 제스처를 보였다.

이를 본 구대준이 픽 웃으며 곁에 앉은 작가에게 소곤거렸다.

“미소야, 쟤네 하는 말 좀 웃기지 않냐?”

“그걸 이제 아셨어요?”

작가 이미소는 손에 든 볼펜으로 허공에서 56번 그룹 멤버들을 묶어 둥글게 원을 그렸다.

“하여튼 캐릭터 특이해요. 너무 천재들만 모여서 재미는 없을 줄 알았는데.”

56번 중에선 전 시즌에서 형들의 애정을 톡톡히 받으며 씬 스틸러로 부상했던 주상현만 건질 줄 알았다.

물론 무대에서 누구보다 임팩트를 남겼던 서도화는 누구든 그의 무대 아래 모습을 한 번쯤 궁금해할 테고 그 외에도 아덴, 케이 등 좋은 비주얼에 상당한 아크로바틱 실력을 가진 멤버도 잠깐은 조명은 되겠지만 신인인 만큼 분량을 크게 챙기지는 못하리라.

거기다 아직 TOP10 내엔 들지도 못했으니 더더욱.

적어도 합숙 전까지는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이미소가 구대준을 툭 쳤다.

“PD님 쟤네 개인 연습할 때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구대준이 심드렁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얘네 7번 연습실엔 처음 들어오는데.”

“어디 그럼 시작하기 전에 텐션도 띄울 겸 기분전환 삼아 공중제비나 뛰어볼까? 라고 했어요.”

“……기분전환으로 공중제비?”

“예에. 그리고 진짜 천장 찍고 내려오더라고요. 물론 좀 과장은 보태서.”

이미소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저들의 아크로바틱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인상 깊게 보았던 56번의 캐릭터를 혼자 보기 아까워서 공유하고 싶었다.

“또 PD님, 쟤네 서로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너 촬영 중에 좀 신났다?”

“에이, 신난 게 아니고 56번 캐릭터 잡혔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아무튼 쟤네 서로 뭐라고 부르냐면요.”

이미소는 서도화, 아덴, 케이 순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음유시인, 용사, 마왕이라고 불러요.”

“뭐 게임이야?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아까 부스 Q&A에서요.”

아덴과 서도화만 부스에서 제 별명에 대해 말했지만 이렇게 연습실에서의 모습을 주의 깊게 보고 있으면 종종 아덴이 케이를 마왕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머지 두 멤버 한야와 주상현은 또 뭐라고 불리는지, 음유시인에 용사 그리고 마왕이라니 언제부터 왜 서로를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인지 팬들이라면 궁금해할 법한 별명이 아닌가.

그 와중 한야와 주상현은 케이의 표정을 지적하고 있었다.

“입만 올라가면 안 돼요. 눈도 같이 웃어야죠. 좀 있단 연습 재개하면 눈도 같이 웃기.”

“……웃고 있는 것으로 안 보였나?”

분명 제대로 웃은 건데?

진짜로 충격받은 듯한 케이의 물음에 주상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웃긴 웃었는데.”

“사악하게 웃더라.”

한야가 툭 말하며 미소 지었다. 그 말에 이유는 모르겠으나 묘하게 케이의 눈빛에 화색이 돌았다.

‘사악하다는데 좋아하네.’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등지고 선 서도화와 아덴의 눈이 묘하게 짜게 식어가는 걸 한야 이외엔 아무도 보지 못했다.

“흠.”

구대준은 이미소의 말에 대충 고개만 끄덕이며 잠깐의 휴식을 뽕 뽑겠다는 듯 케이 집중 케어에 들어간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캐릭터가 뭔데?”

지네끼리 부르는 별명은 별명이고 그게 편집 시 이 그룹의 캐릭터가 될 수는 없다.

그룹이 유명해진 이후라면 몰라도, 근본도 모르는 별명을 가지고 어떻게 연습생 분량을 챙기란 말인가.

그냥 팬들이 건질만큼 잠깐의 언급만 내보내고 말아버릴 것이다.

구대준의 퉁명스러운 말에 이미소의 볼펜이 이번엔 91번을 가리켰다.

“사방에서 본인들을 견제하고 있는데-”

볼펜이 방향을 돌려 56번으로 향했다.

“본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본인들끼리 지지고 볶는 거요. 한 화라도 방송 나간 후엔 못 쓰는 캐릭터에요. 이거.”

기본적으로 56번은 천재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외부 견제고 뭐고 본인들 내부에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는 것으로 바빠 보이는 게 특징이다.

물론 이들 중 한야, 주상현, 서도화가 주변을 신경 쓰고 있긴 하지만 그것보단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연습 때만 해도 그랬다.

2라운드에서 패기 좋게 같은 컨셉의 91번을 뽑아 자극적으로 분량을 가져가더니 막상 합숙이 시작되자 악역은 죄다 91번 그룹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곤 본인들은 91번의 견제고 뭐고 케이에게 한 파트라도 넘기겠다고 새벽 연습에 연습실이 없어도 테라스, 방안 어디서든 연습했다.

그렇게 협동하면서도 본인들끼리는 시종일관 고딩들답게 투닥거리고 있으니 팬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이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그룹들에게 견제받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비록 순위는 11위라도 의미는 그 이상이야.’

소형기획사 첫 아티스트가 순식간에 치고 올라왔다는 것과 거듭된 무대에서 남긴 강렬한 인상.

그러나 주변의 견제가 많을수록 그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만의 성장에 더 신경 쓰는 56번의 모습은 빛을 발할 것이다.

세상의 전부가 견제해도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고 초딩처럼 투닥거리며 뭉쳐있을 듯한 천재 캐릭터. 그게 이미소가 바라보는 56번의 이미지였다.

“저희 연습 재개하겠습니다!”

91번 그룹의 리더 지한의 외침에 구대준과 이미소의 대화가 멈췄다.

그들의 연습은 연습실 제한 시간이 다 된 이후 테라스로 자리를 옮기고도 계속되었다.

* * *

세 번째 날 아침. 서도화는 퀭한 눈을 천천히 떴다.

“아으 피곤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늘은 마지막 심사 날이자 파트를 뺏어올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있는 날. 마지막이라고 테라스, 소등 시간 이후론 방에서 숨죽이며 연습했다.

오로지 케이의 파트가 한 소절만 늘어났으면 하는 분한 마음으로 버틴 연습 시간이었다.

강조해서 말하지만 멤버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다.

‘너희들의 노고를 난 잊지 않을 것이다. 인간, 아니, ……세상에 믿을 사람이라곤 너희, ……아니다. 아무튼 너희가 나를 위해 애써준 것, 절대 잊지 않겠어.’

결국 새벽 4시경이 되어서야, 케이는 멤버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한야에게서 오케이가 떨어졌을 때 땀으로 샤워를 한 채 정말 감격한 얼굴로 말하던 케이의 청춘 드라마 같은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도화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한때 인간들의 세계에 고통스러운 종말을 가져왔던 마왕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의 도움을 받고 기뻐하다니. 어색해서 토할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고로 서도화와 멤버들은 모두 새벽 4시를 가볍게 넘겨서 잠에 들었고 고작 세 시간 선잠을 잔 뒤 기상 방송을 들어야만 했다.

분명 이 합숙엔 정확한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을 터인데 3일 내내 56번에겐 기상 시간만 있고 취침 시간은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종일 연습을 하려니 피로감이 날이 갈수록 쌓여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파트 경쟁은  한번만 더 하면 끝나니까. 서도화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일어났다. 그러곤 침대에서 내려와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응?”

피로감이 누적되어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멤버들. 그 사이 아덴과 케이가 없었다. 아덴은 매일 아침마다 그랬듯 합숙소를 돌며 산책하고 있을 것이고.

“케이 어디 갔어?”

“예에? 케이 형이요? 없어요?”

주상현이 느릿느릿 일어나 케이의 자리를 확인했다.

“어? 없네?”

서도화의 눈가가 도로 찡그려졌다. 얘는 말없이 어디로 간 거야?

서도화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마왕이 사라졌다. 다른 사람이 사라졌다면 그냥 합숙소 내를 돌아다니겠거니 생각했겠지만 케이는 사정이 달랐다.

“케이 찾아보고 올게요.”

“네, 형, 같이 갈까요?”

“아니아니. 씻어.”

서도화가 대충 머리를 쓸어올리며 방을 나섰다. 케이는 멤버들이 없는 틈을 타 용사를 피해 진짜로 도주했을 위험이 있다.

아덴이 밤사이 케이가 도주하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마왕의 도주 능력이 워낙 높은지라.

합숙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를 찾던 서도화는 1층 테라스에서 케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소리였다. 케이가, 마왕이 테라스에서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서도화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환히 보이는 통유리 사이 케이를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언제부터 연습한 걸까. 그것보다 마왕이 세계정복 도모보다 따로 이걸 연습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말이 되는 건가?

그때 문득 케이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협조한다.’

‘너희들의 노고를 난 잊지 않을 것이다. 인간, 아니, ……세상에 믿을 사람이라곤 너희, ……아니다. 아무튼 너희가 나를 위해 애써준 것, 절대 잊지 않겠어.’

그는 멤버들의 도움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서도화가 케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음…….”

마왕의 보은인가.

그는 천천히 마왕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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