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57화 (57/270)

제57화

멤버들은 대형을 맞추며 시선을 교환했다.

각도, 속도만 잘 맞추자. 사이가 안 좋아도 식사 시간에 의도적으로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 하거나 비아냥거리는 사이라도.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던 관계라도 지금은 한 팀처럼.

곡이 재생되었다.

센터에 선 주상현이 대형을 이끌어가며 안무를 시작했다. 힘차면서도 강약을 잘 살리는 주상현답게 뒤에 선 누구보다 위트 있게 재즈풍의 안무를 잘 소화해냈다.

장난꾸러기처럼 익살맞은 표정과 제스처를 선보여준 덕분에 곡의 처음부터 가벼우면서도 한편의 그 옛날 코미디 무성영화 같은 느낌을 잘 잡아주었다.

이후 서도화의 도입부 파트가 이어졌다.

[패시브 : 정화] 발동!

‘……음, 역시 조금씩 내성이 생기고 있네.’

이젠 서도화가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표정이 바뀌며 멍해지거나 영향을 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멍하니 바라보는 대신 긍정적인 의미가 담긴 미소를 서도화에게 보여주었다.

정화 스킬의 영향을 덜 받게 된 이제야 서도화의 보컬에서 드러나는 표현력, 테크닉과 디테일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음색도 무척 좋지만 그 전에 상당히 기본기가 탄탄한 실력자였다.

스킬이 없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보컬 스킬 만렙의 음유시인 서도화였다.

전보다 훨씬 완성도가 생겨난 초반부, 무척 성공적인 시작이었다.

“오, 너무 잘하는데?”

“여기까지는 그냥 데뷔한 애들 같아.”

심사위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고작 이제 시작일 뿐이다. 91번 그룹의 멤버가 파트를 잇고 심사위원들의 눈빛은 다시 날카롭게 멤버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평가했다.

3박 4일 동안 91번의 발전도 상당했다. 저들도 기대주 56번 그룹을 이기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연습에 할애했다.

특히 메인보컬 오현민의 발전이 대단했다. 서도화에게 좋은 파트는 모조리 빼앗긴 탓에 하나라도 도로 뺏어오기 위해 치열히 연습했을 것이다.

‘뺏길 생각은 없지만.’

아무리 서도화가 싸움에 재능이 없어도 경쟁자를 동정하거나 무언가를 뺏길 만큼 무르지는 않았다.

“괜찮네요. 여기까지도.”

“이제 합도 잘 맞고. 3차쯤 되니까 확실히 안정감이 드네.”

“현민이, 도화 실력이 엄청 늘었네. 메인보컬들 피 터지도록 연습했나 본데?”

“보컬에 확 힘이 실리죠? 도화 D파트 고음 잘 때리겠다. 기대되는데?”

1절까지 평이 매우 괜찮았다. 처음엔 날카롭게 연습생들을 뜯어보던 심사위원들은 완벽히 끝난 1절에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지적받았던 걸 고쳐오는 참가자들에게 의례적으로 심사위원들이 보이는 기특함이 담긴 미소였다.

그때, 흡족하게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이 갑자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팀은 여기에 댄스 브레이크 추가로 들어가던가요?”

“네, 이번 심사에선 준비해오라고 했는데 잘했으려나.”

“두 그룹 다 아크로바틱 하는 애들이잖아요. 오.”

1절이 끝나고 3차 심사 때 준비해오라 미션을 받았던 댄스 브레이크 차례가 되었다. 이번엔 시종일관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도로시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서서히 대형을 바꿔 댄스 브레이크를 준비하는 멤버들을 진지하게 지켜보았다.

편곡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준비했을 테니 미완인 부분은 감안하더라도 피드백해줄 부분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 순간.

‘응?’

도로시는 56번의 입가에 맺히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무척 자신감에 찬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부분이라고 사뭇 긴장한 것 같은 91번과는 대비되는 표정이다.

그리고 곧 도로시는 56번이 지은 표정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주상현, 손지, 그 뒤로 서도화와 91번의 리드 댄서, 그리고 아덴이 자리 잡았다. 댄스에 두각을 보이는 다섯 멤버가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빌드업하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선 멤버들이 일사불란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 뭐야.”

“이야, 뭔가 준비 좀 해온 거 같은데?”

“저거 줄인가?”

도로시가 잠시 메인의 다섯 멤버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들이 준비한 것을 보았다. 탄력 좋은 로프를 양쪽에서 당겨 언밸런스한 엑스자를 만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곧 있을 아크로바틱을 위한 준비였다.

“아아, 아크로바틱 한다고?”

도로시는 카메라를 의식해 구태여 소품의 정체를 입으로 말하고 다시 메인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로프를 어떻게 활용할 건지는 나중에 보면 되고 지금은 이들의 댄스가 먼저였다.

빌드업이 끝난 멤버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주상현을 빼고 한몸처럼 움직였다. 가운데에 선 주상현은 전주와 같이 익살맞게 춤을 췄다. 반주 사이로 들려오는 타닥타닥 발소리, 그리고 주상현의 발구름이 마치 탭댄스를 활용한 안무 같기도 했다.

주상현 특유의 힘차고 날렵한 댄스가 빠르게 흘러가는 재즈 선율과 무척 잘 어울렸다. 주상현이 옆으로 빠지고 두 번째로 센터에 선 건 91번 그룹의 메인 댄서 손지였다.

손지는 주상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과거 댄스 배틀 대회에서 이름 날렸던 그답게 자유로우면서도 개성적인 댄스를 보였다. 아직 댄스 브레이크의 안무는 미완이었기에 독무를 맡은 멤버들의 안무는 반쯤 창작으로 채워졌는데, 손지는 56번 멤버들이 하지 않을 법한 댄스 장르 락킹을 가지고 안무를 만들어왔다.

“으흠! 좋은데!”

도로시가 크게 감탄했다. 댄스에서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손지의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손지가 옆으로 빠지고 마지막으로 독무를 맡은 멤버는 서도화였다.

“어? 서도화가 이걸 맡아?”

생각도 못 한 다음 타자가 등장하자 심사위원들이 놀란 듯 혼잣말로 의문을 드러냈다.

그럴만했다. 서도화의 프로필엔 메인 보컬이라고 적혀 있을 뿐 댄스 실력에 대한 언급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보컬 트레이너로 참가한 지소희의 경우 서도화의 보컬에만 집중했지 댄스 파트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도로시만은 당연하다는 듯 그의 독무에 집중했다. 실제로 서도화를 제자로 두었던 도로시는 그가 댄스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쟤도 춤 되게 잘 춰요. 이때까지 계속 앞 열에서 춤추고 있었는데 모르셨어요?”

도로시는 여전히 서도화가 제 제자인 듯 흐뭇하게 말했다.

장담하건데 대한민국 연습생 통틀어서 서도화만큼 균형적인 육각형 타입의 연습생은 드물 것이다.

서도화는 주상현처럼 댄스에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능이 있었다. 안무의 강약을 상당히 잘 살리는 멤버다.

춤을 굉장히 보기 좋게 추는 터라 센터에 서면 절대 시선을 뺏기지 않는 멤버 중 하나였다.

그래서 데스티니에서도 서도화를 센터급 멤버로 내정해두고 데뷔조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서도화가 돌연 잠수를 타는 바람에 무산되었지.

“좋네요. 삼인 체제 독무, 이다음에 아크로바틱 나오나?”

아니면 5인 단체 안무로 넘어가려나. 도로시가 조용히 독무 파트를 맡은 세 명의 멤버를 픽스하며 말했다.

이 조화로운 3인 체제에 함께 메인 단체 인원으로 나선 나머지 2인의 댄스 멤버들과 아덴, 그리고 91번의 멤버가 독무에 참여하지 않은 건 아마 다음에 이어질 아크로바틱을 준비하기 위해서일 거다.

도로시는 지난 라운드 무대에서 거의 날아오르던 56번 멤버들을 떠올렸다.

아마 이번에도 엄청난 아크로바틱 댄스가 나올 것이다.

다른 심사위원도 이를 예상했는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멤버들은 서서히 대형을 바꾸어 아크로바틱을 준비했다.

“얘들아. 다치지 않게 조심해!”

심사위원들이 못내 걱정이 되어 연습생들에게 외쳤다. 연습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망설임 없이 다음 안무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

언밸런스한 엑스자로 교차되어있던 로프는 빠르게 엇갈려 양쪽으로 떨어졌다. 그 가운데 주상현과 손지가 자리 잡고 페어 댄스를 시작했다.

급하게 외워온 댄스라 아직 디테일한 부분에 구멍이 있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아크로바틱에 대한 걱정으로 그들의 페어댄스에 부족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때였다. 주상현과 손지의 페어 댄스에 맞춰 아덴과 케이가 교차하듯 바짝 당겨진 로프로 달렸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대기하고 있던 서도화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뺏고 뺏기던 파트 싸움, 하지만 압도적으로 56번에게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아크로바틱이 포함된 댄스 브레이크.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아덴도, 지적받기 일쑤였던 케이도 이것만큼은 91번에게 절대 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로프를 밟고 날아올랐다.

“어어!”

그에 따라 심사위원들의 고개가 허공으로 향했다. 서도화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만큼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진 채 둘을 보고 있었다.

투 앤 온리. 오직 아덴과 케이만이 보일 수 있는 임팩트였다. 안정적으로 착지한 둘은 주상현과 손지의 페어댄스에 맞춰 잠깐 안무를 맞추더니 빠른 속도로 반 바퀴를 달린 후 다시 날아올랐다. 무척 가벼웠으나 그 속도와 높이가 위협적으로 느껴질 움직임이었다.

이들의 묘기에 가까운 모습은 재즈 선율과 어우러져 한편의 서커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묘기에 조바심을 느끼면서도 감탄하던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잠시 후 의문으로 바뀌었다.

페어댄스는 아직 미완성임을 감안하면 아주 좋았다. 56번 두 멤버의 아크로바틱은 말해 뭐하나. 환상적이었다.

그런데 91번의 존재감이 없었다.

서도화는 점점 날카로워지는 심사위원들의 표정을 힐끔거리며 앞으로 나서 안무를 시작했다.

91번의 분량이 적은 건 56번의 탓이 아니었다. 나중에 방송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댄스 브레이크의 아크로바틱을 연습하다 카메라 앞에서 돌연 포기선언을 했다.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91번 그룹 멤버들끼리는 이미 결정을 한 듯해서 그냥 받아들였다. 그냥 로프 밟고 한 바퀴만 돌아달라고 부탁했는데도 싫다고 했다.

아마 아덴과 케이의 아크로바틱을 눈앞에서 보곤 본 공연 때 비교를 당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미 비교는 충분히 당하고 있기에 그냥 빼지 않고 하는 편이 훨씬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하여튼 처음부터 끝까지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룹이었다.

‘서바이벌이 장난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돌연 아크로바틱을 포기한 91번 그룹을 위해 유제이의 멤버들은 한야의 말을 따라 원래 주상현이 하기로 했던 아크로바틱 이후 남은 댄스 파트를 91번에게 넘겨주어야만 했다.

아크로바틱에서 빠지니 91번의 댄스 브레이크 분량이 너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완전히 싸늘해진 심사위원들의 분위기는 댄스 파트가 끝난 이후 더욱 매서워졌다.

요주의 인물 케이의 유일한 파트가 이어질 차례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56번 그룹 멤버들의 표정도 긴장으로 물들어갔다.

제발. 연습 때만큼만 해라.

마지막 기회. 살얼음 낀 분위기 속 케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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