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62화 (62/270)

제62화

-두 분은 등산하는 거 좋아하세요?

좋아하겠냐. 지겨워 죽겠다.

서도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질문에 대답한 건 아덴이었다.

“등산이라기보단, 태어나 살던 곳이 이런 산속이었어요. 지금 보는 풍경이랑은 사뭇 다른 곳이긴 한데.”

아덴의 고향은 그가 모험을 떠나기 전부터 이미 마계의 영향을 받아 식물이 말라붙고 땅이 썩어 더는 살아갈 수 없는 마을이 되었었다.

“그래서 산을 오르내리는 거에 익숙해요. 고향 생각 많이 나요.”

-오, 그러시군요. 그럼 도화 씨는요? 도화 씨도 전혀 안 힘드신 것 같은데 혹시 두 분 고향이 같은가요?

서도화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키워왔습니다. 연습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처럼 말하는 그를 아덴이 할 말 많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운동은 무슨. 원래의 세계에서는 틈만 나면 체력 보충한다고 졸기 바빴다.

어디 그뿐인가? 좀 걷고 달리다 보면 더는 못 간다고 더 가면 숨 차 죽을지도 모른다며 거인으로 불리던 동료 둔투프에게 들려가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길이 좀 험해진다 싶으면 둔투프가 알아서 서도화를 들쳐 맸다.

그래서 아덴은 서도화가 여기선 펄펄 날아다니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이 세계보다 다이나믹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그곳에서조차 서도화가 텀블링을 할 수 있는 인간, 아니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몰랐으니까.

그러든 말든 서도화는 계속 대답했다.

“그래서 아직은 괜찮은 것 같아요. 와~ 참 날씨 좋네요.”

이미 자신의 볼꼴 못 볼 꼴 다 본 아덴인데 뻔뻔하게 있어 보이는 척 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서도화는 전혀 민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도화의 예상대로 아덴은 심드렁하게 그의 거짓말을 모르는 척해주었다.

그때 뒤에서 청춘드라마 대사 같은 멤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할 수 있어요!”

“업힐래? 아니면 잠깐 쉴래?”

“아이, 형 아니죠? 이제 반 왔는데.”

“아, 아닙니다. 아니다. 더 올라갈 수 있다. 나는 마왕이다! 또 용사한테 패배할 수는 없다!”

동시에 케이의 모르는 척하고 싶은 낯부끄러운 소리도 들려왔다.

서도화가 획 뒤를 돌아보았다. 케이가 아까보다 지쳐서 새빨개진 얼굴로 헉헉거리며 아덴을 따라잡겠다며 꼴값을 떨고 있었다.

“……우리 얼마나 올라왔냐?”

도화가 케이를 보며 묻자 아덴이 어깨를 으쓱하다 멀리 보이는 합숙 건물을 가리켰다.

“건물 아직 보이는데?”

아직 청춘드라마 찍을 만큼의 등반은 아니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등산의 달인 아덴과 서도화 기준이었다.

“형! 우리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케이야, 좀 쉬다가 가는 게 어떨까? 멤버들 따라잡는 것도 좋지만 후에 연습이 있으니까.”

“형, 저는 아덴에게 질 수 없습니다. 우린 그런 관계입니다.”

“응? 아니야, 우리는 지고 이기는 그런 거 아니야. 조금만 쉬자. 물 줄까?”

나 참, 이게 뭐라고 대화가 저렇게 열혈스럽냐고. 진짜 이게 뭐라고.

등산하는 그룹 중 이들이 가장 소란스러울 것이다.

과연 마왕에게 용사란 무엇일까? 서도화는 고개를 내저으며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춰 섰다.

마왕과 용사의 관계는 모르겠고 일단 저 입부터 막아야 할 것 같다.

“쟤도 진짜. 저렇게 연약하면서 포기를 몰라.”

아덴도 못마땅한 듯 투덜거리긴 했지만 멈춰서 케이와 멤버들을 기다렸다. 눈치가 있지 케이를 낙오시켜 저렇게 발발거리는 것을 내버려 뒀다간 쪽팔려서라도 같이 못 다닐 것이다. 저 입에서 하다못해 제 이름 두 자라도 안 나오게 하고 싶었다.

“빨리 와.”

아덴의 무뚝뚝한 목소리에 케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아덴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아덴이 별 뜻 없어 보이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입을 벙긋거렸다.

애매한 입 모양을 오직 케이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핵 없는 새끼.’

케이의 눈이 커졌다. 저, 저 미친 용사 놈! 욕도 저런 욕이 없다!

아니, 욕을 떠나서 묘하게 올라간 그의 입꼬리,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산을 오르는 나약해 빠진 자신을 비웃는 입과 깔아보는 눈.

물론 케이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케이는 마왕으로서 저 눈빛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지금부터 빨리 가겠다.”

케이가 성큼성큼 한발씩 내디뎠다.

“오 형 잘한다!”

“체력이 좀 보충되긴 했어?”

아무것도 모르는 멤버들을 더욱 열렬히 그를 응원하며 따랐고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든 상황을 목격한 서도화는 한숨을 내쉬며 아덴에게서 빠르게 벗어나 케이에게로 향했다.

케이가 의욕을 불태우는 건 좋지만 너무 무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몸 상태는 평범한 인간으로 치면 심장이 없는 상태.

평범한 인간보다 육체 능력 자체는 좋지만 지구력이 몹시 떨어졌다.

그러니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좀 감정을 진정시킬 필요도 있었다.

서도화의 곁으로 카메라가 함께 따라붙었다.

-멤버들한테 가시나요?

카메라맨의 말에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이곤 안타까운 눈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멤버 모두 다 같이 정상에 올라야 기쁘죠. 케이가 힘들어 보여서 도와주러 가보려고요.”

케이가 벌써 지치면 안 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케이는 그룹의 비주얼 담당으로서 꼭 엔딩요정을 해야만 했다. 그냥 차라리 그를 도와 빠르게 정상에 도달해 쉬게 만드는 편이 좋을 듯했다.

서도화는 떨떠름한 케이의 시선을 모른 척하며 그의 곁에 섰다.

“자.”

서도화가 제 팔을 케이한테 내밀었다.

“힘들면 잡아도 돼. 진짜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어. 물 좀 마시고.”

진짜 기절하기 전에. 케이가 기절하면 가장 중요한 비주얼 멤버의 엔딩요정권도 사라지니까.

그의 모습에 아덴이 눈썹을 꿈틀거렸으나 서도화는 이를 보지 못했다.

“엔딩요정 하러 가자.”

무려 세 사람이 케이를 밀어주고 당겨주었다. 결국 아덴도 한숨을 쉬며 내려와 곁에 섰다.

아덴이 위에서 내려와 깔아보는 걸 그만뒀다는 것만으로도 케이의 끓어오르는 열정은 크게 진정되었다.

“너, 너희들…….”

대신 다른 의미로 마음이 혼란스러운 듯했다.

카메라맨은 조금 떨어져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줄, 혹은 두 줄로 이동하는 연습생들 사이 유독 똘똘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된 채 서로를 이끌어가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건 방송에 나오겠네.’

다른 건 몰라도 등산 분량만큼은 56번이 제법 가져갈 듯했다.

카메라맨이 보기에도 지금의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은 그룹 간의 우정이 돈독해 보여 꽤나 보기 좋은 그림이었기에.

그렇게 산행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엔 서도화와 아덴도 케이가 주인공인 청춘드라마에 합류해 함께하고 있었다.

“진짜 몇 걸음만 더 가면 돼.”

“야, 이 정도면 내가 들쳐 매고 가겠는데? 들쳐 매주랴?”

“되, 되었……허억, 허억…….”

“엔딩요정까지 얼마 안 남았어요! 잘한다. 잘해.”

“너희들도 물 마셔가면서 올라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게 뭐라고 이 유난을 떠나 싶겠지만 엔딩요정권은 그만큼 소중하고 흔치 않은 보상이었다. 56번뿐만 아니고 많은 그룹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서로를 북돋워 주며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정상에서 연습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카메라에 비친 56번 그룹은 정말 서도화의 말처럼 청춘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은 모습이었다.

“아덴 형, 안 힘들어요?”

“전혀?”

“이, 이제 내가 걸을…….”

“와, 얘들아 정상이야!”

“정상이네. 케이, 정상에 도착했네.”

물론 그들의 상황에 몰입하지 않은 제3자가 보기엔 그냥 단체로 꼴값 떠는 모습이었다.

아덴이 케이를 들쳐매고 있었고 케이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다른 멤버들은 아덴을 응원하거나 그의 등을 밀어주며 함께 정상에 발을 디뎠다.

호들갑 떤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지만 정상에 올라 내팽개쳐진 케이의 상태는 곧 숨이 뒤로 넘어갈 것 같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들쳐 멜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반면 그를 들쳐 매고 정상까지 올라온 아덴은 여전히 팔팔했으므로 어느 정도 상황은 알 것 같은 그림이었다.

“방송이라고 재롱 좀 떨었네.”

카메라 뒤에서 이들을 지쳐보던 피디는 피식 웃고는 그들에게 이리 오라 손짓했다. 한야가 멤버들을 챙겨 그에게로 향했다.

-정상까지 올라오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엔딩요정 56번 전원 확정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그룹이 올라올 때까지 휴식하고 계시면 됩니다.

보상권을 취득한 뒤 간신히 촬영에서 벗어난 멤버들은 정상에 마련된 벤치로 달려가 주저앉았다.

“와 힘들긴 힘들었다.”

주상현이 달아올라 붉어진 얼굴에 생수병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마지막 날이고 그냥 전원에게 엔딩요정권을 주려고 하는 보너스 이벤트라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올라보니 코스 난이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다가 다치거나 할 정도로 위험한 길은 아니었지만 많이 가파르고 간혹 바위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곳도 있었다.

연습생 대부분 체력 트레이닝을 병행하고 있으니 중도 포기한 그룹은 없었다. 하지만 다들 힘들어서 쉬다 오르길 반복하여 아직까지 정상에 오른 인원은 많지 않았다.

“상현이 괜찮아? 얼굴이 빨갛네.”

서도화가 주상현의 곁에 앉으며 물었다. 주상현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젓고 대답 대신 서도화를 관찰하듯 빤히 쳐다보았다.

“형은 괜찮아요?”

“나? 나는 뭐. 오늘은 별로 안 힘드네.”

서도화 스스로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주상현이 자신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등산을 했는데 전혀 지치지 않았다.

춤을 추거나 하면 평범하게 지치고 땀도 흘리던 서도화가 지금은 거친 숨 한번 내쉬지 않았다. 그냥 가볍게 산책한 것처럼 상쾌했다.

하도 거친 산을 많이 다녀서 이 정도 산은 산도 아니게 된 것이리라. 익숙함이 이렇게 무섭다.

‘등산만 괜찮은 거 어이없네.’

서도화는 피식 웃으면서 저기 조금 떨어진 거리 나란히 서서 정상 아래 경치를 보고 있는 아덴과 케이를 바라보았다.

“……어?”

절대로 붙어 있지 않던 두 녀석들이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봤을 땐 그냥 경치 구경하는 멤버 둘로 보이지만 아마도 마왕과 용사만의 진지하거나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싸우기 전에 끼어들어야 하나? 고민하던 서도화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세계 놈들의 판타지적인 대화를 한 번쯤은 모르쇠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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