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두 번째 열에 앉은 56번 멤버들, 그 옆으로 91번이 앉았다.
그리고 앞뒤로 다른팀의 멤버들 또한 착석했다.
“와! 이 자리는 무대랑 엄청 가깝네?”
“그렇지? 나중에 함 봐. 무대 보다 보면 엄청 목 아프다?”
앞뒤로 떠드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지난 1, 2라운드와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같은 그룹 멤버들끼리만 똘똘 뭉쳐 있던 이들이 이젠 다른 그룹과 교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두 그룹이 뭉쳐 합동 공연을 준비하다 보니, 또 모든 연습생들이 한 공간에서 합숙하다 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른 그룹과 교류하지 못하고 있는 건 56번과 91번밖에 없었다.
56번과 91번은 태생부터 결코 친해질 수 없었고 특히 서도화와 멤버들 같은 경우 합숙 때도 멤버들끼리만 뭉쳐 다니며 연습했다.
물론 딱히 개인플레이를 하려는 생각으로 교류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워낙 적이 많아야지.’
적어도 합숙 때 시간이 맞아 스쳐서라도 만난 그룹 중엔 반갑게 인사만 할 뿐 본격적으로 56번과 교류하고 싶어 하는 그룹이 없었다.
당연히 높은 순위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던 대형 기획사 그룹이 높은 순위를 받는 것과 뜬금없이 듣보 소속사 그룹이 튀어나와 높은 순위를 받는 건 연습생들로 하여금 느끼는 박탈감이 달랐다.
아무래도 56번은 상당히 견제를 많이 받는 모양으로 합숙에서 눈이 마주쳐도 예의상 고개만 까딱거리고 도망치듯 가 버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91번과 기싸움하고 있다는 게 소문나서 그런 건지 그냥 멤버들 인상이 하나같이 험악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덴한테는 인상 좀 풀고 다니라고 해야겠다.
부지런하게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다니던 아덴만 유일하게 너튜버 그룹 멤버들과 대화를 나눠봤다고 한다.
산책하는 연습생 수가 꽤 되었는데 오직 너튜버 그룹 멤버들만이 아덴에게 살갑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었다고 한다.
‘우리 빼고 다들 친해졌구나.’
서도화는 묘하게 자신이 앉아있는 두 번째 줄만 어색한 기류가 감도는 것을 느끼며 태연한 척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아덴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어! 이렇게 가까이 앉는 건 처음 아니에요?”
“아.”
그들의 얼굴을 본 아덴도 꽤 반가운 기색으로 씨익 웃었다.
“오랜만이에요.”
아덴이 멤버 이외의 사람에게 예의 바르게 정상적인 인사를 건네는 거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그 덕에 바로 옆에 앉은 서도화 또한 뒤돌아 그들을 보았다.
그 유명한 너튜버 그룹 멤버들이었다. 그들은 56번 그룹의 바로 뒷줄에 앉으며 서도화에게까지 꾸벅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자리 가까우니까 좋다. 저희 사실 56번 그룹 분들 어떤 분들이신가 되게 궁금해했거든요?”
지금 아덴에게 말하고 있는 사람은 너튜버 그룹의 리더, 아니 이들은 수장이라고 부르던가? 수장 소래담이다.
본인들 너튜브 채널의 인기를 견인했다고 알려진, 멤버 중 유일하게 방송 출연도 종종 하는 이였다.
소래담은 자신의 멤버들에게 자랑하듯 서도화와 아덴을 가리켰다.
“이것 봐. 내가 말했지? 실제로 보면 더 잘생겼다니까?”
“그니까요. 형. 아니 진짜 다른 세계 사람들 아니에요? 왜 이렇게 잘생겼어?”
오우 세상에. 정답이다.
그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니 산책하던 아덴에게 친밀하게 말을 걸었다던 멤버는 소래담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작게 소란이 일자 한야와 케이, 주상현, 그리고 91번 멤버들의 시선도 이들의 대화에 집중되었다.
“특히, 아덴 씨 제가 저번에 했던 말 기억하세요?”
아덴은 합숙에서 소래담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교성 좋은 귀족처럼 다가와 무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인물은 서도화인 모양이었다.
-도화 씨 실제로 대화 한번 나눠보고 싶었는데.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그 말에 아덴은 서도화는 지금도 연습 중일 거라고 말했었다.
“제가 도화 씨랑 진짜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는데!”
그는 지금도 자신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사실 아덴보다 서도화에게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소래담의 말에 91번 그룹 리더 지한의 시선이 힐끔 이곳을 바라보고 다시 정면으로 향했다.
소래담은 56번 모두와 가볍게 눈인사를 했지만 91번까지 닿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또화 씨!”
또화……? 없던 별명까지 만들어가며 매우 붙임성 좋게 인사한 소래담에게 서도화는 은은한 미소만 띤 채 고개를 까딱였다.
“안녕하세요. 너튜브 잘 보고 있습니다. 무대도요.”
“어! 도화 씨는 역시 저 너튜버인 거 알고 계시네요.”
“네?”
소래담은 서도화의 의아한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아덴에게 말했다.
“이것 봐요. 저 생각보다 유명하다니까요? 아덴 씨만 저 모르는 거예요.”
“아아.”
합숙 때 아덴과 소래담 간의 대화의 연장선인 듯하다. 아덴은 서도화를 힐끔 보곤 끄덕였다.
“정말 그렇네요.”
“도화 씨 한번 대화 나눠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저 아시죠? 소래담입니다.”
소래담은 가볍게 자기소개를 하고 서도화를 보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말했다.
“도화 씨 지금은 스트리밍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힘들고 혹시 다음에 또 같이 있게 되면 얘기 좀 해요.”
“저야 좋죠. 소래담 씨.”
서도화는 대답하면서도 의아했다. 처음 본 사이인데 소래담이 상당히 살갑다. 아니 살갑다는 말이 맞나?
소래담은 ‘또화’부터 시작해서 뭔가 그가 자신과 빠르게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튜버라 그런가? 상당히 친밀하네.
그러나 서도화는 몰랐다. 100만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소래담이 왜 그를 만나고 싶어 했는지. 왜 빨리 친해지려 하는지.
그 이유는 전부 서도화가 최근 너튜브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소래담은 경연 프로그램 참가로 개인방송을 켜지는 못하지만 가장 최근 영상의 댓글엔 매일같이 서도화와 대화해봤냐는 언급이 나오고 있었다.
구독자가 궁금해하는데 어떻게 서도화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소래담은 낯가림이 무척 심해 보이는 어색한 얼굴로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하는 서도화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우리 나이 차이 얼마 안나요. 친하게 지내요. 저희도 사실 이 현장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물론 이번에 생기긴 했지만.”
소래담은 제 그룹의 옆에 앉은 짝그룹을 가리켰다. 당연하게도 소래담의 그룹도 56번만큼이나 견제를 많이 받는 그룹이다.
56번은 잠재적 Top10으로, 소래담은 이미 1위를 찍은 적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기에.
빽도 없이 승승장구하는 두 그룹은 팬들에게 무척 사랑받을지언정 현장에선 외톨이나 다름없었다.
서도화는 소래담의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친하게 지내요.”
경연이 시작된 이후 멤버들 이외의 연습생들과 이렇게 길게 대화해본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사람 좋아 보이는데 친해지면 좋지.
서도화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소래담이 화색이 되었다.
그는 꽤 솔직하게 친해지고 싶은 이유를 말했다.
“사실 저희 구독자들이 도화 씨는 어떤 사람인지 되게 자주 물어봐요.”
“저를요?”
소래담은 서도화의 반응에 그가 요즘 자신의 인기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당연했다. 서도화를 포함해 56번 전체가 경연에 집중하기 위해 너튜브와 SNS 자체를 금지당했다.
처음엔 반응도 좀 찾아보곤 했는데 아무래도 라운드를 거듭해갈수록 팬들 간 갈등도 심화되는 법이니 마음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김유진의 판단에서였다.
현재 유제이 그룹은 이병수를 통해 무대 구상을 위함 참고 영상 정도만 찾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소래담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제가 저도 모르게 또화 씨라고 불렀는데 그거 사실 저희 구독자들이 도화 씨 부르는 별명이에요.”
소래담 채널의 편집자들이 스트리밍 리뷰를 할 때마다 나오는 또 서도화가 나오니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네요.를 줄여서 또화다.
소래담과 그의 그룹 멤버들과 또 그들의 구독자들에 의해 퍼져나간 꽤 유명한 밀리언 팬덤계 별명인데 그것조차 서도화는 모르고 있었다.
사실 최근 서도화는 언급량만으론 주상현보다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또화 씨 말고도 다른 멤버 분들 어떠냐는 댓글도 많이 받는데, 유독 56번 분들 이야기가 많아요. 상현 씨 만나봤냐거나 사인받아서 경매하자거나 케이 씨 실제로도 그렇게 잘생겼냐거나 하는.”
“저희 이야기도 나와요?”
주상현과 케이가 무척 흥미로운 눈빛으로 소래담을 돌아보았다.
소래담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짜 엄청 많이 나와요! 다음에 시간 되실 때 저희 구독자 질-”
그때 스피커를 통해 제작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스트리밍 시작까지 1분 남았습니다. 다들 조용히 대기 바랍니다.
소래담이 머쓱하게 뒤로 물러섰다.
“우리 나중에 말해요. 모처럼 가까이 있는데 계속 말 걸어도 되죠?”
그는 서도화와 아덴,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주상현까지 두루 살피며 물었고 당연히 멤버들은 좋다며 받아들였다.
이렇게 예의 바르고 살갑게 다가오는데 싫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곧 현장은 조용해졌다. 스트리밍 시작까지 30초.
화면에 커다랗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채팅창은 읽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장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진행자 서영에게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
오랜만의 광경에 서도화의 마음도 설렘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오랜만인 거 같냐.”
아덴이 서도화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도 그간 일이 많아서 유독 준비 기간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스트리밍이 시작되었다.
BGM 없이 조용한 공간. 서영이 언제나와 같이 시작을 알렸다.
“대규모 라이브 프로젝트 밀리언 아이돌. 지금 시작합니다!”
빰! 이제야 크게 울려 퍼지는 밀리언 아이돌의 오프닝 BGM. 인원의 반이 줄어들었지만 오늘도 여전한 정수리컷.
서도화는 이번에도 역시 눈을 아프게 하는 조명을 피해 눈을 감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시청자 여러분? 밀리언 아이돌 대망의 3라운드 경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서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그동안 연습생들은 3박 4일간의 파트 경쟁을 마치고 이번 경연을 위해 정말 열심히 달려왔는데요.”
-?
-파트 경쟁은 또 뭐임?
-ㅋㅋㅋㅋ얘네 또 합숙에서 뭔 괴랄한 거 찍은 듯
-이제 하다 하다 파트까지;;ㅜㅠ
-?합숙 때 파트 경쟁한다는 말 있었어요? 뭔 말이에요? 나만 모름?
-ㄴㄴ없었음 방송 봐야 알듯요 지금은 그냥 설명해주겠지
시청자들은 알지 못하는 미션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럴 만했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들었을 때도 기겁했던 미션이지만 다시 들어도 뭐 저렇게 어이없는 경쟁이 다 있나 싶다.
56번은 성공적으로 파트를 가져왔으니 망정이지 과하게 한쪽으로 몰린 파트 분배를 생각하면 지금도 복부가 답답해져 왔다.
솔직히 이번 공연 파트 밸런스 심각하다. 주상현과 김유진은 경연 직전까지 팬덤 간 싸움이 이번 라운드에 제일 심해질 거라고 걱정했다.
서도화는 작게 고개를 내저으며 서영이 진행하는 동안 채팅창을 지켜보았다.
지난 라운드보다 인원이 반으로 줄어들어서 그런가?
채팅창에 서도화와 56번 멤버들의 이름이 굉장히 자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