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간이 보이는 이름은 주상현이 제일 많았고 그다음이 케이, 서도화 순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멤버 전체의 이름을 알고 응원해주는 팬이 생겼으며 서도화의 이름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서도화는 단기간 자신들에게 일어난 변화가 무척 신기했다.
물론 김유진과 이병수,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상황이 어떤지, 조회 수는 얼마나 올랐는지 정도는 듣고 있다. 그 덕에 성적이 무척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걸 화력이라고 하는구나.’
500명이 넘어가는 연습생들 중 자신의 이름이 흔히 보인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대단한 일인가.
서도화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음유시인으로서 온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이게 더 기쁘다고 하면 우스운가.
서도화가 한참 채팅창을 보고 있을 때 서영이 오프닝을 마무리했다.
“이번 라운드는 연습생들에게 혼란과 시련의 연속이었을 텐데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하기 전 간단히 보고 가실까요?”
이번 라운드는 단 24팀의 공연만이 준비되어 있었으니 스트리밍의 진행에도 평소보다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간단히 설명만 하고 바로 경연이 시작되었던 1라운드.
설문조사를 발표하고 베네핏 제공을 했던 2라운드.
이번엔 경연이 시작되기 전 무려 3박 4일간의 합숙이 파트 경쟁을 위한 합숙임을 발표하는 장면을 편집해 선보였다.
서영이 무대 중앙에서 진행석으로 돌아가고 조명이 어두워지며 무대 위 대형스크린에 편집된 영상이 올라갔다.
스트리밍 화면도 VCR로 전환되었다.
-헐 ㅁㅊ 합숙 영상 보여주는 거임?
-님들 경연은 언제 해요?
-ㅈㄴ궁금하닼ㅋㅋㅋ파트 경쟁이 도대체 뭐길래
-불안하네 내가 생각한 그 경쟁 아니길….
-무슨 경쟁인데요
-게임해서 파트 뺏고 이딴 거면 진짜….
하도 겪은 게 많은 이들이 채팅으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서도화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떼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엔 익히 보던 방송의 잘 정리된 것과는 조금 다른, 투박하기도 하고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은 짧은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영상의 장소는 합숙소의 강당.
서영이 단상에 서 있었고 이제 막 입소한 연습생들이 긴장 또는 설렘을 품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
서도화는 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핼쑥해지는 것 같았다. 잘 올려진 메이크업 아래로 새삼 다시 다크써클이 내려오는 듯한 피로함을 느꼈다.
그만큼 저 합숙은 꽤나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다른 연습생들도 서도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인지 여기저기서 작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저때까지만 해도 연습생들의 몰골이 무척 괜찮았다는 거다.
-자유시간 동안 다들 짝꿍 그룹과 대화 많이 나눴어요?
영상 속 서영은 아직까지는 얼굴이 괜찮은 연습생들에게 활발히 말하며 웃었다.
-이제부터 3박 4일간 여러분들은 이곳에서 지내며 합동 무대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냥 준비만 하면 재미가 없죠?
이때 화면 가득 주상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주상현은 무척 낙담한 듯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 너다.”
아덴이 가볍게 말했고.
“어 나다. 으아!”
주상현은 수긍하다 커다란 화면 가득 들어찬 제 심려 가득한 얼굴에 민망해하며 고개를 팍 숙였다.
아직 볼살이 채 빠지지 않은 귀여운 얼굴이 나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전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아는 자의 불안인가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상현앜ㅋㅋ
-심각한데 귀여워 심각한데 볼통통
-나름 진지한데 그냥 겁 집어먹은 쿼카임
“……쿼카가 뭐냐.”
아덴이 채팅창을 보며 서도화에게 물었고 서도화는 창피해 죽으려 하는 주상현을 가리켰다.
“있어 쟤 닮은 작은 동물.”
다행히 주상현의 화면은 임팩트만 남긴 채 얼른 전환되었다. 화면엔 긴장한 듯한 몇몇 인물들을 주상현과 같이 보여주고 다시 서영을 비췄다.
-이번 합숙은 바로 ‘파트 배분 경쟁’을 위한 합숙입니다.
서영의 말에 쎄한 효과음과 함께 한층 더 심각해진 연습생들의 모습이 비쳤다.
설마, 파트 배분으로 경쟁한다고? 누구인지 모를 연습생들의 소곤거림이 서영의 목소리와 비슷한 크기로 키워져 들려왔고 채팅창은 황당함에 ‘ㅋㅋㅋ’로 가득해지고 있었다.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니었다.
뭐 이런 거까지 경쟁을 하나 어이없어서 웃는 것이었다.
‘그래… 이때 정말 너무 어이없었지.’
서도화는 강제적으로 영상에 몰입하며 당시 자신의 기분을 떠올렸다.
너무 놀랐고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 3분 남짓의 노래를 그마저도 멤버들끼리 나눠 가지지 못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때마침 화면에 서도화와 아덴의 모습이 보였다.
“어?”
심각한 장면, 서도화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 놀라서 표정 관리조차 못 했었는데 화면 속의 자신은 생각보다 무척 평온해 보였다. 곁의 아덴은 아예 별생각 없는 표정으로 다만 분위기에 맞춰 서도화보다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서도화의 옷깃을 가지고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엥.”
이를 본 아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도 찍혔네.”
서도화는 당황했다. 한 화면에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심지어 BGM은 급박해서 더 눈에 띄었다.
-ㅋㅋㅋㅋㅋㅋㅋ브금에 비해 전혀 긴장감 없는 콤비인데
-아까 상현이랑 같은 그룹 맞냐곸ㅋㅋㅋㅋ
-으아아아 도화 멍한 거 봐ㅠㅠㅠㅠ진짜 너무 귀여워ㅠㅠ
-붉은 머리 개웃기넼ㅋㅋㅋ손이랑 표정이랑 따로 노냐
-도화는 놀란 건가요 입 벌리고 멍때리는 건가욬ㅋㅋㅋ
-빨간 머리 멤버 이름 뭐예요? 서도화는 아는데
-심각한 표정 그렇지 못한 손의 멤버, 보컬쌉천재라 별로 긴장 안 되는 멤버, 겁먹은 쿼카 한 마리
-빨간 머리 멤버는 56번 그룹의 비주얼과 아크로바틱, 댄스를 담당하고 있는 아덴입니다!!!
서도화와 아덴은 이를 보고 웃는 채팅창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합동 무대에서 선보일 곡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파트 배분은 연습생 스스로가 할 수 없습니다.
서도화와 아덴의 모습에 잠시 풀렸던 채팅 분위기는 이어지는 서영의 멘트와 함께 다시 얼어붙었다.
-모든 것은 경쟁으로. 보컬과 댄스 모두 3박 4일 동안 여러분들의 실력을 평가할 심사위원들이 직접 여러분들의 파트를 결정하게 됩니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채팅창만 볼 수 있기에 채팅으로 보이는 시청자들의 반응밖에 알 수 없다.
아무래도 파트 배분 경쟁은 이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무척 갈리는 듯했다.
별걸 다 경쟁 붙이며 굴린다는 반응이 있는 한편.
-근데 나름 괜찮지 않음?
-실력으로 파트 분배하겠다잖아. 잘하는 사람이 더 가져가는 구조인데 이벤트성 대결로는 괜찮은 듯?
실력으로 분배해서 잘하는 사람이 파트 더 받아 가는 게 뭐가 문제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반대의 의견이 더 많았다.
문제는 춤과 노래가 전부가 아닌 아이돌이 오로지 그것으로만 평가받게 된다는 것, 또 다른 분명한 장점이 있는 연습생들은 공평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ㅋㅋ그렇게 당하고도 모르니….
-근데 여러분 연습생들 다 보는 챗에서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욤
-공평하면 괜찮음ㅇㅇ근데 공평한지 누가 앎? 실력은 심사위원들의 주관적인 판단임
과연 정말 심사위원들의 평가가 공정한가.
몇 년간 이어지던 팝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조작으로 인한 논란이 언제나 있었고 이는 덮어두었을 뿐인 진실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게 평가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
그러나 시청자들의 의견이 이제 와서 갈리더라도 이미 합숙은 끝난 후였고 파트 배분도 끝마친 상태였다.
-물론 실력이 부족하다면 단 한 소절의 파트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죠?
서영의 말에 영상 속 연습생들도 시청자들도 말문을 잃어버렸다.
사전에 파트 배분 경쟁이 있었음을 알리기 위해 제공된 VCR이 종료되었다.
나머지 합숙 분량은 깔끔하게 편집되어 본방송에 내보낼 것이다.
다시 무대 중앙으로 향하는 서영의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잔잔한 미소만 띠고 있을 뿐이다.
“시청자 여러분, 어떻게 보셨는지요? 연습생들은 합숙을 통해 오로지 실력으로 파트를 분배하였습니다. 압도적으로 파트를 독차지 한 연습생들도 있는 한편 단 한 소절도 받지 못한 연습생도 존재합니다.”
“와…….”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진짜 한 소절도 못 받은 연습생이 있다니. 심사위원들 정말 가차 없이 평가했구나 싶어서 다시 머리가 띵해졌다.
“여러분들이 응원하는 연습생, 그룹은 얼마나 많은 파트를 가졌을까요? 궁금하시죠? 끝까지 함께해주길 바랍니다. 자, 그럼!”
서영은 혼란스러운 채팅창, 갈수록 높아지는 시청자수, 합숙의 합 자만 봐도 우중충해지는 연습생들의 미묘한 분위기를 견디며 말을 이었다.
“본격적으로 3라운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순서대로 경연을 치러 주시기 바랍니다. 시청자 여러분, 잠시 후 뵙겠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브금과 함께 눈 아픈 조명들이 현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스트리밍엔 자연스럽게 스폰서들의 광고가 이어졌고 그 사이 연습생들은 공연을 위해 이동했다.
높은 순위 덕분에 비교적 앞 순서를 맡게 된 56번과 91번 또한 무대 뒤로 향했다.
“……실수하지 말고 잘해봅시다.”
“네, 무대 잘합시다.”
연습실 사건 이후 만나기만 하면 연습만 하고 조율 이외의 대화는 없던 두 그룹은 오랜만에 서로를 향해 날카로움 없는 말을 전했다.
좋은 감정이 없더라도 이 수많은 그룹 중 살아남아야 했기에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