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69화 (69/270)

제69화

소란스러운 무대 뒤 풍경을 멍하니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연습생들이 앉은 관객석이 더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도화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스태프들을 보다 입술을 축이며 모니터를 봤다. 익숙한 얼굴들이 무대 위에서 레전드 공연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역시 데스티니. 다르긴 달라요.”

한쪽에서는 주상현이 카메라 앞에서 무대 중인 이들에 대한 감상평을 말하고 있었다.

3라운드의 첫 번째 무대는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1번, 그리고 그들의 짝그룹 15번이 함께하는 공연이었다.

‘15번이 몇 위였더라?’

꽤 높은 순위의 그룹이었다.

자본도 많고 실력도 좋은 그룹끼리 뭉쳐놨으니 잘하는 게 당연하다. 저들은 무난히 팝넷 서바이벌 역사 중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트 아이콘은 출렁이다 못해 올라가는 점수를 감당하지 못해 버벅이고 있었다.

경연 첫 순서부터 1위를 확신하기는 쉽지 않은데.

어째 이번 1위도 이들이 가져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런 예감은 자신의 팀에서 들었으면 좋겠지만 서도화는 아직 이 팀이 1위를 하기에 부족함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순서의 공연이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순서는 소래담이 수장을 맡은 너튜버 그룹인 49번, 그리고 그들과 짝 그룹인 72번 그룹의 무대다.

72번 그룹은 순위는 중간권에서 머무는 일명 ‘탈락위험군’의 그룹이지만 과거 49번 그룹의 너튜브 채널에 커버 백업 댄서로 출연하며 인연이 있는 이들이었다.

지난 라운드에서 2위였던 너튜버 그룹은 친목을 이어가겠다며 72번을 선택했지만 예상치도 못한 파트 뺏기 경쟁으로 인해 꽤나 곤혹을 치렀다고 했다.

마침 이에 대한 이야기가 팀 소개를 위한 짧은 VCR로 나오고 있었다.

[파트 경쟁이라니 생각지도 못했어요.]

소래담은 진심으로 낙담한 듯 씁쓸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저희는 진짜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진짜 다 같이 열심히 해서 재밌는 무대를 만들어보자! 뭐 그런 생각이었거든요?]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재미로 참여한 너튜버 그룹이었기 때문에 더욱 상황이 난감해졌다.

하나의 인맥이 졸지에 경쟁의 대상이 되었으니까. 이는 72번 그룹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이 깜깜했어요. 와…….]

인터뷰 속 72번 그룹의 리더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상대는 지난 라운드 1, 2위였던 49번인데.]

그의 표정에서 막막함이 보였다. 함께하는 팀이었을 때 든든했던 만큼, 지금 거대한 경쟁상대가 된 49번이 더욱 두려웠다.

그런 두 그룹의 기분을 제작진은 연습실에 한 대 모여 서로 눈치만 보는 연습생들의 모습으로 알려주었다.

걱정과 씁쓸함이 뒤섞인 표정, 처음 두 그룹이 한 팀이 되기로 했던 날과는 상반된 모습.

-이 팀은 어떡하냐…

-72번ㅋㅋㅋㅋㅋㅋㅋ

-72번 얼굴 제대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 좀 안타깝다…

어찌나 안타까운 상황인지 채팅창도 조롱보다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  .  .]이라는 자막과 함께 한참이나 계속되던 정적은 한숨을 푹 쉬며 일어나는 소래담의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일단 곡부터 정할까요? 1차 심사까지 시간이 없으니까.]

어색한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게 무척 협조적이었다. 협조고 나발이고 없었던 56번과 91번 팀과는 꽤 다른 분위기로 잘 맞지 않는 서로를 북돋워가며 파트 경쟁을 치렀다.

이들의 상황이 어땠는지 간단한 VCR이 끝나고 곧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어, 오…….”

다음 차례인 자신의 무대를 준비하던 서도화는 두 번째 팀의 곡이 시작되자마자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저들이 골라온 곡은 더 소울의 ‘힙합’이라는 곡인데 편곡을 기가 막히게 해왔다.

흔히들 말하는 트렌디함, 감성 R&B스러운 비트와 멜로디를 앞에 배치해놓고 양 그룹의 래퍼들을 앞세웠다.

댄스보다는 보컬과 랩, 이를 웃도는 비트와 멜로디.

서도화는 감탄하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역시 유니크함으로 첫 라운드에 1위까지 한 그룹의 팀이다. 누가 아이돌 연습생들의 경연에서 이런 느낌의 공연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댄스 파트가 거의 없다시피하고 아이돌스러움은 부족하다는 단점 또한 엿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 반응이 갈리더라도 정말 좋은 무대였다.

‘49번 그룹이랑은 한 번쯤 같이 해보고 싶네.’

다만, 역시 49번과 72번의 실력 차는 무시할 수 없었다. 소래담이 고르고 리드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무대는 49번은 찰떡처럼 소화했지만 72번은 기량이 부족했다.

유니크함도 잘해야 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파트 분배도 서도화의 팀만큼이나 조화롭지 못하다. 49번은 한 명, 한 명 무척 개성이 강한 그룹이어서 다른 팀과 섞이기 힘들었고 72번은 이 컨셉을 살리지 못했다.

-이번 꺼는 좀 아쉽다

-노래는 좋은데 라이브가 좀..

-차라리 한 그룹만 했으면 좀 나았을 듯

-??다들 왜케 아쉬워하지? 나만 좋나

-ㅁㅈ독특하고 전 무대보다 좋은데 왜 이럼?

무척 잘했으나 몰입하기는 힘든 무대. 이게 두 번째 팀의 공연에 대한 시청자들의 소감이었다.

물론 반응이 갈리는 채팅창과는 달리 하트 아이콘은 한결같은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1라운드까지만 해도 하트 아이콘의 움직임으로 순위나 반응을 대충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는데 3라운드까지 오니까 팬도 크게 유입되고 관심도 올라가며 가늠이 불가능해졌다.

서도화는 흥미롭게 두 번째 그룹을 지켜보다 스태프의 신호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번째 팀 끝나고 VCR 재생되면 바로 들어가면 돼.”

“네.”

역대급 무대를 선보인 첫 번째 팀,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을 법한 독특한 무대를 보여준 두 번째 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두 팀을 보며 서도화가 생각한 것이 있다.

‘…해볼 만한데?’

지금까지 우물 속 개구리처럼 자신의 팀만 보며 연습하고 달려온 56번과 91번이었다.

하도 싸워대서, 파트 분배가 이상해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자연스레 순위 유지만 하면 탈락하지 않겠거니 생각하던 그였다.

그러나 막상 앞선 무대를 보니.

‘우승 후보 두 팀이 이 정도란 말이지?’

서도화가 활짝 웃었다. 이를 본 케이가 치를 떨며 고개를 돌렸고 아덴은 눈을 동그랗게 뜨다 서도화를 따라 하듯 씨익 웃었다.

서도화가 저런 표정을 보이는 때는 항상 승기가 이들에게 있을 때였다.

우물 밖으로 나온 개구리는 생각보다 자신이 대단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두 번째 팀의 무대가 끝이 났다. 두 번째 팀이 퇴장하자 스트리밍 화면 그리고 무대 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음 팀의 VCR이 재생되었다.

세 번째 팀. 서도화의 그룹 56번과 91번이었다.

서도화는 컴컴해진 무대 위로 올라가며 VCR을 보았다. VCR의 시작은 한야의 인터뷰부터였다.

[2라운드 때 보니까 텀블링을 하시더라고요. 아, 이거다. 했어요.]

한야에 이어 등장한 건 서도화였다. 영상 속 서도화는 꽤 신나 보였다.

[괜찮겠는데? 하면서. 멤버 모두 다 같이 한 번에 결정했어요. 짝팀도 아크로바틱 잘하는 분들이면 저희도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죠.]

‘말은 잘한다.’

무대 위 서도화는 영상 속 자신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제 앞날도 모르고 신나 있는 꼴이란. 아덴과 같이 91번 그룹을 선택하고자 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거 아니라고! 스테이 하라고!

파트를 상당히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합숙 내도록 스트레스받던 걸 생각하면 참 오만한 판단을 내렸다 싶다.

이런 서도화의 마음을 대변하듯 다음에 나온 케이가 핼쑥해진 모습으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뭔가, 케이의 얼굴이……. 합숙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 응했던 인터뷰를 이어붙였는지 굉장히 우울하고 거칠어져 있었다.

서도화가 케이를 보았다.

“내, 내, 내가, 내…… 내, 용안이……!”

“허.”

서도화가 실소했다. 케이는 무척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대형 스크린에 떡하니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굉장히 볼품없어서. 피로감을 잔뜩 단 채 당당해 보이지 않아서.

‘뭐 새삼.’

저런 케이의 얼굴은 멤버들에겐 익숙했다. 서도화와 아덴에게는 더더욱 익숙했다. 평소 연습 때 항상 혼난 강아지 같은 꼴이 아니었던가.

더 나아가서는 제2세계에서 전투를 치를 때도 케이의 얼굴은 언제나 저렇게 창백하고 힘들어 보이는 편이었다.

물론 이 또한 남들이 보기엔 무척 수려하고 잘생긴 얼굴이겠지만.

‘좌우반전 때문인가?’

거울을 통해 수천 번은 봤을 자신의 얼굴에 케이가 이렇게까지 놀라는 건 아마 카메라로 찍힌 화면이 좌우반전 되어있기 때문일 거다.

새삼 본인의 얼굴이 낯설겠지.

그러든 말든 VCR은 계속되었다.

56번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번엔 91번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첫 타자는 리더 지한이었다.

[음, 솔직히 불안하긴 해요.]

저 때까지만 해도 지한은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그는 특유의 능글맞고 약간 느끼한 미소를 띤 채 좀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결코 저희가 지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결코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저희가. 아직 밀리언 팬분들께서 저희의 매력을 발견 못 하신 거라고 생각해서, 이번엔 실력으로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서도화는 소리 없이 웃었다. 저 당시만 해도 지한이 무척 희망차 있었구나 싶다. VCR에선 안 나오겠지만 합숙하는 내내 실시간으로 표정이 사라지는 지한을 볼 수 있었던 서도화였다.

[춤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상현이랑도 자주 춤 배틀 하고 했었거든요. 메인 댄서, 차지해볼 생각이에요.]

[아……56번 그룹의 메인보컬 분? 그, 도화 씨? 그분이 대단하시잖아요? 사실 한 소절이라도 가져올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하는데 힘내보겠습니다.]

그래, 모두가 희망에 차 있다. 결과가 어떻게 될 줄도 모르고 자신들이 성공 서사의 주인공들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서도화는 인터뷰를 보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인터뷰가… 조작인데?’

벌써부터 이 두 그룹의 스토리가 제작진들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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