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이야. 진짜.”
미친 거 아니냐. 도성한은 저도 모르게 입 벌려 웃었다.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자마자 아까부터 아슬아슬하게 경련하던 하트 아이콘 화면이 결국 멈췄다.
노래도 노래지만 저 비주얼과 표정연기, 그 유순한 얼굴이 이 파트를 부를 땐 무섭도록 냉랭했다.
“노래도 노래인데 클로즈업하니까 장난 없네요.”
합숙 때 하도 노래를 많이 들어 일찍이 내성이 생겨버린 이미소가 감탄하며 말했다.
노래에 익숙해지니 서도화의 다른 면모가 많이 보였다.
보컬 트레이너는 그의 테크닉을, 댄스 트레이너는 좀 더 힘이 실린 댄스 실력을 발견했다면 이미소의 경우는 비주얼이었다.
상당히 팬을 끌어모을 상이다. 실력도, 화제성도.
56번 그룹의 비주얼은 케이였지만 서도화는 다른 느낌의 잘생긴 얼굴이었다.
당연했다. 서도화는 미친 비주얼들이 판을 치는 그 세계에서도 아름다운 음유시인님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인간이었으니.
이미소가 시선을 내려 채팅창을 보았다.
팀 내 인기를 반증하듯 채팅창 또한 서도화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역시나 대부분은 그의 뛰어난 보컬 실력에 대한 감상이었지만 이젠 슬슬 제작진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다른 매력을 보는 팬들도 늘었다.
-그래 메인보컬은 이래야지
-여러분 혹시 스트리밍도 직캠 나오나요?? 우리 도화 보고 싶은데…
-얘는 무슨 잘생기기까지 하냐…
-욕 나오게 잘하네;; 성대 완급조절이 진짜…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노래. 헐렁한 셔츠에 멜빵, 눈 아래엔 서커스 같은 이번 컨셉에 어우러지듯 별 모양의 보석을 붙인 채 그 순한 얼굴이 웃음기 하나 없이 도입부를 부르곤 춤췄다.
몸이 부서져라 추는 주상현, 그리고 91번 그룹의 댄서 손지. 메인보컬이 그들과는 다른 느낌을 내면서도 적절히 힘을 잘 살려 춤까지 잘 춘다.
뭣 하나 나무랄 곳 없는 실력이었다.
팬들은 자조했다.
-ㅋㅋㅋㅋㅋ나 무대 세 번 보는 동안 서도화 춤 잘 추는지 이제 알았음ㅋㅋㅋ
-ㅋㅋㅋㅋㅇㅈ나도 보컬에 홀라당 홀려 가지곸ㅋㅋㅋㅋ
-우리 도화 천재만재…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고부터 오류가 난 것처럼 멈춰버렸던 하트 아이콘 화면은 여전히 그대로 멈춰있다.
올라가지 않는 게 아니었다. 마음 점수는 여전히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화면은 지금도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어떻게 봐도 봐도 대단할까.
이후 91번 멤버들의 파트가 이어졌다. 그러나 채팅창의 화제가 91번으로 넘어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VCR을 통해 보였던 욕심 많아 보이는 모습, 그리고 56번과 91번의 극명한 인기 차이.
채팅창의 상황은 그에 대한 결과값이다.
시청자들은 91번 그룹의 메인보컬 오현민의 파트가 되어서야 화제를 돌려 그의 보컬을 칭찬했다.
다만 56번 내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주상현과 서도화의 차례가 끝난 뒤라 건조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오현민과 91번의 멤버들은 이러한 상황에 팬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것을 성공했다.
만족스러웠던 심사위원들의 평대로 1절까지의 분위기가 몹시 좋았다.
1절의 끝, 멤버들의 표정이 한층 긴장과 비장함으로 채워졌다.
주상현의 파트가 끝나면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댄스 브레이크다.
대형이 서서히 형태를 바꾸었다.
활기찬 트럼펫과 북소리가 조금씩 사그라들고 조명이 어두워지며 이제부터 무언가 나온다는 것을 암시했다.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에 웅성거리던 시청자들은 이내 대형의 중심에 서는 멤버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무대의 조명이 밝아졌다. 디스코 혹은 재즈바와 같은 반주에 더욱 힘찬 트럼펫과 나팔 소리.
주상현과 손지, 그 뒤로 서도화와 아덴 그리고 91번의 리드 댄서가 섰다.
그리고 주상현의 중심으로 댄스 브레이크. 가운데 주상현을 제외한 채 모두가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동안 주상현은 재킷을 휘날리고 모자를 쓸며 온갖 제스처를 취했고 그와 동시에 오프닝과 같이 탭댄스를 응용한 빠른 발 안무를 선보였다.
주상현 다음은 손지의 락킹, 손지 다음으로는 서도화가 독무하며 댄스 브레이크를 무난히 마무리했다.
-이게 1위 아니면 누가 1위를 함???
-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ㅋ
-역시 우리 상현이 잘해ㅠㅠ도화도 너무너무 멋져ㅠㅠㅜㅜㅜㅜ
-사기다 이건
-님들 또 홀리면 안 됨 정신 차리고 마음 좀 눌러요 아이콘 화면 멈춤
-아님 저거 오류남 아까부터 ㅈㄴ손가락 부서지도록 연타하는데 안 움직임
-??조작은 아니겠지…
무대 위의 댄스 브레이크와 시청자들의 반응. 이를 지켜보는 도성한는 코웃음칠 수밖에 없었다.
‘조작은 무슨.’
조작도 할 만해야 하는 거다. 이렇게까지 확실한 반응이 오면 어렵다. 그것도 올리는 게 아니라 내리는 거면.
물론 조작이야 이번 방송도 당연스레 들어가고 있다.
대중들이야 조작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업계에선 어느 정도 이게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았다.
일 안 하는 상사가 성실한 부하직원보다 월급을 많이 가져가는 것과 비슷한 당연함이었다.
만약 이 방송에 순위 조정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56번의 순위는…….
‘TOP10 내에 들었겠지.’
너튜버 소래담의 그룹 49번 또한 2라운드 1위를 그대로 유지했을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순위와 관련해 사전에 제작진과 이야기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흠……. 머리 아프네.”
도성한이 제 머리를 짚으며 웃었다. 그렇게 조금씩 반응을 살피며 조정을 했는데 역시 두각을 드러내는 떡잎의 팬은 무서운 법이다.
아예 조작할 수 없도록 하트 아이콘을 멈춰 버리다니.
이러면 또 다른 팀이 또 하트 아이콘을 멈추지 않는 이상 56번의 순위 조정이 좀 어렵다.
섣부르게 건드렸다간 대번 반발이 올라오겠지. 지금 스트리밍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팝넷의 서바이벌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니.
이를 눈치챈 이미소가 픽 웃었다.
“뭐, 걍 해요. 저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저기 데스티니 막내아들 있네. 쟤라도 투자자랑 연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순간.
“…….”
도성한은 이미소의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몇 번이고 채팅창에 보이던 글과 같은 말을 쏟아냈다.
“와 진짜 미친 거 아냐? 너무 잘하네.”
순위고 조정이고 다 떠나서 우러나오는 감탄이었다.
세 사람의 독무 그리고 다섯 사람의 댄스 브레이크가 끝난 뒤 잠깐 사이 대형이 바뀌고 탄력 좋은 로프가 등장했다. 다섯 멤버와 케이 이외의 멤버들이 로프 두 개가 팽팽하게 유지되도록 양쪽에서 잡아당기고 있었다.
시청자들이, 관객들이 로프의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두 사람이 로프를 밟고 날아올랐다.
몇 번을 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높이와 속도다. 합숙에서 몇 번이나 봤던 이미소도 할 말을 잃고 이를 바라볼 정도인데 도성한과 대중들은 오죽하겠는가.
가뜩이나 체공 시간이 길던 아덴과 케이가 로프를 밟고 올라가니 더욱 높고 길게 허공에 머물고 있었다.
가뜩이나 아슬아슬한데 더 위험해 보이면 아예 금지당할 수 있다는 서도화의 말에 따라 적당히 조절해서 뛰어도 이 정도다.
케이와 아덴은 여러 동작으로 뛰고 날며 묘기를 했고 그 앞에서 주상현과 손지가 페어 댄스를 췄다.
정말 이게 가능한가 싶은 환상적인 연출이었다.
서도화는 고개를 들어 공중의 아덴과 케이를 바라보았다.
‘조명 아래서 보니 더 멋져 보이네.’
누가 보이면 위험하다며 손에 땀을 쥘 만한 광경. 저들의 진짜 실력을 아는 서도화는 그저 들떴다.
연습실에서만 보다 이곳에서 보니 한결 더 이들의 모습이 드라마틱해졌다.
그는 로프를 잡은 멤버들 뒤에 앉아 너무나 만족스러운 하이라이트를 보다 채팅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완전히 멈춰있는 하트 아이콘에 한번, 반응이 이상한 채팅창의 상황에 또 한 번 멈칫했다.
‘어?’
하트 아이콘은 왜 멈춰있는 것인가.
이번엔 딱히 잘못하거나 실수한 것도 없는데. 첫 번째 무대부터 버벅거리더니 결국 맛이 가버린 걸까.
그리고 채팅창. 틀림없이 좋은 이야기만 있겠거니 했던 채팅창은 감탄과, 56번에 대한 칭찬 그리고, 91번에 대한 조롱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패기 좋게 파트 노린다던 사람들 어디 감ㅋㅋㅋ
-혹시 91번 56번 애들한테 아크로바틱 파트까지 뺏겼니?
-노래도 뺏기고 하이라이트 아크로바틱도 뺏기고…ㅎ
-아닠ㅋㅋㅋㅋ우리 아덴이 허리에 와이어 달린 거 아님? 봐도 봐도 신기하네~
-왜 91번은 뭐 안 함? 쟤네도 아크로바틱 한다며~
-텀블링이라도 좀 해라… 답답하네 어쩌다 파트분배 이렇게 된 거?
2라운드에 잠시 논란이 되었던 컨셉 따라하기에 대한 갑론을박과 3라운드 VCR에서의 모습 때문에 91번은 완전히 비호감 그룹이 된 듯했다.
하이라이트에서조차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91번에 대한 조롱감이 되었다.
‘어라…….’
서도화는 생각보다 더 공격적인 채팅창의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얼른 대형에 맞추어 자리를 이동했다.
서도화와 56번 멤버들이 제발 텀블링이라도 하자고 부탁해도 그놈의 자존심으로 안 하겠다고 고집부린 건 91번이었고 이에 대한 비난이 안타깝진 않았다.
서도화는 그것보다 케이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파트가 더 신경 쓰였다.
이제 곧 아크로바틱이 끝나고 케이의 파트가 온다.
케이의 필살 파트였다.
날고뛰던 아크로바틱도 끝나고 바로 2절이 시작되었다. 서도화부터 노래가 시작되고 반주는 다시 익살맞은 재즈풍 댄스곡의 분위기를 띄웠다.
1절과 댄스 브레이크로 한껏 달궈진 노래, 조금씩 축제 분위기가 되어가는 찰나 케이가 센터에 나섰다.
그의 필살 파트.
산뜻하고 가볍고 대수롭지 않은 미소로 이별을 선언해야 하는 파트다.
웃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도 사악한 미소가 되어버리는 케이를 위해 멤버 모두가 달라붙어 그의 웃는 연습, 보컬 연습을 도왔다.
무대 중앙에서 카메라를 마주 본 케이는 매우 비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