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74화 (74/270)

제74화

“어서 와! 얘들아, 정말 너무 고생했어!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너희들 무대랑 순위 보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울었어.”

유제이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 56번 멤버들을 맞아주는 직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럴 만도 했다. 이대로 괜찮을까 했던 오합지졸들이 어느새 이렇게나 성장해서 크나큰 성과를 거뒀다.

이들의 시작을 보았던 직원들은 다 함께 만들어낸 결과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까 이안 씨도 선글라스 안으로 눈물 닦으시더라.”

“에이 설마요. 그 이안 님이요?”

김유진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히트곡 제조기 이안. 상당히 예민하고 불퉁한 사람이지만 은근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관심 없는 척하더니 멤버들 무대 할 때쯤 회의실로 슬쩍 들어가 감상하고, 순위 발표 때 또 나타나 울고는 태연한 척 사라졌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야는 예의 바른 미소로 직원들에게 인사하며 멤버들을 자리에 앉혔다. 신나서 김유진에게 이것저것 말하던 멤버들은 움찔, 한야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뭐야? 오늘은 또 왜 이렇게 말 잘 들어?”

기세를 봐선 아직 자랑할 게 한참이나 남은 기색이었는데. 한야가 앉으라고 말은 했지만 멤버들이 모르는 척 이야기를 계속하면 그는 귀여워하며 내버려 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멤버들이 얼른 그의 말을 듣고 이야기를 뚝 끊으며 자리에 앉았다.

한야는 오늘도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김유진과 직원들은 모르는 게 있었다. 어른들은 모르고 오로지 멤버들만 느낄 수 있는 한야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여기서 말 안 들으면 걷어차인다 싶은 예감이 들 때, 바로 지금이었다.

한야는 이유는 몰라도 오늘 경연이 있었던 이후 은은히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티는 나지 않아도 멤버들은 알았다. 그런 멤버들의 걱정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한야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김유진에게 물었다.

“대표님, 논의할 게 뭔가요?”

“어? 아아! 다름이 아니고.”

김유진이 의자에 앉았다.

“일단 3라운드 베네핏이랑 또 흠…….”

그녀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결국 이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이제 슬슬 정말 그룹 이름을 정해야 할 것 같아서.”

그와 동시에 직원들도 깊게 숨을 내쉬었다. 멤버들이 열심히 경연을 치르는 동안 직원들은 그들을 서포트함과 동시에 그룹명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 그룹명을 말해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심지어 이젠 3라운드까지 치렀고 곧 방송이 시작될 테니 이젠 논쟁만 벌이지 말고 얼른 정하자.

정 못 정하겠으면 근처 철학관이라도 들려보자 하고 있을 때였다.

스트리밍을 지켜보던 직원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그룹명 공개]

떡하니 나오는 베네핏에 심장이 내려앉을 뻔했다.

“아아니! 이게 미쳤나! 그룹명 공개할 거면 미리 말을 해 줘야지! 이건 아니지!”

김유진은 당황한 나머지 스트리밍이 재생되고 있는 모니터를 보며 빽 소리 질렀다.

“이, 이, 걔 이름 뭐야! 이제 이름도 까먹네!”

“도성한 피디요?”

“얼른 전화해 봐!”

김유진의 말에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돼요? 방송 중에 메인PD가 연락이 되겠어요?”

“아이씨, 우리 그룹명 없는데?”

뒤늦게 그룹명 짓는 타이밍이 너무 늦었음을 깊이 깨달은 김유진이 제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케이파이브’만 하지 말라고 빌고 있을 때.

-4라운드부터의 탈락자들은 무대 위에서 자신의 그룹명을 공개할 수 있습니다.

서영의 말을 듣고서야 김유진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아하, 탈락자들만?”

그럼 됐다. 김유진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지금 56번의 기세를 보아 절대로 당분간 탈락할 일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룹명은 정말로 이제 결정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마침 베네핏 관련해 이병수에게 전화도 온 김에 멤버들을 모은 것이다.

“일단 그룹명은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급한 것부터 먼저 이야기해보자. 일단 4라운드는 제작진 측에서 곡 선정되는 대로 보내준다니까 그전까진 신경 쓰지 말고… 베네핏 말인데.”

김유진이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이들이 오기 직전까지 고민했지만 그녀는 이미 결정했다. 결정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3위까지의 그룹, 3팀이었으니 총 여섯 그룹. 여섯 그룹이 합동해서 4라운드 오프닝 공연을 맡게 될 거야.”

“그게 저희 베네핏이에요?”

주상현의 말에 김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상위권 팀에게 좋은 베네핏이 주어졌다. 팝넷이 제공하는 곡과 안무로 이루어질 4라운드 오프닝 송.

무척 좋은 기회이지만 아쉽게도 모두가 함께할 수는 없었다.

“대신 멤버 전체가 하는 건 아니고, 각 그룹당 한 명씩 총 여섯 명이서 한다고 하네.”

김유진의 말에 멤버들은 놀란듯하다 금방 납득했다.

하긴 여섯 그룹의 인원은 너무 많기는 하다. 서도화는 여섯 그룹 멤버 전원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베네핏인데 그냥 단체로 새천년체조 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거다. 멤버 전원이 시선을 나눠 가져 한 사람도 어필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멤버들은 팝넷의 생각을 이해했다. 대표로 한야가 물었다.

“그럼 저희는 누가 가나요?”

서도화는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갈 거면 상현이가 가야지.’

당연했다. 멤버들을 대표해서 한 사람만 갈 수 있다면 멤버들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실력 좋은 주상현이 가야했다.

주상현이라면 1년간의 방송 활동으로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량을 가져올 수 있는지도 잘 알 거고 다른 그룹에서 온 연습생들 사이 확신의 메인 댄서도 맡을 수 있을 테니까.

한 팀인 이상 욕심은 내려두고 이성적으로 가장 적절한 멤버를 밀어주는 게 맞다.

그러나 김유진의 시선은 주상현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도화.”

“네?”

주상현을 보던 서도화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김유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미소 지었다.

“우리는 도화를 내보낼 거야.”

“……저요?”

진짜 놀란 듯 되묻는 서도화에게 김유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미 직원들끼리 결정한 일이다. 또한 밀리언 아이돌 측의 제안이기도 했다.

왜? 주상현이 아니고? 서도화가 주변을 둘러보자 주상현과 한야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주상현이 말했다.

“이건 도화 형이죠.”

주상현은 아무리 자신이 멤버 중 가장 인지도가 높아도 당연히 서도화가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최근 SNS든 너튜브든 밀리언 아이돌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습생이 서도화니까.

원래 사람들은 이미 실력을 알고 있는 이보다 신선한 천재에 더 관심을 보이는 법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람을 방송에 내보내야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고 분량을 받지 않겠는가.

개인의 욕심보다 팀을 생각하고 있는 건 주상현도 마찬가지. 그의 생각은 김유진의 생각과 일치했다. 그래서 밀리언 아이돌 측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유진은 가타부타 거창한 설명 없이 말했다.

“도화가 실력도 좋고 또 최근에 반응이 오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이름 알리고 와.”

데뷔 후 주상현과 투톱으로 밀어줄 멤버다. 회사의 자랑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랑할 필요가 있었다.

서도화는 김유진과 주상현을 번갈아 보다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주상현을 응원할 생각 만만이었다만, 기회를 준다는데 당연히 해야지! 서도화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아덴은 서도화를 따라 하듯 괜히 입꼬리를 꿈틀꿈틀 올려보았다.

“그래! 도화야, 믿는다. 그렇다고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

멤버들이 회의실에 도착하기 전 미리 결정된 일이었기에 베네핏에 관한 이야기는 빠르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하지만 아직 이보다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남아있었다.

답답해서 머리가 터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제 더는 미룰 수도 없는 그룹 이름 정하기.

공간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으나 김유진의 옆에 앉아있던 직원이 눈치 빠르게 테이블 위로 종이 여러 장을 꺼내놓았다.

종이 한가득 그럴듯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김유진이 비장하게 말했다.

“이번 4라운드 시작 전까지, 우린 56번의 그룹명을 정한다. 오케이?”

그녀의 말에 직원과 멤버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케이가 눈을 반짝이며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 애잔하게 말했다.

“케, 케이파이브는!”

“……어?”

“케이파이브는 여전히 후보군에 있겠지요!”

나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설마 ‘케이’ 파이브를 버렸을 리가! 이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선량한 것들이 그럴 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눈으로 말하는 케이를 보며 모두가 시선을 피했다.

제길 아직, 포기한 게 아니었나.

케이파이브는 당연히…….

하지만 말하면 케이의 의욕이…….

“왜 다들 말이 없는 것인가! 서, 설마!”

“그으…….”

“……그렇군.”

케이의 눈빛에 절망과 실망감, 그리고 무기력함이 감돌 때쯤.

“아아, 깜빡했다.”

서도화가 심드렁하게 말하더니 연필꽂이에 꽂힌 유성매직을 가져갔다. 그러곤 눈앞에 펼쳐진 종이의 구석에 대충 ‘케이파이브’를 크게 휘갈겨 케이에게 건네주었다.

“미안한 만큼 크게 적었다.”

서도화의 말을 한야가 빠르게 캐치해 덧붙였다.

“대표님이 바쁘셔서 깜빡하셨나 보다.”

김유진도 황당하게 멤버들을 바라보다 서둘러 말했다.

“그으래……. 내가 깜빡했네. 케이가 경연 내내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케이파이브도 당연히 후보에 넣어야지. 미안해 케이. 하하!”

친구라더니 역시 서도화. 케이 다루는 게 수준급이다.

“그런가? 그냥 까먹은 건가?”

종이를 받아든 케이의 눈동자가 다시 빛났다. 그의 입가가 꿈틀거리며 애써 미소를 참고 있었다.

“후훗, 그래 인간의 기억력은 보통 그 정도지. 그 사과, 내가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지. 그래 공평하게 후보군에서부터 시작하자꾸나.”

이로서 후보군에 케이파이브가 생겼다.

이들은 그룹명 짓기에 돌입했다.

…케이파이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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