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78화 (78/270)

제78화

센터에 선 댄서의 몸에 걸린 이름표는 1번 최여운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1번 그룹의 짝꿍 15번 그룹의 단과 서도화가 대열을 맞춰 섰고, 그 다음으로 송서, 소래담, 지우진 순이었다.

그러나 순위대로 선 대열의 포지션은 곡이 시작하자마자 바뀌었다.

전주가 시작되며 센터는 15번 그룹의 메인댄서인 단이 차지하였고 도입부엔 서도화가 센터 자리에 섰다.

‘경쟁 부담이 없도록이란 게 이런 뜻이었나?’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베네핏을 받은 모든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센터에 섰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받고 여기까지 올라온 멤버들인 만큼 차별 없이 골고루 주목받을 수 있도록 파트를 배분해두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조금 더 비중이 높은 건 셋. 메인댄서 단, 메인보컬 서도화, 그리고 랩 담당 소래담이었다.

제작진은 각 분야에 실력이 확실한 세 사람에게 조금 더 비중을 주어 곡을 이끌어나가도록 했다.

그러나 모든 안무, 파트들이 납득 가능한 선에서 잘 분배되었다. 영상을 끝까지 본 뒤 제작진이 정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멤버는 없을 수준이었다.

메인pd가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 동영상을 참고해서 지도 선생님들과 공연 준비를 해주시면 되고요. 정해진 일정 외의 시간은 자유니까 숙소의 시설들을 마음껏 이용해주세요.”

어라? 생각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연습 외에 딱히 미션도 없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니?

“생각했던 거랑 좀 다른데?”

서도화가 무심결에 말하자 이를 놓치지 않고 들은 소래담이 호쾌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아, 도화 씨 저도 반말해도 돼요? 저는 반말해도 돼요.”

“네, 그렇게 하세요.”

서도화는 대답하곤 눈동자를 굴렸다. 어떻게 생각했냐고? 저기 서도화와 마찬가지로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는 송서와 지우진, 단도 아마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합숙이라길래 지옥의 연습 캠프. 뭐, 그런 거 할 줄 알았어요.”

“헐 웃긴다. 지옥캠프래핵!”

소래담은 뭐가 그리 웃긴지 당황한 서도화를 두고 폭소하다 그를 귀여워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1라운드 때 갔던 펜션도 이런 좋은 곳이었어. 거기 존나 재밌었는데.”

서도화의 눈이 커졌다. 방금 잘못 들은 건가?

“소, 소래담 씨.”

방금 욕 한 거 같은데.

소래담은 당황한 서도화의 표정을 못 본 채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서운함을 표현하며 말했다.

“형이라고 부르자. 누구누구 씨, 그런 거 너무 벽 치는 것 같아서-”

소래담은 말하다말고 입을 다물더니 인상을 팍 쓴 채 눈동자를 굴렸다.

행동 하나하나가 익살맞으며 과장스러웠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네. 몇 살 차이야? 13살 차이인가? 어우 이 정도면 형이라고 부르기 좀 그러면 삼촌이라고 불러도 돼.”

아니 지금 나이가 문제가 아니고.

서도화는 황당함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형 방금 욕 하신 거 같은데…….”

서도화가 카메라와 소래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카메라가 켜져 있는 걸 혹시 인식하고 계십니까?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소래담은 또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욕을 했었나?”

꽤 친해진 뒤의 이미지가 다르다. 무대 위에는 최고의 카리스마 래퍼. 무대 아래에서도 그럭저럭 예의는 갖추면서 분위기를 재밌게 잘 이끌어가는 이미지였는데.

말을 트니 사람이 살짝 노빠꾸스러움이 있었다. 말투부터 한결 가벼움이 느껴졌다.

소래담은 자신이 욕을 했었나 생각해보다 모르겠다며 쿨하게 웃었다.

“뭐 어때? 진짜로 아이돌 할 것도 아닌데.”

“형…그….”

그으렇겠네. 아이돌로 데뷔할 사람이 아니기는 하네…….

서도화가 이렇게 당황하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덴과 케이가 이곳에 오고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적응되며 이렇게 당황할 일은 이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덴, 케이와는 또 다르게 서도화를 무척 당황하게 하는 캐릭터였다.

그가 카메라 앞에서 편하게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서도화는 그 아슬아슬함에 미쳐버릴 것 같았고 반면 소래담의 캐릭터를 익히 잘 알고 있던 PD는 이 또한 재밌는 편집점이 될 것에 그저 조용히 즐거워했다.

소래담의 출연을 받아들인 건 이런 어그로와 평범한 연습생 경연 프로에선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또 하나의 화제와 재미를 만들어주길 바라서였다.

소래담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잘 해내고 있었다.

더구나 소래담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막내 서도화의 의외의 모습까지.

무척 재밌는 한 세트가 아닌가.

소래담의 노빠꾸식 대화에 서도화가 슬슬 부담을 느낄 때쯤.

“그럼 연습 시작할까요? 간단히 몸부터 풀고.”

딱 적당한 타이밍에 최여운이 상황을 마무리하고 연습할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넵. 몸풀기는 각자 하죠.”

“좋아요.”

비록 펜션 외부에 임시로 만들어진 연습실이긴 해도 모처럼 인원수에 맞지 않는 무척 넓은 연습 공간이 생겼다. 다들 슬금슬금 연습을 위해 몸을 일으키는 차 제작진이 빠르게 말했다.

“그! 전에!”

“……예에?”

메인PD의 커다란 목청에 놀란 연습생들이 일어나려던 자세 그대로 멈춰 섰다.

메인PD는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밥이요?”

연습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식사하고 싶으세요?’

‘아니요.’

‘밥은 아직 별로.’

눈빛만으로도 다들 먹고 싶어 하는 기색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누가 연습 전에 체하게 밥을 먹고 싶겠는가?

하지만 이들의 생각을 알면서도 PD는 그저 부드러운 얼굴로 부엌을 가리킬 뿐이었다.

“부엌은 저쪽이고요. 재료는 냉장고에 넉넉하게 넣어놨으니까 원하시는 대로 쓰시면 돼요.”

설마 연습만 시키려고 이 넓고 더럽게 비싼 펜션을 3박 4일씩이나 빌렸겠는가?

‘그럴 거면 그냥 서울에 있는 연습실이나 빌렸겠지!’

인기 있는 그룹 내에서도 가장 인기 있을 조합만 고르고 골라서 이 먼 곳까지 온 이유는 연습 때문이 아니다.

연습은 어차피 3일 뒤에 촬영 끝나고 자기들끼리 본격적으로 하게 될 거고. 여기선 적당히 연습 하며 베네핏 받은 연습생들끼리 화기애애하게 분량 뽑으려고 온 거다.

그 때문에 할 거, 볼 거 많은 이곳으로 왔고 연습하며 틈틈이 할 만한 컨텐츠들도 짜왔다.

점심 만들기는 그 많은 컨텐츠 중 첫 번째였다.

다행히도 이곳에 온 연습생들은 눈치가 빨랐다. PD의 부드럽지만 강압적인 태도에 당황하기도 잠시 용케도 신호를 알아듣고 일제히 부엌으로 향했다.

“밥 뭐 먹을까요?”

“와.배.고.프.다.”

“재료 뭐 있지? 간단히 해 먹을 수 있는 거면 좋겠는데. 송서 씨 요리 잘해요?”

“아음, 아뇨? 근데 간단한 것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걸요.”

“배.고.팠.는.데.다.행.이.다.”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부엌으로 향하는 멤버들 사이로 어색한 연기 톤이 들렸다. 메인댄서 단이었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참 듣기 힘든 연기를 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굳이 왜 연기를 하는 걸까?

가볍게 떠오르던 서도화의 의문은 소래담의 질문으로 사라졌다.

“요리 잘하시는 분?”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저요.”

“오? 진짜? 도화 요리 잘해?”

“도화 요리할 줄 알아?”

어느새 막내에게만은 말을 튼 멤버들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속없이 물어댔다.

서도화는 어김없이 소래담의 팔이 제 어깨로 올라오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아니고 조금 해요.”

우리 파티 미식가 덕분에 어깨너머로 꽤 많이 배웠지.

서도화는 빠르게 소래담의 팔에서 벗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의 눈이 아주 잠깐 반짝였다.

먹을 게 참 많았다. 일단 고기의 양이 상당하고 그 외에 뭐든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을 법한 재료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었다.

재료를 확인하는 서도화의 뒤로 어느새 멤버들이 다가와 함께 재료를 살폈다.

멤버들이 다가온 김에 서도화는 물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뭐 먹을까?”

“역시 고기 아닙니까 형님?”

최여운의 되물음에 소래담이 대답했고 그에 지우진이 소심하게 말했다.

“저는… 도화야 나는 좀 가벼운 거 먹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가벼운 거 어떤 거요?”

“어? 그 샐러드 그런 거? 연습해야 하니까. 체할라.”

“크으, 역시 우리 우진이. 연습할 것도 생각해서 식단 조절하는구나.”

소래담이 빠르게 지우진에게 엄지를 추켜들었다.

그때 송서가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도울게요!”

“네?”

대충 고기와 샐러드 재료를 꺼내던 서도화가 뒤돌아 송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서가 민망하게 웃으며 서도화가 품에 든 재료를 가져가 들어주었다.

“요리하는 거 저도 할게요. 도화 씨, 저도 요리 조금은 할 줄 알아요.”

다들 말놓고 반말하는 와중 혼자만 서도화에게 말을 놓지 못한 송서의 눈빛은 매우 비장했다.

그룹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런가?

왜 요리 같이하겠다는 말을 비장하게 하며 자신에게 허락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같이해요. 형.”

서도화의 대답에 송서는 한시름 놓은 듯한 반응을 보였고 그때 그들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온 최여운이 두 사람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나도 같이해. 도화는 알겠지만 형이 고기는 잘 구워.”

갑자기 훅 다가온 최여운에 이번엔 어쩐지 서도화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네…! 형, 같이…해…주시면 저는 너무 감사할, 것 같아요!”

입만 열면 극존칭, 극존댓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도로시 앞에서의 느낌과 똑같았다. 억울해 땅을 칠 일이지만 겉으로 보기에 잘못한 건 맞아서 당당히 행동은 못 하는 상황.

어쩔 수 없었다. 서도화가 이세계로 넘어가던 날, 바로 다음 날 있었던 월말 평가에서 한팀이었던 이가 바로 최여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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