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79화 (79/270)

제79화

서도화가 데스티니에 있을 때조차 최여운에게 해본 적 없는 존댓말이었다.

“예…….”

그냥 어쩐지 최여운에게 존댓말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어?”

최여운은 멈칫하다가 이내 옅게 미소 지었다.

“왜 그래? 형 섭섭하다. 야.”

말만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아무렇지 않은 건가?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긴가민가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텐데?

서도화가 이세계로 떠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이 최여운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파트너 없이 월말평가를 치르게 되었으니까. 아마 대차게 말아먹었을뿐더러 직원들에게 대차게 까였을 것이다.

‘아무리 여운 형이 속 좋은 사람이었어도…….’

데스티니에 있을 당시 최여운은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사실 사람이 좋다기보단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지.’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연습생 동생들의 말에 싫은 소리 못하는 여리고 조용한 성격. 착하더라도 카리스마 있게 연습생들을 이끌던 한야와는 같은 듯 달랐다.

그러나 아무리 그라도 중요한 월말평가를 말아먹고 잠수 탄 장본인한테까지 사람 좋기는 쉽지 않을 텐데.

서도화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최여운이 말했다.

“사정이 있었겠지. 네 성격은 형이 잘 알아.”

“아.”

최여운의 말이 진심이라는 건 그의 눈빛으로 전해졌다. 서도화의 입이 꾹 닫혔다.

절대 서도화가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 말이 머리에 울렸다. 서도화의 멍한 얼굴을 몬 최여운은 다시 그의 등을 두드리며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의 음식들을 꺼냈다.

서도화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싫은 소리 할 생각 없다.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실망도 상처도 컸지만 조금만 진정하고 생각해보면 그 노력가였던 그가 뒷일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사라졌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뭔가 이유가 있어도 있었겠지. 노력가들만 모인 데스티니에서도 가장 열심히 하는 멤버인데. 그래서 연습생들한테 미움도 많이 샀던 이인데.

그래서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사과 한번 없이 다른 소속사에서 똑같이 소속사를 등지고 나간 한야와 함께 이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었어도 모르는 척, 싫은 소리 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의 성격을 알기도 했고 이미 다 지난 일. ……그리고 지나갈 사람이라 괜히 감정 소모하기 싫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형.”

최여운은 자신을 향해 고맙다고 하는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냥 적당히 먹을 거면 샐러드에 김치볶음밥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요?”

송서가 커다란 김치통을 꺼내 들며 말했고 세 사람이 요리를 시작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멤버인 서도화, 송서, 최여운은 각자 할 일을 분담해 요리를 시작했고 남은 멤버들은 설거지를 약속하곤 제각각 할 일을 했다.

서도화는 볶음밥을 만들며 부엌의 창문 밖 소래담을 보았다.

너튜버 아니랄까 봐 자유시간이 생기자마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여기저기 다니며 펜션을 소개하고 있었다.

서도화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면 경연 때도 카메라 들고 있는 모습을 종종 봤는데 방송 끝나고 얼마나 많이 올리려고 하는지.

그때 소래담이 부엌을 획 바라보더니 자신과 눈이 마주친 서도화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카메라에 무언가를 말하더니 앵글에 서도화를 담았다.

서도화도 그에 맞춰 씨익 웃으며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소래담이 달려와 창문 위로 팔을 걸쳤다.

“도화야 다해가니?”

“네? 아, 다 해가요.”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렇게 궁금해하셨던 도화가 지금 김볶밥 만들고 있어요. 이거 저희 멤버들만 먹을 거임. 부럽죠?”

서도화는 가스 불을 끄고 카메라를 향해 말하는 소래담에게 손짓했다.

“형, 이제 슬슬 들어오세요. 밥 먹어요.”

“어어, 알겠어. 다른 멤버들도 다 데리고 갈게.”

“네, 알겠-”

“여러분! 그런 저는 이제 멤버들 데리러 가봐야겠습니다. 나중에 또 시간 나면 카메라 들어볼게요. 기대하세요. 안녕~”

음, 모든 신경은 자신의 카메라로. 이게 너튜버의 삶이구나.

서도화는 소래담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곤 김치볶음밥은 후라이팬 채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곧 소래담이 각자 시간을 보내던 멤버들을 데리고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샐러드 소스는 그냥 파는 거 썼어요.”

“원래 파는 게 제일 맛있지. 와 맛있는 냄새 장난 아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연습생들은 제작진이 전부 펜션을 나선 식사 시간이 되고서야 조금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방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지만 합숙 때 이미 익숙해진 것이라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소래담 형은 언제부터 방송 시작하신 거예요?”

지우진이 소래담에게 물었다. 방에서 휴식을 취한 것으로 아는데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던 소래담을 봤던 모양이다.

“나? 방송한 지는 꽤 됐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시작했으니까 11년? 그 정도 했나?”

그의 말에 서도화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방송을 정말 잘한다 싶었는데 그냥 베테랑이었다.

질문을 한 지우진 또한 감탄하며 소래담의 접시 옆에 세워진 카메라를 가리켰다.

“아까 계속 찍고 계시길래요. 지금 찍는 건 언제 올라가는 거예요?”

“이거? 아마…….”

소래담은 눈동자를 굴리다 씨익 웃었다.

“나 탈락하고 나면?”

그러곤 털털하게 웃었다.

“농담이고 방송 끝나면 올라가겠지?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해도 괜찮은 사람들은 나랑 인터뷰 좀 해줄 수 있어? 소속사에서 안 된다고 하면 억지로 안 해도 돼.”

소래담의 말에 서도화를 포함한 연습생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미소 지었다.

소속사 허락은 둘째치고 아무리 너튜브라도 촬영 중에 다른 방송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래담은 제작진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서도화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유머 있게, 쿨하게 별거 아닌 듯 말하는 소래담의 말이 왜인지 그에게는 좀 다르게 다가왔다.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5년이나 구르고 왔더니 어느 방면이든 눈치 하나는 빨랐다.

뭐든 시원하게, 그러나 선을 지켜서 말하던 소래담. 그러나 지금의 그는 마치.

‘퇴사를 앞둔 직장인 같이 말하네?’

경연이 시작된 직후 최상위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막강한 우승 후보 소래담이 지금은 무언가 마음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서도화는 제 앞접시에 볶음밥을 옮겨 담으며 소래담에게 물었다.

“형 그럼 지금은 방송 어떻게 하고 계세요?”

“우리 도화, 삼촌이 아니고 형이라고 계속 불러주는 거야? 귀여운 것.”

“예?”

소래담은 서도화의 머리를 부자연스럽게 쓰다듬곤 씁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라이브는 못 하고, 찍어둔 영상 차례대로 업로드 하는 중이야. 생각보다 우리가 너무 잘하더라.”

소래담은 말하다 헉 제 입을 막고 샐쭉 웃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것도 욕먹으려나?”

어쩐지 소래담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있었다.

이 방송이 시작되며 팬덤 간의 경쟁이 심화하고 갈수록 갖가지 이유로 욕을 먹는 연습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난을 많이 받는 그룹이 49번, 소래담의 그룹이었다.

매번 새로운 무대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그룹이지만 역시 재미로 출연했다는 게 비난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무려 100그룹이 참가하는 프로그램. 연습생 모두가 꿈을 이곳에 걸고 진심으로 경쟁하는 상황에 재미라니?

순전히 화제성과 너튜브 조회 수를 위한 출연 목적에 간간이 밀리언 아이돌 현장 포토에 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모습마저 나오고 있으니 이를 유쾌하게 보는 이도 있는 한편 곱게 보지 못하는 팬들이 더 많았다.

화제성과 조회 수를 위한 출연이라는 건 소래담이 직접 말한 것이었고 그에 대한 비난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지금, 그는 뭘 말해도 욕먹을 것이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굴러가던 대화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가 최근 심하게 욕을 먹고 있는 건 사실이라 섣불리 방금 소래담의 발언을 옹호하기도 꺼려지는 상황.

다들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눈치를 볼 때 서도화가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형은 매번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시잖아요. 방송이 나가고 나면 그 노력을 시청자분들은 알아주실 거예요.”

서도화의 말에 소래담이 놀라 눈을 키웠다.

“……으음, 그럴까….”

“네.”

위로차 말했지만 그냥 한 말은 아니었다. 듣기론 소래담 혼자서 편곡하고 돈 써서 안무 가져오고 개사하고, 의상에 무대 세트 챙기고 멤버 케어까지 싹 다 한다고 하던데.

그게 그냥 재미로 와서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그룹은 수십이 붙어서 처리하는 일들이었다.

지금이야 무대 위에서의 모습이나 어그로 끌릴 만한 몇 인터뷰 정도만 공개되어서 그렇지 곧 방송을 통해 그 노력을 시청자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 여론을 바뀔 거라고 확신한다.

재미로 참가했든 뭐든 소래담의 팀은 진심으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마침 그들의 팀은 빠짐없이 베네핏을 받고 따로 컨텐츠 촬영을 진행했으니 더더욱 마음 돌리기도 쉬울 것이다.

“저는 49번 공연 되게 좋아해서요. 잘하는 것 같다는 형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진짜 잘해요.”

무엇보다 서도화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소래담을 위로하는 이유는 자신이 한 질문에 분위기가 싸해지는 건 싫었기 때문이었다.

소래담은 놀란 표정 그대로 웃음 짓더니 ‘크으’ 감탄사를 내뱉으며 엄지를 추켜들었다.

“도화 너 되게 말 예쁘게 한다!”

“제가요?”

말을 예쁘게 한다니.

말투부터 약았다는 말은 저쪽 세계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서도화 인생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