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0화 (80/270)

제80화

하다못해 그 사이코 용사 아덴에게마저 말 한번 더럽게 재수없게 한다거나 능력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투라는 알 수 없는 평을 듣고 기분 나빠하곤 했었다.

‘말을 예쁘게 한다니…….’

서도화는 인생을 살며 처음 들어보는 칭찬에 속으로 몹시 당황했지만 소래담은 계속 감탄하며 서도화를 토닥였다.

“도화야, 너는 특별히 삼촌이라고 불러도 넘어가줄게.”

“예?”

이 인간 갑자기 왜 이래? 삼촌은 무슨.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나이기로서니. 더구나 팀원들 눈엔 서도화는 18살이겠지만 사실 그는 5년을 이세계에서 보냈으므로 실상 이십 대 초반이다.

서도화는 농담인 줄 알고 한 번 더 물었다.

“형이 아니고요?”

그러자 소래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몇 살이야 잠시만. ……헤엑! 띠를 넘겼어. 삼촌이라 불러 귀여운 자식아.”

아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서도화는 고민 없이 말했다.

“예, 삼촌.”

“아학! 내가 부르라고 했는데 기분 이상하다잉!”

서도화는 이상한 호들갑을 떠는 소래담을 모른 척한 채 옮겨 담아두었던 볶음밥을 마저 먹었다.

서도화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걸 알아차린 최여운이 볶음밥을 소래담의 그릇에 담아주며 그의 호들갑을 멈춰 세웠다.

“자, 소래담 형님도 얼른 드세요. 오늘 늦게까지 연습해야 할 텐데 든든히 먹어야 해요. 볶음밥이랑 샐러드 뿐이지만. 하하.”

“형들 그럼 저녁엔 고기 구울까요? 고기 엄청 많던데.”

지우진의 말에 단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 좋아요.”

“그래, 고기로 가자.”

최여운이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먹으면서 오늘 일정에 대해 간단히 소개할게. 제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대표로 듣게 됐어요.”

그의 말을 듣는 멤버들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오늘은 연습 일정이 여유롭게 잡히기는 했는데 사실 우리한테는 3일 밖에 시간이 없으니까 우리가 알아서 타이트하게 연습을 하는 게 좋을 것 같거든? 일단 연습 시작 시간은 3시부터야.”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tv뒤 벽시계로 향했다.

‘아 확실히 여유롭게 짰네.’

현재 시간은 오후 1시. 연습 시작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천천히 밥 먹고 짐 정리하고 멀리서 왔으니 잠깐 낮잠을 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내일, 내일모레도 따로 우리끼리 활동해야 하는 게 있어서 사실 온종일 붙어있다고 해도 연습할 시간이 많지는 않을 거야.”

따로 하는 활동이란 펜션 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말하는 것일 테고, 컨텐츠 찍으면서 연습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합숙 때랑 마찬가지로 틈틈이 연습 시간을 알아서 마련해야 할 듯하다.

경연까지 남은 기간은 넉넉하지만 이번 펜션에서의 연습이 끝나면 다음부터는 각자 그룹의 무대를 준비해야 하니 다시 모이기 쉽지 않다.

“그럼 오늘도 연습 좀 일찍 시작할까요? 두 시간이나 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메인 댄서 단이 편하게 말하다 움찔거리며 멤버들의 시선을 피했다.

“아, 여기까지 거리가 멀어서 피곤하시겠구나……. 그럼 오늘은 쉬어도…….”

그러자 멤버들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단의 말에 서둘러 대답했다.

“아니야! 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최여운의 말에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도 두 시간이나 휴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짐 정리 끝나는 대로 모일까요?”

“그럼 짐 정리도 하고 소화도 시키고 2시에 연습 시작하는 것으로 괜찮아? 소래담 형도 괜찮으세요?”

“어 좋지. 다들 먼 길 오느라 피곤하겠지만 빠르게 진도 나가둬야 뒤에 가서 걱정이 없어.”

“네!”

그래도 다행히 이곳엔 실력 좋은 멤버들만 모여있다. 혼자면 하루 만에 완벽히 안무 숙지가 가능했고 실력 좋은 연습생들과 함께라면 꽉꽉 채워 이틀이면 어느 정도 완성도는 나왔다.

물론 지금은 중간중간 제작진이 준비한 컨텐츠를 진행하며 연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예전 합숙보다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그렇게 알고 그럼 각자 할 일 하고 2시에 연습실에서 볼게요.”

“네!”

“잘 먹었습니다.”

한 시간가량 자유시간이 생겼다.

서도화는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곧바로 거실의 짐을 챙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서도화는 계단을 오르며 2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바로 앞에 보이는 방 팻말을 보고 화색이 되었다.

“우와! 개인 방이네?”

그가 이 숙소에 온 이후 가장 큰 목소리였다.

2층 계단을 오르자마자 샹들리에를 둥글게 두르며 이어지는 긴 복도.

복도엔 총 여섯 개의 문이 달려있었는데 각 문마다 멤버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개인별로 방을 쓴다는 말이었다.

‘이렇게 대우가 다를 수 있나.’

서도화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가운데 방으로 향하며 설렘에 가득 찼다.

개인 방에, 먹거리에, 온전히 멤버 여섯에게만 집중되는 카메라까지. 역시 상위권 베네핏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어메스 멤버들 없이 혼자 즐기는 게 미안할 정도다.

서도화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제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이건 진짜.”

서도화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는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 그리고 널찍한 침대.

그의 입에서 진심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살고 싶다.”

조용하고 무엇보다 근심 걱정 없는 이 환경.

“……아.”

에라이. 근심 걱정 하니까 또 그 두 녀석들이 생각났다. 서도화는 침대에 누운 채 짧게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막상 혼자 있을 수 있게 되니 괜히 걱정이 됐다.

잘하고 있겠지? 사고 치거나 싸우진 않았겠지?

한야가 없을 땐 두 녀석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한야는 경연 준비로 한참 회의 등등에 참여하고 있을 때라 두 사람을 케어하기가 어려울 시기일 터.

“아이고 내 팔자야.”

여기서도 걱정을 떼어낼 수가 없다니. 멤버를 믿어도 모자랄 판에.

아니야 그래도 애들은 착해. 아덴 빼고.

서도화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자조하다 벌떡 일어났다.

“일단 짐 정리부터 하고.”

잠깐의 자유시간을 이용해 소래담과의 인터뷰를 허락받기 위해 매니저 이병수에게 다녀올 생각이다.

어차피 방송이 끝나고 소래담 채널의 영상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할 시점엔 어메스도 데뷔 준비를 하고 있을 터.

너튜브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소래담 채널에서라도 이름 한번, 얼굴 한번 비추는 게 소형기획사 아이돌에게는 큰 홍보가 될 것이니까.

* * *

멤버들이 지내는 펜션의 별관에 스태프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허…….”

서도화는 그곳에서 나오며 작게 탄식했다. 역시 서도화의 걱정은 틀린 게 아니었다.

서도화가 소래담 인터뷰를 허락받기 위해 이병수를 만나러 갔을 때, 이병수는 한숨을 벅벅 쉬며 주상현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한야는 회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아덴과 케이가 싸우고 주상현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이병수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하아, 도화는 지금 촬영중에 있는데 어떻게 바꿔주겠어? 한야는 아직이래? 잠깐이라도 불러와, 대표님이 둘이 싸우고 있다고 하면 이해해줄 거야. 아, 아니면 나 바꿔줘. 아덴 바꿔봐. ……들은 척 좀 해라 상현아. 아무리 소용없을 걸 알기로서니.”

아이고 내 팔자야.

서도화는 해탈한 얼굴로 한숨을 크게 쉬며 이병수에게 다가갔다.

“……아오! 깜짝이야! 도화야! 네가 왜 여기 있어?”

“주세요. 휴대폰.”

“어어, 그래.”

이병수는 냅다 서도화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상현아 스피커 켜.”

-네? 아, 넵! 켰어요!

주상현의 난감함 가득한 목소리가 참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프고 그랬다. 이 편안한 펜션에 와서 이병수의 피곤한 얼굴을 보니 참 마음이 복잡했다.

서도화는 휴대폰에 대고 건조하게 말했다.

“아덴 그만.”

-……도화냐?

아덴의 놀란 목소리, 뒤이어 케이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하! 용, 아덴 네놈. 음유, 서도화의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는군.

-당연하지. 내가 너같이 세상 혼자 사는 줄 아냐? 동료의 말이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야. 인마. 하긴, 네가 뭘 알겠냐? 너 친구도 없지?

-너, 너도 없잖은가!

뭐 이런 개같이 유치한 싸움이 다 있어? 서도화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하프 꺼낸다.”

그러자 빽빽 소리를 지르던 케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하프 꺼낸다가 무슨 말이에요?

영문을 모르는 주상현의 물음이 흘러 나왔지만 서도화는 이를 모르는 척하고 말했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 상현이한테 한 번만 더 전화 오면 진짜 할 거야. 한야 형한테 부탁해서 하프 사달라고 할 거야. 아덴한테도 조심하라고 전해라.”

그제야 두 녀석들의 싸움은 끝이 났다. 서도화는 미간에 한껏 주름을 진 채 이병수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고 빠르게 말했다.

“소래담 씨가 멤버들한테 너튜브용 인터뷰에 출연해줄 수 있냐고 묻던데 출연해도 돼요? 방송 끝나고 업로드 할 예정이래요.”

곧 있으면 다시 전화가 올 것 같아서 서둘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병수는 숨도 안 쉬고 말하는 서도화의 물음에 당황하면서도 소래담의 영향력이 큰 만큼 회사와 상의하고 답하겠다며 서도화를 돌려보냈다.

그런고로 숙소에서 나온 서도화의 얼굴이 그 짧은 사이 피로해진 것이었다.

서도화는 천천히 펜션을 향해 걸었다. 할 일도 없으니 연습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미리 연습실에 들어가 몸을 풀 생각이다.

스태프들의 숙소와 가까운 곳에 마련된 연습실.

“어?”

서도화가 연습실 입구에 멈춰 섰다. 연습실엔 소래담이 서도화보다 먼저 도착해 안무 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소래담은 인기척에 서도화를 발견하곤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다가왔다.

“오잉? 도화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아, 몸 좀 먼저 풀고 있으려고요.”

소래담의 거침없는 접근으로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어이쿠, 너무 가까운데.

“아 진짜? 얼른 들어와! 같이 스트레칭 하자!”

“아, 넵!”

“우리 도화 씨 한 낯가림 하는구나?”

“예에, 좀. 조금요.”

“한 낯가림 씨네.”

되지도 않는 아재 개그를 들으며 서도화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담스러움을 애써 지우고 소래담의 손에 붙들려 연습실 가운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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