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서도화 18세.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자로서 딱 봐도 밀리언 아이돌의 모든 출연진과 형, 동생, 삼촌 할 것 같은 소래담과 단둘이 있는 건 꽤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그러나 걱정 적중률 90%를 자랑하던 서도화의 걱정이 이번만큼은 사뿐히 빗겨나갔다.
“아오, 스트레칭은 해도 해도 늘지가 않아. 도화 넌 어떻게 그렇게 유연하니?”
“저는 오래 했으니까요. 제가 좀 눌러드릴까요?”
“아니 아니, 괜찮아. 난 고통을 못 견디는 인간이라 누르면 기절할걸? 31년을 뻣뻣하게 살아왔잖아.”
소래담을 대하는 서도화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소래담 그는 자신의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카메라가 눈앞에 있을 때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리액션을 하고 분위기를 띄우더니 카메라가 없으니 조금 텐션이 가라앉아 첫 만남에 보았던 적당히 유머 있고 어른스러운 소래담이 되어있었다.
연습실 곳곳에도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어 어느 정도 개구진 리액션은 여전하지만 자신의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적어도 서도화에게는 이 정도의 소래담이 딱 적당했다.
“다음은 왼쪽으로 허리를 숙이는데, 옆구리가 쫙 당겨야 해요.”
“난 여기까지만 해도, 어후, 벌써 확 당기는데? 야 너는 무슨 몸이 접혀버리냐?”
“접혀…….”
서도화가 어이없어 자세를 풀어버리자 소래담이 낄낄거렸다. 그러다 그 또한 자세를 확 풀고 그냥 드러누웠다.
“역시 내 몸은 댄스 같은 거 할 몸은 아니야.”
소래담이 누운 채로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춤도 잘추고 노래는 더 잘하고 얼굴을 더더욱 잘생겼다.
누가 봐도 천생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서도화와는 달리 소래담은 갈수록 이 경연에 참가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자본 하나 믿고 빽 없이 덤볐고, 구독자의 힘을 빌려 굉장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지만 성취는 성취고 맞지 않는 건 맞지 않는 거다.
그런 소래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천재 아이돌 소년 서도화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드러누운 소래담을 불렀다.
“형?”
“도화가 형 좀 도와줄래? 나 댄스엔 전혀 관심이 없었어서, 진짜 못 추거든.”
“얼마든지요.”
서도화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소래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치라서, 근데 이번에 나온 안무 보니까 너무 어려워 보이더라.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서도화가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잘 들어주어서 그런 걸까? 소래담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에게 제 불안의 일부를 말했다.
그냥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이제 슬슬 하기 싫어지는 걸 제일 조용하고 어려서 만만한 그에게 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자 서도화는 소래담을 빤히 쳐다보며 한참 고민하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형 아까부터 왜 약한 소리를 해요?”
“뭐?”
“춤이야 해보면 되고 우승 후보가 해보기도 전에 못 하겠다고 그러면 어떡해요?”
케이도 노력으로 안무를 완벽히 익히는 데에 성공했다. 하물며 음악적 재능, 박자 감각이 타고난 소래담이 케이보다 못할까?
이미 댄스곡으로 몇 번이나 높은 순위를 받았으면서 댄스엔 재능이 없다느니, 우승 후보가 저런 말 하는 게 서도화는 별로였다.
충분히 잘하고 있으면서 왜 베네핏 촬영하러 와서 약한 소리를 하지? 뭐 어쩌라는 거지?
아니 애초에 왜 그런 이야기를 나한테 하지?
서도화는 이해할 수 없는 징징거림에 살짝 짜증이 치밀어 올랐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는 우승을 목표로 나왔으니까 일단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러자 소래담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라? 이게 아닌가?
떨떠름한 소래담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서도화는 이내 그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난 우승까지는 안 바라고……. 하하, 아니야. 미안 미안.”
소래담은 더 말하지 않고 스트레칭을 계속했다.
더이상은 이 경연에 참가한 연습생 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말하겠는가. 이제 슬슬 자신이 기권을 생각하고 있음을.
아이돌 업계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재미로 나왔다는 말에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줄 몰랐으며 순위 다툼에 이토록 신경이 쓰일 줄은 생각 못 했다.
매 회 춤과 노래 준비, 멤버 케어, 무엇보다 자꾸만 튀어나오는 천재들과 경쟁을 계속해나가야 하는 것. 스트레스였다.
그저 너튜브에 이따금 자작 랩을 올리고, 구독자들과 대화하고 컨텐츠 올리며 지내는 게 소래담은 훨씬 재밌었다.
그리고 처음 경연에 뛰어들 때와 달리, 지금은 다른 그룹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또 절박한 자세로 경연에 임하고 있는지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어중간한 자세로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유일한 재미인 너튜브마저 지금은 경연 룰 때문에 모두 스태프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하지 못하고 있으니 굳이 이렇게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래담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소래담은 아이돌에 꿈도 목표도 없으니까.
“형?”
소래담은 자신을 쳐다보는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진짜 우승 후보. 자신과는 다르게 꿈을 가득 안고 이 경연에 참가한 천재 소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해준 서도화. 소래담은 자신보다 13살이나 어린 서도화가 정말로 꽤 마음에 들었다.
하도 소문이 개같이 돌아서 성격 개차반일 줄 알았더니 예의도 바르고 이 시답지 않은 징징거림을 용케도 받았었다.
“들어줘서 고맙다.”
소래담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서도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익숙해요.”
제2세계에서 하이넬과 함께 나름 정상인 역할을 맡았던지라 동료들의 징징거림을 하도 많이 들어 좀 귀찮았어도 괜찮았다.
“착하다. 너 진짜.”
도대체 어디서 착함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족한 듯하니 되었다. 서도화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2시까지 5분 남은 시간, 조금 더 기다리니 멤버들이 하나둘씩 연습실로 들어와 몸을 풀었다.
그동안 미리 몸을 푼 서도화와 소래담은 안무 영상을 확인했고 2시가 되자마자 안무 연습을 시작했다.
* * *
안무 연습을 시작한 지 단 3시간.
‘이게 말이 되나?’
“하하!”
이 팀의 메인 댄서 단이 탄성처럼 웃음을 내뱉었다.
역시 실력 있는 멤버만 모이면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드는 일이었다.
멤버 무려 여섯이 완벽히 안무를 맞추는 데 단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시할 정도로 빨리 숙지가 끝났다. 그렇다고 안무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따라 하긴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있었는데 별다른 고비도 없이 뚝딱 외워버리고 그 이후론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들 중 댄스에 유독 약한 지우진과 소래담이 댄스 브레이크 부분에서 조금 헤매긴 했지만 케이와 아덴을 생각하면 그건 헤맨 것도 아니었다.
“이야…….”
이를 촬영하던 PD가 기함할 정도의 속도였다. 덕분에 반복연습밖에 할 게 없어진 연습생들이 슬그머니 PD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뭐라도 연습에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애초에 잘하는 놈들, 성격 무난한 멤버들만 모아놔서 뭣 하나 분량 뽑을 곳 없이 연습이 너무 스무스하게 끝나버렸으니.
멤버들의 시선을 받은 PD는 심각하게 고민하다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읍시다. 밥 먹고 다시 연습하죠.”
PD조차도 연습에서 이렇게나 분량을 못 뽑을 거란 건 생각 못 한 일이었다.
‘빌어먹게 비싼 펜션 값 본전도 못 찾겠는데?’
“쓰읍.”
멤버들의 실력이 이렇게나 좋은 이상 다른 곳에서 미친 듯이 분량을 뽑지 않으면!
“그럼 밥 먹고 오겠습니다.”
멤버들이 정적이 흐르는 제작진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펜션으로 돌아갔을 때, 연습실에 남은 제작진들은 긴급히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 * *
“우리 안무 숙지는 끝났으니까 이제 디테일을 좀 살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네, 제스처나 표정이나 안무 디테일도 그렇고, 저희 다음에 연습실 가면 노래도 부르면서 해봐요.”
열정적인 연습을 치른 이후라 멤버들은 식사를 하면서도 다음 연습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멤버들끼리 세부적인 조율을 하고 나자 식사를 마칠 때쯤엔 오히려 애써 평범한 대화를 이어나갈 때보다 조금 더 서로의 대화가 편안해짐을 느꼈다.
역시 연습생들은 연습으로 대화를 해야 통하는 게 생기는 모양이다.
그렇게 대화가 무르익어갈 때쯤, 한결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진 송서가 서도화와 최여운을 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원래 도화가 여운 형이랑 같은 회사 아니었어요?”
“아, 맞아!”
“그거 되게 유명했잖아요.”
“아… 하하.”
도화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건 말건, 멤버들이 송서의 물음에 수긍하며 덧붙여 말했다.
“도화는 예전부터 연습생들 사이에 되게 유명하지 않았어?”
“그랬어?”
소래담의 물음에 지우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되게 유명했어요. 아니, 유명해요. 회사 기대주라고.”
“오~도화 기대주였구나? 형은 연습생이 아니어서 전혀 몰랐네?”
“하하…….”
서도화가 민망스레 미소 지었다. 소래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까? 칭찬인 말들인데 어쩐지 서도화의 표정은 별 감흥이 없는 모습이었다.
서도화는 그들의 칭찬 아닌 칭찬을 듣다 말했다.
“다 예전 일이에요. 지금은 아니에요. 기대주.”
지금의 기대주는 주상현이지. 뭐.
이 착한 멤버들이 멕이려고 꺼낸 말은 아닐 테니 이들은 칭찬이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오히려 쫓겨난 지금은 흑역사에 가까운 별명이라 사실 별로 듣고 싶진 않은 칭찬이다.
거기다 이제 회사가 유제이로 바뀌기도 했고.
그때 조용히 멤버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최여운이 말했다.
“도화 실력은 우리 회사에 있을 테보다 훨씬 늘었어.”
“어, 그래요?”
지우진의 되물음에 최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보컬이 엄청 늘었던데, 사실 엄청 놀랐어.”
“아, 그건.”
“어떻게 한 거야?”
가벼운 대화 분위기치고 무척 진지한 물음이었다. 서도화가 데스티니에서 나간 지 반년이 조금 지난 시간. 어떤 연습을 했길래 순식간에 실력이 이렇게나 늘었을까? 이렇게 잘하면서 왜 그날 도망가서 잠수를 탔을까?
크게 감정을 담아 대화 나눌 생각은 없지만 궁금하긴 했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물음에 서도화의 입에선 달달 외운 것처럼 자동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평소 이론 위주의 공부보단 많이 불러보고 몸소 느끼며 소리를 고치고 또 고치길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를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저는 그저 보람차네요.”
“…….”
음유시인의 패시브 스킬에 관련된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얼버무릴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대답, 일명 수능 만점자와 같은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