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3화 (83/270)

제83화

팝넷이 히트시키기 위해 좋은 곡, 중독성 있는 안무를 들고 왔다면 이를 공연하는 연습생들은 다른 방식을 구상했다. 그들은 그 안에서도 자신들을 어필할 수 있는 수단을 들고 왔다.

이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고작 5분짜리 무대에 멤버 여섯의 얼굴과 개성이 전부 각인될 수 있는 구성.

아직 단의 안무는 미완성이었고 서도화와 지우진의 화음, 애드리브 또한 정리가 필요할 듯하지만 이 구성이 최종적으로 오케이된다면 기존의 구성보다 팬들이 좋아할 만한 무대가 될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최여운이 지친 얼굴로 말했다. 서도화는 그의 말에 ‘네.’ 작게 대답하며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지쳤어도 무척 보람찬 모습들이었다. 그럴만했다. 이렇게 척척 계획대로 진도 잘 나가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그리고 정화 내성도 확실하게 생긴 것 같네.’

물론 3라운드나 치른 이후긴 하지만 바로 앞에서 노래 부르는데도 하루 만에 아무렇지 않게 되다니.

여기 연습생들 모두 기록적으로 짧은 시간 만에 내성이 생겼다.

‘이세계 성자도 이렇게 빨리 생기진 않았었는데.’

성스러움 그 자체인 성자도 정화 스킬에 정화될 게 남았는지 한 이틀간 노래만 부르면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아니 그러고 보면 지금 이 멤버들은 처음 노래에 맞춰 연습했을 때도 흠칫하기만 했지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들이 유독 타락하지 않았음이 아니라 평소 경쟁자 그룹의 무대를 얼마나 많이 보고 참고하며 연습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도화가 시선을 바로 한 채 수건으로 땀을 닦을 때 송서와 소래담이 다가와 서도화의 양쪽에 앉았다.

“막내야~”

“네.”

막내 서도화가 대답하자 소래담이 씨익 웃으며 물을 건네주었다.

“역시 젊은 게 좋기는 좋다. 도화도 그렇고 송서도 그렇고 안 지쳤어?”

“아뇨, 좀 지쳤어요. 씻자마자 잘 것 같아요.”

“저도. 조금.”

서도화가 말하자 송서가 가볍게 서도화의 한쪽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이들의 곁으로 단과 지우진도 슬그머니 다가와 앉았다.

그래도 하루 함께 있다 보니 어느새 잠시 쉴 때도 모두가 모여 앉았다.

예전 짝그룹 때를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그때 91번과 점심 식사 후 짧은 자유시간에 다 각자 떨어져서 시간을 보냈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지우진이 송서를 힐끔거리곤 서도화의 남은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도화 피곤하냐?”

“네? 아뇨. 그냥 형들이랑 비슷해요.”

오히려 체력은 남아돌았다. 매번 새벽까지 연습하던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오히려 일이 빠르게 진행되어서 스트레스도 덜하고 괜찮았다.

서도화는 어느새 자신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샌가 이들은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고 있었다.

“저희 내일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아시는 분?”

서도화의 물음에 단이 대답했다.

“일단 10시 기상이긴 한데, 좀 더 일찍 일어나서 등산하고 연습… 아, 같이하실 분?”

단의 물음에 서도화를 제외한 모두가 손을 들었다.

“도화는 안 가?”

“저는 아뇨. 제가 산에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요.”

5년간 산만 탔더니 등산하면 치가 떨리는 서도화였다. 당연스럽게 거절하던 서도화는 멈칫 문득 잘 다녀오라고 맑게 손을 흔들어주던 한야의 미소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나 이번 합숙에서 분량은 좀 뽑았던가? 떠올려보면 대놓고 방송에 얼굴 비추라고 하는 촬영에서 첫날 다 같이 요리한 걸 제외하면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죽어라 연습만 하던 게 이전 합숙이랑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그나마 있는 자유시간엔 카메라 밖 이병수에게 들렸다가 소래담에게 휘말려 스트레칭한 게 전부고.

잠시 고민하던 서도화는 막내다운 싹싹한 말투로 말했다.

“대신 형들 오기 전까지 아침 해놓을게요. 뭐 드시고 싶으세요?”

“오, 아침? 뭐 먹지.”

“아침부터 찌개는 좀 그럴까요?”

“찌개 완전 좋지 콜.”

서도화는 찌개를 외치는 멤버들에게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그 사이 제작진들에게 다음 일정을 들으러 갔던 최여운이 돌아왔다.

“우리 내일 연습할 시간 많지가 않겠는데요.”

최여운이 메모해둔 일정을 멤버들에게 건네주었다.

“어 미니게임?”

“오후에 이것저것 보상 걸고 미니게임 한다나 봐.”

“어떤 보상이요?”

송서의 물음에 최여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까진 비밀이라고 하셨어. 대신 미니게임 이후론 트레이너 선생님이랑 계속 연습이긴 한데, 미니게임 진행 시간이 좀 길 것 같아.”

연습에 앞서 컨텐츠 촬영이 진행될 거라는 말에 멤버들은 화색이 되었다.

“오, 앞에 수영장 있는데 그것도 쓰려나요?”

“무서운 거만 아니면 돼요. 무서운 거만.”

오늘 아침 컨텐츠 촬영과 연습을 어떻게 병행할지 걱정하던 모습과는 달랐다.

멤버들의 실력과 센스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연습 진도가 빠르게 나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세 시간 만에 단체 안무를 완성하는 팀인데 이 정도면 컨텐츠 촬영 맘껏 즐기다 연습 때만 집중하면 충분히 무대 준비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최여운은 걱정 없이 들뜬 멤버들을 흐뭇하게 보곤 짝 손뼉을 쳤다.

“그럼 이제 숙소로 돌아가죠. 이제부턴 자유시간이래요. 잘 사람은 자고 놀 사람은 놀고.”

“네! 수고하셨습니다!”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연습실 내에 크게 울려 퍼졌다.

시간은 벌써 밤 10시. 서도화는 정리되어가는 촬영 장비들을 멍하니 보다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 * *

밤 12시 조금 넘은 시간.

서울에서 이곳까지 먼 길을 넘어와 몇 시간에 걸쳐 연습까지 했던 멤버들은 몸을 씻고 제각각 방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제작진들이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우리도 슬슬 촬영 정리할까?”

“네, 정리할까요?”

새벽부터 나와 촬영 준비하느라 얼마나 피곤한지 원. 다행히 연습생들이 일찍 잠이 든 덕분에 빠르게 촬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이고, 어깨야.”

연습생들보다 더 피로한 얼굴로 펜션을 멍하니 보던 PD는 2층의 가운뎃방 유일하게 환히 불 켜진 방을 발견했다.

“저 방 도화 방 아니야?”

“네, 맞아요. 도화 아직 안 자나?”

“어린 게 좋기는 좋아요. 그렇죠? 그렇게 연습을 하고 보나마나 애들끼리 모여서 카드 게임이나- 오아 시봘! 깜짝이야!”

뜬금없이 큰 소리로 욕을 내뱉은 조연출에 PD가 인상을 팍 쓰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야 인마!”

“아, 죄송합니다. 그, 저기.”

조연출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당의 구석을 가리켰다.

“도화 밖에 있었네요.”

“어? ……허억와이씨벌! 아이씨! 깜짝이야!”

PD는 까무러치게 놀라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짜증이 잔뜩 나선 투덜거렸다.

“아니 쟤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냐!”

“진짜 심장 떨어질 뻔했어요.”

슴슴한 산속의 밤, 한쪽으론 계곡 흐르는 소리가, 또 한쪽에선 바람결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든 햇볕이 가득 들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던 이 시골 럭셔리 펜션은 밤이 되자 보이는 모든 곳이 전설의 고향 같은 음습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서늘한 풍경 속 보이는 하나의 인영. 서도화가 삐걱삐걱 그네를 타며 멍하니 펜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지하고 다시 보니 별로 무서울 것 없었지만 처음 봤을 땐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다.

정작 두 사람을 놀라게 한 서도화는 그들의 욕설을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멍하니 펜션, 아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오 진짜. 아직도 심장이 뛰네. 어후. 도화야! 진짜!”

PD는 인상을 팍 찌푸리면서도 VJ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놀란 건 놀란 거고 찍을 건 찍어야지.

서도화의 곁으로 다가온 PD는 어느새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우고 여느 때와 같이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 말투를 구사했다.

“도화 씨 안 주무세요?”

서도화는 그제야 인기척을 눈치채고 고개를 획 돌렸다. 그러다 얼굴 앞에 떡하니 들이밀어진 카메라를 보고 상체를 뒤로 물렸다.

“예? 아, 저요. 저 아직 잠이 안 와서 잠시 나왔습니다.”

“왜 잠이 안 오세요. 안 피곤하세요?”

“피곤하긴 한데…….”

서도화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제가 원래 혼자 있을 때는 잠을 잘 못 자요.”

아무리 졸리고 피곤해도 혼자선 밤에 잠을 못 잔다.

그래서 불을 켜고 자거나 새벽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자곤 했는데, 혼자에 하물며 잠자리까지 낯서니 더더욱 자기가 힘들었다.

“왜요. 잠자리가 불편해요?”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멤버들이 보고 싶어서요.”

그냥 웃으라고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사실 진심이었다. 지금만큼은 조금 멤버들이 그리웠다.

혼자서 밤에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건 이세계에 간 이후 생긴 고질병이었다.

아덴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괴로워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도화 또한 멸망한 세계에서 얻어온 문제가 있었다. 아니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증세가 혼자선 잠을 자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땐 밤엔 절대 불을 끌 수 없다. 눈조차 감기가 괴로웠다.

어두운 방 안에서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구석으로 기어들어 가기 일쑤다.

괴수와 배신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보호받을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의 밤은 언제나 무섭고 또 무서운 법이었다.

‘아, 고시원에서 혼자 지냈던 거 생각나네.’

서도화는 이세계에서 돌아와 데스티니에서 쫓겨난 직후 고시원에서 혼자 버텼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땐 완전히 밤낮이 바뀌어버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서도화에겐 몇 시간의 연습보다 3일간 혼자 보내야 하는 밤이 훨씬 어려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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