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4화 (84/270)

제84화

“하.”

서도화가 크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어떻게든 자긴 잤다. 어려운 숙제 하나를 끝낸 기분이었다.

서도화는 제대로 자지 못해 찌뿌둥한 목을 주무르며 방을 나섰다.

1층엔 이미 일어난 멤버들이 시리얼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 벌써 조깅 다녀오셨어요?”

“그럼!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도화 일어났어?”

“어, 안녕히 주무셨어요?”

서도화가 인사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런, 벌써 9시 반, 미니 게임이 예정된 시간까지 30분이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

서도화는 탄식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깨워줄 멤버도, 알람을 맞출 수 있는 휴대폰도 없는지라 늦게 잔 만큼 늦게 일어나버렸다.

“뭐야 도화~ 아침밥 차려준다더니~”

소래담이 장난스레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나름 분량 뽑겠다고 아침 차리겠다 말해놓곤 잠만 아주 푹 잤다.

“죄송해요. 어제 좀 늦게 자 가지고.”

“하하, 그런 거 같더라.”

“자고 있는데 굳이 깨우기 좀 그래서 안 깨웠어.”

“시리얼 먹을래?”

멤버들은 서도화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일사불란하게 서도화의 그릇을 챙겨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자리에 앉자 그의 주위로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합숙 시작할 때부터 느꼈는데 겉보기엔 나이가 제일 어려서 그런가? 오랜만에 챙김 제대로 받는 느낌이다.

“도화 방 불 계속 켜져 있더라? 어제 잠 못 잤어?”

“예에, 제가 이상하게 혼자는 잠을 잘 못 자겠더라고요.”

“왜? 혼자 자는 거 무서워서 해?”

“간혹 있지. 어둡고 조용하면 못 자서 TV 켜놓고 자는 애들.”

“저도 그런 거 같아요. 멤버들 없이 자려니까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이고 잠을 못 자서 어떡해?”

멤버들의 걱정이 한가득 쏟아졌다.

이야, 역시 인간 멤버는 참 좋구나. 잠을 못 잤다는 말에 ‘연약하군’ 따위의 재수 없는 말이 아닌 걱정이 돌아오다니.

서도화는 판타지스러운 생각을 하며 막내다운 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조금은 잤어요. 혹시 어제 저 왔다 갔다 한다고 주무시는 거 방해한 건 아니죠?”

“에이! 전혀 아니야!”

자기 때문에 혹시나 잠에서 깼을까 봐 걱정하는 착한 막내를 보며 멤버들이 일제히 손을 내저었다.

“아냐! 엄청 조용했는데? 화장실 가다가 보고 어? 아직도 불 켜져 있네? 했지.”

“난 다른 멤버들이랑 논다고 안 자나 했더니 그냥 못 잔 거였구나.”

“오늘은 미니게임에다 하루종일 연습인데 버틸 수 있어?”

“걱정 마세요.”

서도화는 애써 웃어 보이며 양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아, 그런데 진짜 버틸 수 있을까.’

불면증에 익숙해서 슬픈 인간, 그 이름 서도화다.

멤버들은 간단히 식사를 끝마치고 미니게임을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어, 왔어?”

촬영 세팅을 마치고 기다리던 제작진들이 그들의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제작진들의 표정이 몹시 밝았다. 관리할 연습생은 고작 여섯 명, 심지어 서도화를 제외하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므로 촬영도 일찍 끝낼 수 있었다.

덕분에 제작진들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다들 밥은 잘 먹었어?”

“아침에 조깅 했다며? 너희 진짜 부지런하다.”

경연, 리허설, 몇백 명이 함께한 합숙에서의 제작진만 보았던 서도화는 제작진들이 촬영 전에도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멤버들은 들어오는 동안 제작진들과 짧은 아침 인사를 나눴고 자리에 앉자마자 촬영이 진행되었다.

“여러분 좋은 아침입니다.”

“네! 좋은 아침입니다!”

제작진의 인사에 멤버들의 힘찬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은요. 저희가 모처럼 이렇게 모였는데 연습만 할 수는 없죠? 소정의 보상을 걸고 작은 게임 몇 가지를 할 건데요.”

“어? 보상이 있어요?”

“먹을 거예요?”

순진무구한 연습생들의 물음에 제작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상은 마지막 라운드 전에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분명히 여러분들에게 좋은 보상이 된다는 것만 말씀드리고, 선의의 경쟁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인PD는 간단히 당부의 말을 하고 곧바로 첫 번째 게임을 시작했다.

“첫 번째 게임은요. 약간 몸풀기 게임? 겸해서 간단한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각 그룹 멤버들 많이 보고싶죠?”

제작진의 말에 멤버들이 장난스레 말했다.

“아직까지는 별로 안 보고 싶은 걸요? 흐흐.”

“이제 하루밖에 안 지났는 걸요?”

“멤버들도 아직까지 저 안 보고 싶을걸요?”

제작진은 멤버들의 말의 모른 척한 채 계속 말했다.

“네, 이번 게임은 멤버들의 애정을 확인해보는 게임, ‘답은 정해져 있어’입니다.”

PD가 게임 규칙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규칙은 간단했다.

그저 멤버에게 전화를 걸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 제작진들이 감동할 만한 대답을 들으면 된다.

그리고 제작진들에게 받은 감동표대로 점수가 누적된다.

PD는 설명을 끝내고 능글스레 말했다.

“물론 여러분들에겐 무척 쉬운 게임이겠죠?”

그러나 멤버들은 웃으면서도 난감한 듯 각자 탄식을 내뱉었다.

“이야, 멤버들이 순순히 말해줄지 모르겠는데요?”

“이거 게임이라고 말하면 안 되겠다. 절대 안 말해줄걸요.”

“쓰읍, 하아……. 그것보다 이 시간에 일어나 있는지도 장담을 못 하겠어요.”

참고로 지금 시간은 아침 10시 40분이다.

아니 애초에 멤버들이 일어나 있다고 해도 글쎄.

감성 돋는 밤도 아니고 아침부터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감동적인 대답을 들려줄 사람이 있을까?

난감해하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제작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왜들 그러시죠? 다들 자신이 없으신가 봐요?”

메인PD는 장난스레 물으며 웃다 유일하게 동요하지 않는 서도화를 발견하고 멈칫, 그를 가리켰다.

“오, 도화 씨는 자신 있으신가요? 유일하게 표정이 평온하신데.”

모두가 곤란해하며 한 마디씩 얹는 상황에 서도화 혼자만 말없이 멤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도화는 제작진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그럼 정해진 답 없이 제일 감동적인 대답을 들으면 되는 건가요?”

“네? 네, 맞아요. 제일 감동적인 대답을 들으면 돼요.”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아주 자신 있었다.

아침이든 새벽이든 이런 질문에 가장 잘 대답해줄 사람이 있지. 아주 완벽하게 대답할 사람이.

“어우 도화 씨가 미소를 지으셨어요. 자신 있다는 뜻으로 알고 그럼 도화 씨는 가장 마지막 순서로 할까요?”

서도화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마지막에 하겠습니다.”

“……오오오. 나도 이렇게 자신 있고 싶다.”

“피디님 제가 장담하는데요. 저희 멤버들 백퍼 지금 자고 있어요. 애들이 죄다 야행성이라.”

소래담이 제작진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너튜버인 소래담이 수장으로 있는 49번 그룹은 소래담 뿐만 아니라 멤버 전체가 개개인의 너튜버 채널을 가지고 있는 너튜버들이었다.

거의 직장인 출근하듯 출근하는 다른 연습생들과는 달리 아침까지 너튜브 영상 편집을 하고 이제 막 잠이 든 멤버도 있을 터.

그러나 제작진은 능글맞게 웃을 뿐이었다.

“음~ 저희는 모르는 일이에요.”

“와~ 이거 내가 꼴찌겠는데?”

능글맞은 제작진의 대답에 소래담도 체념한 듯 능글맞게 반응하곤 물러섰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누구부터 하실까요. 도화 씨 말고 나는 자신 있다 하시는 분?”

제작진의 물음에 머뭇거리면서도 가장 먼저 손을 든 사람은 15번 그룹의 메인댄서 단이었다.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단 씨 매니저분, 단 씨 휴대폰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이 매니저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아 스스럼없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멤버 누구죠?”

“아, 저희 리더 형, 이수 형이요.”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곧 15번 그룹의 리더 이수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어, 단아…….

반쯤 잠에 절은 목소리였다.

“……주무시고 있었어요?”

-아니 아니, 이제 막 일어났어. 촬영 끝났어?

“아니요. 형 지금 촬영 중이에요.”

-……아 그래?

이수의 목소리가 갑자기 매끄러워졌다.

“어, 목소리 변하셨다.”

지우진이 작게 중얼거리며 픽 웃었다. 단의 얼굴에도 서서히 미소가 지어졌다.

늘 긴장해 표정이 어색하던 단이었는데 그래도 리더의 목소리에 그의 얼굴에도 편안함이 맴돌았다.

-왜 전화했어? 촬영 중이면, 뭐지? 게임인가?

상당히 눈치가 빠르다. 단은 제작진에게 슬쩍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제작진은 말하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단은 리더의 물음을 슬쩍 못 들은 척하고 말했다.

“형, 제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어, 뭔데.

“형은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말이 없던 이수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아마도 대답은 못 들었지만 게임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어떻게 생각하긴 너무 열심히 하는 천사 같은 멤버지. 언제나 고마워.

카메라를 의식한 듯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하던 이수는 단이 대답이 없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거 아닌가? 사랑해? 사랑한다 동생아? 뭐야. 넌 대단해?

뭔가 한 마디씩 추가되는 대답에 메인 PD가 웃음기 어린 채 말했다.

“네! 여기까지! 뒤에 ‘사랑해’부터는 빼겠습니다! 너무 의식한 발언이니까.”

PD의 말이 들렸는지 이수는 머쓱하게 말했다.

-아, 끝났구나. 규칙이 뭐였는데? 나 뭐라고 대답했어야 해?

단은 서둘러 이수에게 게임에 대해 설명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멤버 모두가 각자의 멤버에게 전화를 걸어 게임을 진행했다.

가장 정상적인 대답을 들은 건 ‘멤버들 잘 포용해서 이끌어가는 것에 감사하다. 존경한다.’는 말을 들은 최여운.

72번 지우진은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야. 지우진은 지우진이지. ……노래를 잘 부르는 착한 친구?’라는 건조한 대답을 들었고, 소래담의 멤버들은 단 한 사람도 전화를 받지 않아 소래담이 좌절하는 소소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서도화의 그룹과 짝그룹이었던 문제의 91번의 멤버 송서는…….

-여보세…

“형! 지금 촬영 중이야! 방송이다! 방송!”

-……뭐?

“방송 중이야! 촬영하고 있어!”

게임 질문에 대한 답변보단 예방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촬영 중임을 어필하던 모습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서도화의 차례.

“자! 대망의 마지막 도화 씨! 오래 기다리셨는데요. 아까 전에 굉장히 자신 있어 하셨어요. 그렇죠?”

피디가 그에게 굉장한 부담을 주었지만 서도화는 해맑게 웃었다.

“네, 저는 정말 자신 있습니다!”

진짜로 그 부담 다 짊어져도 상관없을 만큼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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