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7화 (87/270)

제87화

숙소에서의 마지막, 집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서도화는 정면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인상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부셔…….”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커튼도 치지 않고 잠들었다.

혼자 있을 땐 새벽 다섯 시 넘겨야 겨우 잠이 오더니 말똥했던 눈은 멤버들과 보드게임 하는 사이 저절로 감겨들었다.

멤버들은 서도화가 슬슬 잠에 취해 비몽사몽한 상태가 되자 타이밍 좋게 게임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진짜 좋은 사람들이네.’

다들 연습에 게임에 피곤했을 텐데 새벽까지 피곤한 티도 내지 않고 떠들고 놀며 방에 있어 주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서도화가 몸을 일으켰다. 모처럼 일찍 일어났으니 고마움의 표시로 어제 늦잠 잔다고 못 했던 아침 식사라도 준비해놓을 생각이다.

“어?”

1층의 부엌으로 들어가던 서도화가 입구에 멈춰 섰다.

소래담이 식탁 의자에 앉은 채 심각한 얼굴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 서도화를 발견하고 빠르게 표정을 바꿔 미소 지었다.

“아, 도화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형, 일찍 일어나셨네요.”

“어어, 요즘 점점 잠이 없어지더라고.”

소래담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선 과장스럽고 발랄한 소래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 본인의 영상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무척 신나고 즐겁게 들렸는데 막상 소래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고민이 무척 많거나 혹은 상처받은 표정. 어제 서도화와 단둘이 연습실에 있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표정을 보였었다.

‘지금이 훨씬 심각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도 될까?

물어보면 실례가 아닐까?

그러나 굳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서도화가 묻기도 전에 소래담이 먼저 이유를 알려주었다.

“아이고, 오늘따라 안 좋은 댓글이 많네.”

“아…….”

어제 이야기했던 비난에 대한 연장선인가보다.

소래담은 더 대화를 끌지 않고 서둘러 휴대폰을 껐다.

진짜로 데뷔를 목표로 둔 연습생이 카메라 앞에서 팬들의 비난과 비판에 대해 말하는 건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서도화는 한눈에 보기에도 소래담을 걱정하는 듯 보였지만, 그렇다고 서도화에게 댓글에 대한 의견을 말하게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꺼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저요? 그냥 일찍 일어나지더라고요. 어제 같이 있어 준 거 고맙다고 아침 준비나 해놓을까 싶어서.”

“오오, 좋지.”

“그럼.”

서도화가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소래담은 웃음기를 거둔 채 서도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습도 열심히 하고, 열정도 있고, 재능도 있고.

댓글에서 말하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악물고 노력하는 연습생이란 서도화 같은 이들을 말하는 것이겠지.

‘……저런 연습생도 있고 나 같은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소래담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사실 그는 아직 꿈의 현장을 우습게 본다는 밀리언 시청자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억울했다.

물론 재미로, 방송이 끝난 후 조회 수 올리려고 참가한다며 대놓고 어그로를 끌면서 시끄럽게 참가한 건 맞다.

그러나 어그로만을 위해 말한 건 아니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 것이기도 했다.

원래 소래담은 이런 성격을 가진 너튜버였으니까.

거기다 그는 아이돌 팬덤의 분위기를 잘 몰랐다.

경연은 경연일 뿐인 거 아닌가? 그냥 우승하면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제각각의 이유로 오디션에 참가한다.

꿈을 이루고자 온 연습생이 있는 한편 데뷔보다는 얼굴 알리고 싶어서 참가한 연습생도 있을 것이고, 소래담처럼 너튜브를 목적으로 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는 아직 꿈을 위한 기회의 현장에 왜 ‘재미’로 가볍게 참가하는 게 용인할 수 없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자신에게 자꾸 기권하라고 하는가.

그래서 자꾸만 서도화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상당한 실력파, 그리고 노력가. 꿈을 위해 노력 중인 그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 * *

마지막 날의 일정은 여유로웠다.

아침에 짧게 마무리 연습이 진행되었고 점심식사를 한 후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다들 고생했어요!”

“다음 연습 때 보자.”

“들어가!”

“수고하셨습니다.”

서도화는 멤버들과 제작진들에게 인사하곤 차에 올랐다.

“후.”

“고생 많았다. 도화야.”

“형도 고생 많으셨어요.”

촬영하는 동안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는데 집에 가려고 차에 오르니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구나.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을 멤버들이 생각나 살며시 미소 짓자 이병수가 소리 내어 웃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 너 없는 동안 멤버들한테 엄청 많이 연락 왔었어.”

“그래요? 왜요?”

“아덴은 걱정돼서 전화 왔고 상현이는 자꾸 언제 돌아오냐고 묻더라. 한야도 너 잘 있는지 안부차 매일 한 번씩은 연락 왔고.”

서도화가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이병수한테 하루가 멀다고 전화가 왔다.

고작 2박 떨어져 있는데 뭐 그렇게 서도화에게 할 말이 많은지 그렇게 싸우면서도 막상 없으니 또 찾는다 싶어서 이병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싸울 때마다 연락이 오더라고. 케이한테도 한번 전화 왔었어.”

“……걔가요? 저한테 왜요?”

“왜긴 왜야. 친구니까 잘 지내나 싶어서 전화했겠지. ……아, 하프 제발 버리라고 하던데 그게 무슨 뜻이냐?”

“아, 그냥. 싸우지 말라고 우리끼리 아는 말 하나 했어요.”

이병수는 악기 하프를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냥 악기라고 말해도 되지만 말하면 ‘음유시인이라서 하프야?’라는 심심한 농담이 돌아올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선곡 정해졌다. 56번 앞으로 선곡 신청이 제일 많다는 이야기가 돌더라?”

“에이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 인기를 가졌을 리가. 하지만 이병수는 진지하게 다시 말했다.

“서얼마요? 얘가. 제일 많을 수도 있지! 왜 설마요야! 무려 우승 후보 그룹인데?”

참나, 인터넷 좀 보라고 할 수도 없고!

이병수는 멤버들이 스스로의 인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참 답답했다.

서바이벌 구조상 팬덤 간의 싸움이 과열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경연 동안은 안보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SNS, 인터넷을 금지했다.

그랬더니 애들이 좋은 순위를 받고도 자신들의 인기를 그럭저럭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 그렇네?”

서도화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생각해보니 이제 56번은 우승 후보 반열에 들어섰다.

인기도 그에 상응할 것인데.

좀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최근 ‘우승은 바라지 않는다. 이름을 알리는 데에 의의를 두자’던 김유진 대표가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바꿔 ‘우리들의 목표는 우승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표가 있으니 우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구나. 우리 인기 많구나.”

“그래! 그러니까 도화야. 자신감을 가져. 당당하게 어깨 쫙 펴고!”

서도화는 기쁘게 말하는 이병수를 보며 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보지 말라고 해서 안보기는 했는데 한 번쯤 확인해봐야 할 듯하다.

눈에 보이는 그룹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 팬들의 화력은 어떤지, 또 그들이 어메스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이를 알면 이후 무대 구성을 생각할 때 분명 도움이 될 터.

반대로 어떤 점이 비판받고 있는지도. 확인은 해볼 생각이다.

유제이의 스태프들은 멤버들이 SNS, 인터넷 등을 보고 상처받을 것을 걱정했지만 뭐, 코웃음 치며 볼 자신 있다.

* * *

“고생 많았다. 도화야. 들어가.”

“감사합니다.”

서도화는 차에서 내려 숙소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낡은 건물이 뭐가 좋다고 이렇게 반가운 마음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고작 2박 3일 다른 곳에 있었다고 낯설어진 주변 환경을 보며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도 잠시.

콰당! 쿵! 쿠웅!

서도화의 걸음이 멈췄다.

위에서 들려오는 우당탕 소리. 분명 우리 집이겠지?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반가움은 금방 현실로 떨어졌다.

반갑기는 뭐가 반가워. 들어가면 눈치 없는 마왕 하나랑 용사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있을 것인데.

잔잔히 들어섰던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그는 원래 그러했듯 현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우당탕? 콰당? 이거 분명 아덴과 케이가 또 싸우는 소리다.

우리 인기 많다던데 팬들은 쟤네 맨날 싸우는 걸 알까?

“하아.”

서도화가 한숨을 쉬며 현관 앞에 도착하자 초인종도 누르기 전에 벌컥 문이 열리고 케이가 튀어나왔다.

“엇?”

“……흐어어억! 으, 음유-”

“조용.”

서도화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부르려는 케이의 말을 뚝 끊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혀엉! 오셨어요!”

“왔냐!”

“왔다. 다녀왔어.”

무척 반갑게 맞이해주는 주상현과 아덴, 그 뒤로 조금 피곤해 보이는 한야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서도화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생했다. 도화야. 잘하고 왔어?”

“네, 형. 다녀왔습니다.”

“으어엉! 형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요!”

멤버들이 자연스레 서도화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유독 주상현이 격하기 반기는 것 같은 건 서도화의 착각일까?

“야 너 없는 동안 그럭저럭 잘 지냈다. 넌 잘 지냈냐?”

“나도 그럭저럭. 근데 또 싸웠다는 이야기가 있다?”

“흐어엉!”

서도화가 말을 건넨 건 아덴이었는데 우는 소리를 내며 서도화에게 매달리는 건 주상현이었다.

서도화는 주상현을 달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한야도, 주상현도 며칠 새 굉장히 핼쑥해졌다? 상당히 고생을 한 듯한…….

“왜 그래?”

서도화가 의아해하자 어쩐지 아덴과 케이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한야가 말했다.

“네가 아예 없었을 때는 몰랐는데, 있다가 없으니까 많이 힘,”

한야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말했다.

“쓸쓸…하더라.”

방금 힘들었다고 말하려던 거 같은데?

서도화가 고개를 돌려 아덴과 케이를 바라보았다. 둘은 획 고개를 돌려버렸다.

“형 죄송한데 대표님한테 하프 하나만 사달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어? 그래. 너무 비싼 개인 물품은 부탁드리기 좀 그렇고 내가 사줄게.”

고삐 풀렸다고 또 기깔나게 쳐싸워제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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