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9화 (89/270)

제89화

커다란 회의실에 멤버들과 유제이 직원들이 꽉꽉 들어찼다.

그들이 정성으로 만들어 내보낸 첫 아티스트.

첫 아이돌이 처음으로 방송에 나오는 날.

거의 모든 직원이 회의룸에 모여들어 커다란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나 울면 어카냐.”

“어떡하긴? 한잔 때려야지. 오늘 끝나고 한잔 콜?”

“콜. 같이 가실 분?”

직원들 사이 분위기가 몹시 좋았다. 실제로 우리 아티스트가 승승장구하고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들뜬 분위기였다.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며 직원들의 말을 듣고 있던 김유진이 호쾌하게 외쳤다.

“여러분 자체 회식하실 거예요?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김유진이 잽싸게 법인카드를 꺼내 제 손가락에 끼웠다.

“만약 우리 애들 1라운드 공연이 방송에 나온다? 그 회식 내가 쏩니다! 물론 눈치껏 대표는 빠지고 카드만 드립니다!”

“이야아!”

“크으 역시 대표님!”

서도화와 한야가 말없이 미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신났나 했더니 직원부터 대표까지 첫 방송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이미 캔맥주라도 한잔씩 걸치고 오신 모양이다.

‘뭐, 퇴근 시간 훨씬 지났으니 상관없기는 하지.’

어지간히 회사 분위기가 좋다 싶었다.

작은 회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하고 친밀한 느낌이 오늘따라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아덴도 이 들뜬 분위기를 느끼며 서도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야, 이 사람들 한 잔씩 걸친 거 같은데 나도 한 잔-”

“안 돼. 그 입에서 그런 말 꺼내지도 마. 너 여기서는 미성년이야.”

서도화가 작게 말하자 아덴이 인상을 구겼다.

“줬다 뺏기는 기분-”

“난 준 적 없다.”

“나 미성년 아닌-”

“미성년자야. 너 나랑 동갑이잖아.”

서도화가 얄밉게 히죽 웃었다. 이렇게 아쉬워할 거면 애초에 솔직하게 제 나이를 말하면 됐을 것을.

아덴의 나이는 올해로 23세. 엄밀히 말하면 동갑은 맞는데, 이곳에서는 동갑이 아니다.

서도화는 그곳에서는 23살이지만 이곳은 서도화 시점으로 5년 전 과거이므로.

괜히 경계한답시고 아무런 숫자나 말했다가 성인으로서 누릴 것 하나 못 누리게 된 아덴이었다.

“하하. 오늘 우리 멤버들 무대 꼭 나와야 할 텐데. 그래야 직원들이 회식할 수 있을 텐데요. 하하.”

입이 툭 튀어나온 아덴의 옆에 한야가 사람 좋게 웃으며 여기저기 하나씩 굴러다니는 맥주캔을 따 마셨다.

그러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상당히 아덴을 놀리는 듯한 타이밍이었다.

유쾌한 분위기 속 누군가 외쳤다.

“이번 광고 끝나면 시작해요!”

그에 도화와 아덴도 대화를 멈추고 화면을 보았다.

광고 상단, 밀리언 아이돌 로고가 커지며 곧 시작한다는 안내 문구가 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방송이 시작되었다.

검은 화면 속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며 화면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스포트라이트의 끝에서 단정한 차림의 누군가가 뒷모습을 보인 채 천천히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또각, 또각-

따로 효과음을 넣은 건지 유독 크게 들리는 구두 소리.

마침내 무대 가운데에 다다른 누군가가 멈춰 뒤돌아섰다. 그녀는 이 방송의 진행자 서영이었다.

서영이 능숙한 솜씨로 말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요? 지상 최대 규모의 공연 서바이벌 프로그램. 밀리언 아이돌. 지금 시작합니다.

서영의 말과 함께 카메라가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어느새 광경이 바뀌어 메인 스테이지에 오른 연습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밀리언 아이돌의 테마곡. ‘Click on the heart’가 시작되었다.

눈부신 조명 아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나

네 마음을 내게 줘

Feel my heart

“와 저거 저 때 떠오른다. 와.”

주상현이 질색팔색하며 말했고 한야파이브 사건 이후 완전히 토라져 구석에 박혀 있는 케이의 안색이 어쩐지 창백해졌다.

“왜? 저 때 왜? 상현이 왜 이렇게 질색해?”

김유진의 말에 매니저 이병수가 대신 대답했다.

“저 때 연습도 그렇고 촬영도 그렇고 애들이 장난 아니게 고생했었습니다.”

“뭐 어땠길래요?”

김유진의 물음에 한야와 서도화가 동시에 대답했다.

“안무가가 도로시 선생님이셨어요.”

“트레이너님이 도로시 쌤이라서요.”

“……아 그랬지 참.”

김유진이 금세 납득하고 안쓰럽게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김유진, 한야, 서도화.

데스티니 출신끼리 아는 공감대와 이야기들이 있었다. 도로시의 트레이닝 강도 또한 그중 하나였다.

주상현은 세 사람을 힐끔거리다 슬쩍 끼어들었다.

“도화 형, 한야 형, 아덴 형 진짜 대단해요.”

“어? 왜?”

“연습생들 힘들어서 다 쓰러졌는데 셋만 멀쩡히 서서 연습 계속 이어나갔거든요. 막 도로시 쌤 감동하시고. 크으, 진짜 그때 형들 멋졌는데.”

사실 멀쩡하진 않았다. 주상현의 기억은 상당히 미화되었다.

그 당시 서도화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버티고 있었고 한야 또한 힘겹게 견뎌내고 있었다.

정말 멀쩡한 건 아덴뿐이었다. 그리고 도로시는 그때 감동하기보단 그냥 ‘아직 버티네?’라는 표정으로 더 몰아붙였다.

한야가 주상현과 케이를 가리켰다.

“두 사람도 곧바로 일어나서 연습 속행했어요.”

“그랬어? 어이고.”

주상현이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

“형들이 멀쩡히 서 계시니까 저도 힘내야겠다 싶어서. 케이 형도 같이요.”

서도화는 여러모로 대단한 건 주상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야 마왕이란 게 원래 죽을힘을 다해 용사를 이기도록 만들어졌으니 그렇다 치고 순수하게 인간의 몸으로 한계를 극복하고 다시 연습을 재개했으니.

그러고 보니 참 이 그룹에서 여러모로 인간다운 인간은 자신밖에 없었다.

한야는 용사와 마왕을 무력으로 통제하질 않나 주상현은 기어코 모든 상황을 합리화한 후 이 그룹에 적응하고 한계를 극복하질 않나.

목적이 세상 구원에서 아이돌 데뷔로 바뀌었을 뿐, 주변에 범상치 않은 인물들만 있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서도화는 방금 깨달았다.

진심이 요동쳐

완벽한 발 디딤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flapping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오프닝 쇼는 중반에 다다라 어메스 멤버들이 선 C스테이지가 나타났다.

C스테이지의 센터에 선 그룹의 멤버들이 가장 먼저 클로즈업을 받았다.

‘저 팀 몇 번이더라?’

분명 이 오프닝 쇼를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어메스의 앞순위였던 이들은 어느새 탈락해 사라졌다.

그때 센터 그룹의 뒤쪽에 서 있던 서도화와 주상현이 차례대로 클로즈업되었다. 그들이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이 처음으로 방송에 나왔다.

“이야, 너네 방송으로 보니까 진짜 훨씬 잘생겼다.”

“화면빨 잘 받는 스타일들이라니까요?”

“아이 부장님, 아까 전에도 간혹 애들 방송에 보이고 했는데요 왜.”

“아니 그래도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또 새롭네. 진짜 아이돌 같다.”

“아이돌이에요. 얘네들!”

케이파이브를 내걸었던 부장은 멤버들에게 그렇게 상처 입고도 어메스가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퍽 보기 좋은지 코를 찡긋거리며 웃었다.

그와 동시에 스태프 몇 명이 제각각 휴대폰을 들고 반응을 서치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이 나와서 기쁜 건 기쁜 것이고 할 일은 해야 했다.

방송 내내 멤버들의 얼굴이 나올 때마다 그들의 그룹 번호도 계속 표시해주었으니 이제 슬슬 SNS,커뮤니티 등에 반응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

한편 멤버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나오는 방송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와-”

와.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놀랍도록 바닥에서 춤추는 이들의 모습은 제대로 찍어주지 않았으며 또 방송에 나오는 모습이 몹시 신기했다.

“…….”

사람들의 감탄사들이 이어지는 사이 책상 위에 올린 팔에 턱을 괸 채 조용히 방송을 지켜보던 서도화는 자꾸만 제 입술을 축이게 되었다.

세련된 노래와 조금 오그라드는 가사.

다만 이 웅장한 분위기와 안무가 그 오그라듦을 힘겹게 상쇄시켜줄 뿐이었다.

그러나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는 도대체 이게 뭔가 싶더니 방송으로 보니 가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 곡에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 방송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찾으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승 후보들을 스포해주기라도 하듯 데스티니 연습생부터해서 차례로 상위권 멤버들이 클로즈업되었다.

그중엔 서도화와 멤버들도 포함이었다.

“크으 진짜 빛을 발하는 외모야. 우리 애들이-”

그러나 김유진이 감탄하기도 전.

Click on the heart!

Click on the heart!

있는 힘껏 널 만나러 갈게

Click on the heart!

“어?”

갑자기 음이 바뀌며 김유진의 몰입이 완전히 깨졌다.

“이런 씨클랍.”

그리고 아덴 또한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케이가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세계는 모든 욕이 마계이자 케이가 만든 세상 케이클랍스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러든 말든 아덴은 입술을 잘근거렸다. 서도화 저 자식은 뭐가 좋다고 입까지 축이며 저걸 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이 별종 같은 노래에 방금 자신이 웃으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나왔다.

최근 하는 공연들은 멋있기라도 하지 저 당시 아덴은 이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기 없이 웃는 법을 몰라서 웃음부터 스스로 보기 힘들 정도로 어색했다.

Click on the heart!

Click on the heart!

목표를 향해 달려

“어, 나 여기 뒤에 조금 나왔어.”

물론 아덴의 욕을 듣지 못한 서도화는 이런 자신의 모습 또한 즐기고 있었다. 서도화는 이런 거 하려고 죽을 고비 넘기고 이 세계로 돌아온 것이니까.

음유시인 시절엔 나대다가 죽을까 봐 사렸지만 서도화가 괜히 축제에 나가고 연습생이 되었겠는가.

그도 여느 아이돌처럼 관심받기 좋아하는 연습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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