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사실 이 앞에 서도화와 아덴의 인터뷰가 있었지만 그건 아쉽게도 편집된 모양이다.
카메라맨은 주상현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상현 씨.
-네에? 어이코 깜짝이야!
주상현이 돌아보다 너무 가까이 있는 카메라에 움찔 멈춰 서곤 민망하게 살풋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주상현이 인사하자 그에 맞춰 갑자기 화사한 효과음과 함께 꽃이 날아다니는 CG가 나타나며 그의 등장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이, 이게 뭐야!”
자신의 등장에 기뻐하기도 잠시, 너무 부자연스러운 장면 효과에 주상현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부끄러워하고 있을 때 화면이 전환되며 유니드 시절 주상현의 영상과 함께 그에 대한 소개 영상이 이어졌다.
“……이야, 우리 상현이! 이야, 소개 영상까지?”
김유진이 몹시 감동했다.
“마왕의 수하다운 카리스마군.”
왜인지 모르겠지만 케이가 어둑한 컨셉의 유니드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를 칭찬했다.
별로 부끄러워할 만한 장면도 아닌데, 오히려 유니드 활동 모습이 무척 멋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상현은 민망함에 몸서리쳤다.
[유니드 최고의 메인댄서]
[애교쟁이 천사 막내 주상현]
아마 소개 영상 내내 미친 듯이 추켜올려주는 자막의 주접이 괴로운 모양이다.
서도화는 주상현을 토닥여주며 상당히 비중 있게 소개되는 주상현의 소개 영상을 보았다.
역시 소래담과 함께 밀리언 아이돌 초반 화제성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답다.
엠넷이 짧아도 강렬한 분량을 챙겨주었다.
-재출연 소감이 어떠세요.
-오랜만입니다. 와 너무 반가워요! 잘 지내셨어요 PD님?
언제나와 같은 인사말에도 [역시 제작진의 안부까지 물어봐 주는 배려왕 상현ㅠㅠ],[해맑~],[애교 철철~] 등등의 자막이 욱여넣듯 들어갔다.
그리고 그에 맞게 주상현도 생글생글 잘도 웃는다. 어메스 멤버들에겐 걱정, 시무룩 달인이지만 사실 그는 애교 많은 막내 이미지가 더 유명하다는 걸 서도화는 다시금 깨달았다.
저 얼마나 대단한 멘탈 관리인가.
저 때 아마 케이에 대한 걱정으로 이틀에 한 번꼴로 시무룩해질 때였을 텐데 화면 속엔 걱정 하나 없다는 듯 해맑게 웃는 주상현만 보였다.
-첫 리허설인데 기분 어떠신가요?
-진짜 되게 오랜만에 온 리허설인데요. 그야말로 자신감이 넘칩니다. 헤헤.
-오늘은 유니드 멤버들 없이 혼자이신데 좀 쓸쓸하시겠어요.
-으음, 쓸쓸하지는 않아요!
주상현은 멤버가 곁에 있음에도 자신 위주로만 인터뷰하는 PD에게 격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러곤 카메라 앞에 케이를 들이밀었다.
-이렇게 또 다른 제 형들이 같이 있는데요. 뭐. 저희 멤버들, 다들 너무 잘하는 멤버들이라서 얼른 팬분들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자신감에 차서 말하는 tv속 주상현을 보며 한야가 그의 등을 기특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상현이 애썼네.”
“흐윽, 혀엉, 알아줘서 고마워요. 이 나의 노력.”
주상현이 한야에게 매달리며 우는 척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저 당시 그룹의 미래는 무척 불투명한 상태였기에 주상현이 저렇게 말하는 건 무던히 감정 컨트롤하려 애쓴 결과였을 거다.
주상현의 저 말이 현실로 이루어져서 정말 다행이었다.
주상현의 간단한 인터뷰가 끝날 때쯤 화면이 살짝 옆으로 돌아가 그의 곁에 선 케이를 담았다.
그 순간, 충격받은 듯한 효과음과 함께 화면이 흔들리며 케이의 얼굴만 점층적으로 커졌다.
그리고 곧 [이 아름다우신 분은 누구…?]라는 자막과 함께 주상현에게 쓰였던 꽃 효과보다 훨씬 더 눈부신 CG 효과, 일명 얼굴 아우라 효과가 케이에게 씌워졌다.
주상현이랑은 스스럼없이 인터뷰를 이어가던 카메라맨조차도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하다 작게 중얼거렸다.
-……이야, 너무 잘생겼다.
물론 카메라맨의 이 멘트는 자막으로 한 자 한 자 새겨졌다.
그의 중얼거림에 눈을 껌뻑껌뻑 카메라맨을 보고 있던 케이가 살며시 웃는다.
“……어?”
서도화는 그의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 옆에 아덴또한 내가 지금 무슨 징그러운 걸 본 거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곤 결국 눈을 감아버렸다.
케이가 웃는다.
씨익도 아니고, 헤죽도 아니고, 풋 하는 비웃음도 아니고 살며시 웃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마왕 케이가 아이돌 같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기 얼굴이 화면에 나와서부터 맨 앞으로 뛰쳐나오느라 뒤에 서 있는 서도화와 아덴의 표정을 미처 보지 못한 케이는 하하하 크게 웃으며 말했다.
“저자는 내 아름다움을 순순히 인정하더군! 내 기분이 좋아 웃지 않을 수 없었지!”
-저희 팀의 자랑, 케이 형입니다.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요?
-어우, 정말 잘생기셨네요.
주상현의 말에 카메라맨도 격하게 공감하였고, [얼굴 전방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움의 아우라]라는 등 주접 가득한 자막이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케이의 얼굴 주위로 후광 효과가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 진짜 다들 놀랬었지.
-지금 봐도 충격적으로 잘생겼네요.
-연예계에서도 잘 보기 힘든 수준의 페이스죠?
-그러고보면 이 팀은 다 잘생겼어.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친구만큼 다들 한 인물들 하더라고요? 이렇게 모으기도 쉽지 않았을 거야.
거기다 프리뷰를 잇는 심사위원들의 멘트가 이어지고 있을 때 서도화는 눈을 비비고 좀 더 자세히 케이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마왕이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인간의 칭찬에 부끄러워할 리 없는데.
“칭송을, 칭송을 얼마나 하던지! 내 특별히 멤버들이 말하던 그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무엇이냐, 아이돌 미소! 잘했지? 나를 칭찬하, 아니 칭송하라!”
의심과 편견을 가지고 뚫어지게 바라보던 서도화의 표정은 곧 편안해졌다.
수줍은 게 아니라 오랜만에 아름답다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어서 진짜 기분 좋아하고 있는 것이었다.
점점 마왕으로서 체면이 사라지고 있는 걸 케이는 알까.
아주 잠시 케이에게 쏠렸던 관심은 곧 다시 주상현에게로 돌아갔다.
당시만 해도 56번이 이렇게 흥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 아무리 잘생겼어도 주상현 이외의 멤버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건 당연했다.
뭐 그래도 주상현이 많은 분량을 받았고 짧지만 케이도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
특히 케이의 가장 큰 매력인 비주얼도 제대로 보여주었으니 그것만으로도 56번의 인터뷰는 큰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만족하며 다시 미소 짓던 김유진의 입술이 이후 카메라맨의 질문에 도로 삐뚜룸해졌다.
-유니드 멤버들이 밀리언 아이돌 참가 소식을 알고 뭐라고 하던가요?
또 유니드다. 하필 이야기가 새도 유니드로 샜다. 빤히 옆에 새로운 그룹의 멤버가 있다는 걸 알면서.
“아이씨, 이건 좀 예의가 없는 거 아냐?”
김유진이 멤버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이병수에게 속닥였다.
이병수도 인상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구석 없는 무명 그룹의 서러움과 앞으로 56번이 얼마나 인기를 얻게 될지 아는, 미래를 아는 자들의 답답함이었다.
“아오, 저 무개념.”
인터뷰에 맞춰 다시 방송 반응을 서치하던 직원이 인상을 구기며 툭 내뱉었다.
“커뮤니티, SNS도 지금 저 질문 무례하다고 난리에요.”
-형들이요? 그냥 열심히 하라고, 응원하겠다고 했어요.
-누가 가장 열띤 응원을 해주던가요?
그 이후로도 카메라맨은 주상현과 유니드 이야기를 몇 번 더 이어갔다.
멤버들은 그저 담담히 카메라맨의 질문에 대답하는 주상현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직원들이야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멤버들은 그러려니, 어쩔 수 없겠거니 했다.
저 때까지만 해도 인기는커녕 주상현 외엔 화젯거리, 대화거리조차 없던 56번이 아니던가.
아무리 인기가 많다, 상승하고 있다고는 해도 이 방송으로 56번을 처음 보는 대다수의 대중들에겐 아직 56번보단 주상현의 입에서 유니드 이야기가 나오는 게 더 재밌고 흥미로울 것이다.
경연의 초반 56번의 순위를 단단히 받쳐주었던 주상현의 팬들도 마찬가지고.
오히려 1라운드 전인 지금은 이렇게라도 분량 만들어주는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도.
-상현이네 팀은 잘하는 애들만 모였어요.
-사실 저희 엔터 트레이너들 사이에서는 다 아는 애들이잖아요. 이 팀.
-맞아요. 상현이도 그렇지만 56번 멤버들은 대체적으로 연습생인데도 어느 정도 실력이 좋다고 소문난 친구들이 좀 들어가 있죠.
-아, 그래요?
-비주얼도 비주얼이고 실력 좋고 개성적인 연습생들이 진짜 많아요. 특히 실력 좋은.
-이 팀도 그중에 하나인데, 아, 제가 듣기론 이 그룹에 도로시 씨 애제자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데.
-아유, 부정은 안 하지만 심사는 공정하게 했습니다. 하하하.
-보통 한 명이 너무 잘난 상태에서 나오면 특정 인물만 돋보이는 그룹이 되기 십상인데, 요 팀은 또 조화가 좋아서-
그래도 다행인 건 주상현이 유니드 멤버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프리뷰 중인 심사위원들이 그와는 상관없이 56번 멤버들에 대해 이것저것 언급해주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더해 주상현의 인터뷰가 끝난 후 짧게나마 리허설 하는 장면도 넣어주었다.
56번의 리허설 장면이 끝나고 이후 몇몇 연습생들의 리허설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심사위원 출연진들이 리허설까지의 모습에 대한 감상 코멘트를 날리며 프리뷰가 마무리되었고 이어 빠르게 공연장을 채우는 수많은 연습생들의 모습과 1라운드 경연이 시작된다는 서영의 외침이 2부 예고로 나오며 밀리언 아이돌 1회 1부가 끝이 났다.
그리고 2부, 드디어 1라운드 경연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