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92화 (92/270)

제92화

1라운드 경연이 방송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다.

거대한 무대 전경과 화려한 BGM. 진행자 서영의 진행과 연습생들은 미처 듣지 못했던 심사위원들의 코멘트.

그림과 함께 이루어지는 룰 설명과 베네핏 공개.

스트리밍과는 확연히 다른 화질, 그리고 깔끔한 편집으로 재무장한 밀리언 아이돌.

확실히 리허설 이후 숙소로 돌아가 대기하던 실제 상황보다는 훨씬 몰입도 있게 진행이 이루어졌다.

서도화는 2부 방송을 보며 한가지 깨달은 게 있었다.

진짜로 생각보다 56번의 얼굴이 굉장히 많이 찍혔다. 정말 56번의 분량을 있는 거 없는 거 다 긁어모은 듯했다.

서영이 규칙을 설명하는 동안 56번 멤버들의 얼굴만 세 번 넘게 보여준 듯하다.

-자! 그럼 이제 슬슬 공개해볼까요! 앞으로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무대를 보여줄 연습생들! 100팀 전원을 소개합니다!

서영이 힘차게 외치자 카메라 화면이 돌아가며 연습생들을 비추었다.

“정수리샷! 이게 바로 정수리샷이에요.”

“아 이게 그거야? 뭐 줄임말이 아니라 진짜 정수리를 찍어서 정수리샷이었구나.”

주상현은 요즘 K-POP 팬들 사이 유행하는 짤인 정수리샷을 사사오입 부장에게 설명해주며 키득거렸다.

밀리언아이돌 첫 화부터 계속된 빼곡히 들어찬 정수리를 보여주는 화면은 삽시간에 퍼지며 짤로 많이 돌아다녀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제는 밀리언 아이돌의 시그니처가 된 것 같기도 한 정수리샷. 이후 이 알록달록한 노래방 조명 속 또다시 연습생들의 얼굴이 빠르게 클로즈업되었다. 그들 사이 유독 오만상 인상을 찌푸리다 스쳐 지나간 클로즈업 장면 하나.

“어.”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애매한 탄성을 내뱉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연습생들의 얼굴들, 그사이에 인상을 잔뜩 쓴 채 꽉 눈을 감고 있는 서도화의 모습도 찍혔다.

혼자만 그 어떤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눈을 꽉 감고 있어서 상당히 눈에 튀는 모양새였다.

“엥? 방금 도화 맞지?”

“형 왜 눈 감고 있었던 거예요?”

“도화 표정 왜 저래?”

주위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평소의 서도화라면 상상할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떡하니 방송에 나왔다.

“아니. 저거는 그냥 눈이 너무 부셔서…….”

-ㅋㅋㅋㅋ조명 한번 비장하게 피하넼ㅋㅋ

-아 근데 저런 사람 있음 라식하면 저럼

-라식ㅋㅋㅋ

-실제로 보면 눈 감을 수밖에 없는 조명이긴 함ㅋㅋㅋ뜨고 있는 사람이 대단한 거임

-ㅋㅋㅋ인상 팍 쓰고 눈감은 채 박수 치는 애 개웃기넼ㅋㅋㅋㅋ

방송 사이드 채팅창에서도 서도화의 표정을 두고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도화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게 당연했다. 어두워서 아무도 못 볼 줄 알았으니까!

더구나 저 때는 클로즈업 받을 만큼 주목받을 때도 아니어서 설마 클로즈업 되겠어? 하며 빛을 차단하는 데 오만상으로 애를 썼다.

그리고 실제로도 서도화의 생각이 맞았다.

“이거 생방에서는 없었던 장면인데? 방송에만 넣은 건가 보다.”

김유진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나 인상 깊은 표정이었으면! 하긴 나 같아도 저렇게 귀여운 표정은 살려서 집어넣고 싶긴 하지.”

무대 위의 멋진 모습에 매력을 느껴 입덕하는 팬이 있는 한편, 조명을 피하겠다고 오만상 질색하곤 표정을 구기며 눈을 감고 있는 일명 쭈글미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하찮은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팬도 있는 법이다.

뭐 본인은 부끄러운 듯하지만 김유진과 직원들에겐 그것도 매우 고마운 컷이었다.

이것 봐라! 당장 SNS만 봐도!

-방금 뭐야…? 다시 보여줘요 뭐야. 나 개웃긴거밨어…방금 스쳐가는 연생중에 스파이 한명 본거같은 기분이야..다시 보여줘ㅠ딱 삘이 왔단 말이야ㅠ

└자꾸 돌려보고싶다면 퀵오디 이용혀…

└아 진짜 쓸까…탐라에 ㅈㄴㄱㅇㅇ토깽이상 눈찌풀 사진있으신분…ㅈㅂ…찾습니다…

└아니…ㅋㅋㅋㅋㅅㅂ공연 보기도 전에ㅋㅋㅋㅋ

일단 방금전 클로즈업들 중 존나 귀여운 토깽이상에 눈찌풀한 연습생은 서도화밖에 없다.

이렇게 이 짧은 순간에 매력을 느껴선 서도화의 얼굴과 이름을 찾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말 나온 김에 다른 사람들은 저 조명 괜찮아요? 엄청 눈 아프던데.”

생각보다 큰 무대에서 내리쬐는 조명이 무척 강하다. 공연 중엔 저 정도로 형형색색의 조명이 눈을 공격하는 일이 많지 않으니 괜찮은데, 오프닝의 저것만은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진짜 하이넬의 마법을 눈앞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눈뜨고 있으면 너무 눈부셔서 시력이 안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라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서도화의 물음에 주상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참을 만하던데요? 그냥 노래방 조명 정도?”

“나도 괜찮았어.”

한야가 말했다. 케이는 비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고 아덴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한마디했다.

“넌 예전부터 느꼈는데 그거야.”

“뭐?”

“네 눈이 약한 게 아니라. 넌 물리적인 모든 자극에 약해. 한 마디로 엄살이 너무 심해.”

“…….”

서도화는 아덴의 직구에 할 말을 잃었다. 이 자식, 생각 이상으로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멤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방송에선 첫 번째 베네핏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1라운드 시작해 볼 텐데요. 시작하기에 앞서 이번 라운드의 베네핏을 먼저 공개하려고 합니다. 1라운드의 베네핏은!

서영이 옆으로 비켜섰다. 가장 큰 무대의 뒤 화면에 커다란 글씨가 나타났다.

[첫 번째 베네핏-밀리언 아이돌 오프닝 메인 스테이지]

-헉 오프닝 메인이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베네핏 공개에 현장에서는 들리지 않던 대화 소리가 자막까지 만들어져 또렷하게 들려왔다. 앞석에 앉아있던 연습생들의 중얼거리고 있었다.

-첫 번째 베네핏, 1라운드는 연습생 전원에게 오프닝 출연권을 부여합니다. 탈락자는 없으며 1라운드의 순위가 오프닝 공연에서 그룹의 위치, 그리고 등급이 됩니다.

서영의 설명과 함께 화면 위로 순위별 공연 위치 그림이 나타났다.

부채꼴처럼 퍼진 무대와 그 아래 바닥에 덕지덕지 징그럽게 달라붙어 있는 권외 순위들의 번호가 그려진 그림이다.

-헐, 밑에 저 숫자들 뭐야. 낮은 순위들은 다 무대 아래로 가는 건가?

-와 그냥 서로서로 다 가려지잖아 숫자가.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붙은 번호에 충격받은 누군지 모를 연습생의 말이 들렸다.

그리고 그 충격받은 이들 사이 한야의 굳은 얼굴도 나왔다.

“형! 형이에요! 형!”

“어, 나네? 와.”

흥분한 주상현과 본인 얼굴이 떡하니 나왔음에도 무미건조한 반응를 보이는 한야.

이를 보며 서도화는 심드렁하게 웃었다.

놀란, 긴장한 뭐 그런 의미로 나온 듯한데 서도화가 보기에 방송 속 한야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설명 듣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팝넷은 이 그림이 나타난 직후부터 과격하게 올라오던 채팅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방송에 내보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저럴 거면 그냥 30팀만 데리고 하지….]

[31위부턴 바닥에 대충 숫자 섞어 적어놓은 거 혼란스럽넼ㅋㅋㅋㅋ징그러움]

채팅창이 난리가 났지만 서영은 담담하게 외쳤다.

“그럼 1라운드 시작합니다!”

그리고 화면은 전환되어 1번 그룹 데스티니의 무대 뒷모습과 공연을 이어 보여주었다.

데스티니가 공연을 하는 동안 화면 하단엔 참가자 전원의 무대는 너튜브로 공개된다는 자막이 표시되었다.

인원이 무척 많은 만큼 모든 참가자의 무대가 방송에 나오지는 않는다는 의미와 같았다.

큰 무대 위에서 그룹이 선보이는 무대라는 것만 빼면 이전 경연 프로에서도 한동안은 눈에 띄는 공연만 방송에 내보내곤 했으니 느낌은 달라도 그와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1번 다음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룹은 소래담의 49번 그룹이었다.

2번부터 48번까지의 공연은 상위권 그룹이 꽤 있음에도 모두 편집이 된 모양이다.

상위권 팀이라도 팀이 많은 만큼 방송에 나올 정도로 독특한 부분이 없으면 넘겨버렸다.

대신 방송에 나온 그룹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확실히 조명해주었다.

데스티니 연습생들이 연습생 광경, 무대 뒷모습을 방송에 내보냈다면 소래담의 그룹은 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무리 집중조명한다고 해도 설마 공연 전부터 인터뷰까지 따줄 줄은 몰랐는데.

역시 준 연예인 수준의 너튜브는 대우가 다르다. 마치 예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너튜버 소래담입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시작했을 때 상당히 엉뚱한 느낌의 BGM이 흘러나왔다.

멋쩍게 웃는 소래담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BGM, 소래담 채널의 시그니처 BGM이었다.

[왜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소래담이 가볍게 대답했다.

-어리고 잘생긴 아이돌 연습생들 사이에 내가 참가하면 뭔가 웃기고 재밌지 않을까? 31살의 아이돌 도전, 뭔가 멋지잖아요. 그리고 이길 자신도 있었고.

[이 경연에 참여하면 당분간 너튜브 컨텐츠 못 올릴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제작진의 물음에 소래담은 멈칫하다 무척 괴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솔직히 그 부분이 좀 걸리기는 하는데 저희 구독자분들도 응원해주셨고, 또 잘해보기로 약속했으니까요. 또 한 번쯤 이런 경연 프로 참가해보고 싶었어요. 일단 저도 음악하는 사람이잖아요?

소래담은 상당히 거들먹거리는 말투였지만 하는 말만큼은 몹시 진지하고 솔직했다.

-사람들이 저보고 랩 천재, 기획 천재 막 그렇게 말하는데 그게 너튜브 안에서만의 이야기인지, 그리고 제 진짜 실력이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수준인지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소래담의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그는 제 말을 곱씹어보는 듯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 팟 웃었다.

-사실 떨어져도 우승해도 뭐, 진짜 아이돌 할 생각도 없고, 제대로 즐겨보려고요. 솔직히 이기는 건 자신 있습니다.

그의 장난스러운 눈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의도가 어떻든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와, 저렇게 말했었구나. 소래담의 의도야 어떻든 저 정도면 확실히 욕을 먹을 만도 했다.

수장인 소래담의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49번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저 멀리 아직도 한야파이브 사건으로 토라져 있던 케이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무대는 케이가 꽤 마음에 들어 했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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