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93화 (93/270)

제93화

49번의 공연이 끝난 뒤 두 팀 정도가 더 소개되었다.

7위를 차지했던 그룹과 상위권 그룹과는 다른 의미로 인상 깊었던 그룹, 라이브도 안무도 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에 실수까지 이어지는 그룹의 무대가 순위 상관없이 섞여서 공개되었다.

즉, 방송에 나오는 공연이 모두 상위권 그룹들의 공연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첫 방송이 끝이 났다.

공연이 시작된 이후부터 56번의 분량은 아예 없었다.

워낙 참가 그룹 수가 많아 경연이 시작되고부턴 공연자에게만 시선이 집중되었으니 당연했다.

대신 56번 어메스는 2화 예고편에서 재등장했다.

-……저는 지고 싶지 않아요.

예고편이 시작되자마자 떡하니 나타난 주상현.

“아아악!”

주상현이 다시 괴로워하며 제 머리를 부여잡고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아마 주상현은 본인의 진지한 모습을 보는 걸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고편 속, 리허설 도중의 인터뷰로 보이는 장면에서 주상현은 몹시 진지한 표정으로 지고 싶지 않다 말했다.

그리곤 띠잉- 하는 효과음과 함께 스르륵 천천히 화면이 전환되며 리허설 중 주상현의 댄스 브레이크와, 아덴, 케이의 아크로바틱 장면이 나왔다.

“어어? 예고편 우리 거야?”

“상현이가 주인공이야?”

“여어!”

스태프들 사이에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예고편에 주상현이 메인으로 나왔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방송 송출은 당연하고 몇 팀 안되는 방송 송출 멤버 중 56번, 특히 주상현을 가장 크게 조명해주겠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다.

띠잉-

-나만 데뷔를 못 했다고, 이제 나만 데뷔하면 된다고 팬분들이 기대 많이 해주셨는데-

띠잉-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지지 않을 겁니다.

“끄아악!”

멋있는 장면 뒤엔 반드시 주상현의 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아! 나 저거 언제 말했지?”

주상현은 본인조차 언제 말했는지 모를 말을 나레이션으로 두며 비장하게 무대 위를 바라보며 마이크를 정비했다.

“우승 후보다운 멋진 예고편이었어! 상현아하학!”

우나나가 낄낄거리며 주상현의 등을 팍팍 쳤다. 예고편을 얼마나 멋있게 꾸며놨는지 주상현의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1화 방송이 끝난 뒤 회의실 내 직원들의 분위기는 몹시 좋았다.

아직 주상현을 제외한 56번 자체의 대중적인 인지도가 적어서 많은 분량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주상현 위주로 비중 있게 그룹을 다뤄주었다.

더구나 서도화와 케이 등 이후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한 멤버들은 눈에 띄게 관객석 클로즈업을 많이 받았다. 특히 2화 예고편을 통으로 주상현에게 넘겨준 게 최고였다.

물론 어메스 멤버들을 눈앞에 두고 유니드 이야기를 꺼낸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걸 제외하곤 나름 팝넷이 56번에게 최대한의 신경을 써주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차피 1라운드는 이상하게 편집될 여지도 없고. 뭐, 이 정도면 만족스럽네. 다들 늦게까지 모니터링 하느라 수고했어요!”

김유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직원들 중 가장 직급이 높은 이에게 법인카드를 넘겨주었다.

“내일 오시는 대로 1회차 여론 살펴주시고 멤버들은 다시 연습하러 가고.”

“넵.”

방송이 끝나자 회의실 내부가 한산해지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김유진을 포함한 직원 모두가 회의실을 나서고 마지막까지 남은 어메스 멤버들 또한 주섬주섬 일어나 연습실로 걸음을 돌릴 때.

“아참.”

서도화가 탄성과 함께 멤버들을 불러세웠다.

“기왕 회의실에 온 김에 상의할 거 있어요. 경연 전에 무조건 정해야 하는 거.”

원래 한참 전에 멤버들과 논의하려고 했는데 태풍 휘몰아치듯 경연을 준비하느라고 잊고 있었다.

“뭔데?”

“뭔데요?”

“뭐.”

“협조하마.”

서도화는 새삼 대답들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저 엔딩요정 말인데요. 오프닝 쇼에서 16초 버텨야 하는 거.”

“……아아!”

멤버들이 일제히 탄성을 내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직 데뷔도 안 한 일개 연습생이 무려 16초에 달하는 엔딩요정 샷을 어떻게 완성시키느냐.

무척 심각한 문제였으나 이걸 회사직원들까지 대동하고 상의할 건 아닌 것 같아서 이병수와 멤버들에게 상의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서도화는 정말 난감했다.

본래 뻔뻔하기로는 이를 데 없는 그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만히, 뻘쭘하게 16초 동안 카메라를 쳐다보고만 있는 게 양심 없는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컨택만 하고 있기엔 좀 그렇고 자기소개도 이미 우리 멤버들끼리 엔딩 때 했었고.”

하프로 곡 만들 때, 전시 작전 짤 때는 팽팽 잘만 돌아가던 머리가 이런 아이돌적인 무언가를 할 땐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때 주상현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흠. 형, 저 생각난 게 있긴 한데요. 무려 16초니까. 근데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해요. 할 수 있겠어요?”

주상현이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엔딩요정 상의하는데 마치 안무 연습 때의 주상현을 보는 것만 같았다.

서도화는 걱정스럽지만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럼 없는 성격이야.”

아덴이 크게 동의하며 서도화를 가리켰다.

“얘 얼굴에 철판 잘 깔아. 거짓말 잘해. 사기도 잘 쳐. 나쁜 놈들 상대로.”

“…….”

저 새끼는 저걸 칭찬이라고 한 건가?

서도화가 아덴을 노려보았지만 아덴은 왜 그러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주상현은 두 사람의 눈빛 대화를 못 본 척 하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 *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서도화는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휴대폰을 켰다.

밀리언 아이돌 1화가 방영된 지금이야말로, 봐야지 생각만 하고 연습으로 미뤄두었던 56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확인하기 딱 좋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 대한 반응과 기존 스트리밍 경연에 대한 반응을 한번에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사실 고작 1화에 56번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긴 한데.’

있어도 주상현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다. 56번과 서도화 개인에 대한 반응들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서도화가 SNS를 켜며 생각했다.

깊이 찾아볼 생각은 없으므로 일단 ‘밀리언’이라고만 검색해보았다.

“어, 의외로.”

처음 보이는 인기 게시글부터 56번에 관련된 게시글이었다.

[밀리언 이번 화 최대의 수혜자는 분량 몰아받은 머기업 연습생도 아니고 주상현도 아니고, 소래담도 아님. 눈감고 박수 치는 서도화임. #56번_우승가자

(눈감고 박수 치는 서도화 짤)]

“허허.”

서도화는 그냥 웃었다. 겨우 하루 만에 그 장면이 박제되었다.

캡쳐까지 해선 상당히 즐거운 모양인데 수많은 리트윗 수와 좋아요 수를 보아 한동안 주구장창 돌아다닐 모양이다.

[밀리언 1화 후기. 편집이 점 정신 엄써따 그리고 왜 그룹이시고 왜 아이돌이신지 이해 몬하겠는 그룹이 스파이처럼 중간에 낑겨 이써따 알바나 열씨미 하셔쓰면 좋겠고 중간중간 잘쌩긴 사람 만아서 기분 조아따 내 취향은 눈감고 박수 치는 토끼

(일기 쓰는 개구리 짤)]

[밀리언아이돌 개빡치는 점 막냉이로 언플 오지게 해놓고 정작 1화에서 안 보여줌]

[근데 왜 밀리언아이돌 1화밖에 안 함? 보통 처음엔 2화 연속으로 보내주더니 왜캄 빡치네]

“어음.”

서도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맞나? 전체적으로 방영된 1화에 잔뜩 화가 난 게시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검색 방법이 잘못된 것이 분명한데 안타깝지만 서도화는 검색에는 그다지 신통치 못했다.

“형 뭐해요. 안 자고?”

주상현이 다가와 행거를 뒤적거리며 물었다.

“우리 팀 반응 어떤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찾고 있는데 뭐가 잘 안나와.”

“반응이요?”

“어, 방송이나 뭐 공연이나 사람들 반응이 어떤가 싶어서. 근데 원하는 건 잘 안 나오네.”

서도화의 말에 주상현이 쯧 혀를 차곤 고개를 내저었다.

“형, 그걸 지금 확인하면 1화 욕밖에 안 나올걸요? 근데 매니저 형이 SNS 보지 말라고 했는데 봐도 괜찮겠어요?”

“어? 뭐. 괜찮아.”

엄살은 심해도 멘탈 하나는 지나치게 튼튼하니까. 주상현은 고개를 끄덕이곤 휴대폰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근데 형은 아직 좋은 말만 있어서 괜찮긴 할 거예요.”

“어?”

주상현은 빠르게 서도화의 폰으로 타자를 치더니 도로 건네주었다.

[56번]

생각보다 간단한 검색 방식이었다.

“이렇게만 검색하면 돼?”

“그렇게만 검색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아니면 형 이름으로 검색해도 되고. 밀리언이라고 치면 너무 광범위해서 아마 우리 이름 못 찾을 거예요.”

“너 평소에 검색해보고 그러냐?”

주상현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안 해요. 저는 지금 한참 욕먹을 때라서.”

주상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유명해질수록,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비아냥거리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런 이들에게 특히 많은 공격을 받을 때가 오늘처럼 남들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었을 때다.

팬덤 싸움이 극대화되었을 때는 대체로 SNS는 멀리하는 게 정신적으로 좋았다.

주상현은 행거에서 제 옷을 꺼내 방을 나섰고 서도화는 본격적으로 SNS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56번하트아이콘폭발범

-역시 스트리밍 화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방송 속 우리 애기들 미모 좀 보고 가세요~]

[어허 이런 잠깐 탐라에 돌아다니는 요 예쁜이 이름 무엇? 이 정도면 한 번쯤 하트 누르다가 손가락 부러져도 할 만하겟는데

(케이 관객석 캡쳐본)]

[하 님들 나 이제부터 사랑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이 친구 몇 번? 주상현이랑 같이 있으니 순딩이 콤비 같음

(서도화, 주상현 함께 앉아있는 사진)]

└주상현이랑 같은 그룹 메보임 56번 음유시인

└ㅋㅋㅋㅋㅋ음유시인은 또 뭐야 별명임?

└ㅇㅇㅇㅋㅋㅋㅋㅋ본인 멤버들끼리 그렇게 부른데 ㄱㅇㅇ

[나 밀리언 아이돌에 별 관심 없었는데 이 세 명 보고 갑자기 생김. 심지어 아직 공연도 안 함. 그냥 앉아있는 거 보다가 갑자기 치고 감. 셋 다 좋은데 붉은 짧은 머리분 이름 궁금

(케이, 아덴, 도화 관객석 사진)]

“오오.”

서도화는 작게 감탄했다.

‘방송 직후라 그런가?’

최근 56번의 팬들이 많다고 해서 그 분위기도 읽을 겸 SNS를 둘러보기 시작한 건데 기존 팬보다 유입 팬이 훨씬 많은 것처럼 보였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56번 그룹의 이 멤버가 누군지 묻는 게시글들이 대부분, 가끔가다 보이는 기존 팬들은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며 56번 그룹의 스트리밍 공연 영상 일부를 가져와 홍보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최근 몇 시간 사이의 글들이 정말 많았다.

그날 밤, 서도화는 검색을 끝낼 때까지 모르고 있었지만 방송이 끝난 직후 실시간 트렌드에 들어선 문장은 ‘주상현 그룹 비주얼’이었다.

스트리밍 화면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깨끗하고 선명한 화질의 방송. 그렇기에 56번을 포함한 모든 연습생들의 얼굴이 훨씬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고로 공연조차 하지 않은 56번 그룹은 실력을 드러내기도 전에 비주얼만으로 역대급의 유입을 이루어냈음을 서도화는 서치를 하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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