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94화 (94/270)

제94화

베네핏 촬영과 연습, 그리고 경연 준비까지. 한 번에 많은 것을 해야만 해서 그런 걸까? 4라운드를 준비하는 기간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경연 당일이 되었다.

사방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들려왔다. 서도화는 타오르는 듯한 두피의 고통을 느끼며 역시 자신은 외부 자극에 몹시 약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끝났어요?”

“음 아직?”

싱긋 웃으며 제 머리를 만지는 디자이너를 보며 서도화는 숨을 삼켰다.

처음으로 해본 탈색. 고통이 상당했다. 탈색약의 따가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미 두피의 고통이 두통으로 넘어와 버티기 힘들 정도인데 아직 뭐가 더 남았단다.

남은 게 뭐냐는 듯 거울을 통해 눈으로 묻는 서도화에게 디자이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탈색 한 번 더 할 거야.”

“……저 그냥 다시 검정으로 덮어주-”

“검정은 안 돼. 조금만 참아봐. 완성하면 진짜 예쁠걸? 봐, 지금도 예쁘잖아.”

디자이너가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속엔 샛노란, 아니 이젠 노란 기도 빠져 하얘지고 있는 머리를 한 채 절박한 표정을 짓는 서도화가 있었다.

디자이너는 드라이기를 끄고 서도화의 머리카락과 두피를 살폈다.

“아직은…. 너 두피가 참 건강하구나? 머리카락이 좀 녹기는 했는데 조금 있다 끝에 다듬을 거니까.”

“선생님…….”

디자이너는 서도화의 간절한 표정에도 산뜻하게 웃으며 다시 염색약을 제조하러 사라졌다.

“아이고.”

서도화가 여전히 따가운 듯한 두피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그러자 이미 세팅을 끝내고 놀고 있던 아덴이 다가와 그의 머리카락 한 올을 쭉 당겼다.

“아, 뭐하냐.”

“야 너 엘프 같아.”

아덴의 스스럼없는 말에 멤버들과 스태프들 디자이너들이 힐끔 두 사람을 보다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서도화가 오만상 인상을 쓰며 고개를 탁 돌려 아덴의 손을 치워냈다.

“그 세계 이야기는 하지 말랬지.”

제2세계에서는 엘프라는 종족이 살았다. 영화, 책 등에 나오는 그 엘프다.

서도화가 그 세계로 넘어갈 때 시스템의 통번역 프로그램은 모든 문장과 단어를 서도화가 이해하기 가장 쉬운 것으로 바꿔주었다.

엘프 또한 원래 다른 이름의 종족이었겠지만 서도화가 가장 그 종족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엘프라는 단어로 들려왔었다.

그 세계의 엘프는 성별이 없으며 몹시 아름다운 외모와 날개를 가지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종족이었다.

그들의 머리카락과 눈 색은 대부분 나뭇잎을 닮은 초록색 혹은 나뭇가지를 닮은 갈색, 빛을 닮은 백금색이었다. 아덴은 그중 백금색의 엘프들을 떠올리며 서도화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머리카락만 바꿨을 뿐인데 그 느낌이 나네. 아, 좀 그리워졌어.”

그때 슬그머니 유제이의 스태프가 너튜브 채널용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아 물론 얼굴이 엘프 같다는 건 아님.”

“알고 있으니까 딱히 설명 안 해도 되거든?”

다만 제발 엘프 이야기 그만했으면…….

“근데 그 느낌이 나긴 난다. 난 인간이 이 색을 구현할 수 있는지 몰랐어.”

“하이넬을 할 수 있지 않았-”

서도화가 말하던 입을 꽉 다물었다. 카메라가 다가온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세상에 카메라 앞에서 엘프와 하이넬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 있었다니.

마침 탈색도 하기 싫은데 쥐구멍으로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냥 대화를 접자 싶어서 더이상 말하지 않고 머리를 꾹꾹 손으로 누르고 있는데 옆자리에 있던 주상현이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형은 종족이 엘프구나! 저는 최근에 드래곤 헌터가 되었어요!”

……무슨 말이지? 서도화는 주상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박수부터 쳐 주었다. 주상현이 무척 기뻐 보였기 때문이다.

“드래곤 헌터가 된 걸 축하해.”

“네!”

“……드래곤? 언제?”

한편 드래곤 헌터라는 직업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아덴과 저 멀리 이곳을 내심 힐끔거리던 케이였다.

서도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도 게임에서?”

주상현은 아마 멤버들과 어울리기 위해 이것저것 게임을 해보다가 진짜로 게임을 좋아하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그때 탈색약을 가져온 디자이너가 다가왔고 서도화는 슬픈 얼굴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 서도화를 보며 아덴이 픽 비웃었다.

“디자이너님, 이게 그렇게 아파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세 번이나 바르면 아프지?”

“도화 이번엔 엄살 아니었구나? 너는 두피도 연약한 줄 알-”

“아니라니까? 저리 가.”

서도화가 아덴을 밀어내었다. 디자이너가 이들을 보며 웃으며 아덴에게 물었다.

“덴이 너도 해봤으면 알 거 아냐? 머리카락 새빨간데? 탈색해야 나오는 색이잖아. 이거.”

“아, 이거 원래 제 머리색이요.”

“……진짜? 이게 자연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색이야? 와 멋진데? So cool~”

서도화가 미소 지었다. 디자이너는 아덴이 영어권 외국인인 줄 알고 짧은 영어를 덧붙여 주었지만 아덴은 영어는 한 글자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덴은 씨익 웃으며 디자이너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멋지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내 머리 색이 그렇게 특이한가.”

아덴이 거울을 보며 제 세팅된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하등 특이할 것 없는 붉은 머리카락. 이 세계에 온 뒤로 이 머리 색에 대한 질문만 몇 번을 받았는지 모른다.

원래 머리 색이라고 해도 믿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이번에 질문한 디자이너는 꽤 빨리 믿어준 편이었다.

“아아…….”

그때 아덴의 옆에서 서도화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덴이 씨익 웃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특이한 놈.’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 많은 사람들에게 의지가 된 자답게 정신이 올곧고 이성적이다. 그에 비해 서도화를 존경하는 자가 별로 없던 건 저놈의 엄살 때문이었다.

엄살인지 아픔을 회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것인지 외부 자극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이 반대로 고통엔 강하지만 수시로 멘탈이 터져나가는 아덴은 참으로 한심하면서도 웃겼다.

잠시 후 멤버들의 헤어와 메이크업 세팅이 모두 끝나고 그들은 곧바로 경연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멤버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사람 진짜 많다.”

주상현이 숨을 들이켰다. 이미 주상현은 전 시즌 한번 봤던 광경이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전부 경연 보러 온 건가 봐요!”

첫 방송이 나간 이후 4라운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실제 관객들의 앞에서 경연을 치른다.

서도화도, 아덴도, 한야도 공연장의 바깥 길게 늘어선 팬들의 행렬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서도화와 한야는 본 적 없던 광경이어서, 아덴은 왠지 그리운 광경이라서.

물론 의상과 손에 든 물건, 그리고 주변 환경이 다르긴 하지만 예전 아덴의 영웅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줄을 선 광경이 딱 이랬다.

“저중에 저희 팬들도 있겠죠?”

주상현의 말에 한야가 그들 중 누군가를 가리켰다.

“상현아 저기, 네 슬로건 들고 계신 분이 계셔.”

“어. 어? 진짜네? 헐 와주셨구나….”

서도화는 감격한 듯한 주상현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주상현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데 저 많은 팬들 중 그의 팬이 없을까.

그러나 늘 곁에 있던 팬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건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저기! 저기 도화 형 이름도 보여요. 한야 형도, 아니 그냥 저희 팬 엄청 많은데요?”

“하하, 상현이가 전부 발견하고 좋아한 거 팬분들이 아시면 엄청 기뻐하겠다.”

“우리 알고 보면 엄청 사랑받고 있는 거 아니에요?”

주상현의 말에 케이도 눈만 살짝 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

케이와는 인연이 없는 일이었다.

‘네놈 같은 사생아를 사랑해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차라리 죽어! 너 때문에 나는, 우리는!’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하니 어쩔 수가 없구나. 네가 괜히 살아서 돌아다니다 그분께 발각되기라도 하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그러니 미안하지만, 고통은 잠시뿐 아파도 조금만 참으면 금방 숨이 멎을 거란다.’

‘다음 생에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케이가 눈을 감았다.

사랑받는 영웅, 사랑받는 인간.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럴 자격이 있는 이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둘러싸여 칭송받는 동안 오늘도 자신은 외면받고 소외되리라.

그렇기에 저토록 기뻐하는 멤버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보기가 거북했다.

대기실에 도착한 멤버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공연 준비를 마무리했다.

“이야.”

이병수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딥다크 컨셉에 맞도록 멤버 모두가 검은 의상을 입고 엄청난 위압감을 뽐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입 다물면 한 성깔 하는 것처럼 생긴 멤버들이 이런 의상에 메이크업을 갖추고 있으니 더욱 무서워 보였다.

특히 검붉은 머리카락, 매서운 눈매를 가진 아덴과 애쉬블루로 염색한 주상현이 상당한 포스를 보였다.

오히려 이들 중 가장 예민한 외모를 가진 케이가 검은 의상, 검은 머리카락, 검은 메이크업을 하니 오히려 연약함과 병약함이 더해져 비교적 순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 온통 검은 멤버들 사이 유독 튀는 색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포X리스웨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상큼한 스포티 룩을 입은 새하얀 사람 서도화였다.

“병수 형, 얘네 정색하니까 너무 무섭지 않아요? 사진 찍는데 좀 웃어 봐봐.”

그의 말에 아덴이 즉시 표정을 바꿔 씨익 웃었다.

“어, 더 살벌하네.”

서도화의 농담 따먹기에 이병수가 헛웃음을 쳤다. 혼자만 엄청나게 튀어서 상당히 시선을 끄는 새하얀 멤버.

하필 바뀐 머리 색도 화이트 블론드 색이라 새카만 멤버들 사이 더 눈에 보였다.

어째서 다들 각 잡고 검은 옷 입고 있는 사이 서도화만 스포티한가.

곧 있을 오프닝 쇼공연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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