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97화 (97/270)

제97화

함성이 가득한 무대 위, 숨을 몰아쉬는 서도화의 눈이 빛났다. 비단 뜨겁게 내려오는 조명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처음 듣는 함성.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경이롭기까지 한 광경이었다.

내가 진짜 꿈을 이루고 있구나.

새삼 실감이 났다. 서도화는 지금 살고 싶다는 간절함 말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슬픈 꿈 말고 진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는 중이었다.

어느새 Rising의 노랫소리도 잦아들었다. 오프닝의 마무리. 서도화는 성공적인 무대에 조금 더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무대 위 쉼 없이 돌아다니던 카메라 한 대가 무서운 기세로 가장 왼쪽에 선 지우진에게로 향했다.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서도화의 입가가 움찔거리며 조금 내려왔다.

공연은 이제 끝나고 남은 건 엔딩요정. 합숙 때 미니게임으로 얻은 무려 16초간의 엔딩요정 시간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열심히 게임 해서 얻은 보상이 아니었다. 벌칙 혹은 미션이지.

서도화는 튀어나오려는 숨을 삼키며 즐거워 한껏 올라갔던 어깨에 턱 힘을 풀었다.

그리고 지우진부터 차례대로 게임 점수만큼의 엔딩요정을 하는 동안 서도화는 고개를 내려 무대 아래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에게 시선을 두었다.

팬들은 무대에 오른 것이 서도화임을 아는 순간부터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자신을 응원해주었다.

그 덕분에 얼마나 마음이 들떴던지 저들은 알까?

그들은 서도화와 눈이 마주치곤 깜짝 놀라며 56번 슬로건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감사합니다.’

서도화는 입 모양으로 말하며 그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곤 무대 위 구석에 가져다 두었던 준비물 스케치북을 주섬주섬 챙겼다.

‘하, 이제 해야지.’

속으로 몇 번이나 한숨을 벅벅 쉬는 서도화였으나 스케치북을 넘기며 엔딩을 준비하는 모습만큼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서도화는 멤버들의 생각만큼 이 상황이 창피하지 않았다.

‘아이고, 하라면 해야지.’

서도화 18세, 내적 나이 23세. 그 세계에서 배운 거라곤 끈기와 체념뿐이다. 그는 낯가림은 있지만 은근히 뻔뻔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곧바로 서도화의 16초 엔딩요정이 시작되었다. 서도화가 화면에 잘 보이도록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고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화면 아래 16초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서도화가 든 스케치북 속 문장을 본 관객석이 크게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서영 선배님 등장까지 16초]

그 웅성거림이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도화는 스케치북을 넘기며 제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서영 선배님 등장까지 12초]

그리고 표정과 포즈를 바꾸었다.

멤버들이 추천해준 총 4개의 포즈와 표정이 준비되어 있다. 그중 첫 번째 포즈는 한야가 추천한 꽃받침, 미소다.

미소까지 곁들여 빠르고 정확히 포즈를 취한 서도화는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돌아가 또 한 번 스케치북을 넘겼다.

그리고 또 포즈를 취했다.

그때쯤 서도화는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아차렸다.

딱 ‘재밌음’과 ‘오그라들어 미치겠음’의 중간쯤의 반응이었다.

그걸 알게 되자 조금 민망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던 걸 멈추지는 않았다.

중간에 멈추는 것만큼 창피한 일도 없다.

어메스 멤버들에게 엔딩요정에 대해 상의할 때 주상현이 이 아이디어를 내며 말했다.

차라리 포즈를 다양하게 미리 정해놓고 다 하고 오면 좋지 않겠느냐고. 이 표정, 저 표정, 이 포즈, 저 포즈 보여줄 거 다 보여주는 것만큼 엔딩요정 잘 써먹을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서도화는 스케치북을 넘기며 당당하게 자세와 표정을 바꾸어 준비했던 총 4가지의 포즈를 마무리했다.

[서영 선배님 등장까지 1초]

그리고 드디어 길었던 엔딩요정이 끝이 났다. 서도화가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손을 흔들자 고정되어있던 화면은 바로 전환되어 오프닝 멘트를 준비 중인 서영을 비추었다.

서도화가 마침내 스케치북을 내릴 수 있었다.

“또화 잘 했어!”

“야, 16초 꽉 채우더라. 대단하다.”

“도화 어떻게 한 번도 안 부끄러워하냐?”

“하하…….”

서도화는 무대 위 조명이 어두워지자마자 달려와 말을 거는 멤버들에게 민망하게 웃곤 들려오는 환호에 고개 숙여 인사 후 퇴장했다.

정말 확실히 관객들이 있는 무대와 없는 무대의 차이가 확실하다는 걸 알 수 있었던 즐거운 공연이었다.

무대 아래로 내려온 멤버들은 수고했다는 간단한 인사만 나눈 채 빠르게 헤어졌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연인 만큼 서둘러 각자의 무대 준비를 하러 가야만 했다.

특히 1번인 최여운은 건네려던 인사조차 스태프, 제작진들에 의해 끊긴 채 거의 끌려가듯 사라졌다.

그리고 서도화 또한 이병수와 함께 대기실로 달렸다.

“도화야! 뒤에서 대표님이랑 내가 너 얼마나 칭찬했는지 아냐? 정말 너무너무 잘했어. 기특하다 정말!”

일분일초가 바쁜 때이지만 대기실을 향해 달리는 와중에도 이병수는 칭찬을 빼먹지 않았다.

서도화가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저도 재밌었어요. 형, 관객석에 우리 팬분들 엄청 많았어요.”

“아이고야, 네가 드디어 우리 인기를 실감하는구나.”

이병수는 답답했던 속이 풀렸다는 듯 말하고 서둘러 대기실로 서도화를 밀어 넣었다.

“유리 씨, 우리 시간 없으니까 빨리 부탁드려요!”

“네에!”

서도화는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정신없이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을 수정했다.

“하. 끝났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서도화가 큰 고비를 지났다는 듯 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오오.”

“형 완전 화려해졌네요?”

그의 가까이로 멤버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이제야 멤버들과 색이 맞았다.

“도화야 진짜 고생 많았어. 무대 반응도 되게 좋았어.”

한야가 음료수를 건네며 서도화의 맞은편에 앉았다.

“엔딩요정도 안 민망해하고 잘했어.”

“상현이 아이디어가 좋았던 게 포즈를 미리 정해주니까 오히려 민망해도 쭉 하게 되더라고요.”

“흐흐, 저 엔딩요정 아이디어 되게 많아요. 예전에 유니드 형들도 뭐할지 저한테 물어보고 그랬었어요.”

한야와 주상현이 라이징 무대에 대한 감상과 칭찬을 늘어놓았다.

한편 아덴과 케이는 서도화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왜? 오늘 도화 메이크업 되게 예쁘지?”

서도화의 헤어를 수정 중이던 스타일리스트가 싱긋 웃으며 둘에게 물었다.

그 말에 서도화와 주상현, 한야 또한 아덴과 케이의 시선을 눈치채곤 대화를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아덴이 스타일리스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이거, 보석이에요?”

아덴이 서도화의 얼굴을 가리켰다. 스타일리스트가 활짝 웃었다.

“맞아~ 되게 예쁘지?”

아덴은 예쁘다는 말에 공감하는 대신 말했다.

“특이해요.”

스타일리스트의 눈에는 예뻐 보일지 몰라도 아덴의 눈에는 무척 특이했다.

오늘은 멤버 모두가 장례식이라도 가는 귀족처럼 화려하게 꾸미긴 했다. 그중 아덴의 기준에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치렁치렁한 멤버가 둘, 서도화와 케이였다.

그중 서도화는 좀 독특한 메이크업이 눈에 띄었는데, 얼굴 위로 주근깨처럼 올라간 보석들이었다.

대부분 은은한 하얗고 투명한 보석들이었지만 양쪽으로 눈 바로 밑 하나는 검은 보석이 붙어있었다.

이걸 예쁘다고 해야 하는가.

보석을 얼굴에 도대체 왜 붙이는지, 아무리 봐도 그 외에 치렁한 귀걸이라던가 평소보다 진한 메이크업이라던가 모든 것이 아덴의 눈에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덴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스타일리스트는 그저 해맑게 웃으며 김유진, 그리고 또 다른 스타일리스트들과 함께 서도화와 케이의 의상, 메이크업 등에 대한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런 거 진짜 평소엔 화보나 컨셉 포토 촬영에서나 할 수 있었거든요? 하, 역시 도화는 어울릴 줄 알았어.”

“최대한 컨셉에 어울리도록 현실적이지 않고 몽환적인 그런 느낌으로 하, 의상 하나하나 만든다고 날밤 새운 보람 있어요.”

“도화랑 케이 꾸미면 분위기가 엄청 달라진다니까요? 원래도 잘생겼지만 꾸미면 더 환상이라니까. 오늘 참가 연습생들 중에 너희가 제일 미인이야. 오케이?”

“카메라 담기면 더 예쁠 거예요. 오늘 팬들 앞에 처음으로 서는 거라고 도화랑 케이뿐만 아니고 다섯 명다 영혼을 갈아 넣었어요!”

“도화 너 보석 거슬린다고 자꾸 건드리면 안 돼! 그거 보석 하나에 실장님 영혼 한 톨이라고 생각해.”

“네?”

신난 스타일리스트들과 김유진이 화색이 되어 대화하는 걸 보며 케이는 무척 질색했고 아덴은 납득했다.

뭐 나라마다 생각이 다른데 하물며 세계 간 생각과 가치관은 또 얼마나 다르겠는가.

이곳에서 예쁜 건 얼굴에 보석 올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아덴은 그렇게 대충 생각하고 서도화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누나들이 엄청 너 칭찬한다. 옛날 생각 안 나냐?”

“뭔 옛날 생각? 안 나는-”

“아름다운 음유시인님~”

서도화의 얼굴이 보기 좋게 찌그러졌다. 아덴이 낄낄거리며 서도화에게 맞기 전 얼른 한야의 뒤로 숨었다.

옛날 서도화가 음유시인으로 날리던 시절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쯧.”

서도화는 혀를 차며 대기실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은 49번 소래담 그룹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랩이 주특기인 소래담의 팀인 만큼 그들의 팬은 일반적인 아이돌 곡이 아니라 랩 실력이 크게 돋보일 수 있는 곡을 신청했다.

‘그러고 보니 소래담 형, 기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서도화는 문득 합숙 중 소래담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소래담은 합숙하는 내내 흘리듯, 스치듯 기권하고 싶다는 내색을 참 많이 했었다.

여론과 악플에 상당히 지쳐 있었지만, 소래담은 그 와중에도 최고의 무대를 준비해왔다.

똑똑-.\

“56번, 무대로 이동하실게요.”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제작진이 들어와 56번의 차례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잘 하고 와. 얘들아! 무대 뒤에서 보고 있을게. 잘해. 마음 편하게, 하던 대로!”

김유진은 멤버들 각자에게 응원의 말을 하며 보내다, 서도화의 차례에 따로 말을 덧붙였다.

“도화야 너 아까 오프닝 쇼에서 보니까 끼가 아주 넘치더라.”

“끼요?”

김유진은 고개를 끄덕여주며 씨익 웃었다.

“우리 공연에서 더 잘해줘야 해. 가서 마음껏 끼 부리고 와. 믿는다.”

그녀의 말에 서도화도 웃었다.

“잘하고 오겠습니다.”

2차 경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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