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99화 (99/270)

제99화

“얘네 뭐냐…….”

무대의 가장 가까운 좌석에 앉아 무대를 지켜보던 그녀는 56번 그룹의 센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람이란 무릇 취향이라는 게 있는 법이고 이건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서 남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이라도 제 마음에 와닿지 않으면 쉽게 애정을 주고 좋아하기는 힘든 법이다.

그녀는 일명 소나무 취향, 뚝심 있는 아이돌 취향을 가진 아이돌계의 고인물.

지금은 좋아하던 아이돌이 대형 사고를 쳐서 강제적 탈덕을 당한 상태지만 돌판에선 상당히 날려주던 탑시드 홈마였다.

데뷔 때부터 무려 7년이나 팬으로서 응원하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더니 상처만 주고 떠나간 그 새끼들을 겪으며 다시는 아이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습관은 못 버린다고 덕질을 안 하니 몸이 근질거려서, 생각해보니 왜 그 새키들 때문에 내가 덕질을 참아야 하나 싶어서 변덕으로 방청 참가 신청을 하고 한번 와본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곳에서 연습생한테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줄이야.

그런 덕질 고인물 그녀의 뚝심 있는 취향은 일명 더티상. 데스티니 아이돌이다.

곱게 생겼든 한 싸가지 하게 생겼든 태어나서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이미지, 평균적인 실력이 무척 좋고 대규모 투자를 받아 뮤직비디오든 의상이든 호화로운 아이돌.

그런고로 사실 이번에도 다른 그룹보단 1번 데스티니 연습생들을 보러온 것이었는데…….

애초에 1번 외에는 관심 없어서 생긴 것도 모르고 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녀의 시선은 1번이 아닌 56번 그룹의 센터에게 꽂혔다.

‘아니, 이럴 리 없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아이돌을 보고도 한결같은 취향으로 ‘음, 잘생겼네.’ 하고 말았던 그녀였다.

결코 데스티니 아이돌 이외의 아이돌에게 끌린 적 없었는데. 저 연습생, 56번의 메인보컬. 이름은 모른다. 아무튼 노래 한번 감격스럽게 잘하는 연습생에게 자꾸만 시선이 갔다.

노래도, 춤도, 심지어 외모까지 완벽한 연습생.

그것도 유제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소형기획사 연습생인데.

그녀의 관심은 올곧게 56번의 메인보컬에게 향하다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검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조금 날카롭긴 해도 너무나 잘생긴 멤버. 저음으로 또박또박 직접 만든 랩을 구사하며 ‘저주’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공포스럽게 만든 멤버,

그리고 자신이 눈여겨보던 메인보컬 외에 스스로의 비주얼을 상당히 잘 이용하고 있는 적당한 실력의 아름다운 멤버까지.

이 그룹, 이제 보니 외모만큼 실력도 무척 좋았다.

“도화야! 케이! 덴!”

그리고 인기도 몹시 많은 듯하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56번 팬들을 힐끔거렸다.

이 현장 상당히 많은 구역이 56번의 슬로건을 든 관객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전 어떠한 무대보다 팬들의 반응이 뚜렷하게 컸다. 어쩌면 데스티니 그룹보다 클지도 모르겠다.

‘하긴 처음 봤는데도 이 정도로 눈에 들어오면 그럴 만도 하지.’

줏대 있는 그녀 또한 이 그룹이 흥미로워서 경연이 끝나는 대로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너튜브에서 가끔 보이는 쇼츠 영상으로밖에 밀리언 아이돌을 본 적 없던 그녀는 56번이 강력한 우승 후보임을 오늘 이 순간 전까진 몰랐다.

그렇게 서도화의 보컬과 주상현의 댄스, 그리고 비주얼 위주로 흥미를 가지던 그녀의 생각이 또 멈췄다.

“날았…….”

사람이 하늘을 나네?

와아아아아아아아!!

보컬, 댄스, 랩 한 분야에 큰 재능이 있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비주얼은 좋지만 실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갑자기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그게 아크로바틱이라는 걸 그녀는 뒤늦게 깨달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만큼 높이, 그리고 오래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으니.

팬들의 반응을 보아 늘 이런 무대를 보이는 모양.

그것도 그냥 ‘나 이제 기술 보여준다!’ 가 아니고 뜸 들이지 않고 담담하게 도움닫기조차 없이 뛰어오르는 게 아닌가.

그저 기술에 감탄만 나오는 게 아니고 공연 자체의 몰입도가 크게 올라갔다.

안무가가, 회사가, 멤버들이 이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버무려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흥미로워.’

엄청. 관심이 생기고야 말았다.

다섯 명 전부, 특히 그중 세 명, 예사롭지 않은 비주얼들과 각자의 포지션에서 확실하게 보여주는 실력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컨셉 확실한 무대.

줏대가 꺾였다. 뼛속까지 더티 아이돌만 좋아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이름도 모르는 소형기획사의 아이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몰랐다. 사실 그녀의 대쪽 같은 취향이 꺾인 게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관심을 가진 서도화도, 랩 담당 한야도 원래는 데스티니 출신이니까.

‘한 번 더…보러 와볼까?’

원래 사람의 취향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었다.

* * *

공연이 끝났다. 그러나 멤버들은 평소처럼 빠르게 무대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다.

그들의 걸음을 붙드는 수많은 팬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수많은 이들이 멤버들을 바라보고 또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불러댔다.

처음으로 관객들과 마주하며 치른 공연의 끝엔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드는 큰 울림이 있었다.

멤버들이 차오르는 숨만큼 벅차오름을 느끼며 관객이 있는 무대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을 때, 케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외침이다.’

인간의 외침은 일단 꺼려졌다. 죽으라거나 누가 너 따위를 좋아하겠냐던 외침, 마왕이 된 그를 보고 공포에 떨며 살려달라 구걸하던 외침.

케이는,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한 외침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지금의 외침은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을 위한 칭송이겠지만. 모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케이의 뛰어난 귀에 커다란 울림이 일었다.

“케이! 케이야!”

“케이! 도화야! 너네 진짜 개 멋있어어! 으허헝!”

케이의 마음속을 깊게 울리는 외침이 들려왔다. 케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보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케이의 이름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애정을 가득 담아, 혹은 울음소리와 함께 인간들이 케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건…….”

케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목소리엔 증오가 담겨있지 않았다. 원망과 두려움도 아니었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던 부모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그저 애정. 그것뿐인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외침이었다.

케이가 인간에게,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케이야, 왜 굳어 있어? 긴장했어? 일단 우리 팬분들한테 인사하자.”

“형, 날다가 어디 다친 건 아니죠?”

멍하니 굳어 있던 케이의 어깨 위로 양쪽에서 팔이 걸쳐졌다.

케이가 크게 몸을 떨며 제 곁에 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기분 좋게 활짝 웃고 있는 한야와 주상현이 그의 양쪽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케이를 보고 있었다.

김유진과 서도화의 세뇌 덕분에 나름 무대 위라고 평소처럼 손을 치워내지 못한 케이는 평소보다 훨씬 더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의 다정한 눈빛을 볼 수 있었다.

이 또한 깊은 애정의 눈빛이었다.

그 순간 케이의 마음이 크게 옥죄여 왔다.

심장과도 같은 핵은 용사와 서도화에 의해 사라졌을 텐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서도화의 노래를 들었을 때와 같은 아픔이었지만 이번에는 서도화의 노래 탓이 아니다.

케이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나는.’

이들의 외침을 듣고 다정한 눈빛을 보고.

결국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또 인정하고야 말았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와아! 수고했어!”

대기실에 돌아오자마자 유제이 직원들의 박수 세례가 이어졌다.

역대급 무대를 만들고 온 멤버들. 어디 하나 부족한 곳 없이 몹시 잘했다.

“오늘 아덴이 표정 표현 엄청 잘 하더라!”

“표정이요? 도화가 카메라랑 기싸움 하랬어요.”

“그, 그렇구나! 앞으로도 열심히 기싸움 하자!”

아덴은 쏟아지는 스태프들의 칭찬을 들으며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멤버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들떠서 방방 뛰며 서도화에게 달라붙은 주상현도, 평소 잘 들뜨지 않는 한야도, 그리고 원래의 세계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미소를 한껏 짓고 있는 음유시인도.

다른 그 어떤 경연 무대보다 오늘을 즐긴 듯했다.

그래서 아덴은 웃었다. 동료가 즐거우면 아덴도 즐거웠다. 그리고 아덴이 생각하기에도 오늘의 공연은 굉장히 즐길 만한 공연이었다.

영웅 퍼레이드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커다랗게 울리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무대에 몰입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었다. 춤추고 노래하는데 몰입을 하다니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때 서도화의 고개가 휙 들려 아덴을 바라보았다. 얼떨결에 그와 눈이 마주친 아덴에게 서도화는 혈색 좋은 얼굴로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도화야, 너 신나 보인다?”

“신났지.”

아덴의 툭 내뱉는 듯한 말에 서도화는 순순히 인정하곤 물었다.

“아이돌 재밌지?”

“몰라.”

아덴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나 서도화는 아덴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

들떠 보이는 건 비단 주상현, 한야, 서도화 세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다.

원래 용사는 관심받는 걸 좋아한다. 사랑받는 걸 좋아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자, 그래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자가 바로 용사 아니겠는가.

거기다 최근 은근슬쩍 아덴이 춤과 노래를 진짜로 즐기는 듯한 모습이 보이곤 했다.

말은 모른다고 하지만 아덴도 꽤 이 공연을 즐겼을 것이다. 진득하게 공연에 몰입했던 무대 위의 아덴이 그의 속마음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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