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공연 이후엔 마지막 공연 전까지 자유였다.
물론 대기실 밖으론 나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메스 멤버들은 무대에 대한 부담감을 한층 덜고 편하게 다른 그룹의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다.
100팀 중 살아남은 28팀. 여기서부턴 우승과는 별개로 그룹 하나하나의 공연이 주목을 받고 화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모든 공연의 무대 퀄리티가 나날이 상승했다.
특히 관객들의 앞에서 처음 진행하게 된 이번 4라운드는 모든 소속사들이 이를 갈고 준비했을 것이므로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공연들이 이어졌다.
총 28가지의 연말 특별 무대를 보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 팀 공연이 밀리지는 않네.’
서도화가 생각했다. 모든 그룹이 전 라운드를 뛰어넘는 공연을 보여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어메스 팀의 공연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날 때쯤 멤버들은 순위발표를 위해 다시 무대 뒤로 향했다.
“알록달록하네.”
입장을 위해 무대 뒤 꽉꽉 들어찬 연습생들을 보며 아덴이 말했다.
어메스도 그러했지만 많은 연습생들이 전 라운드와는 다르게 상당히 색조가 강해졌다.
“우리도 만만치 않게 알록달록하지 않아요?”
주상현이 제 머리를 건드리며 말했다. 어메스도 한층 색이 다양해졌다. 다섯 명 중 서도화와 주상현 두 사람이 밝게 염색을 했고 아덴은 검붉은 빛의 머리 색을 가졌다.
거기다 보석까지 얼굴에 붙이고 색조 짙은 메이크업을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기엔 어메스도 만만치 않게 알록달록할 거다.
아덴이 멤버들의 모습들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네? 우리가 제일 알록달록해.”
가볍게 이어지던 그들의 대화는 무대 위에서 들리는 서영의 진행으로 멎었다.
“관객 여러분, 그리고 스트리밍으로 시청하고 계실 밀리언 시청자 여러분. 이로써 참가자 총 28팀이 준비한 공연이 모두 끝났습니다. 각 그룹들의 공연은 어떻게, 재밌으셨나요?”
서영의 말에 네에! 관객석에서 큰 대답이 들려왔다. 서영은 환하게 웃으며 무대의 사이드로 이동했다.
“그럼 이제 한번 불러볼까요? 참가 연습생 그룹 전원, 총 스물여덟 팀은 무대 위로 나와 밀리언 시청자분들께 인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서영의 말과 함께 우렁찬 BGM이 무대 위로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출연자 전원이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출연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이번에도 관객들은 큰 환호와 함성으로 맞이해주었다.
역시나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큰 울림이다.
연습생들은 관객들의 환호에 활짝 웃으며 나아갔다. 그들 중 긴장이 풀린 이들은 자신의 팬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이들도 있었다.
“출연자들은 얼른 자리에 서주시고요.”
서영의 조언에 출연자들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무대 위 관객들이 출연자 전원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단식 단상.
앞서 무대에 들어온 연습생들은 단상의 뒷줄부터 차례대로 채워나갔다.
어메스 멤버들은 이전 라운드 1위였던 데스티니와 함께 단상의 가장 앞줄에 자리했다.
서영이 진행을 할 때마다 늘 관객석에서 서영을 올려다보던 연습생들은 4라운드가 되어서야, 무려 세 번을 살아남고 나서야 겨우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순간 어메스 뿐 아니라 팬들의 환호를 받는 모든 연습생들이 제각각의 감명을 받고 있으리라.
“보다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 연습생들인데요.”
서영이 천천히 걸어 출연자들의 가장 앞, 가운데에 섰다.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다정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던 서영의 목소리와 표정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이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14그룹은 오늘 이곳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그녀의 말에 관객석이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역시 반타작이냨ㅋㅋ
-아 감당 못 할 거면 100팀이나 참가시키지 말라곸ㅋㅋㅋ
-…진짜 30~50팀 정도 참가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본다
4라운드에 이르러서도, 심지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그룹들은 전원 일정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비로워지지 않는 탈락 비율.
관객들과 시청자들은 기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탈락자에 대한 동정과 배려가 전혀 없다. 한 라운드를 치를 때마다 탈락자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생존자는 반타작이 난다.
2주에 한 번씩 2개월간 응원하던 그룹이 아무렇지 않게 감흥도 없이 탈락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팬들의 입장은 또 어떻겠는가. 그들의 마음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화가 날 정도로 유독 잔인한 프로그램이었다.
채팅창으로, 관객들의 웅성거림으로 서영은 밀리언 아이돌 주 고객들의 반응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즌 1보다 시즌 2가 더 잔인해지고 시즌 2보단 시즌 3이 더 가혹하며 자극적이다. 진행을 하며 매 라운드 이러한 비난이 있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현장 투표를 하지 않은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서둘러 투표를 진행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1분, 사용되지 않은 표는 기권으로 처리됩니다.”
연습생들의 뒤에 걸린 메인 스크린에 현장 투표 마감 시간이 카운트되었다.
그와 동시에 현장의 사이드 스크린에선 오늘 출연진들이 선보였던 공연의 일부만 모아둔 영상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나며 현장 투표까지 모든 심사 요소가 마무리되었다.
“현장 투표가 완료되었습니다. 관객 여러분, 그리고 밀리언 시청자 여러분 참가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영이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 인사한 후 다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깐의 광고 후 순위발표가 시작됩니다.”
“아아아!”
관객들의 답답함과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영이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을 때 스트리밍이 잠시 중지되고 중간 광고가 이어졌다.
스트리밍 화면에 광고가 시작되고 경연의 진행이 중지되자마자 서영은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너무 열받죠! 정말 너무 화가-”
서영은 대놓고 투덜거리며 무대 뒤 피디님이 악마라는 듯 제 양손으로 머리에 뿔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러자 불만이 가득했던 관객들이 서영을 보며 조금씩 웃음을 되찾았다.
“좀만 탈락 비율 줄여주지. 여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맞아요!”
서영과 관객들이 대화를 나눴다. 연습생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영과 관객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역시 프로는 다르긴 다르다. 잠깐 방송이 끊긴 틈을 이용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쎄해진 분위기를 풀어나가다니.
이로서 서영과의 짧은 유대 때문에라도 진행 중 관객들의 호응이 조금은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방송이 시작되었다.
서영은 언제 관객들과 하하호호 수다를 떨었냐는 듯 다시 단호하고 단정한 자세로 돌아갔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순위발표를 시작할 텐데요.”
서영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말 안 해도 아시죠?’ 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에 대답하듯 채팅창은 서영의 뒷대사를 예상하는 글로 가득해졌다.
-오늘도 탈락자 한 번에 공개인가요…?
-28위부터 15위 한 번에 공개한다에 내 수능X강 건다
-ㅋㅋㅋ아니 님 여기서 뭐 하세요 공부 안 하심?
-하기 싫어여ㅠㅠ제발 가져가주세
-ㅋㅋㅋ28위부터 15위까지 공개합니다~ 하겠지
-양심이 있으면 좀 나눠서 발표 좀 해줘라… 애들 꿈 가지고 이게 무슨 장난임…?
참 슬프게도 채팅창의 예상이 아주 정확했다.
“먼저 28위부터 15위까지의 그룹 공개해주세요.”
무대 앞쪽에 따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연습생들의 고개는 저절로 뒤로 돌아가 대형 스크린 속 순위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띠링!
얄밉게도 들려오는 코인 소리.
그에 맞춰 공개되는 14개의 슬롯 속 번호.
“아…….”
이를 본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익숙한 번호가 눈에 보였다.
어메스와 짝그룹, 송서의 그룹인 91번과 지우진의 그룹 72번 그룹이 탈락자에 포함되어 있었다.
함께 오프닝 쇼를 준비하던 멤버가 포함된 그룹이었다.
지난번 라운드에 파트너 그룹에게 밀려 크게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고, 특히 91번은 지난번 라운드 VCR 악편으로 방송에 나오기 전부터 후기 등으로 비난을 받았던 것이 이번 탈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장에 크게 소란이 일었다.
탈락한 다른 그룹의 팬들의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지난 라운드 높은 순위를 받고 베네핏까지 얻었던 그룹의 탈락에 혼란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어떻게 지난 라운드 2위, 3위 그룹이 탈락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91번과 72번은 예상한 듯 그저 씁쓸히 미소 짓고 감사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위가 낮을 걸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라운드에 받은 높은 순위는 자신들의 순위가 아닌 짝그룹의 순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탈락까지는 안 할 줄 알았는데. 참 씁쓸한 결과였다.
순식간에 탈락자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전 라운드들과는 달리 쫓아내듯 탈락자를 무대 아래로 내려보내지는 않았다.
반타작 탈락 그룹들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게 있다.
서영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방금 공개된 28위부터 15위까지의 그룹은 4라운드를 마지막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3라운드 생존 베네핏에 따라 탈락한 그룹은 28위부터 차례대로 그룹의 이름을 공개해주시기 바랍니다.”
탈락하여 더이상 밀리언 아이돌의 무대엔 설 수 없게 되었지만 대신 수많은 관객과 시청자들 앞에서 번호가 아닌 그룹의 이름은 알릴 수 있다.
4라운드까지 고생한 연습생들에 대한 팝넷의 유일한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