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02화 (102/270)

제102화

경연 프로그램에서의 2위는 참 불행한 순위였다.

긴장감을 위해 1위와 함께 공개되어 3위보다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순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실 2위,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지만 다음 라운드는 최선을 다해서 다시 1위를 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위 하락의 고배를 마신 1번 그룹 데스티니는 첫 1위를 따낸 56번을 위해 쫓기듯 소감을 말하고 자리를 비켜야 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1번이 아니었으니까. 56번이었으니까.

그래서 1번 그룹은 차마 태연할 수가 없었다. 상실감과 처참함이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드러났다. 부동의 순위를 빼앗긴 기분은 차마 표현할 수 없으리라.

그것도 빼앗긴 대상이 한때 동료였던 한야와 서도화라 더더욱 기분이 묘했다.

“56번 1위 축하드리고요. 소감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많은 팬들의 환호와 함께 무대 가운데에 선 어메스 멤버들, 그들의 리더 한야가 기쁨 가득한 미소와 함께 차분히 소감을 발표했다.

“저희 56번이 처음 밀리언 아이돌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저희들의 목표는 시청자 여러분들이 저희 이름만이라도 궁금하게 하자. 그거 하나였습니다. 결코 1위를 바랄 수 없는 오합지졸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오늘의 1위가 뜻깊고 행복합니다.”

한야가 말하는 동안 서도화의 등에 무언가 무거운 게 달라붙었다.

“흐읍…….”

등 뒤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에 서도화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자신에게 달라붙은 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주상현이었다.

그러고 보면 주상현도 1위는 처음이던가.

“으허엉…….”

유니드가 해체한 이후 유독 마음고생이 심했을 멤버이니 이렇게 펑펑 우는 것도 이해되었다.

그러나 사실 서도화도 우는 주상현을 신경써 줄 만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그러곤 서도화에게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붙어 그의 어깨를 눈물로 적시고 있는 주상현을 떼어내 고개를 팍 숙인 채 몰래 훌쩍이는 케이에게 붙여주었다.

같이 울어라.

굳이 주상현을 서도화에게서 떼어낸 이유는 서도화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처음으로 마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던 날.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도화의 뒷모습에서 수많은 감정이 흘러나왔다. 늘 여유롭던 서도화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마 서도화 본인조차 쉽게 정의 내리지 못할 감정일 터.

한야 또한  서도화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려다 서도화의 표정을 보고 다시 자신이 멘트를 마무리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모든 순위발표가 끝이 났다. 56번은 다시 단상으로 돌아갔고 서영은 탈락자들이 사라진 후 텅텅 빈 단상을 잠시 지켜보다 무대 가운데로 향했다.

“이로써 순위발표까지 길었던 4라운드가 끝이 났는데요. 역시 관객 여러분들과 함께 경연을 치르니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와닿는 것 같습니다.”

인원을 반 토막 내놨으니 오늘은 기쁨보단 슬픔이 더 한 것 같지만.

서영이 씁쓸히 미소 지으며 큐카드를 넘겼다.

“5라운드 진출자분들에게는 축하를, 탈락자 그룹에게는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이제 5라운드 주제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서도화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진짜…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는 1위 하고, 또 누군가는 기권하고, 그 감정이 사그라들기도 전에 바로 5라운드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서도화가 살며시 뒤를 돌아 단상에 남은 그룹들을 둘러보았다. 100팀 중 이제 남은 건 14팀. 이 체육관을 가득 채웠던 연습생들은 이제 무대 위에 서도 널럴할 정도로 인원이 줄어들었다.

남은 라운드는 단 두 번.

이젠 정말 살아남기가 힘들어지겠지. 팬덤 뿐만 아니라 그룹 간의 경쟁도 심화될 것이다.

서영이 외쳤다.

“5라운드 주제 보여주세요.”

서영의 뒤 대형 화면에 커다란 글씨가 떠올랐다. 오늘은 연습생들보다 관객들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들려왔다.

[자유곡]

의외의 주제에 연습생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5라운드의 주제는 자유곡입니다. 말 그대로 주제 제한 없이 여러분들이 하고 싶었던 곡으로, 하고 싶은 무대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아주 쉽죠?”

서영이 미소 지었다.

제한되는 주제에서 벗어나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무대를 보이라는 게 이번 5라운드의 주제였다.

주제가 공개되자 관객들뿐만 아니라 연습생들도 일순간 소란스러워졌다.

서영은 ‘흠!’ 가볍게 소리를 내 연습생들을 조용히 시키고 진행을 이어나갔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뚫고 살아남은 참가자들인 만큼 이번에는 또 어떤 무대를 가져올지 기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넵!”

연습생들은 큰 소리로 대답하고 다시 서영에게 집중했다. 5라운드 주제가 발표되었으니 이어서 나올 중요한 발표가 있지 않은가.

서영은 연습생들의 시선을 알아차리곤 말했다.

“네에, 하하! 옆에서 연습생들이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보고 있는데요. 예, 연습생들이 기대하고 있으니 얼른 발표해야겠네요. 5라운드의 베네핏 공개하겠습니다!”

서영의 말에 연습생들의 시선이 무대 뒤 대형 스크린으로 넘어갔다.

화면에 커다랗게 나타나는 글씨.

“허억!”

“와 이건 진짜 대애박.”

이를 보자마자 연습생, 채팅창, 관객석 할 것 없이 난리가 났다.

[미니 팬미팅]

이야, 역대급 베네핏이 걸렸다.

“5라운드 1위부터 3위까지의 순위를 차지한 그룹에게 주어지는 베네핏입니다. 팬들과 함께하는 미니 팬미팅. 지금까지 여러분들을 응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팬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서영의 말에 ‘네에!’ 관객석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큰 보상이 걸린 만큼 다음 라운드 열심히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4라운드 경연을 함께해주신 관객 여러분, 그리고 스트리밍 시청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서영이 자세를 바로 했다. 유독 진행자에게 길고 어렵고 힘들었던 4라운드. 드디어 이를 끝마칠 시간이 되었다.

“그럼 저희는 더 좋은 무대를 가지고 5라운드 경연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밀리언 아이돌은 POP-NET을 통해 매주 화요일, 수요일 9시 40분 방영되고 있으니 많은 시청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습생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화려하고 힘찬 BGM과 함께 서영을 찍던 카메라가 훅 뒤로 물러나 천장으로 올라갔다.

스트리밍은 종료되었다. 서영은 ‘퇴근이당!’ 끝까지 유쾌한 말을 하며 관객들에게 인사한 후 무대 뒤로 사라졌다.

어메스 또한 다른 연습생들과 같이 관객석의 팬들에게 인사하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이렇게, 4라운드 경연이 모두 끝이 났다.

“와…….”

서도화는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경연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크다.

사실 체력소모가 큰 건지 관객, 소래담 등 이리저리 신경 쓸 게 많아서 정신적으로 지친 건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어쨌든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온 것처럼 기가 쭉 빠졌다. 이는 다른 멤버도 마찬가지인지 서도화의 곁에 주상현, 한야, 케이가 차례대로 숨을 내쉬며 털썩털썩 앉았다.

그렇게 잠시 얼굴에 붙은 보석을 떼어내며 멍 때리던 서도화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대표님, 병수 형 저 잠시 나갔다 와도 돼요?”

“어? 어디?”

이병수의 물음에 서도화가 대기실 밖을 엄지로 가리켰다.

“잠시 1번 그룹 최여운 형 좀 만나고 오려고요.”

“……여운이?”

“네, 잠시 할 말이 있어서요. 오프닝 쇼 같이 선 거 인사도 할 겸.”

서도화가 말하자 체력이 바닥났는지 소파에 거의 드러누워 있던 케이도 슬쩍 손을 들고 말했다.

“나도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너는 또 어디?”

“포도봉봉을 사고 싶습니다.”

“……어?”

이병수가 뭔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케이의 표정은 몹시도 진지했다.

“포도봉봉을 살 겁니다.”

“그게 무슨…….”

이병수가 여전히 이해를 못 하는 듯하자 서도화의 옆에 앉아있던 한야가 그의 말을 풀어 설명해주었다.

“음료수 포도봉봉이요. 자판기 음료수 말하는 거예요. 아까 숍 디자이너 실장님께서 주셨는데 맛있었나 봐요.”

“아… 아…… 어 그래.”

이병수는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냐는 듯 케이를 쳐다보다 서도화에게 눈짓했다.

“도화가 가는 김에 케이 포도봉봉 사주고 와. 그거 가격이…….”

“800원입니다.”

케이가 말했고 이병수는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에게 2천 원을 쥐여주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서도화가 케이를 이끌고 대기실 밖으로 향했다.

“그 사람은 왜 찾는 것인가?”

케이의 물음에 서도화는 주변을 살피며 대충 대답했다.

“할 말이 있어서.”

케이는 이해 못 할 서도화와 최여운만의 사정이었다.

합숙소와 경연장에선 카메라 눈치 본다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간 서도화는 최여운에게 제대로 사과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서도화가 아무리 억울할지라도, 현실은 데스티니 월말평가 당시 서도화로 인해 최여운이 피해를 본 상황이니까.

어쨌든 자신 때문에 상처 입었을 사람에게 내 탓이 아니라고 사과도 없이 모른 척하고 싶진 않았다.

케이는 두리번거리는 서도화를 쳐다보다 손가락으로 복도 끝을 가리켰다.

“그자는 저기 있다. 내 좋은 눈과 귀가 오늘도 너를 돕는군.”

서도화는 복도 끝을 한번 바라보곤 케이를 포도봉봉과 함께 대기실로 돌려보낸 뒤 최여운에게로 향했다.

최여운은 같은 그룹 장우진과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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