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04화 (104/270)

제104화

들떴던 미소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참 움직이지 않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서도화는 긴 시간 끝에 무덤덤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나네.”

무덤덤한 목소리가 한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이게 이렇게. 아, 이게 이렇게 퍼지고 마는구나.

너튜브에서 이런 채널의 주 컨텐츠가 무엇인지 서도화도 잘 안다.

아무리 서치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한들 업계에 몸 담은 이상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다.

그럴 듯한 소문과 근거없는 게시글, 그리고 교묘하게 악의적인 영상들을 이용하여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좀먹고 돈 버는 채널. 일명 사이버 렉카.

그러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차라리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영상의 제목은 진실이지 않은가. 서도화는 해명할 수 없는 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지고 말았다.

그래서 촬영 중 도로시와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최여운과 합숙을 할 때도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심지어 최여운에게는 사과하려고까지 했었다.

정말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한들, 억울해도 정황상 서도화의 잘못이 맞았고 딱히 댈 수 있는 핑계조차 없으니까.

그렇기에 그냥 넘기면 되는 영상 하나가 이렇게 신경이 쓰였다.

5년 동안 별일을 다 겪은 터라 앞에서 누가 욕을 하고 비아냥거려도 심지어 배신을 해도 무던히 이겨내던 서도화였는데.

고작 이게 이렇게나 상처였다.

‘억울하네.’

시스템 이 빌어먹을 새끼.

죽을 고비 넘기고 돌아왔건만 잊을 만하면 서도화의 잃어버린 한 달이 일컬어지곤 했다.

볼까? 말까? 서도화의 손가락이 해당 영상의 위에서 줄곧 맴돌았다.

“도화 왜 그래?”

“형, 뭐해요?”

그때 침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서도화를 본 한야와 주상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서도화는 힘없이 미소 지으며 두 사람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죄송해요. 미안, 이런 게 떴네.”

“네? 뭐가 떠어…….”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굳었다. 주상현이 정색한 채 서도화의 휴대폰을 받고 천천히 스크롤을 내려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 형. 무시해요. 이 채널 유명하잖아요.”

“그건 알지. 근데 마음이 좀 그래. 이 일은 데뷔하고도 끝까지 따라다니겠구나 싶어서.”

“우리는 알아요. 형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요. 형이 이유 없이 그럴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 도화 형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는데!”

주상현이 굳은 입가를 최대한 올리며 최선을 다해 그를 위로했다.

“이 채널에 올라온 글은 죄다 악의적이라서 올라와도 팬들은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악플러 아니면 믿지도 않아요!”

“그건 맞긴 한데.”

사실은 사실이다 보니. 서도화가 씁쓸히 미소 짓자 주상현이 울상이 되었다.

“저는 이딴 글 때문에 형이 상처받을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역시 공감 능력 좋은 주상현다운 반응이다. 주상현은 울먹이더니 ‘형 저딴 거 신경 쓰면 안 돼요.’라며 달라붙었다.

주상현은 정말 걱정이었다.

유니드 시절, 이 채널로 인해 본인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멤버들이 고통받았다.

얼마나 잘 숨었는지 고소하려고 해도 번번이 불발되었다.

이로 인해 따로 병원 상담을 받고 약을 챙겨 먹던 멤버도 다수 있었던지라 서도화가 데뷔 전부터 고통받을까 너무 걱정이었다.

물론 서도화는 그 정도로 상처받지는 않았다.

상처받기는 했지만 주상현의 과한 걱정에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아질 정도의 상처 정도?

그래서 주상현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신경 쓰이기는 하는데 문제없어. 그냥 좀 상처받고 말겠-”

“어떤 새끼가 퍼트렸을까?”

“……네?”

방안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서도화와 주상현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야를 바라보았다.

한야가 지금껏 서도화에게 보인 적 없는 살벌한 얼굴로 입 안 혀를 굴렸다.

그의 얼굴엔 짙은 짜증과 분노가 잔뜩 서려 있었다.

“하, 애들 입단속 잘하라고 했더니 이게 퍼지네?”

“예, 예에?”

내가 알던 그 한야가 맞나. 주상현과 서도화의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서도화의 눈동자가 요동쳤다.

-평소 둘이 싸울 땐 어떻게 해결해?

-한야 형이 걷어차요.

문득 예전 주상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그게 그냥 한 말이 아니고 진짜였구나.

언제나 자상하던 한야에게 다른 모습이 있다는 걸 방금 알게 된 서도화였다.

한야는 뒷골이 당기는지 뚜둑- 뚜둑- 제 목을 풀며 깊이 한숨 쉬었다. 그러곤 두 사람에게 말했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 말할 땐 좀 누그러진 말투였다.

“이거 분명 연습생이 퍼트린 거야. 직원들은 이딴 짓 할 리가 없고. 누구 짐작 가는 놈 없어? 도화.”

“저, 저요? 어…….”

서도화가 너무 놀란 나머지 어벙하게 대답하곤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이런 걸 퍼트릴 만한 연습생.

‘음유시인, 그자들을 경계해라’

‘저 녀석들 질나쁜 장난을 꾸미는 듯 하군.’

“아.”

서도화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곤 픽 웃었다.

어이없네.

“누군지는 알겠어요.”

어이없게도 귀 좋은 케이 덕분에 누구의 짓인지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 * *

“일단은 그냥 무시해. 상현이 말대로 팬들은 이 채널 아무도 안 믿어.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한야는 분노가 전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한야의 말대로 렉카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냥 무대응뿐이었다. 한야가 회사에도 문제의 영상에 대해 말은 했지만 모두가 심각한 얼굴로 욕을 지껄이면서도 결국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수 없던 것이다.

악플러 외에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렉카의 영상에 대응을 하는 것이 오히려 사건을 키우는 일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유제이와 서도화는 결코 이 사건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다.

5라운드 준비를 위한 두 번째 회의. 첫날과는 달리 회의실 분위기가 매우 우중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제이는 팬덤 싸움이 얼마나 집요한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56번이 경연의 1위를 하며 팬 유입과 동시에 견제 또한 최고조로 받는 지금, 렉카 영상의 원 폭로 글이 삽시간에 SNS 등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도화야 탈퇴해. 데뷔 전부터 이런 사건이 터지면 어떡하니?

(서도화 무단결석 해고 폭로 글 링크)

-역시 세상에 완벽한 아이돌이란 없다

(서도화 무단결석 해고 폭로 글 링크)

-얼마나 인성이 개같았으면 저실력을 가지고 내놓냐ㅜㅜ재능이 아깝;;

(서도화 무단결석 해고 폭로 글 링크)

김유진이 퍼억- 노트북을 닫았다. 미친 새끼들이 대놓고 이름까지 언급하며 참 쉽게도 심장을 후벼판다.

“하아…….”

초기 대응을 하지 않은 게 실수였을까. 아니 초기대응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이슈는 대응했다가 일만 더 커지고 해명은 잘 안 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해명을 뭐라고 하겠는가? 사실 무단결석으로 해고당한 건 맞는걸.

자신을 데스티니 전 연습생이라 소개한 폭로 글은 ‘무단결석으로 인한 해고’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전부 거짓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걸 누가 믿어 싶을 정도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과하게 과장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글의 가장 밑에 믿을 수밖에 없는 인증 사진이 있었다.

이름과 날짜만 가린 데스티니 연습생 계약서였다.

이걸 누가 안믿겠냔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선 팬덤 싸움에 휘말려 너무 크게 이슈가 된 상황이다.

경연이 진행되고 이제 막 1위를 따내 승승장구하는 이때 이런 이슈는 너무 큰 타격이다.

“일단 사실 무근이다. 대응할 가치가 없는 헛소리다. 라고 말은 해놨어요.”

김유진은 쯧, 혀를 차곤 말했다.

“데스티니 측에게도 부탁드리긴 할 거고요.”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이전보다 더 어두워진 한야가 말했다. 김유진은 멈칫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가장 좋은 건 작성자 본인과 연락이 닿아 글을 지우게 만드는 거지만…….

조용히 대화를 듣던 서도화가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 작성자가 사실 전 연습생이 아닌 데스티니에서 데뷔를 앞둔 개새끼라 접근이 힘들다는게 문제다.

“……하아.”

김유진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분위기를 전환하듯 손뼉을 쳤다.

“자, 일단 이 일은 제가 한번 해결해볼 테니까 지금은 이거 말고 경연에 신경을 쓰죠.”

물론 56번의 팬들은 흔들리지 않고 서도화를 믿어주고 있다. 스트리밍에서의 모습, 방송에서의 모습, 그리고 4라운드 경연장에서의 깍듯한 모습. 그곳에서 보였던 서도화의 모습들이 팬들의 신뢰를 단단히 지켜주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흔들리지 말고 묵묵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그딴 소문에 당당하다는 걸 다음 경연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번 경연 최선을 다합시다. 이번에도 1위 해요. 우리. 고작 이딴 사건으로 순위 하락하는 건 자존심 상하니까요.”

“죄송합-”

“도화.”

면목 없어 사과하려는 서도화의 말을 김유진이 막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하는 거 아니야. 당당하게 굴어. 너 우리 회사의 귀중한 얼굴이야.”

김유진의 말에 서도화가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직원들은 첫 번째 회의와는 다른 의미로 비장해졌다.

“컨셉은 좋은데 여기에도 독창적인 부분은 있어야 해요. 대중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을 넣어야 할 텐데.”

“기억에 남을 만한 독창적인 장면. 음, 아크로바틱은 이제 독창적이기보다는 기본이고…….”

“저.”

서도화가 손을 들었다. 심각하게 논의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서정적이고 인상적이며 독창적인 거.

서도화에게 아주 좋은 게 있다.

그의 열정은 어느 때보다 불타오르고 있었다.

“하프 켤게요.”

“……뭐?”

하프라는 말에 케이가 크게 움찔하는 걸 봐버렸지만 어쩔 수 없다. 서도화는 케이를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

“하프요. 악기.”

“도화 하프 켤 줄 알아?”

“네, 얼마 전에 한야 형이 사줬어요.”

아덴이 서도화를 가리켰다.

“정말 잘 켜요.”

저 심드렁한 표정에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듯한 건 직원들의 착각일까.

서도화는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지 않으며 말했다.

“저 하프 켜면서 노래도 잘 불러요.”

“맞아요. 잘해요.”

아덴이 굳이 덧붙였다. 서도화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제2세계에서의 기억만 불러일으킬 게 뻔한 하프는 영원히 묻어버릴까 했지만.

별 개 같은 소문으로 갑작스레 벼랑 끝에 내몰린 판에 살아남기 위해 가진 패를 다 꺼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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