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06화 (106/270)

제106화

“너 연습하는 동안엔 눈 까뒤집을 일 없겠네? 아쉽다.”

케이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아쉬워하며 낄낄거리는 아덴을 보며 혀를 차곤 서도화를 보았다.

케이의 눈에는 아주 짧은 한순간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요 며칠 서도화의 상태는 뭔가 이상했다.

원래도 잘 웃거나 말을 많이 하는 인간은 아니었지만 조용한 것을 넘어 어둑했다. 서도화의 주변에만 그늘이 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케이가 모르는 사이 다른 인간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서도화는 몹시 강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케이가 보기엔 그러했다.

강함의 종류는 몹시 다양하다. 서도화의 강함은 아덴처럼 무력적인 종류가 아니라 이성과 정신력에서 왔다. 그 덕분일까? 지금으로 봐선 서도화가 상처받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대신에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신의 사랑을 받아 성스러운 정화와 치유능력까지 얻은 이가 어둠에 둘러싸여 일순간이나마 타락할 만큼 분노하고 있었다.

아덴은 이를 이미 몇 번 겪어본 일이라며 괜찮다 하지만, 어둠에 잡아 먹혀 마침내 마왕까지 된 케이가 보기엔 전혀 괜찮을 일이 아니었다.

만일 용사의 말대로 어둠에 둘러싸이고도 곧 괜찮아졌다면 서도화가 스스로의 감정을 몹시 잘 다룬다는 것이지, 위험하지 않은 게 결코 아니다.

감정컨트롤을 잘하는 자가 어둠에 둘러싸일 만큼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니까.

즉, 정신적으로 버거운 상태라는 거다.

“아주 타락의 기운이 뻗어나오는 구나.”

“너한테는 좋은 일이잖아. 왜? 걱정이라도 되냐? 네가?”

케이는 아덴의 말이 우스웠다.

“헛소리를. 아덴, 너야 말로 여유롭군. 네 동료의 타락이다. 걱정되지 않나?”

아덴은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면서도 하프 줄을 뜯는 손만큼은 여전히 섬세했다.

제어 가능한 수준의 분노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타락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아덴 또한 서도화가 며칠 간 힘들어하는 것을 봤다. 하지만 분노할 수 있다면, 그럴 기력이 있다면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왜 걱정해? 저렇게 만든 놈을 조지면 되는데.”

케이가 인상을 구겼다.

“네놈은 용사면서 사람을 죽이는가?”

“아니, 내가 아니고. 그리고 죽이지도 않고.”

아덴이 서도화를 가리켰다.

“쟤가 조진다고.”

“뭐?”

정신력만 강하지 저 유약하기 짝이 없는 음유시인이?

케이가 아덴의 말을 이해 못 하고 되물으려는 차 주상현이 슬그머니 다가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형들 사이좋게 또 무슨 대화 하고 있어요?”

아덴과 케이가 저도 모르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놀라고 있었다.

주상현의 말이 있고서야 두 사람이 전에 없을 만큼 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아이씨.”

“에이씨.”

아덴과 케이의 기분이 순식간에 더러워졌다.

내가 마왕과, 용사와 대화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되다니.

“말세다. 말세야.”

아덴은 질색팔색하며 저 멀리 연습실의 다른 구석으로 도망쳐버렸고 케이는 불쾌하다며 찌푸린 미간을 펴지 못했다.

“어어, 형들?”

주상현은 뻘쭘하게 앉은 채 두리번두리번 떨어져버린 아덴과 케이를 번갈아보고는 시무룩해져서 한야에게로 향했다.

한야는 주상현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도 험악한 인상을 펴지는 못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듯 하프를 켜는 서도화를 걱정스레 보고 있었다.

“참, 걱정이에요.”

“그러게. 도화 요즘에도 휴대폰 자주 봐?”

주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SNS는 안 보고 너튜브만요. 우리 공연 모니터링은 해야 한다고.”

문제는 SNS를 피한다고 악플을 안 보는 게 아니라는 거지.

주상현도 걱정스레 서도화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덜컹일 정도로 수많은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저렇게나 담담할 수 있는지.

서도화는 힘들다거나, 지쳤다는 티를 내지도 않고 이전과 변함없이 경연 준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 보이긴 했지만 일상을 이어감에 기복이 거의 없었다.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밀리언 아이돌의 회차가 거듭되고 특히 이번 4라운드에서 어메스가 1위를 하며 각 그룹과 팬덤의 견제도 최고조에 달했다.

깔게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까는 판국에 누군가 대놓고 까라고 밑밥을 던져 줬으니 얼마나 신나게 까대고 있겠는가.

SNS도, 포털사이트도, 심지어 밀리언 아이돌 채널의 56번 무대 영상에도 욕밖에 없었다.

칭찬만 가득했던 곳이 욕으로 도배되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누가 보면 범죄라도 저지른 줄 알 거다. 하긴 거짓 폭로글 속 서도화는 범죄와 그에 준하는 행동을 일삼기는 했다.

미성년자 연습생이 술과 담배는 기본에 새로운 연습생이 들어오면 신고식이라고 괴롭히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왕따를 시켰다고 했다.

또, 서도화는 데뷔가 내정된 데스티니의 기대주였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그와 함께 데뷔하기 위해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적혀있었다.

이 글의 하이라이트는 자신이 왕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자신보다 한참 어린 서도화에게 걷어차였다거나 절대 같이 데뷔하기 싫다며 연습실 내에 쩌렁쩌렁 외치곤 했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서도화는 후에 트레이너에게 이 사실을 걸려 혼이 났고 화가 나서 한 달 무단결석을 했고, 갑자기 찾아와서 복귀하고 싶다 했으나 결국 해고가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한 달의 무단결석 부분을 제외하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한 번이라도 연습생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글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애초에 회사가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실력이 좋기로서니 이런 폐단을 저지르고 다니는 연습생을 품고 있을 리 없었다.

지금처럼 일어나지 않은 일도 터지는 판국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연습생을 데뷔 시키려고 했을 리 없다.

딱 봐도 서도화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가장 욕을 먹을 만한 형태로 나열해놓은 글이었다.

하지만 사실무근이라고 소속사가 입장문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지켜보는 멤버들이 더 속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당사자인 서도화가 담담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그 속이 속이겠는가.

주상현은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한야 형, 저는 도화 형이 너무 걱정돼요.”

저렇게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지내다 한순간 잘못될까 봐.

그런 상황을 주상현은 알게 모르게 많이 봤다.

한야의 눈꺼풀도 가라앉았다. 그 또한 서도화를 보며 심정이 복잡했다.

비록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도 이렇게 상황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한야가 일어나 연습실 밖으로 향했다.

“잠깐 통화 좀 하고 올게.”

그러니 자신이 못하는 걸 이 복잡하고 답답한 환경에서 벗어난 이에게 대신 부탁하려고 한다.

일단 상황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기 위해.

한야의 휴대폰 화면엔 [소래담] 그의 이름이 나타나 있었다.

한편 그들의 걱정을 신경 쓸 겨를이 아닌 서도화는 속으로 분을 삭이며 아주 조용히 벼르고 또 벼르고 있었다.

‘두고 보자. 자식아.’

데스티니에서 형들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순진무구한 서도화는 5년 전 이미 사라졌다.

남은 건 친구 아덴과 함께 다니며 옮은 복수심. 그뿐이었다.

* * *

시간은 흘러 5라운드 경연 리허설.

“허?”

작게 흘리는 웃음소리에 주상현과 케이가 움찔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서도화는 무대 위 1번 그룹의 멤버 장우진을 보고 있었다.

“날 보고 웃네?”

서도화가 어이없어 조소했다.

오늘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뭘 알고 있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던 장우진.

아주 자신이 작성자 당사자라고 서도화에게 대놓고 알리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서도화는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서도화는 장우진에게 씨익, 시원스레 웃어주었다.

이를 본 케이가 화들짝 놀라며 조금 뒤로 물러섰다.

케이와 아덴에게만 보이는 아우라. 서도화가 장우진을 향해 미소 짓는 순간 어둠의 기운이 순식간에 증폭되었다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형?”

주상현이 말없이 웃고 있는 서도화를 불렀다. 오늘따라 서도화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그러나 아덴이 주상현을 붙잡았다.

“내버려둬.”

“내버려두라고요?”

“어, 저럴 때 도화 건드리는 거 아니야.”

아덴은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미친놈처럼 웃는 건 진짜 미친 게 아니라 복수 대상을 보며 마음을 다잡고 있는 것이리라.

꿋꿋하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으며 오늘까지 버텼다. 고작, 장우진 같은 놈에게 발목 잡히려고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이 아니다.

잠시 후 1번 그룹의 리허설이 끝나고 56번의 리허설 순서가 되었다.

1번 그룹이 내려가는 그 순간까지 서도화의 시선은 장우진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서도화의 시선에 여유롭게 웃던 장우진의 미소도 살며시 굳어졌다.

* * *

“후우.”

56번의 리허설이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온 서도화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복수는 공연이 끝난 뒤에. 일단 지금은 경연에 집중해야 했다.

그래서 서도화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앞에 보이는 악성 폭로 글 당사자와, 이 안 좋은 여론 속에 무대에 설 자신.

공연하러 무대에 올라가는 게 무서워질 정도로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어둠에 먹히면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일순간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정화의 힘이 필요했다.

기왕 하프까지 꺼내든 거 정화스킬조차 나오지 않으면 아깝지 않겠는가.

“괜찮아.”

그러니 마음을 다잡고 아주 잠시라도 이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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