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도화야!”
관객석의 누군가가 외쳤다. 그에 소리가 난 곳 주변의 팬들이 같은 목소리로 서도화의 이름을 부르며 홀로 무대에 선 그를 응원했다.
그러나 애잔하기까지 한 팬들의 외침을 지켜보는 다른 관객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서도화의 실물을 두고 그 앞에서 악담을 퍼붓거나 비난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논란과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몰아치고 있는 이상 무작정 그들과 같이 환호를 보내기엔 꺼림칙한 게 사실이었다.
비단 다른 연습생들의 팬뿐만 아니고 서도화의 그룹인 56번 그룹을 응원하는 팬들 중에서도 응원하기를 망설이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천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 누구보다 거대한 함성을 듣던 지난 라운드와는 무척 다른 환경.
집중하기 무척 어려운 상황일 터인데 서도화의 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채팅창도 하트아이콘도 관객들도 조용해졌다.
이 현장에 울리는 소리라곤 오로지 반주에 맞춰 흘러나오는 하프 소리. 그 외에는 환호도, 비난도 이어지지 않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게 무슨…….’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손가락이 하프의 현을 튕길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새겨들었다.
그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몄던 서도화에 대한 부정적이고 꺼림칙한 감정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마치 울창한 나무의 향기와 풀 내음을 맡으며 숲속을 거니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다.
부드럽고 다정한 현악기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긴장되었던 몸이 느슨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이게 음악의 힘인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실제로 듣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외심을 느낀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의 이 기분도 그런 것일까?
고작 한 사람의 연주에서, 이런 기분이 들 수가 있나?
너무나 좋은 기분이었으나 동시에 이상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이 꽉 막힌 실내체육관에서 어떻게 이런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관객들은, 밀리언 시청자들은 이 느낌을 이미 전에 한 번 느낀 적 있었다.
서도화가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렀던 날.
그때도 지금처럼 현장이 정적에 휩싸이고 채팅창과 하트아이콘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들리는 소리라곤 mr과 함께 흘러나오는 서도화의 노래뿐이었다.
……아니, 되레 그때보다 지금이 마음의 울림은 더욱 강했다.
사람들은 서도화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방금까지 비난하고, 꺼림칙해하던 사람들도 스트리밍 화면을 통해, 혹은 직접 집중해 서도화의 연주를 들었다.
그 순간 서도화는 연주를 멈추고 노래했다.
교차하는 밤 또 다른 세상
이건 스쳐 가는 바람이고
나는 너를 느껴
곡 ‘유니버스’의 후렴구였다.
서도화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을 눈에 담았다. 수준급의 연주 실력에 압도되었다가 다시 보니 볼거리가 하프 말고도 많았다.
말 그대로 관객들과 기싸움 하듯 정성 들인 새하얗고 보석이 잔뜩 달린 의상, 하프를 내려놓고 이젠 노래에 집중하는, 조금은 지친 듯한 유순한 얼굴.
그리고 주인공과 몹시 잘 어울리는 신전 풍의 세트장까지.
한 폭의 그림을 보듯 비주얼적으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어느새 관객도 시청자들도 서도화가 어떤 사건으로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중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롯이 무대, 그리고 서도화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펼쳤던 56번의 그 어떤 무대보다도 서도화의 이번 도입부는 이 무대에 순식간에 몰입하도록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연한 일이었다. 서도화는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정화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공연에 임했다.
정말 사람들을 정화하겠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무대를 끝낼 때까지만이라도 서도화에게 덮어씌워진 억울한 편견을 뒤로하고 오로지 무대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의 계획은 성공했다. 사람들이 드디어 공연을 보기 시작했으니까.
비록 현장 투표만큼이나 점수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하트아이콘은 멈췄지만.
서도화의 도입부가 끝나자마자 중앙스테이지의 조명을 꺼지고 메인 스테이지에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메인 스테이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서도화의 도입부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던 멤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새하얀 나무로 둘러싸인 세트장, 그 위로 보라색 조명이 드리웠다. 애절하고 서정적인 노래가 울려 퍼졌다.
56번이 한번도 해본 적 없었던 컨셉의 무대.
그 말이 딱 들어맞게 이들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새하얀 의상, 평소 56번의 분위기와 달리 부드러운 눈빛, 어딘가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 강렬했던 이전 무대에선 결코 본 적 없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원래 이 그룹의 이미지였던 것처럼 잘 어울렸다.
비로소 현장엔 함성이 들어찼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 *
어느덧 56번의 무대도 후반부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참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56번의 무대는 언제 봐도, 어떤 컨셉이더라도 결국엔 몰입하고 환호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아크로바틱을 선보인 하이라이트 댄스 브레이크 이후 격정적으로 바뀐 노래의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다. 보랏빛 안개 속에서 댄서들과 함께 걸어 나온 케이가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마주 보며 노래했다.
이 순간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밤
몽롱하게 흐르는 보랏빛 안개를 따라
너에게로 향해
그는 방금 댄스 브레이크에서 하늘을 날아다닌 직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소리 하나 없이 속삭이듯 부르는 노래에 그의 팬들은 튀어나오려는 목소리를 애써 죽여야만 했다.
진짜 잘생기긴 너무 잘생겼다. 아니 그보다 아름답고 청초하다.
-고맙다…. 그냥 너무 고마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맙댘ㅋ
아이돌을 해줘서 너무 고마운 외모다.
-와 ㅅㅂ 모쪼록 편안한 아이돌 생활 해라
무대 전까지 서도화를 욕하던 이들이 케이의 평화로운 아이돌 생활을 빌었다.
주접이 절로 나오는 비주얼. 그게 바로 케이의 독보적인 외모다.
또한 실력도 늘었다. 몰입을 깨지 않는 노래 실력, 그럭저럭 묻어갈 수 있는 댄스, 가사를 잘 따라가는 표정 연기까지.
뛰어난 실력의 멤버들 사이 늘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 케이였지만 오늘만큼은 완벽했다.
그렇게 곡의 후반부에 이르러 사람들이 무대에 한껏 빠져들었을 때쯤, 곡의 마지막 파트를 끝마친 케이가 무대 중앙에서 비켜섰다.
그리고 음악이 멈췄다.
아주 짧은 정적.
그 이후 헉, 숨 들이켜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면 관객들의 환호가 다시 잦아들었다.
케이가 비켜서자 보이는 또 다른 멤버. 이 곡의 가장 강렬한 파트는 맡았지만 평소에 비해 유독 파트 비중이 없던 멤버.
서도화가 하프를 든 채 앉아있었다.
서도화는 도입부와 마찬가지로 덤덤히 하프를 연주했다. 무대를 열었던 하프의 연주가 이번엔 유려하게 이어지며 공연의 끝을 알렸다.
하프 소리에 맞춰 조금씩 무대가 어두워지고 어둑한 조명이 서도화와 주상현 두 사람만을 비췄다.
하프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주상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모든 조명이 꺼지고 서도화의 연주 소리 또한 멎었다.
그렇게 조용히 56번의 공연이 끝이 났다.
뭔가 애절하기도, 슬프기도 한 깊은 여운을 남긴 마지막이었다.
어쩌면 논란의 한 가운데에 있는 56번 멤버들과 딱 어울리는 분위기의 무대였다.
무대가 끝났음에도 현장은 잠시 조용했다. 그리고 뒤늦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뜨뜻미지근했던 시작 때와는 차원이 다른 함성이었다.
곧 암전되었던 무대의 조명이 도로 켜졌다. 여전히 무대에 남아 있던 멤버들은 마음고생이 심할 거라 예상한 팬들의 걱정이 상쇄될 정도로 밝은 미소를 띤 채 감사 인사를 전하곤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멤버 모두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일부 팬들은 무대 위에서 모습을 감추기 직전 서도화의 눈가가 붉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서도화는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서둘러 마이크를 정리하고 이병수에게 말했다.
“형, 저 잠시 화장실 좀요.”
그러곤 멤버들보다 조금 더 빨리 무대 뒤에서 벗어났다.
‘시발.’
그는 제 속을 삭일 곳으로 화장실을 택했다. 도저히 멤버들 사이에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나왔다.
너무 분하고 속상했다. 막상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니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더 서러워졌다.
자신의 파트에만 줄어드는 관객들의 환호도, 메인보컬임에도 현저하게 줄어든 노래 파트도.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지금 서도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속으로 몇 번이나 욕을 외는 것뿐이었다.
장우진 개새끼, 시스템 이 빌어먹을 새끼.
왜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만 하는 거지?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서도화의 곁으로 아덴과 케이가 다가왔다.
“음유시인.”
“잠시, 잠시 말 걸지 마.”
화 진정시킬 때까지.
케이는 서도화의 말에도 굳이 그에게 물었다.
“지금 복수하러 갈 건가?”
그의 말에 서도화가 우뚝 멈춰서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네는 왜 따라온 거지?
의아해하는 서도화의 표정에 아덴과 케이가 말했다.
“가지.”
“같이 가자.”
그러곤 서도화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를 이끌고 방송국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리둥절한 서도화를 향해 케이는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말했다.
“나의 좋은 귀로 협조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