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10화 (110/270)

제110화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

“조진다더니.”

아덴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서도화는 장우진을 조져놓지 않았다. 그냥 휴대폰을 들어보이며 작성한 글을 지우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아덴은 그게 매우 불만이었다.

조진다더니. 서도화 본인이 장우진 때문에 2주 가까이 마음고생을 했으면서.

아덴은 2주간 보았던 서도화의 모습을 떠올렸다.

괜찮다면서 잘 보지 않던 휴대폰을 수시로 만지작거렸다. 괜찮다면서 원래 없던 말수가 더 줄어들었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연습도 착실히 잘하고 공연도 성공적으로 끝낸 서도화였지만 무대에서 몸소 느낀 관객들의 반응에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분노에 치를 떨던 서도화였다.

그런데 기껏 복수할 대상을 만나선 주먹 한번 날리지 않고 곱게 보내주었다.

원래의 세계에서 보던 서도화의 조짐과는 많이 달랐다. 원래는 훨씬 과격하고 공격적이었는데.

“왜 그렇게 곱게 보낸 거야?”

이렇게 보낼 줄 알았으면 서도화가 아닌 아덴 자신이 나섰을 거다.

동료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웬만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녀석이었다.

장우진, 하다못해 그 얄미운 얼굴에 주먹이라도 날렸어야 속이 시원했을 터인데.

그러나 서도화는 고개를 저었다.

“무대에 올라가야 하니까.”

화가 난 건 화가 난 거고 감정에 치우쳐서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

“그리고 여긴 대한민국이니까.”

화가 나도 선방은 안 된다. 때리거나 제2세계식으로 복수해서는 안 된다.

아이돌 연습생으로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고, 또 가뜩이나 안 좋은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보다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려 노력한 것뿐이다.

케이도 아덴과 마찬가지로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그가 너의 말을 순순히 따르겠는가? 그럴 리 없다고 본다만.”

“따를 거야. 그 글 곧 지워질 거고 거짓말이었다는 내용으로 새 글도 올라올 거야.”

“그걸 어떻게 장담하지?”

서도화가 피식,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하면 어쩔 건데? 난 진짜로 메신저 내용 공개할 거야.”

이미 지워버린 단체메신저지만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돈만 주면 복원이 가능하단다.

서도화는 장우진에게 이 상황을 조용히 끝낼 기회를 주었고 그가 그러지 않겠다고 한다면 서도화 또한 더는 조용히 있지 않을 거다.

무대 위에 서서 직접 느끼지 않았던가. 자신이 전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 또 열받네.”

사실 열받는 게 아니고 울컥했다. 무대 위에서 외면받던 게 떠올라서.

진짜로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매장당하겠구나,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되겠구나 싶었다.

“으으.”

서도화는 소름이 돋아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지울 거야. 그놈도 데뷔는 하고 싶을 거니까.”

데뷔도 힘들지만 데스티니에서 데뷔하는 건 더 힘들다.

피나는 노력과 경쟁을 이겨내고 겨우 데뷔 직전까지 왔는데 고작 서도화 때문에 코 앞까지 온 데뷔 기회를 날리고 싶을까?

절대로 그럴 리 없었다.

* * *

서도화, 아덴, 케이가 대기실로 복귀하고 시간이 흘러 순위 발표의 때가 되었다.

“후우…….”

서도화는 입술을 축이며 불안한 얼굴로 무대 위를 보았다.

오늘 56번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안 좋았다. 물론 하프 연주와 정화 스킬, 그리고 멤버들이 열심히 해준 덕에 무대 반응은 좋았지만…….

하트 아이콘도 평소만큼 울리지 않았고 현장 투표는 글쎄. 지금쯤 정화에 대한 영향이 사라졌을 테니 다시 서도화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걱정되었다. 서도화뿐만 아니라 어메스 멤버들 모두가 순위를 걱정했다.

모르긴 몰라도 순위가 하락했을 게 뻔했다. 그나마 멤버 개인에 대한 논란이지 그룹 전체에 대한 논란은 아니라서 여전히 응원하는 팬들이 많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얼마나 순위가 떨어질지 예상할 수는 없다.

“괜찮아. 순위에 연연하지 말자. 우리. 무대는 완벽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거야.”

한야가 걱정하는 멤버들을 다독였다. 아덴도 주상현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한야의 말을 받았다.

“맞아. 무대는 완벽했어.”

무대 위 진행 중이던 서영이 참가 그룹들의 등장을 알렸다.

“자, 그럼 밀리언 아이돌 참가 그룹 전원을 무대 위로 불러볼까요?”

걱정으로 가득하던 멤버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들은 서도화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덤덤한 얼굴을 한 채 무대 위로 향했다.

유독 마음이 괴로웠던 5라운드. 어메스가 받은 순위는 3위였다.

간신히 쟁취했던 1위는 도로 데스티니에게 넘겨주었다.

그렇게 경연은 끝이 났다.

그러나 침울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 * *

유제이 엔터테인먼트 회의실.

서도화는 5라운드 경연 대기실에서 들었던 한야와 김유진의 말을 떠올렸다.

‘이번 무대까지만이야.’

‘도화야 걱정 마. 다 괜찮으니까.’

두 사람의 말은 진짜였다.

서도화의 입가에 오랜만에 진짜로 화사한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상황이 바뀌지?

여론이 뒤바뀐 건 순식간이었다.

경연이 끝난 직후 서도화는 유제이의 직원에게서 해당 폭로 글이 삭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폭로 글 작성자가 새로운 글을 업로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화제가 되었던 폭로 글은 한 달 무단결석으로 인한 해고를 제외하고 전부 거짓이며 좋아하는 밀리언 아이돌 참가 그룹의 순위가 56번 뒤로 밀려 순간 화나는 마음에 없는 말을 꾸며내 작성했다고, 이로 인해 큰 피해를 받은 서도화에게 죄송하다는 장문의 내용이었다.

그렇게 서도화가 장우진을 만나 폭로 글을 해결한 덕분에 여론이 한번 바뀌었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폭로 글의 작성자가 정말 당사의 연습생인지 확인할 수 없다며 대답을 피하던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에서 사실무근, 해당 폭로 글이 데스티니 엔터 소속 연습생의 글이 아니라는 기사를 내며 또 한 번 여론이 바뀌었다.

김유진이 직접 자신의 대학 선배, 데스티니 엔터의 대표를 만나 부탁한 덕분이었다.

그 이후 트레이너 도로시가 자신의 SNS를 통해 서도화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 연습하던 성실하고 착한 연습생이었다고, 애제자로 기대를 많이 했지만 결국 데스티니에서 데뷔하지 못해 아쉬웠다며 결코 따돌림을 주동하거나 비행을 할 연습생이 아니라는 글을 남겼다.

그리고 소래담 또한 자신의 채널 생방송에서 화가 잔뜩 난 채 서도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어린 애한테 비난이 과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그렇지? 너희도 이제 와서 생각하면 좀 그렇다고 생각할걸?

-도화 18살이야. 심지어 증거도 그 누구나 위조할 수 있는 계약서 달랑 한 장이었잖아?

-한참 논란될 때는 괴롭힘 이런 거 되게 예민한 문제니까 그냥 너희들이 서도화 어때요? 어떤 사람이에요? 물어도 무시하고 넘겼거든? 나는 도화를 되게 좋게 봤어서 솔직하게 말하면 너희가 어? 가해자 옹호한다. 이렇게 말할 거 같아서.

-도화는 솔직히 내가 본 연습생들 중에 가장 성실한 애였어. 생각을 해봐. 그만큼 성실하지 않고서는 그 실력이 나올 수가 없다니까? 타고난 것도 있는데 진짜 합숙하면서 보면 하루종일 연습만 하더라.

-그러니까 여러분 너무 그런 사실인지도 모를 글 하나에 감정적으로 왁! 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사실인지 아닌지 잘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좋아요. 지금처럼 아무 죄없이 욕먹는 피해자가 생길 수 있으니까.

소래담이 특히 긴 시간을 들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서도화가 피해자였음을 사람들에게 인지시켜주었다.

해명이 통하지 않는 여론을 엎기 위해 한야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만이라도 언급해주었으면 한다고 소래담에게 직접 부탁했다.

한야는 짧게 스치듯 언급을 부탁했지만 소래담은 아예 이에 대한 이야기로 영상 하나를 통으로 제작해 올렸다.

그렇게 조금씩 폭풍이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서도화는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도화 요즘 별일 없지? 밥은 먹었고?”

“네, 대표님. 잘 지내요.”

김유진이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서도화에게 당근주스를 건넸다.

“……당근이에요?”

“어. 당근. 당근 주스.”

김유진이 완전히 질린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유통기한 지나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해. 한야가 좋아해서 경연 회의할 때 사뒀는데, 한야밖에 안 먹더라.”

“아아.”

“나도 당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밤새 일하고 피곤할 때 마시면 꽤 먹을 만하더라고. 아무튼, 자. 시작하자. 입장문.”

김유진이 서도화의 앞에 종이를 올려두었다.

서도화는 한층 편안해진 얼굴로 볼펜을 들었다.

이미 서도화에 대한 오해는 풀렸다. 이제 아무도 서도화를 괴롭힘의 주범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해명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서도화가 빈 종이 위로 천천히 글자를 써내려갔다.

-한 달간 무단 결석을 한 일에 대해선 이미 전 회사인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날 전 갑작스럽게 큰 사고를 당했고…

그래, 그건 사고였다. 설마 자신이 그 세계로 가게 될 줄 알았겠는가.

-사고를 당한 직후 회사에 연락이 취함이 맞았으나 의식이 없는 저 대신 연락을 취해줄 가족과 친척이 주변에 없어 소속사와 연락이 닿지 못한 채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또한 ‘사고를 당했다’는 부분을 ‘차원이동을 했다’로 치환하면 사실인 부분이었다.

서도화는 몇 가지의 말할 수 없는 점들을 제외하곤 모두 솔직하게 썼다.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 강했던 터라 무단결석 사건은 애매하게 넘어가 크게 질타받지 않았지만 그래도 굳이 해명문을 썼다.

한 달 무단결석. 그게 얼마나 서도화를 괴롭히던가. 그냥 대놓고 해명하고 앞으로 언급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많이 걱정하셨을 소중한 팬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또한 믿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또한 감히 올리고 싶습니다.

서도화가 김유진의 도움을 받아 차분히 써 내려간 입장문. 김유진은 이를 끝까지 읽어보곤 일어났다.

“이거 검수받고 올테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려.”

“네.”

김유진이 회의실을 나갔다. 서도화는 길게 한숨을 쉬며 의자 깊이 몸을 눕혔다.

이제 진짜 다 끝났다.

빌어먹을 잃어버린 한 달과, 억울한 누명이 전부 해결되었다.

속이 뻥 뚫린 기분과 함께 절로 서도화의 입에서 툭 욕설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

잘못된 날짜로 돌려보내 주는 바람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눈을 감은 채 한숨을 벅벅 쉬고 있을 때였다.

띠링!

현실적이진 않지만 익숙한 소리에 서도화가 눈을 번쩍 떴다.

이 소리는…….

‘설마.’

서도화가 크게 뜬 눈 그대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헐.”

[시스템 오류 보상이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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