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11화 (111/270)

제111화

신에게 사랑받은 자.

신이 세상에 내려준 자.

이미 멸망해가는 세상에 갑작스럽게 나타나 사람들을 치료하고 마족들을 정화하며 이름을 알린 서도화.

그는 제2세계에서 신이 보내준 구원자라 불리었다.

그러나 서도화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상을 한껏 구긴 채 싫어했다.

세상 꼴이 그따위로 돌아가는데 아직도 신 타령이나 하는 모습을 보며 한심해했다.

신? 적어도 그 세계에 신 따위는 없다. 신에게 버림받은 멸망한 세계.

서도화를 그 세계에 보낸 건 신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서도화에게 밑도 끝도 없이 세상을 구하라며 개고생을 시켰고, 마지막까지 빅엿을 선사했다.

원래도 일을 참 자기 멋대로 하는 시스템이었지만 설마 최종 보상이었던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제대로 안 해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제대로 안 해준 정도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뒤틀어버렸지.’

할 수만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사라진 시스템이 돌아올 리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혼자 감내하고 넘어가려고 생각했었는데…….

[시스템 오류 보상이 도착했습니다!]

시스템 이 자식이 평생 하지 않던 짓을 하네?

서도화는 굳었던 움직임을 풀며 오랜만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창을 노려보았다.

이 세상에 돌아온 이후론 정화 발동 이외에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다 해결하니까 오냐…….”

열받네.

서도화는 묘한 반가움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며 메시지를 건드렸다.

평소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도 모른 척하더니 아무리 양심이 없어도 최종 보상까지 잘못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서도화는 어이없어 픽 웃으며 말했다.

“열어.”

그러자 텍스트 창이 뚝 꺼졌다. 그러곤 조금 다른 느낌의 글자가 나타났다.

[서도화 플레이어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시스템의 인사에 서도화가 멈칫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래 갑자기?”

얘가 못 본 사이에 왜 징그럽게 예의를 차리지?

“혹시 다른 놈이냐?”

제2세계에서 서도화와 함께한 시스템은 지랄맞게 싸가지 없고 오만한 말투였다.

서도화는 시스템이 직접적으로 말을 걸 때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는 꼴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슈퍼갑 행세를 하며 야, 여어, 어이 등으로 불렀다.

서도화 플레이어님 잘 지내셨냐니? 저런 말을 할 놈이 아닌데?

[대화 기록이 남아서요. 플레이어한테 반말하지 말라는 규정 때문에요.]

텍스트임에도 불만스럽게 꿍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았다.

서도화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걸렸냐?”

그러자 텍스트창이 말이 없다.

서도화가 팟 웃었다. 정답인 모양이다.

텍스트창은 한참이나 멈춰있다가 겨우 대답했다.

[아이 씨, 최종 보상에 오류가 나는 바람에 내부 감사가 들어와서…….]

[한 번만 더 플레이어한테 반말하다 걸리면 환경구현팀으로 강등한대요]

[아무튼]

[최종 퀘스트를 완료하신 플레이어님께 제가 다시 찾아온 이유는……, 하하, 아시죠?]

서도화가 인상을 구겼다. 뭐 이런 게 있나 하는 눈빛이었다.

[죄송합니다. 오류 보상을 위해서 왔습니다.]

[설마 보상 지급이 이루어지는 동안 용사와 마왕이 달려들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네가 그러니까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듣는 거야.”

[……..]

[와 상처]

[그래서 일단 급하게 통번역 서비스 제공드렸잖아요?]

[아덴 님, 케이 님한테요]

통번역 서비스 제공할 시간에 그냥 다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서도화는 다시 답답해져오는 기분을 느끼며 일단은 시스템의 말에 집중했다.

시스템이랑 대화하며 답답했던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일단 들어나보자.

[혹시 원하시는 보상 있으신가요?]

원하는 보상? 뭐든지 해주겠다는 듯 묻는 텍스트창에 서도화가 눈을 굴렸다.

[아, 두 사람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달라는 건 안 됩니다. 저도 해드리고 싶은데요.]

제기랄!

[그 정도 기술은 오류 보상치고는 좀 커서.]

[하이넬 님이 노력하고 계시니 한 10년이면 어떻게든 될 거예요]

텍스트치곤 참 말이 많다. 텍스트만 보이는데 귀가 시끄러운 기분이다.

서도화는 일단 조용히 시스템이 하는 말을 들었다.

[죄송하지만 한 달 전으로 되돌려달라는 말씀도 안 되세요ㅠ]

[제 권한 외의 일이라]

[근데 뭐 어떻게든 잘 해결하신 거 같던데 축하드립니다!]

시끄럽게 신경을 건드리는 텍스트창을 보며 서도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보상.”

[아 그리고 이번 보상을 마지막으로 시스템은 진짜로 나타ㄴㅏㅈ]

[네?]

드디어 연달아 정신 사납게 올라오던 텍스트 창이 조용해졌다.

서도화는 오랜만에 봐도 여전히 짜증 나는 텍스트 창을 보며 제2세계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참 일관적으로 일 못 해 보이는 말투를 보며 이곳에 와서 고생한 일들을 생각했다.

애초에 서도화가 직전까지 쓰고 있던 입장문도, 따지고 보면 시스템의 오류 탓이 아닌가.

‘참 여러모로 힘들었지.’

서도화는 그간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며 말했다.

케이와 아덴이 원래 세계로 돌아가? 한 달 전으로 되돌려줘?

다 모르겠고 일단.

“네 놈 멱살 좀 잡자.”

[네?]

“너 사람으로 폴리모프 못하냐? 나와. 한 열 대만 맞아.”

시스템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뭔가 말을 꺼내기엔 서도화가 너무 화나 보였다.

“나오라고. 내가 얼마나, 하……이 정도로 고생시켰으면 한 번은 맞아줘도 되잖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바락바락 화를 내던 서도화가 조금 지친 듯하자 그제야 다시 텍스트 창이 나타났다.

[제2세계의 구원자, 자비로우신 음유시인님께 새로운 보상을 제공드립니다.]

“너…….”

서도화는 몹시 당황했다. 왜 말이 없나 했더니 이 겁쟁이 자식, 무서워서 도망갔다.

“야.”

서도화가 다시 한번 시스템을 불렀지만 시스템은 대답 대신 장문의 메시지를 띄웠다.

[시스템 오류 보상 내용 안내

-시스템 오류로 피해를 입은 플레이어님께 보상 내용을 안내 드립니다.

아래 세 가지 보상 중 원하시는 것을 말씀해주세요.

1. 제 2세계와 연결된 영상통신석

2. 스킬 스텟 재분배(1회 한정)

3. 새로운 퀘스트 시나리오 시작

-기존과 같은 난이도의 퀘스트가 주어지며 최종 퀘스트 보상으로 아덴과 픽케이로스톤의 제2세계 귀환, 혹은 마왕 픽케이로스톤의 완전한 소멸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보상 선택지의 마지막 구절을 읽어내려가던 서도화의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흠.”

시스템이 나름 머리를 굴려 나온 듯한 보상 내용이긴 한데 글쎄.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절실히 필요한 보상이 없다.

서도화가 말했다.

“이런 보상 말고 차라리 아덴이랑 케이 신분이나 좀 증명해 주면 안 돼?”

지금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덴과 케이의 신분이다.

지금의 두 사람은 오로지 케이의 정신세뇌에 의지한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다.

적어도 하이넬이 아덴과 서도화를 찾아낼 때까지는 그들을 증명할 신분이 필요하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차원이동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다.

그러나 시스템 창은 또 말이 없었다.

“……응? 이건 왜.”

아직 도망가서 안 돌아왔나?

신분 증명은 정말 간단할 텐데?

서도화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때 띠링-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플레이어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

[그들의 신분은 이미 등록되어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무슨 말-!”

예상치 못한 말에 굳어있던 서도화가 급하게 입을 열었을 때 시스템이 뚝 꺼졌다.

그리고 회의실 안으로 김유진이 들어왔다.

“도화야, 입장문 검수 끝났고 별문제 없을 것 같아서 오늘 8시에 올라갈 예정이야. ……왜 그래?”

김유진이 회의실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서도화가 무척 놀란 얼굴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방금까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자세로 굳어있었다.

“무슨 일 있어?”

얘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네?

김유진이 걱정스레 그에게 다가가자 서도화가 뒤늦게 자리에 바로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일어나려다가.”

김유진에게 말하는 서도화는 아까의 놀란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평소의 차분한 모습 그대로였다.

“아, 그래? 별일 없는 거 맞지?”

다시 묻는 김유진에게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났다.

“그럼 입장문까지 다 끝난 거예요?”

“그래.”

김유진이 후- 시원하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 도화야. 이제부터 그 일로 널 공격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있어도 우리가 싹 다 잡아서 고소해버릴 거야.”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김유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여론이 거셌는데도, 유제이는 온갖 욕을 먹어가며 서도화를 지켜주었다.

당당하게 행동하라며 무대에 올라갈 수 있게도 해주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수고했어. 병수 씨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숙소로 돌아가.”

김유진이 손수 문을 열었고 서도화는 그녀에게 한 번 더 인사하며 회의실을 나왔다.

“하아.”

진짜로 다 해결되었다. 아직 여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실제로 다시 관객들을 마주해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폭로는 거짓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후련했다.

그러나 후련함에 숨을 푹 내쉰 서도화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 하나가 생겼다.

서도화는 이제 습관처럼 하게 된 말을 내뱉었다.

“시스템 빌어먹을 놈.”

말을 할 거면 제대로 하고 가야지 의미심장한 말만 내놓고 사라지면 어쩌라는 거지?

“시스템.”

불러보았지만 시스템은 말이 없었다.

“야, 시스템.”

역시나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멱살 잡고 싶다는 말에 완전히 겁을 먹어선 보상을 선택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을 모양이었다.

서도화는 인상을 구기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 의미심장했던 말의 의미는 나중에 시스템이 나타나면 물어보기로 하고, 지금은 차분히 보상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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