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12화 (112/270)

제112화

“어 왔냐?”

숙소로 올라가는 계단. 서도화는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한야와 아덴, 주상현이 현관 앞 복도에 서서 씨익 웃으며 서도화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나와 있어?”

“그냥? 나가는 길에 네가 왔네.”

아덴의 말에 주상현이 어이없는 듯 숨소리를 냈다.

“우리가 오늘 나갈 일이 뭐가 있어요? 그냥 도화 형 마중하러 나가려고 했어요! 형 간다고 병수 형이 말해줘서.”

“병수 형이 너 그동안 고생 많았으니까 잘 챙겨주라고 하더라.”

“고생은요.”

한야의 말에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마음고생을 많이 하기는 했다.

경연은 계속되고 욕도 계속 먹고, 이러다 정말 억울하게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회사 식구들과 멤버들이 좀 챙겨줬어야지.

폭로 글 속 자신의 잘못이 사실이 아닌 이상 절대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할 거라고 행동으로 보여준 이 사람들 덕분에 다행히 서도화는 그럭저럭 멀쩡히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

서도화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한야가 서도화의 어깨를 깊게 감쌌다.

“도화야, 정말 고생많았어.”

“감사…합니다.”

“우리 이제 웃으면서 팬분들 만날 수 있어. 즐겁게 팬미팅 하자.”

“……네!”

서도화가 힘차게 대답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서도화는 비난이 가득한 채팅창과 응원하길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이름을 불러주던 관객석의 팬들을 떠올렸다.

자신에 대한 논란으로 크게 떨어졌을 점수를 팬들이 이를 악물고 3위까지 올려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심히 뛰며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던 한야와 김유진의 모습도 떠올렸다.

그들 덕분에 이제 거의 다 해결되었고 서도화의 누명은 벗겨졌으니 이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5라운드 베네핏인 팬미팅에 임할 수 있을 것이다.

서도화는 멤버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득 담아 다시 한번 사과했다.

“다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저 때문에 경연에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또 순위도 떨어지고.

멤버들도 직원들도 이건 서도화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그러자 주상현이 어후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이랑 한야 형이 몇 번이나 말했지만 이게 어디가 형이 잘못한 거예요? 형 잘못 하나도 없다니까요? 민폐는 거짓으로 폭로 글 올린 사람이지!”

아덴도 못마땅한 표정으로 주상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도화, 자꾸 사과하지 마. 자존심 상하게.”

서도화가 어이없어 픽 웃었다.

“내가 사과하는데 네 자존심이 왜 상해?”

그렇게 괜히 딴지를 걸었지만 사실 서도화는 아덴의 말을 이해했다.

잘못도 아닌 일에 동료가 고개 숙이는 것. 용사에겐 전투에서 졌을 때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서도화의 딴지에 아덴은 더욱 인상을 구기곤 대답 없이 현관문을 열어주었고 한야가 서도화를 집안으로 이끌었다.

“……어, 어서 와라.”

집안으로 걸음을 옮기던 서도화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눈을 껌뻑이며 정면에 보이는 이를 쳐다보았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당혹스러움에 생각만 하던 말이 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갔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냐?”

“그……!”

타앙!

마왕 케이의 손에서 밥이 담긴 밥그릇이 빠르게 테이블 위로 놓이고 있었다.

“으, 음유, 그대, 왜 이렇게 빨리……!”

케이가 무척 당황하고 있음에도 서도화는 한 번 더 대놓고 물었다.

“너 지금 설마 멤버들 밥그릇 세팅 중이냐?”

마왕이?

하찮은 인간들이랑은 죽어도 밥 안 먹겠다며 구석에서 버티던 마왕이?

마왕 자신과 멤버들이 먹을 밥그릇에 손수 밥을 담아 식탁에 옮기고 있었다고?

케이는 서도화의 황당한 눈빛에 빠르게 그릇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한야가 활짝 웃으며 서도화를 부엌으로 이끌었다.

“케이가 고맙게도 식사 준비를 도와줬어.”

“하, 한야 형이 시켜서 한 것이다!”

“시킨다고 그걸 또 하네.”

아덴의 키득거림에 케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서도화는 아덴을 툭 치곤 고개를 내저으며 식탁으로 향했다.

“그러는 너도 한야 형한테 꼼짝 못 하잖아.”

“……쳇.”

아덴이 불량한 표정으로 혀를 차곤 서도화를 따랐다. 누군가에게 꼼짝 못 한다는 서도화의 말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일단 맞는 말이긴 했다.

아덴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해명하듯 툭 내뱉었다.

“네 말이 맞더라고.”

아덴은 서도화가 대답이 없어도 그러려니 계속 말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그거 무슨 놈의 성자 같은 말인가 했는데, 맞는 말이더라고.”

웃는 얼굴에도 침이고 욕이고 잘만 내뱉을 줄 알았다. 아덴은 웃는다고 사람 못 패는 그런 좋은 성격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인간 셋에게는 진짜로 화를 못 내겠더라. 오히려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싶었다.

이 세계에서 생긴 새로운 동료에, 정말로 자신과 서도화를 이용하거나 속여먹을 자들이 아닌 착한 인간들이라 그런가?

한야가 화를 내도, 주상현이 징징거리며 꼬맹이 주제에 자꾸 이것저것 가르치려 들어도 서도화가 그렇듯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떨 땐 정말로 한야가 화났을까 눈치를 보게 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덴이 이렇게 눈치란 걸 볼 수 있게 된 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한야 형 정강이 힘 장난 아니라니까?”

한야가 걷어차는 거, 정말 아프다. 빠르기도 빠르고 강하기도 강하다.

한야는 분명 어디선가 무술을 수련하고 온 사람이 틀림없다고 아덴은 확신했다.

원래 항상 웃는 자가 강한 법이다. 강하니까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아덴의 말에 한야는 피식 웃으며 부엌으로 향했고 서도화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아덴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네가 한야 형의 발차기를 왜 아파해? 네가? 아덴이?”

“용사가! 히히.”

주상현이 은근슬쩍 끼어들어 두 사람의 대화에 한 마디 얹곤 사라졌다.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용사가?”

그러곤 현관에서 벗어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향했다. 서도화는 뒤따라오는 아덴의 표정이 깊게 가라앉는 걸 보지 못했다.

서도화가 방으로 들어오자 아덴도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왜.”

서도화가 왜 따라오냐는 듯 묻자 아덴은 잠시 머뭇거리다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야.”

“뭐”

“진짜 아프다고. 한야 형이 걷어차는 거. ……우리 경연으로 한참 정신없었으니까, 경연 끝나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옷을 갈아입으려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덴의 표정이 몹시 심각했다.

“나 지금 마나 못 써. 그리고 무기를 잃어버렸어. 무기야 어차피 나밖에 못 쓰니까 찾으면 되는데, 마나를 못 써. 이상해 뭔가.”

서도화의 눈이 커졌다.

아덴이 마나를 못 쓴다. 용사가 마나를 쓰지 못한다고? 왜?

서도화도 마왕 케이도 이 세계에서 마나 사용에 문제가 없었으며 쓰기 싫어도 잘만 써졌다.

“……왜?”

“모른다니까 나도. 그냥 평범한 인간이 됐어. 이런 상태로 마왕을 죽일 거면 핵도 없고 힘도 없는 지금 죽여야 해. 어떻게 할까?”

쨍그랑!

아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밖에서 갑자기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케이가 이곳에서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덴은 방문을 힐끔거리곤 엄지로 밖을 가리켰다.

“괜찮아. 마왕 새끼도 어차피 알고 있을걸? 저 자식 꼴에 마왕이랍시고 남의 마나 상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잖아.”

“……그렇겠지. 갑자기 죽이니 마니 하니까 당황한 거겠지. 그보다 지금 마나를 못 쓴다고? 원인도 모르고?”

“어.”

어떻게 마나 사용이 안 된다는 걸 저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제 몸에 이변이 생겼으면 말을 했어야지…….’

물론 말해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때 문득 서도화의 머릿속에 시스템의 말이 떠올랐다.

[플레이어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들의 신분은 이미 등록되어있습니다]

아덴과 케이의 신분 증명을 해달라는 말에 시스템은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기도 전에 김유진이 들어와 대화가 종결되었지만, 어쨌든 들었을 당시 쎄함을 느꼈었다.

이 세계에 그들의 신분이 이미 등록되어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 세계에서 태어난 적도 없던 놈들의 신분이 이미 등록되어있단 말인가?

“시스템…….”

“뭐?”

시스템과 다시 한번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겁먹고 숨어버린 놈을 끌어내는 게 먼저다.

하지만 놈은 서도화가 보상을 선택하기 전까지 나타나지 않을 테니 일단.

‘나타날 때까지 선택하지 말자.’

어차피 딱 선택지 안에서 고분고분하게 고를 생각도 없었고, 참을성도 없으니 답답하면 지가 알아서 나오겠지.

‘기껏해야 팬미팅 이후 다음 라운드 경연 전까지야.’

서도화는 심드렁하게 생각하곤 획 옷을 벗으며 아덴에게 말했다.

“일단 알겠다. 나도 한번 알아볼 테니까 일단 가서 밥 먹자.”

시스템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팬미팅과 경연에만 신경 쓸 생각이다.

* * *

팬미팅 당일.

“……괜찮겠지.”

서도화가 불안한 듯 찝찝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베네핏으로 주어진 미니 팬미팅은 경연 준비 중 잡힌 빠듯한 일정으로 많은 구성을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작은 팬미팅이라도 경연 준비와 팬미팅 준비를 같이 하라니.

아무래도 팝넷은 이 팬미팅을 그냥 작은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고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멤버들은 이 팬미팅을 이벤트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팬들과 처음으로 제대로 만나는 자리, 그리고 그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처음으로 대면하는 자리인데 이걸 어떻게 작은 이벤트라고 하겠는가?

멤버들도 직원들도 경연 준비 틈틈이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때가 다가오니 너무 불안한 것이다.

긴장한 숨을 몰아쉬는 서도화의 등과 어깨로 세 사람의 손이 올라왔다.

서도화가 뒤돌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도화야, 괜찮아.”

자신을 향해 단호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한야, 아덴, 주상현, 그리고 저 멀리 쭈뼛대는 케이가 보였다.

팬들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리에 그 누구보다 긴장하는 사람은 서도화였다.

그는 아직도 그 차가웠던 무대 위를 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따로 팬들의 반응을 본 적이 없으니 지금 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솔직히 겁이 났다.

“아, 괜찮아요.”

걱정하는 멤버들에게 서도화가 담담한 척 말했다. 멤버들은 당연하게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때 이 팬미팅을 진행하는 스태프가 다가와 말했다.

“회장 안으로 입장하실게요.”

서도화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두려움과 마주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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