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괜찮아.”
“괜찮을 거예요.”
“뭐가 걱정이야? 우리가 있는데.”
한야와 주상현, 그리고 아덴이 번갈아 가며 서도화를 북돋웠다. 그에 서도화는 걱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서 두 걸음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는 케이는 예전 음유시인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지닌 자.
아덴 일행과 전투를 치를 때 서도화는 전투력이 없음에도 상당히 성가신 인물이었다.
전투 내내 그의 연주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혹여나 끊기더라도 잊을만하면 들려와서 마족들의 걸음을 멈추고 결국 용사 일행에 의해 죽음을 맞게 했다.
곁에서 귀가 찢어지는 듯한 폭발음이 들리고, 하늘이 번쩍이며 운석이 떨어지며 곁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마족들이 쓰러져도 그는 핏발선 눈을 부릅뜬 채 손가락이 부어터지도록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래야만 자신이, 제 동료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케이는 전장에서의 서도화만 안다.
물론 이 세계로 건너와 서도화의 또 다른 면모들을 보기는 했지만 케이가 볼 수 있는 서도화의 모습은 전쟁에 마모되었는지 모든 일에 덤덤하고 또 덤덤한 모습들 뿐이었다.
그래서 요즘의 서도화를 보는 케이의 기분은 몹시 이상했다.
그렇게도 덤덤하고 정신력 강한 인간이 어둠에 잡아 먹힐까 걱정…은 안 되었지만 잡아 먹힐 것 같이 타락하고, 또 지금은 고작 하찮은 것들의 비난에 두려워한다.
‘정신력이 강한 줄 알았건만, 그저 감내하고 참아내는 것뿐이었나.’
원래부터 강한 게 아니고 그저 모든 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인가? 왜?
서도화 그는 누구에게든 사랑받는 사람이니 주상현처럼 금방 시무룩해지거나 투정을 부려도 받아줄 사람이 많을 터인데.
‘왜 고작 인간의 비난 따위에 상처받는 거지?’
케이는 서도화의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한야가 획 고개를 돌려 케이에게 손짓했다.
“케이는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저 말입니까?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자신이 저들 사이에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케이는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한야가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고 이병수가 뒤에서 등을 밀고 있었다.
“매니저 병수 형, 나를 밀지 마시죠!”
“아아, 그래, 근데 이제 슬슬 들어갈 때 되어 가지고.”
나름 이 세계의 인간에게 하는 것치곤 매섭게 말했으나 이병수는 이제 익숙해져서 그냥 하하 웃으며 끝까지 케이의 등을 밀어 멤버들 사이에 붙여놓았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한야와 주상현의 손이 케이의 몸을 감쌌다.
케이의 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56번 그룹, 들어가겠습니다.”
“네, ……아, 제가 밀고 들어갈까요? 넵.”
직접 문을 열어달라는 제작진의 눈치에 주상현이 서둘러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미니 팬미팅 회장의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아.”
주상현이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회장 안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와아아아악!!!!!”
바깥에서 대기 중인 멤버들마저 움찔할 정도로 큰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상현은 놀란 듯 상체를 움츠리다 이내 긴장을 내려놓곤 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주상현이 회장 안에서 큰 소리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대답하듯 더 크게 들려오는 환호성에 서도화는 저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췄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팬미팅에 임하려고 했는데.
환호성을 듣는 순간 또 4라운드 무대 위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며 간간이 절규하듯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들려오던 무대 위.
분명 문제는 해결되었고 입장문에 대한 반응도 그럭저럭 좋았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참, 저 회장 안으로 들어가는 게 두려웠다.
그러나 서도화는 제 뜻과는 상관없이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너 안 움직이고 뭐 하냐? 가자.”
순서상 서도화의 앞에 선 아덴이 서도화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선 한야가 케이와 한데 묶어 서도화를 밀어댔다.
“아니 그냥 내가 걸어도-”
“우아아악!!!!”
끌어주고 밀어주는 멤버들 사이에 껴서 회장 안으로 들어가던 서도화는 다시 한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서도화뿐만 아니라 뒤에서 들어오던 케이와 한야도 걸음을 멈추었다.
“도화야!”
“케이! 케이! 여기!”
“도화! 한야야!!!”
팬들이 큰 소리로 서도화 그리고 멤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맞아주었다.
이들 중 이러한 상황에 익숙한 주상현과 영웅 퍼레이드를 수십 번은 한 아덴만이 침착하게, 아니 당연스럽게 웃으며 손 흔들 수 있었다.
“들어가자.”
한야는 생각보다 큰 소리에 잠시 멍하니 있다 다시 케이와 서도화를 밀어 단상 위로 올려보냈다.
여전히 서도화와 케이는 많이 놀란 듯 멍한 표정이었다.
한편 그런 그들을 보는 팬들은 울컥 치밀어올라오는 속상함에 더욱 크게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참 마음이 찡하고 복잡미묘했다.
‘도화야…….’
서도화의 저 모습을 보라.
얼마나 그때 그 사건의 일이 트라우마가 됐으면 그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연신 레전드 공연만 만들었던 멤버가 저렇게 굳어 있는 걸까.
안쓰럽고 미안했다.
서도화가 저렇게 놀라 굳어있는 게 전부 자신들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팬들도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서도화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 때 팬들끼리 기다 아니다를 따지며 싸우던 일.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폭로 글이 진실이라고 믿고 데뷔하기 전에 서도화를 탈퇴시켜야 한다며 연신 글을 게시하던 사람들.
이때다 싶어 물어뜯으며 사건을 더 키운 다른 그룹의 팬들과 렉카 너튜버들.
이들 사이에 자칫 피해자일 수도 있는 서도화에 대한 배려는 하나도 없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빛나던 그가 2주간 입에 담지도 못할 비난을 받고 무대에 서서도 고스란히 외면받아야 했었다.
분명 다시 팬들 앞에 서기까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떤 멤버에게보다도 더 크게 외칠 수밖에 없다.
팬들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고 안심시켜주고 싶었다.
이미 서도화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함에 우는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놀라 움직이지도 못하던 서도화는 막상 단상에 올라와 팬들을 두리번거리더니 팬들이 익히 아는 그 특유의 덤덤한 얼굴로 웃었다.
그러곤 당당히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서도화는 막상 회장에 들어오니 불안함이 싹 가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보이는 팬들이 지나치게 비장한 얼굴로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며 비장하게 환호를 보내고 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척 호의적인 건 알겠다.
막상 마주하니 딱히 두려워할 필요 없었다.
서도화의 밝아진 표정을 확인한 한야가 마이크를 들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나, 둘, 셋, 저희는 56번 그룹입니다!”
멤버들의 단체 인사에 다시 한번 크게 환호성이 들려왔다.
기다렸어요. 보고 싶었어요.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섞이지 않고 들리는 목소리들.
그 소리를 듣는 멤버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한야가 말했다.
“오늘 저희의 미니 팬미팅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주 보고 대화 나누는 건 처음인데 우선 저희 멤버들 한 명씩 인사드리고 시작하도록 할까요?”
한야는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살피곤 팬들이 자신을 주목하도록 손을 들었다.
“그럼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56번의 리더 한야입니다. 오늘 이렇게 팬 여러분들 덕분에 베네핏으로 미니 팬미팅도 하게 되고, 무척 기쁘고 또 기대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도화는 팬들의 소리에 맞춰 박수를 치며 다음 자기 소개할 멤버를 불안스레 쳐다보았다.
일단 한야는 역시 리더답게 모범적인 자기소개를 했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인데.’
다음 순서가 막말의 대가, 시비의 용사 아덴이었다.
어이~ 나는 아덴이다. 앞으로 우린 동료들이니까 한번 잘 지내보자.
이런 소년만화에서 나오는 건들건들한 대사라도 치면 어쩌나 너무 걱정되어서 서도화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그 걱정되고 불안한 와중에도 한야와 함께 주입식 교육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정신없어도 교육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었다.
‘인사는 어떻게 할 거야? 최대한 예의 바르게 해야 해.’
라는 서도화의 말에 아덴은 입술을 삐죽이며 툭 말했다.
‘그 사람들이 우리 동료야?’
‘동료? 동료…라기보단 우리를 지지해주시는 감사하고 소중한 분들?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야.’
정답을 이야기했지만 아덴은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그 사람들은 너 비난한 놈들이랑 다른 사람들인가?’
‘그래…… 아마도? 아무튼 귀한 분들이니까 예의 바르게 해야 해. 자, 이 종이에다가 너 어떻게 인사할 건지 한번 써보자.’
자신을 향해 종이를 들이미는 서도화를 보며 아덴은 여전히 잘 모르겠는 얼굴을 했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 서도화가 외면 받던 모습을 봤기 때문에 그런 듯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단상에서 팬들을 보고 있는 아덴은 경계심을 풀고 활짝 웃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저 표정을 보아 이번만큼은 제2세계에서처럼 큰 돌발행동 없이 A4용지에 적은 대로 인사해줄 생각인 모양이다.
아덴이 싱글벙글 웃으며 마이크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