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좋은 날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덴입니다.”
마치 어떤 꾀를 부리듯 싱글벙글 웃던 아덴은 생각보다 평범한 인사를 꺼냈다.
눈앞에 이들 중 서도화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던 자들이 있었다. 아덴은 무대 위 어둠 속에서도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무리 서도화의 부탁이라도 동료를 비난한 자의 앞에서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싶지 않았다.
누명이 풀리자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꿔 환호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
“오랜만에 여러분들의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요. 오늘 하루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아덴은 서도화의 말대로 평범히 인사했다.
아이돌은 서도화의 꿈.
동료의 꿈을 망치기도 싫고 무엇보다 팬들 중 끝까지 서도화를 믿고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람은 원래 여론에 휩쓸리기 마련.
용사들이 마왕 토벌을 시작하며 백성들에 대한 마족들의 핍박이 심해지자 한때 백성들은 영웅으로 추대하던 용사들을 비난했다.
용사들이 마왕과 마족을 토벌하려하는 바람에 인간들의 세계가 초토화되고 있다고.
그러다 마족 지배자를 하나 하나씩 쓰러트리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아덴 일행을 추대했다.
아덴 일행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바뀐 그들의 태도를 받아들였다.
팬들과 어메스의 상황은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일 뿐이었다.
여론이 그러하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이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용사로서든, 아이돌로서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이들의 자세니까.
그래서 아덴은 의구심을 참고 그냥 서도화를 믿어준 이들에게 인사했다.
아직 아덴은 상처 준 이들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떠들어야 하는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했지만 서도화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으로 된 거다.
이 세계는 서도화의 세계. 아덴의 세계가 아니니까.
‘오, 평범해.’
서도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 말했을 때 하도 불만이 많아 보여서 실전에 돌발행동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요즘에는 이상하게 케이보다 아덴이 더 불안하다.
핵이 없는 케이,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그는 이제 어느 정도 다루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덴, 그는 제2세계에 있을 때부터 종잡을 수 없는 생각과 인성을 가진 놈이라 언제 어디서 돌발적으로 행동할지 모른다.
서도화는 알까?
오늘도 그렇고 아덴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별일 없었던 건 오로지 서도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는 것을.
‘되도록 팬들에게도 정을 붙이면 좋을 텐데.’
지금의 아덴에게 팬들은 자신을 향해 열광하는 백성들과 다름없는 자들이었으니까.
자신에 대한 애정이 그들과 어떻게 다른지 아직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걸 이해하게 되면 팬들도 동료만큼 좋아하게 되겠지.’
어쨌든 오늘은 평범히 행동하며 넘어가 줄 생각인가보다.
평소보다 웃는 게 조금 무섭고 말수도 좀, 아니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언뜻 보면 그냥 팬들과 처음 대면하는 자리에 긴장한 것으로 보인다.
‘……이게 맞나?’
서도화 본인도 처음으로 팬들과 가까이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처음 보는 자리.
가장 긴장해야 할 때 남 걱정이나 하고 있는 이 상황이 맞나?
조금 슬퍼질 뻔했던 서도화는 자신을 툭 치는 아덴의 신호에 서둘러 마이크를 들었다.
이제 그가 말할 차례였다.
마이크를 든 서도화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담담해지자.
팬들은 분명 환호해줄 것이다. 처음 이 회장에 들어왔을 때처럼.
그리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 순간 회장 한가득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도화야!!!”
“음유, 음유시이이인!!!!”
운을 떼려던 서도화가 멈칫하며 ‘음유시인’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향해 열정적으로 소리치는 팬 한 명, 그 사람과 같이 환호하는 사람들이 퍼져나가듯 시야에 들어왔다. 회장의 모두가 서도화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진짜 퍼레이드 같네. 음유시인이라니.”
마이크를 내린 채 중얼거리는 아덴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그는 깜짝 놀랐다.
멤버 하나하나가 인사를 하고 있었지만 서도화가 운을 뗐을 때의 환호성이 제일 컸다.
비단 서도화의 인기가 제일 많아서가 아니다.
이 커다란 환호성은 고생했다고, 미안하다고, 네가 뭘 잘못했냐고, 고생한 서도화에게 보내는 위로와 같았다.
그 순간 서도화는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오해는 다 풀렸고 계속 무대에 서도 되겠구나.
억울하게 무대에 서지 못하고 외면 받는 일은 이제 진짜로 없겠구나.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될까 봐 그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네…….”
서도화는 말문이 막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로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있었을까?
“그대는 참 연약한 사람이로구나.”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케이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말하며 서도화의 등을 툭 쳤다.
그제야 서도화는 정신 차리고 말을 이었다.
“네, 죄송합니다. 56번 메인보컬 서도화입니다.”
“도화 형이 여러분 환호성이 엄청 커서 당황했나 보다~”
이때다 싶어 끼어드는 주상현의 말에 팬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서도화는 그제야 제대로 된 미소를 되찾았다.
“데뷔하기도 전에 여러모로 걱정을 많이 끼쳐드렸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크게 환영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도화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늘 그간 걱정하셨던 것들 다 잊으실 수 있도록 저희가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으니까요. 즐겁게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대로 말했는지도 잘 몰랐다. 서도화는 억지로 덤덤한 척하는 게 고스란히 티 나는 말투로 말하고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다.
서도화 다음으론 케이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는 서도화를 보며 훗, 웃곤 거침없이 위풍당당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케이입니다. 팀에서…….”
그러다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가…지?”
“가지? 케이 발음 꼬였어?”
“이, 이건 잘 말하려다가!”
“아니, 그냥 본 거야. 너 뭐 말하려나 싶어서?”
아덴은 농담처럼 말하곤 눈을 부릅뜬 채 케이를 쳐다보았다. 아덴의 행동과 케이의 당황한 표정에 팬들이 웃기 시작했다.
아덴은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고 케이는 진짜로 당황한 것이었지만 역시 진지한 멤버들 사이 개그가 되는 놈들은 케이와 아덴뿐이었다.
케이는 아덴을 성가시다는 듯 슬쩍 밀어버리곤 다시 당당히 말했다.
“이 팀에서 아름다운 미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치겠다.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쳤다. 돌발행동은 아덴이 아니고 여기서 나왔다.
인사부터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아덴이랑 둘이 따로 불러서 A4용지에 자기소개를 써보기까지 했는데 실전이 되니 싸그리 무시하고 제 식대로 소개를 했다.
“아까 당황하던 거랑 자기소개할 때랑 표정 너무 다르지 않아요?”
주상현이 어이없어하며 케이에게 말했으나 케이는 뾰로통하게 주상현을 한번 보곤 표정을 바꿔 미소 지었다.
케이의 당당한 말에 웅성거리던 팬들이 이내 ‘맞아!’, ‘아름답다~’ 등등 케이에게 말을 맞추며 호응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들은 저 말이 장난 혹은 컨셉인 줄 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케이를 보라. 모처럼 듣는 칭송 비스무리한 말들에 케이의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서도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케이의 옆구리를 툭 쳤다.
“감사하다고 해야지?”
“아아!”
케이가 냉큼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감사하네! 니다……. 저의 미모를 알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니다?”
원맨쇼가 따로 없다. 결국 조용히 인사를 듣던 서도화가 마이크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얘가 긴장해서 그래요.”
서도화의 말에 팬 석에서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케이는 그래도 기분이 무척 좋아졌는지 활짝 웃으며 주상현에게 바통을 넘겼다.
팀의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녀석 답게 활짝 웃으니 잘생기기는 정말 잘생겼다.
방송에 나가야 하는 팬미팅인 만큼 스포일러 방지 차 팬들에게 촬영을 금지하지 않았더라면 셔터음 여러 번 들렸을 듯한 미소였다.
드디어 마지막 순서, 주상현.
“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팀의 메인댄서이자 귀여운 막내 주상현입니다. 오랜만일 수도 있고 처음 뵙는 자리일 수도 있겠네요. 정말 반갑고, 오늘 즐겁게 놀다 가요!”
“네에!”
주상현은 능숙하게 인사를 마쳤고 바로 준비한 코너가 시작되었다.
“저희가 처음으로 준비한 코너는요. 스트리밍 공연으로만 많이 찾아뵀지 이렇게 대화해보는 건 처음이잖아요.”
한야가 설명할 동안 멤버들이 제작진이 들고 오는 판넬을 받아 가져왔다.
“처음인 만큼 서로 모르는 부분이 아직 많다고 생각해서 가장 먼저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판넬이 받침대에 세워졌다.
팬미팅이 확정되고 밀리언 아이돌 측에서 미리 팬들에게 질문을 받아두었다.
한참 그 사건으로 논란이 될 때 질문을 받았던 터라 서도화에 대한 욕과 탈퇴 요구성 글들이 쏟아지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멤버 전원에게 골고루 질문이 들어왔다.
“사전에 밀리언 아이돌 홈페이지를 통해 여러 질문들을 받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분들이 질문해주신 질문 몇 가지를 가져와 봤어요.”
한야가 판넬의 왼쪽에서 진행하고 서도화가 오른쪽에 자리해 그를 보조했다.
“그 중 첫 번째.”
한야의 말에 맞춰 서도화가 스티커를 뜯었다.
[멤버들과의 첫 만남 혹은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아하!”
“아아! 첫인상!”
“첫 만남?”
멤버들이 질문에 맞춰 리액션했다. 질문을 본 순간 서도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 간단한 질문조차 아덴과 케이를 생각하며 머리를 팽팽 돌려 고민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덴과의 첫 만남 때는 모험가 길드 보상 차지를 놓고 아덴이 시비를 걸어 살벌하게 칼부림이 날 뻔했고, 케이는 마왕이다. 서로 각 잡고 죽이려 든 것이 첫 만남이랄까.
‘…뭐라고 하냐.’
또 쟤네는 뭐라고 할까. 아덴이야 서도화의 말에 맞춰 대답해주겠지만 케이는 정말 걱정이었다.
‘서로를 죽이려 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죽일 것이다.’
이딴 말 하면 큰일일 텐데.
이런 서도화의 걱정을 알 리 없는 주상현이 그를 가리켰다.
“일단 도화 형부터 할까요? 도화 형은 아덴 형이랑 케이 형이랑 어릴 때부터 친구여서 할 말 많을 것 같아요.”
“아, 그렇지.”
할 말은 많은데 할 수가 없네.
서도화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그러곤 말했다.
그냥 적당히 진심을 버무려 말할 생각이다.
“아덴은……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진짜로 뭐 저런 친구가 다 있지? 싶었어요. 처음에.”
판타지스러운 부분을 빼고 그냥 솔직하게 내뱉는 서도화의 말에 아덴이 충격받았다는 듯 입을 떠억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