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16화 (116/270)

제116화

“아하 음유시인~. 그때 엔딩요정 때 형이 포스트잇에 썼잖아요.”

“아 그랬었지.”

경험이 부족한 멤버들로 인해 언젠가부터 추임새의 달인이 된 주상현이 팬들의 질문을 보충해주었다.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곤 짧게 고민했다.

팬들은 그냥 노래를 잘 불러서 음유시인이겠거니 생각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근데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대충은 알고 있긴 한데 구체적으로는 몰라서.”

“저도요. 저는 도화랑 연습생 같이 하면서 음유시인이라는 별명이 있는지 몰랐거든요.”

주상현도 한야도 그냥 게임 속 직업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똑같이 얼버무리듯 ‘게임 속 직업이었어요’라고 말하면 필연적으로 다음엔 ‘무슨 게임하세요?’라는 질문이 따라붙겠지?

그러면 더 골치가 아파진다.

고민 끝에 서도화가 말했다.

“일단 제가 왜 음유시인이냐 하면요. 이름은 잘 기억 안 나는데 예전에 하던 게임 속 직업이 음유시인이었기도 하고, 항상 노래 부르고 다녔어서 자연스럽게.”

“하하핫! 자연스럽게 된 별명치곤 조금 오글거리지 않아요? 음유시인. 친구끼리 선뜻 말하기엔 쉽지 않은데? 처음에 어쩌다 불렸는지 되게 궁금하다. 처음에 어떻게 하다가 그런 거예요?”

항상 눈치 빠르던 주상현이 이번에는 도와주질 않는다.

서도화는 이번에도 겉으론 덤덤히 말했다.

“그게 왜 제 별명이 되었는지는…….”

그러곤 당당하게 아덴과 케이를 가리켰다.

“얘네들이 말해줄 거예요.”

“뭐?”

“나와 아덴?”

서도화가 당황하는 아덴과 케이에게 물었다.

“너희는 왜 날 음유시인으로 부르냐?”

난 몰라. 너네가 그렇게 불렀으니 너네가 해명해.

입만 열면 튀어나와야 하는 거짓말에 지친 서도화가 대답을 아덴과 케이에게 떠넘겼다.

아덴은 어이없어 눈동자를 또르르 굴리다 케이를 가리켰다.

“주로 얘가 그렇게 많이 불러요.”

“나, 내가!”

케이가 놀라 말을 더듬었다. 음유시인도 용사도 대답을 회피해 결국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사람은 시종일관 조용했던 케이였다.

수건 돌리기를 하듯 케이에게 질문을 넘기는 용사 파티 콤비를 보는 팬들이 즐겁게 웃었다.

케이는 당황한 와중에도 신중하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용사가 얄밉기는 하지만 말에 틀린 점이 없었다.

이 세계에 돌아온 서도화를 처음으로 ‘음유시인’이라 부른 건 케이였다. 심지어 아덴이 꼬박꼬박 ‘도화’라고 부르는 동안에도 케이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을 제외하곤 꿋꿋이 ‘음유시인’이라 불렀지 않은가.

아씨, 왜 그랬지?

사실 ‘음유시인’이란 걸 별명으로 치부해버린 건 서도화 본인이었지만 케이가 줄곧 시도 때도 없이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니 마지못해 별명이라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그럼 케이는 왜 서도화를 음유시인으로 불렀을까?

당연히 직업이 음유시인이고 늘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지만 이걸 이곳의 사람들에게 말해선 안 된다는 걸 서도화의 숱한 협박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그냥 대답하지 말까?

그러고 보면 아무리 이곳에 신세지고 있다고 해도 왜 저들의 말에 꼼짝도 못하고 따라야 하지?

내가 이 단상에 서서 인간들에게 인사하고 질문에 대답하는 건 어디까지나 협조이지 복종이 아닌데.

그러나 케이는 이 상황이 부조리하다 생각하면서도 한켠으론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기엔 호응하며 기대 중인 눈빛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던 마족 수하와 닮아 있었고 무엇보다 싱글벙글 웃는 한야와 서도화가 눈에 걸렸다.

결국 케이는 마음에도 없는 진실 아닌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했다.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부릅니다. 모험을 좋아하고 또 노래를 평생의 업으로 삼을 사람에게 그보다 음유시인보다 어울릴 별명이 있겠습니까?”

“와, 와아…….”

참으로 반응하기 어려운 진지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이를 서도화가 이어받아 대충 얼버무렸다.

“제가 항상 노래를 좀 성가실 정도로 부르고 다녔어요. 그때 마침 게임 속 직업이 음유시인이었고 뭐 그래서 겸사겸사 그렇게 부르게 된 것 같아요.”

이쯤 되면 케이가 얼굴은 아름답지만 극한의 컨셉을 가진 멤버라는 걸 팬들도 눈치챘을 거다.

아덴도 눈치껏 서도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케이가 그렇게 부르길래 어느새 음유시인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근데 사실 저는 별명보다 이름을 더 많이 불러요.”

“그런데 여러분, 도화한테 잘 어울리는 별명이지 않나요?”

한야의 말에 팬들이 일제히 수긍의 대답을 했다.

서도화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별명은 저만 있는 게 아니지 않아요? 왜 다들 조용하지?”

나만 팬들에게 이 오그라드는 별명으로 불릴 수는 없지.

서도화의 말에 한야가 ‘아’ 탄성을 내곤 서도화, 아덴, 케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렇게 세 명 동갑내기끼리 별명이 있더라고요. 도화는 음유시인.”

“아덴은 용사, 케이는 마왕. 뭐 이런 어릴 때 저희끼리 만들었던 별명이 있어요. 그때가 아마… 쓰읍, 중학교 2학년 때였지 아마?”

서도화가 능글맞게 거짓말을 했다.

“이 친구들이 가끔 한국 들어오면 게임하고 놀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그럼 용사나 마왕도 게임 속 직업이에요?”

“직업은 아니고, 그냥 우리들끼리 그렇게 부르고 논 거지 뭐.”

서도화는 서둘러 얼버무리고 판넬로 돌아갔다.

어차피 거짓으로 대답해야 하는 부분인데 굳이 길게 끌고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도화는 들려오는 어떤 팬의 질문에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른 멤버 별명은 뭐예요?”

팬들이 멤버들의 대화에 주목하고 있었기에 질문이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저희 별명이요?”

주상현이 자신과 한야를 가리켰다. 질문을 한 팬이 ‘네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저희 별명은…….”

주상현의 표정이 미미하게 떨떠름해졌다. 막내, 광대, 마왕의 수하. 멤버들이 지어준 이상하기 그지없는 별명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아덴이 주상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유시인, 마왕, 용사 이런 거면-”

서도화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저쪽 세계에서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단어들인데 여기선 왜 이렇게 듣기만 해도 민망하고 어색한지 모를 일이다.

아덴은 그런 서도화를 발견하지 못한 채 말했다.

“너 그거 하면 되잖아.”

“그거요? 그게 뭔데요?”

“드래곤 헌터.”

“…….”

생각지도 못한 말에 팬들은 웃음을 잃었고 주상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갑자기 웬 드래곤 헌터?

주상현조차 영문을 모르는 듯하자 아덴이 설명했다.

“너 요즘 게임하잖아. 드래곤 헌터 됐다며.”

“……아아! 그거 기억하고 있었구나. 혀엉…….”

주상현은 감동 먹은 듯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아덴에게 달라붙었고 아덴은 뿌듯하게 씨익 웃었다.

서도화는 질색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글거려 죽겠어.”

그가 제 마음을 대놓고 말하자 팬들도 크게 공감했는지 웃으며 드문드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주상현과 아덴은 진지했다.

누가 보면 동갑내기 세 사람이 순진한 막내를 이상한 물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서도화는 여전히 질색한 인상을 펴지 못하며 두 사람에게서 슬그머니 떨어졌다.

그러자 서도화의 등 뒤로 누군가가 부딪혔다. 한야였다. 서도화는 호소하듯 말했다.

“형, 우리 멤버들 너무 대화가 이상해지는데, 아니 얼른 다음으로 넘어가야…….”

“응?”

한야는 서도화가 질색하는 와중에도 멤버 전원이 귀엽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서도화를 내려다보았다.

한야는 상당히 어른스러운 미소를 띄운 채 자신에게 부딪힌 서도화에게 말했다.

“내 별명은? 나도 지어줘.”

하아. 서도화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기어이 음유시인, 마왕 이런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한야까지 이 세계에 끌어들이고야 말았다.

주상현의 별명 짓기를 보람차게 끝낸 아덴이 한야의 말을 듣곤 별 고민 없이 말했다.

“그럼 형이 무도가 해요.”

“무도가?”

“발차기가 수준급-”

“아아, 그만그만!”

서도화가 서둘러 손을 내젓곤 급하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파티장 어때요! 용사 파티장. 이 팀 대장이니까.”

“아아, 파티장. 좋네. 그런데 마왕도 용사 파티니?”

“그, 그만.”

대화를 듣다듣다 결국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한 서도화가 손을 들어 멤버들을 말렸다.

“우리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해요. 자자, 얼른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팬들의 표정을 보라. 재밌어하지만 한편으론 오글거려 미치겠다는 표정이다.

한 10년 전 하이틴 드라마를 다시 볼 때나 지을 표정을 어메스의 대화를 보며 짓는다.

다행히 한야도 이를 알고 있었는지 자신의 별명까지 만든 후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 이후 차례차례 질문과 대답들이 이어졌다.

방영된 밀리언 아이돌을 봤냐는 질문엔 워낙 경연 준비, 팬미팅 준비가 바빠서 1, 2화밖엔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경연 준비 보단 폭로 사건에 대처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때문에 아직 방송 반응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멤버들은 그렇게 대답했다.

오늘 팬미팅이 끝나면 몰아서 볼 계획이었다.

그리고 숙소에서 각 살림마다 담당이 있냐는 말에 아덴이 요리를 잘하므로 아덴은 요리를 전담하고 있으며 그 외엔 각자 돌아가며 한다, 또 스스로 잘생긴 걸 아냐는 질문엔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모든 질문과 대답이 끝이 났을 때 한야가 팬들에게 물었다.

“그럼 저희도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경연이 끝나고 저희가 데뷔하게 된다면 혹시 우리 멤버들이 해줬으면 하는 컨텐츠가 있나요?”

서도화가 그의 말에 덧붙여 말했다.

“만약 저희가 밀리언 아이돌에서 우승을 한다! 그럼 우리들도 예능 촬영 같은 걸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렇게 되면 보고 싶은 예능 컨텐츠 있으세요?”

이번에 베네핏을 받은 세 그룹이 팬들에게 공통으로 할 질문이었다.

마지막 경연만을 남겨두고 있는 지금, 유력한 우승 후보들 중 우승자가 나온다면 이 질문에 나온 대답들을 참고하여 예능 컨텐츠가 제작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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