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17화 (117/270)

제117화

보고 싶은 컨텐츠가 있냐는 한야의 질문에 팬들이 소리 내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멤버들은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팬들이 하는 말을 하나라도 캐치하기 위해 집중했다.

소규모 홀에서 진행했다고는 해도 총 200명의 팬들이 꽉꽉 들어차 있는 공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번에 들려왔다.

이들이 데뷔하게 된다면 방송에서 해주었으면 하는 일들이 무척 많았다.

그 갈망만큼이나 팬들의 목소리도 커져 갔다.

서도화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대답들이 한데 섞여서 귀로 들어오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슨 말이지?’

들어도 들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팬 한 명 한 명의 입 모양을 관찰해도 모르겠다.

결국 조금만 천천히 말해달라 부탁하기 위해 서도화가 입을 열려는 순간 케이가 먼저 마이크를 들고 팬들에게 말했다.

“캠핑 말입니까?”

“……캠핑?”

케이는 입에서 살짝 마이크를 떼곤 서도화에게 작게 물었다.

“캠핑이 무엇인가?”

아, 그렇지. 마왕은 귀가 좋았지.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이거 엿듣기 외에도 이후 써먹을 곳이 많겠는데?

“아 캠핑이란 건 야외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노는 그런 활동이야.”

“너희 용사 일행이 평소 하던 짓이군. 인간에겐 노숙이 노는 것인가?”

캠핑에 대한 개념은 나중에 팬미팅이 끝난 후 이해시키도록 하자. 서도화는 케이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대답 대신 다른 말을 속삭였다.

“너는 팬분들이 하는 말이 또박또박 잘 들리냐?”

“들리다마다. 너무 잘 들어서 탈인 귀다. 모든 이의 목소리가 너무나 잘 들리는군. 참 성가신 능력-”

“입꼬리나 내리고 성가시다고 해라.”

하여튼 지 자랑할 때는 스멀스멀 잘도 웃는다. 서도화의 말에 케이가 뚝 말을 멈추곤 입꼬리를 내렸다.

“매번 말을 끊어먹을 거면 묻기는 왜 묻는가?”

궁금한 걸 물은 거지 마왕의 자랑 따위를 들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지.

서도화는 뾰로통해진 케이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마이크 들고 팬들이 무슨 말 하는지 읊어줘. 부탁한다.”

“부탁이라……. 협조하지.”

왜인지 다시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 케이가 대답하곤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댄 채 말했다.

“담력체험.”

케이가 들리는 말을 그대로 내뱉자 서도화가 얼른 이를 받았다.

“담력체험? 와, 여러분 무서운 거 좋아하세요?”

서도화의 물음에 팬들은 좋아한다, 싫어한다, 잘 본다, 별로다 등등 각각의 대답을 꺼내놓았다.

멤버들 또한 이에 대한 의견을 꺼내놓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으 저는 싫어요. 무거운 거. 꿈자리 사나울 것 같아.”

“맞아. 상현이는 무서운 거 싫어하는 모양이더라?”

“네, 완전 못 봐요. 예전에 담력체험 하는 예능 나가서도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었잖아요.”

이렇게.

주상현이 과거 예능 속 고개만 숙이고 있던 자신을 흉내 내며 덜덜 떠는 척했다.

유니드가 출연했던 예능 방송을 봤던 팬들이 그런 주상현의 모습에 웃기 시작했다.

한야가 팬들을 보며 말했다.

“저도 예전에 상현이 방송하는 거 봤는데, 정말 싫어하더라고요. 공포 영화 같은 거도 못 보고 그런 이야기 하는 자체를 못 견디는 스타일 아니야?”

“맞아요. 대신 번지점프나 그런 건 잘해요. 막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그런 거.”

주상현의 말에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이번엔 주상현이 아닌 서도화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서도화가 아덴의 시선을 느끼곤 말했다.

“저는… 번지점프가 더 무서워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그래? 도화가 고소공포증이 있었나?”

“형 담력체험은 안 무서워요?”

“그건 별로 안 무서워. 놀이기구 그런 건 좀 많이 무서워하는데.”

용사 파티 시절 절벽 등에서 숨 쉬듯 떨어지고 날아다녔다.

그게 말이 되는가.

용사들에게나 그게 별거 아닌 일이지 서도화에겐 매번 고역이었다.

그나마 여정의 중반부턴 거인 동료 둔투프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들쳐업어 줘서 눈만 감고 있으면 되었지만, 처음으로 절벽에서 안전 장비도 없이 추락하던 그 날을 서도화는 잊지 못한다.

떨어지기를 겁내며 머뭇거리는 서도화를 아덴이 심드렁하게 코웃음 치며 그냥 밀어버렸다.

물론 절벽 아래서 기다리던 하이넬이 바람 마법을 이용해 무사히 착지하게 해주었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절벽에서 추락했던 그 기억 덕에 서도화는 아직도 높은 곳을 무서워했다.

‘원래는 놀이기구도 어렵지 않게 잘 타곤 했었는데.’

이게 다 아덴 저놈 때문이다.

그래서 서도화는 지금 좀 걱정되었다. 번지점프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면 진짜로 언젠가 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심지어 좀 옛스럽긴 해도 예능 단골 소재 아닌가.

그런 날이 안 오기를 바라지만 어째 한 번쯤은 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서도화는 빠르게 화제를 바꾸었다.

“다른 멤버들은 어때요? 담력체험 무서우신 분?”

서도화의 물음에 주상현이 고개를 획획 돌리며 멤버들을 살폈다. 그러곤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섰다.

“와 무서워하는 거 저밖에 없어요? 진짜로? 도화 형은 안 무섭다고 말했고 한야 형이나, 케이 형도 진짜 안 무서워요?”

주상현은 농담이라도 아덴에게는 안 무서운지 안 물어봤다. 평소 아덴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덴은 그 어떤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어떤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아덴의 별거 아니라는 듯한 심드렁하고 무덤덤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상현은 그 모습에 늘 안심하고 긴장을 풀곤 했었다.

귀신 따위는커녕 이 세상에 그가 무서워하는 게 있을까? 주상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아덴의 대답은 주상현의 생각과 같았다.

“난 전혀 안 무서워. 어차피 실제로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만약에 시, 실제로 있으면 어떡해요…….”

주상현이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아덴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그런 거 안 믿어.”

서도화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아덴은 눈앞에 그런 게 나타나도 눈 한번 깜빡 안 하고 검부터 들이밀 녀석이다.

피투성이의 귀신보다도 더 흉측한 인간의 모습들을 아덴은 참 많이 봐왔으니.

주상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한야에게로 돌렸다.

한야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공포 영화 같은 건 잘 보진 못해도 크게 무섭지는 않아.”

“그죠! 공포 영화 너무 무섭지 않아요? 너무 무섭게 연출을-”

“재미가 없더라고. 하하.”

“……네?”

주상현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팬들은 웃었고 한야는 여전히 다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미없지 않아? 사람들 죽고 그런 거.”

“아…….”

한야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알 수 있다. 이건 결코 센 척이 아니고 진짜로 공포 영화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도화는 이번에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형도 공포체험 잘할 거야. 아마.”

서도화와 한야가 데스티니 연습생이었던 시절, 연습생들과 직원들이 저녁 늦게 시사실에 모여 공포영화를 본 적 있었다.

그때 한야는 예의상 그 자리에 있긴 했지만 꽤 거북한 인상을 했을 뿐, 단 한 번도 놀라지 않았다.

“한야 형은 아마 귀신이 나타나도 싱긋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물어볼 것 같지 않아?”

“그건 그렇네요.”

주상현은 곧바로 수긍하곤 케이를 바라보았다.

주상현이 생각하기에 자신과 같이 은근히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린 형이었다.

“형은요? 형은 진짜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케이는 서도화에게 전달할 팬들의 의견을 머릿속으로 되뇌고 있다 주상현을 쳐다보았다.

“나 말인가?”

“……와, 저 형도 진짜 안 무서운가 봐.”

케이는 그 무슨 어이없는 말이냐는 듯 주상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연했다. 제2세계에선 귀신보다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가 귀신이 왜 무섭겠는가.

케이는 주상현이 이해하기 쉽도록 대답해주었다.

“귀신은 무섭지 않아. 산 자가 아니지 않은가.”

그때 팬들 사이에 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도화가 그들을 힐끔 보았다. 아마 케이의 말투 때문이리라.

서도화가 말했다.

“얘가 한국어를 사극으로 배웠어요. 그래서 가끔 말투가 이런데 귀엽죠?”

“네에!”

그래… 그냥 너는 편하게 말해라.

어차피 저 말투는 안 고쳐질 것 같고.

이곳에서의 촬영분은 방송으로 나갈 텐데 사람들에게 억울하게 말투로 비아냥 당하는 것보단 억지로라도 이유를 만드는 게 나았다.

케이는 서도화를 슬쩍 보곤 다시 말을 이었다.

“산 자가 아닌데 왜 무서운가.”

“산 사람이 아니니까 무서운 거 아니에요? 으으!”

주상현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케이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산 자가 더 무섭다. 산 사람이 더 잔혹해.”

“……이것 봐요. 이 팀에 겁쟁이는 나밖에 없다니까.”

결국 주상현이 스스로를 겁쟁이라고 칭하며 이 토크는 마무리되었다.

그 이후 몇 가지 의견이 더 나왔다.

학교 컨셉 예능, 미니드라마, 방탈출 등등. 만약 어메스가 우승하게 된다면 이 의견에 맞춰 방송이 제작될 것이다.

약 한 시간 반, 사인이 적힌 멤버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건 퀴즈 게임 그리고 팬들과 함께한 게임 코너 등등 멤버들은 여러 가지 코너들을 진행했다.

길 줄만 알았던 2시간가량의 팬미팅은 코너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담아 진행하다 보니 무척 빠르게 흘러갔다.

팬미팅의 후반부, 어느새 단상에서 내려와 팬들과 거리를 좁혔던 멤버들이 다시 단상으로 향했다.

“여러분 이제 저희가-”

“아아!”

한야가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팬들에게서 아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야가 말을 멈추고 웃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팬미팅이 끝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끝내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아직 저희 30분이나 남았어요.”

한야가 팬들에게 말하는 사이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단상 위의 소품들을 치웠다.

“다음은요. 저희가 팬미팅을 진행하기 전에 팬 여러분께 질문 외에도 앙케이트를 했었죠.”

56번의 공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는 무엇인가? 라는 내용의 앙케트였다.

“그중 1위와 2위를 했던 공연을 지금 이곳에서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팬들이 크게 웅성이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로? 여기서 그 공연들을 보여준다고?

아직 무슨 곡이 1, 2위를 했는지 공개되진 않았지만 팬들이 동요하기엔 충분했다.

어떤 곡이든 이 작은 단상에선 보여주기 힘들 정도로 스케일이 큰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은 이들을 도와줄 댄서들도 없다.

그들의 동요에 대답하듯 한야가 민망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물론 여기 천장이 좀 낮아서 좀 규모를 줄여서 하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천장 부서지면 안 되니까 좀 사려서 하기는 해야 해요. 죄송해요.”

서도화의 말을 끝으로 멤버들이 곧바로 대형을 맞추어 섰다.

팬들의 소란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여기서 공연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건 무척 기쁘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좁은 곳에서 가능한 건가? 싶었다.

그것보다 천장이 부서진다고? 그럼 원래의 무대에선 천장이 부서질 정도로 높이 뛰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해?

온갖 의문과 호기심이 다 들었다.

그러는 사이 멤버들이 공연할 준비를 끝냈다. 한야가 단상 뒤 스태프에게 신호를 보냈다.

작은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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