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9화
아덴이 케이를 자상하게 바라보는 모습. 이는 멤버들에게도 퍽 보기 좋은 장면이었다.
한야와 주상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서도화의 얼굴에도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가 만면했다.
‘잘하고 있네.’
무척 만족스러웠다. 서도화는 그냥 아덴을 독려했을 뿐이다.
“눈에 힘주지 말고 편하게 해 편하게. 웃어.”
“아 알았어. 내가 바보냐?”
“그래놓고 케이랑 눈 마주치면 죽일 듯이 노려볼 거잖아.”
“아, 알았다니까?”
서도화는 성가시다는 듯 대충 오케이 사인을 보내는 아덴을 재차 붙잡고 말했다.
이상하게 아덴과 대화만 하면 잔소리를 하게 된다. 그는 믿음직스러우면서도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참 말 안 듣는 아덴에게 그냥 평소 그를 다루듯 말했다.
“네가 한야 형처럼 웃으면 쟤가 어떻게 반응하겠어.”
“……그야 죽도록 싫어하겠지? ……아 알겠다고! 잔소리는 한번만 해.”
그렇게 승질을 팍팍 내고는 저렇게 열심히 웃고 있다.
하여간 마왕을 조금이라도 엿 먹일 수 있다면 유치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게 그 세계의 용사다.
서도화는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섰고 그 이후 케이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얼굴로 애매한 미소만 지은 채 첫 번째 공연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 * *
멤버 모두가 무대에선 보인 적 없던 미소를 보인 공연. 무척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첫 번째 공연이 끝이 났다. 그리고 멤버들은 곧바로 다음 공연을 준비했다.
“아아…….”
무대 위로 올라오는 소품에 팬들은 탄식했다. 하프. 하프였다.
팬들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가장 최근 치렀던 5라운드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이리라.
커다란 하프 곁에 앉은 서도화를 보며 팬들은 쉽사리 환호하지 못했다. 멤버들의 이름도 부르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했다. 환호하면 되레 비난을 받을 상황,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환호하지도, 비난받는 서도화를 지켜주지도 못했던 그날.
당연히 팬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팬들에게 이 무대는 무척이나 안타깝고 아픈 무대였다.
멤버들이 이를 악물고 공연했던 만큼 이전까지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공연을 보여줬건만, 그 어느 때보다 함성이 적은 처참한 무대였다.
그때 관객석의 어느 한곳에서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도화 잘한다!”
이를 시작으로 팬들이 서도화와 멤버들을 향해 큰 성원을 보내주었다.
그때 못했던 만큼 크게, 멤버들이 상처받았을 만큼 더 크게.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하프에 손을 올리던 서도화가 움찔거리며 팬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져서 오히려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러다 입 꼬리를 올리곤 푹 고개를 숙였다.
이를 본 한야와 주상현은 놀라 몸을 굳혔고 케이는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으며 아덴은 미소 지었다.
오늘따라 감정이 수시로 넘실거리는 서도화였다.
그는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한참 멈춰 있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하프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의미로 현장이 조용해졌다.
“……으윽.”
케이가 필사적으로 버티며 풀려가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서도화의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었다.
서도화의 노랫소리는 이제 그럭저럭 참을만했지만 저놈의 하프 연주는 몇백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마왕 케이도, 용사치곤 사악한 아덴도, 56번 그룹의 무대를 수십 번은 돌려봤을 팬들도 서도화의 하프 연주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의 연주는 비난이 가득했던 경연 현장조차 일시적으로 잠잠하게 만들었을 만큼, 전장에 쓰였을 만큼 강력했기 때문에.
“와아…….”
누군가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서도화의 손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의상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조명도 분위기를 만들어줄 세트장이 없음에도 하프를 연주하는 서도화는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게 말이 돼?’
주상현이 서도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생각했다.
몇 번을 들어도 이 현상은, 그래, 현상이라도 밖에 말하지 못한다.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서도화를 보고 있는 이 현상.
아무리 서도화의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기로서니…….
그러나 주상현은 의문만 가질 뿐 이에 대해 말도 안 된다느니 하는 의심을 가질 수는 없었다.
주상현 자신 또한 서도화의 연주와 노랫소리에 깊이 감명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을 말이 안 된다고 못박아 의심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MR과 서도화의 연주가 어우러지다 끝났을 때 그는 노래했다.
교차하는 밤 또 다른 세상
이건 스쳐 가는 바람이고
나는 너를 느껴
서도화는 노래하며 주변을 살폈다.
‘역시 보상은 스탯 재조정으로 할까……?’
심히 고민되었다. 역시 현재 자신의 스탯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게 이 상황을 보라.
아무리 내성이 생기니 뭐니 해도 하프를 연주할 때마다, 물론 잘 연주할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또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상황을 몇 번이고 거쳐야한다니 좀 괴롭지 않은가?
서도화의 패시브 스킬이 없어도 이 그룹이 얼마든지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이젠 충분히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젠 이 스킬이 가장 중요한 서도화의 노래 실력과 다른 멤버들의 주요 강점들을 싹 다 가려버리는 상황.
‘지금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면 공연하는 내내 멍하니 정화의 영향을 받다 결국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감상만 남긴 채 정작 멤버들의 공연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더구나 패시브 스킬엔 랜덤으로 발동되는 치유 스킬 또한 있고.
스텟만 재조성할 수 있다면 실생활에서 사용가능한 스킬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기껏 듣게 된 환호성이 스킬로 인해 사라진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서도화의 파트가 끝나고 멤버들이 서도화의 반대편에서 서서히 중앙으로 들어섰다.
멤버들의 파트가 시작되고서야 팬들은 꿈에서 깬 듯 다시 무대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서도화의 연주에 호응이 없었던 건 경연 때와 별반 차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서도화를 외면하고 비난하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님을 그는 알고 있었다.
팬들은 서도화가 노래를 부를 때도 다른 멤버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아니 티가 날 정도로 그보다 더 크게 소리쳐주었다.
분위기는 이전과 같이 화기애애하게 흘러갔고 어느덧 댄스 브레이크 파트.
‘어 그러고 보니…….’
팬들은 뒤늦게 이전 곡이었던 ‘룰’에선 이들이 아크로바틱을 선보이지 않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단상이 너무 낮아서 멤버들 천장이든 둘 중 하나는 다칠까 봐 생략했던 듯한데…….
이번에는 할까?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간소화했다는 한야의 말을 보면 하기는 할 것 같은데.
팬들이 기대와 함께 댄스브레이크를 지켜보고 있을 때.
아덴이 팬들을 보고 씨익 웃더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날아올랐다.
“오오어우와아아!”
팬들의 고개가 끝도 없이 위로 향했다.
이게 간소화? 이게 천장이 무너질까 봐 약하게 한 거라고?
그럼 실제 경연에서는 얼마나 높게 뛴다는 말이지?
소규모 홀인 걸 감안해서 해봐야 백턴 정도 할 거고, 팬미팅을 하다 다치면 안 되니 아크로바틱이 생략되어도 다들 그러려니 했을 거다.
그런데 아덴은 높이, 자칫 잘못하면 천장에 닿을 뻔 했을 정도로 높이 뛰어올랐다.
깜짝 놀라 이상한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때 케이도 높이 뛰어 올랐다. 케이는 아덴보다 더 높이 뛰었다. 팬들의 탄성이 더더욱 커졌다.
그리고 대기 자세로 팬들과 함께 그들의 재주를 보고 있는 서도화는 심드렁하게 생각했다.
‘또 시작이네.’
또 쓸데없이 아크로바틱 가지고 자존심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다치지 않도록 적당히 하라고 했는데.’
매니저 이병수와 스태프들이 팬미팅을 연습하면서, 그리고 팬미팅 당일 아침까지 단단히 일러두었던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다칠 수도 있으니 하지말자는 의견이 나왔다가 다칠 리가 없으니 넣자는 아덴과 케이의 의견에 ‘적당히’, ‘약하게’를 조건으로 오케이를 한 스태프 들이었다.
그리고 그 ‘적당히’와 ‘약하게’의 강도는 아무래도 당사자가 더 잘 알 테니 아덴과 케이에게 맡겨졌는데…….
맡겨놓으면 이 모양이다.
케이는 기어코 천장에 발을 딛고 바닥에 착지했다.
“어휴.”
서도화는 고개를 내젓곤 안무를 췄다.
이미 여러 번 경연을 거치면서 이들의 미친 아크로바틱이 몇 번이고 분석되고 눈에 익어서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슨 와이어 장치라도 한 줄 알 것이다.
어쨌든 멤버들은 열심히 무대를 펼쳤다. 그리고 마지막, 주상현의 독무와 함께 다시 한번 서도화의 하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미쳤다.
누군가가 말했다. 설마 팬미팅에서 선보이는 간소화된 공연에 이런 감상평을 남기게 될 줄은 몰랐다.
멤버들의 비주얼도, 팬미팅의 화기애애함도, 처음 보는 그들의 장난기와 성격 그리고 개성도, 그리고 공연도.
처음부터 끝까지 입을 다물 수가 없는 팬미팅이었다.
한편, 가장 앞쪽에 앉아있던 그녀는 또 한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오늘의 팬미팅을 사진으로 담지 못한 건 아마 그녀가 56번의 팬으로 남아있는 이상, 그들의 홈마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비주얼은 합격, 공연도 합격. 그냥 어떤 애들인가 보려고 온 팬미팅에 제대로 미끼를 문 물고기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