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20화 (120/270)

제120화

“어우…….”

좁은 무대든 넓은 무대든 힘든 건 힘든 거구나.

공연이 끝난 후 멤버들은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연이었더라면 무대 뒤로 내려가 드러누웠겠지만 팬미팅 중엔 단상 아래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멤버들이 주저앉았음에도 아랑곳없이 팬들은 그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다들 괜찮냐?”

“와아아아!”

“……어?”

혼자 꿋꿋하게 서 있던 아덴은 팬들의 환호성에 멈칫하다 이내 익숙하게 멤버들을 대표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무가 힘들어서 멤버들이, 자, 얼른 일어나. 물 마셔.”

장족의 발전이다. 아덴이 무대 위에서 멤버들을 챙기고 있었다. 서도화는 이 세계에 온 뒤 처음으로 아덴에게 기특함을 느끼며 아덴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아덴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멤버들을 한 명씩일으키고 물을 가져다주었다. 케이는 아덴이 일으켜주기 전에 일어나 스스로 물을 찾아 마셨다.

“고마워. 아덴. 자, 그럼.”

한야가 아덴을 토닥이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여전히 숨이 차올라 말을 하기가 힘들었지만 남은 시간 관계상 얼른 진행을 이어나가야 했다.

“……후우. 이렇게 저희가 준비한 건 전부 끝이 났는데요.”

한야가 주상현에게 손짓했다. 주상현이 한야에게 다가가 달라붙자 한야는 주상현을 툭툭 치곤 제 옆에 세웠다.

이를 본 멤버들이 눈치껏 자리를 맞춰 나란히 섰다.

“재미있게 즐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어떠셨나요?”

물론! 말해 뭐해!

관객석에서 ‘네’, ‘즐거웠어요’등등 긍정적인 호응들이 들려왔다.

무척 즐거웠다.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한 무대부터,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멤버들의 장난스럽고 편안한 모습까지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고생 많이 했을 멤버들이 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즐거운 만남이었다.

한야는 팬들의 대답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즐겨주셨다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멤버들 한 명 한 명 팬 여러분께 소감 한번 말해볼까요? 맨 끝에 아덴부터.”

“저요?”

한야가 가장 먼저 자신을 지목한 것에 아덴은 놀란 눈치였다.

보통 이런 때는 주상현이나 서도화를 먼저 시켜 본보기를 보여주고 아덴과 케이 순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네!”

아덴의 눈에 비장함이 맴돌았다. 자신에게 가장 먼저 소감 발표를 맡긴 건 동료가 자신을 믿는다는 증거.

잘 해내야만 했다.

아덴의 비장한 눈을 보며 서도화는 오히려 불안해졌다.

아덴이 말했다.

“오늘의 이 팬미팅은 지금의 시련을 보상받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시련이라는 건 있는 법이고 이를 보상받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시련? 보상?

하.

서도화는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용사네.’

생각보다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조금 뭐랄까. 전쟁에서 이긴 후 영웅 퍼레이드에서 연설할 법한 말 같기도 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신 팬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는 아덴이 되겠습니다.”

서도화는 자신도 모르게 팬들과 함께 박수를 쳤다.

그야말로 정석적인 아이돌 같은 소감이었다. 정말로 사회성이 생겼구나. 참 기특하다. 기특해.

아덴은 만족한 듯한 한야와 주상현, 그리고 서도화의 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역시 용사. 막 가도 할 때는 한다.

“다음은 케이.”

아덴을 기특하게 보던 시선들이 케이에게로 향했다.

팬들은 기대하며 멤버들은 불안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수많은 인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케이는 마이크를 든 채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나는…….”

긴장해서가 아니었다.

마왕이 고작 인간들 앞에 나선다고 긴장할 작자이던가.

하지만 그는 입을 쉬이 떨어뜨리지 못했다.

인간들에게 시선을 받는 일은 많았다. 그러나 결코 이런, 따뜻한 시선들은 아니었다.

경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혹은 업신여기거나.

인간에게 이러한 시선은 익숙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애정이 듬뿍 담긴, 세상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가장 행복한듯한 시선은 태어나 이백 년을 살며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다.

명백히 애정이 담긴 눈빛. 그리고 케이는 애정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 몰랐다.

지금 이들을 마주 보는 자신의 감정이 껄끄러운 건지 감사한 건지, 감사함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은 피어났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인간들을 죽여 왔는데도.

만약 지금 당장 힘을 되찾는다면 예전의 자신이 그랬듯 이 인간들을 죽여버릴 수 있을까?

‘……불쾌하군.’

마치 인간이 된 것만 같은 감정이었다.

“케이.”

그때 자신의 옆구리를 아프지 않게 툭 치는 음유시인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금은 해야 할 말을 몰라도 해야 할 때였다.

케이는 지금까지 경연을 치르며 들었던 멤버들과 아덴이 말했던 감사 인사들을 모두 섞어 대답했다.

“마음 깊이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좋아. 잘했어.”

아덴에 비해 무척 짧았지만 케이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고 또 그가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팬들도 아는 터라 그럭저럭 박수 세례를 받으며 넘어갔다.

다음은 서도화다. 한야가 서도화를 가리켰고 서도화는 마이크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덴과 케이의 차례에선 나오지 않았던 환호가 들려왔다.

서도화가 미소 지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환호성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성원에 서도화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팬들을 크게 둘러보았다.

“이날을 위해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말 오랜 시간 동안 고생이 많았다.

물론 연습생 생활 자체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도화에게는 연습생 시절 외에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열심히 살아야만 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서도화의 말을 아덴은 이해했다.

위험한 거 싫어하고, 목숨도 아까운 줄 알고, 딱히 모험을 좋아하거나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아덴이나 다른 동료들처럼 대의나 명분도 없다.

그저 하프나 치며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무기력한 남자가 굳이 치유술까지 얻어가며 처절하게 세상을 구하려 들었다.

서도화는 그 이유를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때는 그놈의 아이돌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몰라 답답했지만 이 세계에 온 후 알게 되었다.

세계 멸망과 같은 위협이 없는 세상에서 그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영웅이 될 수 있는 직업.

그게 바로 아이돌이었다.

서도화는 정말 이 자리에 서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그가 이토록 감격스러워하는 이유를 아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서도화의 말을 다르게 이해한 팬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흘렸다.

물론 서도화가 말한 ‘많은 일이 있었다’는 건 아덴이 이해한 것과 같은 의미의 말이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팬들이 듣기로는 다른 의미였다.

‘그 사건이 힘들었음을 돌려 말하는 거야!’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늘 하루종일 안타까워했지만 해도 해도 미안해 죽을 노릇이다.

“……응?”

갑작스러운 탄식에 서도화는 당황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듯 그냥 미소를 띄우고 계속 말했다.

“결국 이 자리에 돌아와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아아…….”

진짜 왜? 서도화는 왜 팬들이 탄식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영문을 모른 채 웃었다.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기 때문에 팬들이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을 거란 생각도 못 했다.

그냥 연습생 생활이 힘들었겠거니 생각하겠지 했다.

“어……. 다시 한번 이곳에 와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가 이런 분에 겨운 순위도 받아보고 또 여러분들과 직접 만나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시간도 선물 받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도화는 끝까지 의아해하며 소감을 마쳤다.

그리고 다음은 왜인지 팬들과 같이 안타까워하고 있던 주상현의 차례였다.

“넵!”

주상현이 힘차게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그룹 활동이 끝나고 이제 나는 어떻게 될까? 다들 데뷔하는데 나는 과연 데뷔할 수 있을까? 참 걱정을 많이 했었어요.”

“아이고야…….”

팬들의 탄식 소리가 조금 바뀌었다. 이번엔 어린 동생이 안쓰러울 때 날 법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팬들은 본인들이 소리를 내고도 웃겼는지 웃어댔고 멤버들도 웃었다.

“아무튼! 이렇게 자상하고 실력 좋은 사랑하는 멤버들과 다시 한번 무대에 서서 팬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한 나날입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다음 라운드가 마지막인데, 끝까지 실망시켜 드리지 않는 멋진 무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주 활기차고 기운 좋은 소감이었다. 다음은 한야의 차례였다.

한야도 팬들을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웬만해선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인데 목표를 이루어나가고 있는 요즘, 그의 감정은 수시로 요동쳤다.

“참,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야의 말에 팬들과 멤버들이 집중했다.

“이름도 없는 아주 작은 소속사에서 대표님, 그리고 직원분들과 함께 한 명씩 한 명씩 열심히 멤버를 모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가장 먼저 회사에 들어온 한야는 김유진과 함께 멤버를 모았다. 소속사도 작거니와 번듯하게 내놓은 아티스트도 없는지라 상당히 고생이 많았었다.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홧김에 나온 데스티니였고 그 행동에 후회는 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데뷔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함은 있었다.

그랬던 유제이와 한야가, 지금 이렇게 당당히 그룹으로서 서 있다.

“보석 같은 멤버들과 함께 이 자리까지 올라와 팬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미 아이돌로서 큰 성과를 거둔 주상현, 묘한 소문은 있지만 실력도 비주얼도 뛰어나 틀림없이 활약할 서도화, 비주얼적으로 빼어난 아덴과 케이. 이 작은 회사에서 모을 수 있는 최고의 멤버들이었다.

한야는 감격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리더답게, 차분히 끝인사를 했다.

“오늘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다음번엔 56번이 아닌 저희 그룹 이름을 내걸고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56번 그룹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멤버들의 인사를 끝으로 수많은 박수갈채 속에 팬미팅이 마무리되었다.

이후 멤버들은 먼저 들어가지 않고 팬들을 배웅했고 촬영을 마무리한 후 경연 준비를 위해 바로 회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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