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23화 (123/270)

제123화

서도화가 시스템과 대화를 마쳤을 때쯤 매니저 이병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곧 연습 시작하는데 와야지? 형 지금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서도화는 전화를 받자마자 곧장 숙소를 나섰다. 시스템과 이야기하겠다고 여럿이 신경 쓰이도록 만들어버렸다.

서도화가 연습실에 도착하자 몸을 풀던 멤버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형 오셨어요?”

“뭐 하고 왔어?”

“으윽!”

“아 그냥, 잠시 받아야 할 게 있어서.”

“아아, 숙소에 짐 아직 다 안 왔었구나?”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이를 보았다. 케이는 웃는 한야 밑에 깔려 강제 스트레칭을 당하고 있었다.

‘내 몸에 손 대지 마라 하찮은 인간이여! …라고는 안 하네 이제.’

케이가 요즘 무서운 기세로 멤버들에게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이게 맞나 싶지만서도, 성격 나쁜 고양이처럼 하악대는 것보다야 낫다.

거울과 가까운 곳에 서 있던 아덴이 빤히 그를 바라보다 다가왔다. 아덴의 눈빛엔 의심이 가득했다.

아덴은 서도화가 이유도 말하지 않고 독단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불안해했다.

반드시 그가 다치거나 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에.

“진짜로 뭐 하고 왔어?”

“진짜로 뭐 받고 왔는데?”

서도화는 심드렁하게 대답하다 멈칫거리며 아덴에게 작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나 좀 보자.”

“어? 그래.”

아덴은 즉답하고선 서도화의 얼굴을 살피더니 주상현에게로 가버렸다.

‘그나저나…….’

서도화는 몸을 풀며 고민에 잠겼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스템의 말로는 보상은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린다고 하고. 일단 아덴과 상황을 공유해야 할 것 같은데.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덴은 그 세계에 있을 때부터 서도화의 상황을 알고 있었으니 크게 설명할 건 없다.

하지만 보상을 받게 되면 아덴과 케이가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날도 훨씬 빨리 오게 된다.

하이넬이 사라진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또 우리의 좌표를 찾고, 다시 원래의 세계로 데리고 올 방법을 찾기까지 적어도 10년은 족히 걸릴 거라던 예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물론 아덴에게는 무척 잘된 일이다.

그 세계의 멸망이 끝났으니 얼른 돌아가 상황을 살피고 재밖에 남지 않은 마을이라도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이 그룹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10년이면 계약기간이 끝나고 재계약까지 해도 되는 세월이라 괜찮겠지- 하며 둘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마왕과 용사가 이곳에 있다면 최대한 함께 있는 편이 나을 것이고 뭣보다 당시 서도화에겐 전혀 선택권이 없지 않았던가.

연습생이 뭐라고 함께할 멤버를 선택할 권한이 있겠는가.

‘그랬었는데.’

시스템이 이곳의 좌표까지 하이넬에게 전해준다면? 적어도 3년, 길게 봐서 5년 내에 아덴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이 통신석 제공과 하이넬에게 좌표 제공을 말했을 때 서도화가 이를 받아들인 건 오로지 아덴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이지.’

서도화는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가 아니고 아덴을 어떻게 설득할까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케이는 그 세계로 다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재앙 덩어리를 그곳으로 보내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냥 여기서 아이돌로서 써먹을 수 있을 만큼 써먹는 게 상부상조하는 길이다.

그러나 아덴에게는… 조금 더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해봐야지 어쩌겠는가.

아덴에게만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강제하고 싶지 않았다.

“도화 형 몸 다 풀었으면 이제 연습 시작할게요!”

주상현의 말에 서도화의 머릿속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뭔 생각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 거야.’

서도화에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는데.

서도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습실 가운데로 향했다. 매니저 이병수가 노트북 앞으로 향하며 아덴과 케이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알지? 연습 끝나고 따로 레슨 받으러 가는 거.”

“네.”

“체력 분배 잘해. 힘은 거기가서 더 빼야 하니까.”

“분배할 게 따로 있나요? 그냥 하면 되지.”

“……맞다!”

거들먹거리는 아덴의 말에 케이는 왜인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동의했다. 용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게 분한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아,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하는 표정이다.

이병수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덴은 뭐, 원래 잘하니까 그렇다 치고 케이는 정말로 자존심 세우지 말고 체력 분배 잘해. 오늘 정말 힘들 거야.”

그의 말에 케이는 입을 댓발 내밀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 마지막 라운드의 컨셉은 ‘서커스’.

그런 만큼 아크로바틱을 주로 담당하던 아덴과 케이는 정말로 서커스 기술을 익히러 가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두 사람은 적절한 기술로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띄워줄 것이다.

그리고 서도화와 주상현은 각자를 위해 만들어진 세트장 안에서 서로 다른 느낌의 댄스를 구사하며, 한야는 이번 서커스의 단장 역, 일명 무대를 시작하고 닫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각자 맡은 역할이 확실하니만큼 이번엔 단체 군무보단 개개인의 매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멤버 별로 서로 다른 안무가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오늘은 2절 안무만 맞춰보고 개인 레슨으로 넘어갈게.”

“넵!”

우나나가 말했고 이병수가 우나나의 신호에 맞춰 곡을 재생시켰다.

“탕! 왼발로 바닥 찍고 웨이브, 허리 낮추면서 한 번 더 웨이브! 도화 파트 제스처 뒷 멤버 상체 서서히 든다. 높이 맞춰!”

멤버들이 우나나의 동작과 소리에 맞춰 달달 외웠던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이번 곡은 상당히 딥소울한 느낌인데 그에 맞춰 안무도 평소와 같은 빠른 동작은 많이 없었지만 대신 느낌을 살리는 웨이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아덴!”

그로 인해 평소 힘으로 춤을 추는 아덴이 꽤나 애를 먹는 중이다.

케이 또한 아덴에게 가려져서 그렇지 고난이 예상되고 지금까지 무난히 잘 따라오던 한야도 변형 웨이브는 꽤 어려운지 디테일한 부분에서 많은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서도화에게 이번 안무는 무척 쉬웠다. 빠르게 확 치고 나가는 안무가 훨씬 그의 취향이긴 했지만 웨이브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살리는 편이고 오히려 느릿한게 지난 경연보다 난이도가 내려간 느낌이었다.

단체 안무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거의 현대무용에 가깝게 몸을 쓰는 개인 안무가 문제였지.

* * *

“아… 악…….”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서도화는 거실 바닥에 몸져누우며 신음했다.

온몸이 다 아팠다. 단체 안무는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쉬운데 역시 개인 레슨이 문제였다.

개인레슨 첫날부터 안무가는 몸 좀 풀게 하더니 바로 기본 동작을 익히게 했다.

“평소 잘 안 쓰는 근육을 쓰는 거라 첫날은 많이 아플 거예요.”

자세를 잡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서도화에게 안무가는 무슨 헬스장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를 하더라.

그리고 정말로 서도화는 지금 큰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치 처음으로 연습생이 되었던 날, 처음으로 제대로 전투를 치러본 날과 같았다.

빠르게 휘몰아치는 댄스는 주상현이, 현대무용을 응용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댄스는 서도화가 맡기로 했으나…… 쉽지가 않았다.

그냥 지난 라운드에서 간단히 흉내만 내던 것과 본격적으로 배우는 건 이렇게나 다른 것을-

“으악!”

“시끄러워. 연약한 놈.”

익숙한 손이 서도화의 몸을 꾹꾹 눌렀다. 이렇게 아프고 투박하게 근육을 풀어주는 멤버는 아덴밖에 없다.

서도화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아덴을 바라보았다.

“매번 말하는데 좀 살살 해라. 네 힘이 보통 힘이냐?”

“이게 최선의 살살이야. 둔투프는 시원하다고 했었어.”

“걔는 거인이잖아아악!”

“네가 약한 거야.”

아덴은 꿋꿋이 손에서 힘을 빼지 않고 서도화의 근육을 풀어주었다.

서도화는 아덴에게 안마를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야는 아직 회사에 있으며 주상현은 퀭한 눈을 한 채 꾸역꾸역 우유에 탄 시리얼을 먹고 있으며 케이는 저 멀리 기절해있다.

아마 조금 뒤 주상현 또는 서도화가 저놈의 근육도 풀어줘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아까 해야 한다는 말이 뭐냐?”

아덴의 물음에 서도화의 고개가 정면으로 향했다.

“마왕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야.”

서도화의 몸에 닿은 아덴의 손이 움찔거리다 이내 원래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서도화는 엎드려 있으니 아덴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왕 케이는……. 기절한 척 이 중얼거림 또한 듣고 있겠지.

마왕의 앞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서도화가 할 말이 원래의 세상과 연관되어있다는 의미였다.

만약 빠른 시일 내에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음을 케이가 알게 되면 지금의 협조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마왕으로서 술수를 벌일 수도 있을 테지.

그런 고로 이 이야기는 아덴과 둘이 있을 때만, 그럴 시간이 있는지는 모르겠-

“아, 형. 저희 음료수 좀 사오려고 하는데요. 도화랑 나요. 바로 앞에 편의점이요. 잠깐 다녀올게요.”

“어?”

행동력 빠른 아덴이 벌써 둘만 있을 시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아덴은 이병수에게 전화해 허락을 구하곤 벌떡 일어섰다.

“일어나. 나가자.”

“……갑자기?”

“편의점에 음료수 사러. 상현이 뭐 마실래?”

“저요? 저는 아무거나 괜찮아요. 케이 형은 포도봉봉.”

어리둥절하게 일어나서 제대로 본 아덴의 표정엔 여유가 없었다.

제2세계와 연관된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도 아덴에게 중요한 이야기였다.

‘……제길.’

부탁하기 더 어렵겠는데?

저 심각하면서도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라.

서도화는 아덴에게 붙잡혀 끌려가듯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발걸음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무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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