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도착이야? 도착했어?”
공연장의 주차장으로 들어가기까지 멤버들과 함께 차에 탄 스태프들은 몹시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팬들이 일찍이 어메스의 차량을 알아보고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거리가 무척 가까워 이 더운 날 담요로 머리부터 푹 감싼 채 있어야 했다.
“내리면 곧장 스태프들 따라 안으로 넘어가. 담요 내리지 말고.”
“넵.”
서도화가 담요를 둘러싼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팬들이 들고 있는 슬로건에 번 듯이 있는 자신의 이름. 자신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는 팬들.
살벌했던 지난 경연과 상반된 느낌을 띄고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이전 경연에서는 서도화를 응원하고 싶은 팬들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꿋꿋하게 서도화의 이름을 부르고 응원하던 팬들도 있었지만 보통 용기론 그러기가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금처럼 당당히 응원하고 응원받을 수 있는 상황으로 돌아온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차는 팬들을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멤버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대기실로 향했다.
“어, 오늘은 대기실에 카메라 없어요?”
어느 샌가부터 자연스럽게 대기실에 설치되어 멤버들의 공연 리액션을 찍던 카메라가 오늘은 없었다.
“아, 오늘은.”
주상현의 물음에 이병수는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대기실이 아니고 세트장에서 다같이 촬영을 진행한다고 하네?”
마지막 라운드인 만큼 출연 그룹도 처음에 비해 크게 줄었다.
처음엔 대기실조차 부족해 큰 회장 1층을 통으로 채우던 그룹들이 이젠 공연장의 한구석에 마련한 세트장에서도 다 함께 모여 촬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정예 출연진 속에 어메스가 있다는 게, 그것도 비록 5라운드에서 미끄러지긴 했다지만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게 그룹의 시작부터 이들을 지켜본 이병수의 입장에선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뿌듯한 건 서도화와 주상현도 마찬가지였다. 시작할 때만 해도 누가 알았겠는가. 이 그룹이 무사히 최종라운드에 들 줄은.
그러나 한야는 못해도 최종라운드에는 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김유진과 서도화, 주상현이 있는데, 거기다 초반 라운드에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줄 비주얼들이 이렇게 많은데 최종라운드에 들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
“자, 벌써부터 감격할 시간 없거든요? 얼른얼른! 다들 움직여!”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감격부터 하는 멤버들과 매니저에 마음이 급해진 건 스타일리스트들이었다.
스타일리스트들은 짝짝 손뼉을 쳐 멤버들의 이목을 주목시키고 한 명씩 탈의실로 집어넣었다.
감격은 나중에. 지금은 얼른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 준비에 임할 때였다.
* * *
“어이고야.”
어메스가 세트장 안으로 들어가자, 서영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너희도 오늘 장난 아니다.”
너희도? 서영의 말에 서도화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아.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경연에 임한 건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어메스는 의상과 메이크업에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주었지만 다른 그룹들에도 만만치 않은 색조가 들어가 있었다.
하나 어메스가 차별점을 둔 건 누가 봐도 의상이 통일되지 않고, 어떤 컨셉인지 확고히 보인다는 것이었다.
모든 출연자들의 시선이 어메스에게 모여들었다.
“와, 컨셉 미쳤다.”
“서커스인가? 장난 아니다.”
사람 수도 줄어들었고 꽉 막힌 세트장 안이라 어메스를 향한 그들의 목소리가 또렷이 잘 들려왔다.
어메스는 출연자들에게 인사하며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그런 이후론 떠들썩함 또한 잦아들었다.
보통 경연의 끝에 다다르면 출연자들끼리 사이도 좋아지고 뭐 그렇다던데, 이번 경연은 그룹끼리 똘똘 뭉쳐서 그런가? 이야기를 섞어본 그룹도 몇 없고 있다고 해도…….
그 사건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데스티니밖에 없다.
서도화가 최여운, 그리고 장우진을 보았다.
합동공연을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선은 그을지언정 나름대로 자상하게 서도화를 대하던 최여운은 4라운드 역전을 당한 뒤 서도화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지금도 입장 때 인사만 했을 뿐 없는 취급이었다.
그러나 장우진은 좀 달랐다.
“응?”
서도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장우진이 좀 이상했다.
‘안색이 왜 저래?’
그 당당하고 비아냥거리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어쩐지 주저하며 서도화의 눈을 피하는 것 같았다.
마치 지 잘못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모습.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의 수위를 생각하면 결코 계기 없이 저런 모습을 보일 작자가 아닌데.
“도화야. 시선 바로하자.”
그때 한야가 싱글벙글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서도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도 카메라 돌아가고 있는 거 까먹지 않았지?”
“어, 네.”
서도화가 시선을 바로 했다.
오늘따라 메이크업도 의상도 모두 강렬해서 그런가. 자상한 미소인데도 어쩐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5분 뒤에 스트리밍 시작합니다.”
제작진이 소리쳤고 멤버들끼리 속닥거리던 각 그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든 출연진들의 시선은 오직 대형 전광판 속 채팅으로 향해 있었다.
채팅창을 보는 서도화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채팅창엔 다시 서도화를 포함한 멤버들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간간히 논란 이후의 소식을 모르고 ‘ㅅㄷㅎ 이번에도 나옴?’, ‘다 좋은데 그 멤 이름은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님?’ 하며 묻는 시청자들에겐 서도화를 대신해 자신의 일처럼 해명해주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 초성으로 걸며 올라오는 채팅들은 결코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마음이 안 좋지는 않았다.
“1분 남았습니다! 전광판에 스트리밍 꺼주세요!”
“스트리밍 화면 돌립니다!”
제작진의 말에 맞춰 소품으로 나온 소파에 앉아있던 서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큐카드를 뒤적거리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라운드.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터라 서영도 참가 그룹들만큼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30초 남았습니다!”
서영은 제작진의 카운트를 들으며 서도화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억울하게 온갖 욕을 다 들어먹고 다시 본 서도화는 생각보다 덤덤했다.
‘멘탈 관리는 잘 했나 보네.’
아직 데뷔도 안 한 신인이 이런 풍파를 맞고도 도망가지 않는 건 참 어려운데.
‘물론 속으론 힘들었겠지만.’
그게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저 연습생은 뭘 해도 크게 되겠다고 서영은 가볍게 생각했다.
“오! 사! 삼!”
제작진이 손가락으로 카운트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마지막 라운드 방송이 시작되었다.
조용한 세트장, 서영이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했나요? 밀리언 아이돌. 시작합니다!”
빠암!
“아!”
바로 곁에 있는 스피커에서 크게 오프닝 송이 들려왔다.
그에 아덴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고 서도화가 아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곤 눈을 꽉 감았다. 이놈의 화려한 노래방 조명 퍼레이드는 이 좁은 세트장에서도 변함이 없다.
“어우. 눈부셔.”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역시 하이넬의 화려한 마법을 생눈으로 보며 시력이 나빠진 게 틀림없다.
그 모습은 당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겨 스트리밍과 회장에서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보였다.
서도화의 일명 ‘눈찌풀’ 장면이 팬들 사이 이슈가 되었음을 알고 있는 제작진들이 이를 대놓고 클로즈업으로 찍어 내보내 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결국 찍혀 버렸군ㅋㅋㅋㅋㅋ
-아악 팬들만 알고 있던 귀여움을…!
-ㅋㅋㅋㅋㅋ이게 그 유명한
-‘눈찌풀’
-눈부신가밬ㅋㅋㅋㅋㄱㅇㅇ
이를 발견한 한야와 주상현이 활짝 웃었고 웃음 연발 채팅창을 비웃음으로 착각한 아덴은 서둘러 서도화의 얼굴을 가려주었다.
그런 아덴과 서도화의 모습도, 한야와 주상현의 모습도, 그냥 빤히 이들을 바라보는 케이의 모습도 모두 찍혀 화면에 나왔다.
출연진의 수가 줄어드니 역시나 각 그룹의 좀 더 많은 멤버들을 다양하게 비춰준 덕분이었다.
“자, 드디어 밀리언 아이돌도 최종라운드만을 앞두고 있는데요. 오늘은 마지막인 만큼 특별한 공간에서 다 함께 마지막 라운드를 지켜볼까 합니다. 어때요, 여러분?”
서영이 출연진들에게 세트장을 둘러보라는 듯 신호를 보냈다.
세트장은 마치 명예의 전당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매번 나오는 순위 슬롯의 1위 문양을 그대로 세트장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
나름 선택된 정예 그룹이라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참 이렇게 보니 새삼. 여러분 기억하시나요?”
출연진 모두가 서영을 바라보았다. 서영은 자신의 뒤 전광판을 가리켰다.
전광판에 나타난 사진을 보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식과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저희 밀리언 아이돌이 처음 한 자리에 모였을 때의 모습입니다만.”
전광판의 사진은 밀리언 아이돌 첫 스트리밍 방송 때의 일명 정수리샷.
지금과는 달리 부담스러울 정도로, 어떻게 저들과 싸워서 살아남았을까 싶을 정도로 수두룩 빽빽한 참가자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보니 되게 놀랍죠? 이랬던 저희가 지금은 총 다섯 라운드를 거치며 이렇게 단 여덟 팀만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무려 백 팀의 인원수로 어그로를 바짝 끌어놓고 매 라운드마다 반타작을 낸 결과였다.
그 모습을 본 그룹 멤버들의 표정이 참 씁쓸하고 복잡해졌다.
“그리고 바로 오늘, 이들 중 최종 우승자가 정해지게 됩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리고 전광판을 통해 보고 계실 관객 여러분, 과연 최종 우승자는 누가 될지. 끝까지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서영의 오프닝 멘트가 끝이 났고, 진행은 곧바로 경연으로 이어졌다.
서도화가 꽉 손을 움켜쥐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경연. 여기까지 온 이상 최선을 다해 우승을 노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