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29화 (129/270)

제129화

짧은 휴식 시간.

무슨 말이라도 할 법하건만 세트장 안은 조용했다.

말소리가 들려도 제작진의 목소리일 뿐 출연자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앞으로 나올 결과에 무척 긴장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메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멤버들, 특히 주상현과 서도화가 심히 굳어있었다.

우승이 무척 가까이 있기에, 한끗 차이로 우승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에.

확신이나 기대보단 걱정이 가득했다.

“끝나고 병수 형이 소고기 사준대.”

긴장한 멤버들을 다독이는 건 오늘도 역시 한야였다.

한야는 멤버들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긴장을 풀라 말했고 그제야 멤버들은 천천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 자꾸 이렇게 떨면 안 되는데. 형들 저 표정 굳어 있어요?”

“응. 좀?”

한야의 솔직한 대답에 주상현이 울상이 되어선 아덴의 소매를 툭 당겼다.

“형 저한테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말 좀 해주세요. 아 왜 자꾸 욕심을 부리지? 내려놓기로 해놓고.”

“뭐? 김칫국 마시지 마. 그런데 김칫국이 뭐냐?”

“아, 김칫국이란-”

서도화가 아덴에게 김칫국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짧게나마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이들 모두를 지켜보던 케이가 조용히 말했다.

“인간은 원래 욕심이 많은 존재지.”

“예?”

멤버들이 케이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욕심 때문에 스스로가 인간에게서 버려졌더라도, 인간의 욕심은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케이는 생각했다.

“욕심이란 인간의 존재 의의지.”

갑자기 철학적인 말을 왜 하냐. 서도화는 시비 걸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애써 눌러 담았다.

나라도 좋은 분위기 깨지 말자.

그러나 아덴은 이를 가만두고 보지 못했다.

“갑자기 뭔 헛소리야.”

그러나 아덴의 시비조에도 케이는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욕심 있는 인간이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

케이가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네 욕심은 좋은 욕심이다.”

그러곤 미미하게 미소 지었다.

“넌 앞으로 나아갈 인간이구나.”

케이를 말리려던 서도화가 멈추었다. 주상현도 눈을 크게 떴다.

또 이상한 소리 할 줄 알았는데 위로하는 말이었다.

‘앞으로 나아갈 인간.’

유니드의 해체 이후 줄곧 나아가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던 주상현에게는 무척 힘이 되는 말이었다.

주상현이 마주 웃었다.

“맞아요. 이럴 땐 욕심 좀 부려도 되죠. 감사해요. 형.”

주상현이 마주 웃자 케이가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케이는 주상현을 마주하고서야 자신이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자각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짓을 하려 하다니. 이렇게 수치스러울 데가!

이게 다 서도화의 정화 때문이었다.

자꾸 마왕으로서 하지 않을 짓을 하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이야, 너 사람 다 됐구나!”

수치심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려 했건만 그걸 놓치지 않고 아덴이 또 시비를 걸어왔다.

다행히 아덴의 시비는 서도화가 막아주었다.

“너 케이한테 그러지 마라.”

케이가 고개를 돌려 서도화를 바라보았다.

“케이가 모처럼 좋은 말 해줬잖아. 맞아 인간의 욕심은 좋은 것이지. 우린 앞으로 나아갈 사람들이야.”

“……저, 저런. 그, 그만-”

“우리 모두 힘내자. 파이팅~”

케이가 몸서리쳤다. 음유시인 저게 제일 얄미운 놈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케이가 입을 꾹 다물자 서도화가 장난을 그만두곤 케이를 보았다.

어쨌든 케이 덕분에 이 긴장으로 얼어붙은 분위기는 다소 해소되었다.

마왕이 인간을 위로했다. 케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주상현에게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인간을 위로하는 걸 다 보게 될 줄이야.

케이는 확실히 변화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다시 인간의 마음을 되찾고, 그 세계가 아닌 이곳에서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마왕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아덴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 서도화는 괜히 케이에게 기대를 걸어보았다.

아덴은 돌아가기 전 케이를 처리하고 가겠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적어도 이 세계에서 케이는 위험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정화가 계속되기 때문인가?’

핵이 없는 마왕은 이를 막아낼 방도가 없었고 그로 인해 정화가 일정한 타격만 줄 뿐 아니라 본격적인 작용을 시작한 듯했다.

서도화가 케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 사이 휴식 시간이 끝이 났다.

짧게나마 여유를 되찾았던 멤버들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경연의 마지막 최종 순위 발표가 시작된다.

* * *

“당신의 하트는 어디에? 밀리언 아이돌 시청자, 관객 여러분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영이 카메라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아, 이제 정말로 마지막 최종 순위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순위 발표에 앞서 지금까지 열심히 해준 우리 참가자들의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서영은 걸어 나와 1번 그룹의 앞에 섰다.

“강력한 우승 후보죠. 1번 그룹. 지금까지 수많은 경연을 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어떠신가요?”

1번 그룹의 리더 최여운이 마이크를 들었다.

“네,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조금이라도 저희 멤버들의 매력을 알릴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했거든요.”

“네, 정말로. 진행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늘 뭐든지 열심히 하는 그룹이죠. 우리 1번 그룹.”

그래. 1번 그룹은 뭐든지 열심히 했다. 제 앞순위 그룹에 대해 없는 소문 만들어서 앞길 막는 비열한 짓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더라.

서도화는 조용히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자 어쩐지 기가 죽은 표정으로 최여운의 인터뷰를 듣고 있던 장우진이 움찔 이곳을 돌아보곤 또 안색이 창백해졌다.

‘쟤 도대체 왜 저래?’

서도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우진은 서도화가 아닌 서도화의 옆 한야를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서도화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서영은 자신에게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그룹 순으로 순서대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자아 이번엔 우리 56번 그룹. 역전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그룹이죠. 어떠신가요? 최종라운드까지 공연을 마친 소감은.”

한야가 마이크를 들었다.

“네, 우선 무척 기쁩니다. 처음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그 많은 그룹 중에 우리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했었는데 이렇게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어 멤버 모두 무척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혹시 56번 분들이 생각하는 예상 순위가 있다면? 솔직하게.”

“예상 순위요?”

한야는 잠시 마이크를 내리고 케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곤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우승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승을 목표로 여기까지 달려왔으니까요.”

욕심은 인간의 존재 의의다.

케이의 말대로 욕심을 부려본 한야였다.

서영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자신감 넘치는 말이네요. 좋습니다. 응원할게요. 자 그럼 다음은-”

서영은 모든 그룹의 소감을 듣곤 다시 세트장 중앙에 섰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최종 순위 발표하겠습니다.”

세트장에 긴장감 넘치는 BGM이 깔렸다.

“순서대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현장 평가 점수 공개해주세요.”

서영의 뒤 전광판에 여덟 개의 슬롯이 나타났다.

슬롯엔 참가번호 순서대로 각 그룹의 번호가 적혀있었으며 56번의 슬롯은 위에서 두 번째 자리에 있었다.

띠링띠링!

코인 소리와 함께 각 그룹의 번호 옆으로 현장 평가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현장 평가 점수는 총 10,000점.

만점을 여덟 팀이 평가 비율대로 나눠가지는 시스템이었다.

조금씩 올라가는 점수.

서도화는 1번과 56번의 점수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현장 반응을 객관적으로 봐도 1번과 56번이 가장 뛰어났기에 두 그룹의 점수만 가장 중시하면 됐다.

이윽고 나온 순위는.

-1번 2,000점(1,767표)

-56번 3,000점(2,489표)

“56번 그룹이 총 2,489표를 얻어 1위. 3,000점을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56번과 1번의 슬롯 자리가 바뀌며 56번이 가장 위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 외 그룹들의 슬롯도 순위대로 바뀌어 빠르게 자리를 찾아갔다.

첫 번째 순위기 발표되자 현장 관객들의 술렁임이 세트장까지 들려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용인원이 7,000이 넘어가지 않는 이곳에서 단 두 그룹이 상당한 표를 가져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 방송의 인기를 견인하는 그룹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서영은 소란에도 빠르게 진행을 이어나갔다.

문자 투표, 5차 경연 조회 수 순위별 점수 등등 갖가지 종목으로 점수가 쌓여갔다.

이변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가장 높은 점수가 쌓인 그룹은 1번과 56번이었고 다른 그룹들은 남은 점수 나눠 가지기 수준의 작은 점수를 받았다.

못해도 2위는 확정된 두 그룹의 점수는 비슷했다. 서로 우세한 부분이 뚜렷하게 있었기에 5차 경연 조회 수에서 밀려 아주 미미한 차이로 1번 그룹이 1위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마지막. 밀리언 아이돌의 아이덴티티죠. 팬 여러분들의 마음 점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애간장 타게 하지 않고 바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점수별 순위 공개해주세요.”

공개되는 마음 점수.

서도화와 멤버들의 눈은 56번 슬롯에 찰싹 붙어 있었다.

띠링띠링띠링! 힘차게 울리는 코인 소리.

어?

서도화가 눈을 크게 떴다.

“……어?”

놀란 마음은 속에서 멈추지 않고 입으로도 툭 튀어나왔다.

“와 이게…….”

주상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점수가 끝도 없이 올라갔다.

무한하게, 마음 가는 대로 누를 수 있는 마음 점수.

56번의 점수는.

1위 56번 28,998,492

56번의 공연이 진행된 단 10분 만에 올라간 점수였다.

참고로 1번 그룹의 점수는 1,600만. 56번이 두 배는 앞서는 점수였다.

‘이게 말이 되나?’

이게 다 56번의 화제성과 팬들의 이를 악문 마음 타격의 힘이었다.

그런고로.

“모든 점수를 합산한 결과 1위는 56번 그룹. 축하드립니다!”

이게 말이 돼?

아직도 영문을 몰라 자리에서 얼떨떨하게 일어나기만 할 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하던 차.

파앙!!

“……허억!”

서도화는 세트장 안으로 팡 터지는 폭죽과 그로 인한 아덴의 숨 들이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1위는 56번.

최종 우승자는 56번이었다.

말 그대로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대역전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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