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30화 (130/270)

제130화

진짜?

1위가 진짜로 됐다고?

서도화는 멍하니 떨어지는 꽃가루 세례를 올려다보았다. 하늘하늘 무수히 떨어지는 꽃가루들은 무척 화려했고 빛이 났다.

이 화려함이 우리들의 것이었다.

잘하면 될 수도 있겠다고 멤버들도, 유제이 식구들도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우승을 해버리니 그야말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주마등처럼 그간의 고생스러우면서도 보람찼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56번 축하드립니다! 트로피 좀 받아주시겠어요? 어우, 많이 놀라셨나 봐요. 이해합니다.”

서영의 말에 그제야 한야가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아들자, 제작진들이 올라와 멤버 모두에게 꽃다발을 전달해주었다.

서도화는 넘겨진 꽃다발을 안은 채 멍하니 있다 곁에서 움츠러드는 인영에 시선을 옮겼다.

“어어, 아이고 어떡해. 미안.”

아덴이 귀를 막고 몸을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서도화가 서둘러 아덴을 감쌌다. 너무 놀라서 아덴 챙기는 걸 잊고 있었다. 최종라운드 결과 발표 후 폭죽이 터질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서도화는 힐끔 관객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덴을 데리고 뒤로 빠졌다.

아덴의 트라우마는 가볍게 놀라고 마는 게 아니라서 동료들이, 혹은 본인이 잘 예상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으윽…….”

귀를 막은 아덴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괜찮아. 그냥 꽃가루 터진 거야.”

“……왜 그러느냐?”

“형 괜찮아요?”

케이와 주상현이 뒤돌아보며 아덴의 상태를 걱정했지만 서도화는 괜찮다는 듯 앞을 보라 신호를 주고 아덴을 토닥였다.

이로 인한 팬들의 술렁임이 들려왔다. 주상현이 케이와 함께 몸으로 두 사람을 가려주었다.

아덴은 간신히 귀에서 손을 떼고 떨리는 손으로 서도화를 더듬었다.

폭발. 그리고 파열음이 들리고도 동료가 무사한지 확인해야만 했다.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있는지, 죽지는 않았는지 제대로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 멀쩡해.”

서도화가 말했다. 아덴은 서도화가 무사하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서야 겨우 떨림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막혀오던 숨과 조여오던 심장, 아득해졌던 시야가 그제야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직 놀람은 가시지 않았지만 동료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 그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괜찮냐?”

“놀랐어. 지금은 괜찮아.”

서도화가 미소 지었다.

“그럼 똑바로 서자.”

서도화는 바로 선 아덴을 데리고 자리로 돌아갔다. 잠깐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뻐해야 할 때가 아닌가.

56번이 우승했다. 팬들은 환호했고 멤버들은 행복하게 우승을 누려야 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드리는 저희 56번 그룹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도화가 아덴을 진정시키는 사이 한야의 소감이 끝이 났고 서영은 한 사람 더하라는 듯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다음 타자는 주상현이었다.

“어……정말 감히 기대도 못 한 우승이라 무척 놀랐으면서도 기쁩니다! 오랜만에 팬분들과 만나게 되는 거라 발전한 모습,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서어…….”

상현아!

울지 마!

크게 소리치는 팬들의 목소리에 멤버들이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씨익 웃었다.

시무룩의 달인이 오늘은 기쁨으로 울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최고의 모습만 보일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다시 한번 56번 축하드리고요. 이렇게 끝낼 수는 없죠? 마지막으로 우리 56번.”

서영이 말을 꺼내자마자 관객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

이름! 그룹 이름!

우승자에게 있어, 그들의 팬들에게 있어 가장 큰 보상이 무엇이겠는가?

탈락이 아닌 우승자로서 영광스럽게 그룹의 이름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네, 56번의 이름은 무엇인지 당당하게! 팬분들에게 말씀해주시죠.”

멤버들이 활짝 웃었다.

56번이 아닌 하나의 그룹이 되는 순간.

“저희들의 이름은 어메스입니다. 저희 어메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멤버들이 큰 소리로 인사했다. 팬들은 이에 보답하듯 큰 함성을 보내주었다.

“56번 그룹의 이름은 어메스였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우리 어메스 잘 지켜봐 주시고요. 우승자인 어메스 분들은 데뷔 후 2년 동안 팝넷과 협업해 앨범 발매 및 컴백쇼, 그리고 전반적인 글로벌 마케팅을 지원받게 됩니다. 자, 이제 생방송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네요.”

공연장에 울려 퍼지던 BGM이 엔딩송으로 바뀌었다.

“밀리언 팬 여러분, 지금까지 밀리언 아이돌 애정으로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메스를 포함한 참여해준 그룹 모두 좋은 모습으로 다시 보는 날을 기대하며 밀리언 아이돌은 여기서 인사드릴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웅장한 BGM과 함께 서영을 클로즈업했던 카메라가 훅 멀어져 허공으로 올라갔다.

참여 그룹들은 관객들에게 인사하곤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최종라운드 생방송은 끝이 났다.

“다들 정말 고생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어메스는 축하하고!”

서영은 참여 그룹 모두에게 고생했다 말을 전하곤 다시 마이크를 들어 관객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오늘 늦게까지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끝까지 프로다운 모습으로 관객들까지 챙기는 그녀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현장에 제작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퇴장하기 시작하고, 각 그룹들도 팬들에게 인사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로써 길었던 밀리언 아이돌이 끝이 났다.

* * *

“난 우리애들 잘할 줄 알았다니까?”

“그러니까요! 그래도 역시 좋긴 하죠? 우승 발표 났을 때 대기실에서 다들 소리 질렀잖아요.”

“우리 애들이 어른 공경을 좀 못해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탁월해. 잘생기기도 했고. 어? 그렇지?”

부장이 소주를 원샷하며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천명의 나이. 서울에 상경한 지 30년, 자식 장가보내고 보람도 웃음도 없이 소처럼 일만 했다.

비록 육신은 젊은 날의 청춘과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김유진 대표의 제안으로 이 회사에 들어와 청춘 못지않은 열정과 자식 같은 아이들 키운다는 생각으로 어메스를 위해 발로 뛰며 일했다.

기껏 생각해낸 그룹명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그러할지라도 모두가 함께 이루어낸 오늘의 성과에 부장은 전에 없던 보람을 느꼈다.

“그러니까요! 우리 애들이 좀 드세서 그렇지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얘들아 정말 고생했어. 우리 유제이 직원분들도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건배!”

“예에! 건배!”

감격한 부장과 이에 동의하는 김유진과 직원들. 한야는 그들의 들뜬 말을 들으며 싱긋 웃곤 불판의 고기를 뒤집었다.

“다 여러분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여러모로 우승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기 이제 먹어도 되는가?”

“감사, 야, 인사부터 하고 먹어. 장난하냐?”

서도화가 케이의 젓가락을 쳐냈다. 케이는 불만스레 서도화를 노려보았고 아덴은 서도화의 눈치를 슬쩍보더니.

“감사합니다.”

툭 내뱉고 냉큼 고기를 집어먹었다.

“먹어 먹어. 케이도 많이 먹거라. 얘들아. 많이 먹고 이제 데뷔 준비 열심히 하자. 응?”

“감사합니다.”

부장은 빠르게 고기가 사라져가는 어메스 쪽 테이블에 고기를 추가시키곤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렇게 건강하고 착한…, 순한…, 나쁜 짓 안 하는 애들인데! 어? 금마 그 자식은 그런 글을 올려서 상처를 주고 말이야!”

고기를 들어올리던 서도화의 손이 뚝 멈췄다.

부장이 말하는 금마 그 자식이란 논란의 게시글을 올렸던 장우진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 이 좋은 날에 또 그날의 일을 떠올리게 되다니.

입맛이 뚝 떨어진 서도화가 제 앞접시에 고기를 내려놓았다.

그 사건은 어떻게든 김유진과 한야, 그리고 서도화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무마되었지만 속 시원히 해결된 건 아니었다.

사실무근이라는 기사를 올려주는 대신 장우진이 게시글을 올렸다는 건 묻기로 한 듯하고.

장우진은 그대로 데뷔할 것이다.

‘뭐 그쪽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대역죄인이긴 하지.’

억울하긴 해도 한 달 잠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만 시간이 있을 때 대화라도, 사과라도 할 기회를 주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 정도는 있었다.

그때 한야가 슬쩍 서도화에게 몸을 가까이 했다.

“우진이는 데뷔 못 해.”

“네?”

이건 뭔소리야. 서도화가 놀라 되묻자 한야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도 알겠지만 데스티니는 인성 평가 되게 중요하게 보잖아.”

“그렇죠?”

그렇다. 대형 기획사인 데스티니는 다른 무엇보다 인성과 외모를 가장 중요하게 봤다.

실력이야 베이스로 깔고 가는 것이고.

어느 정도 재능 있는 연습생이라면 짱짱한 트레이너들에게 레슨 받으며 얼마든지 실력이 늘 수 있으니 외모, 그리고 인성 평가의 비중이 데뷔에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좋은 평가를 받아 데뷔조 내정이 되어있던 서도화를 한 달 잠수 탔다는 이유로 고민도 없이 퇴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다만 연습생 사이 경쟁이 센 만큼 아무리 빡빡하게 잡고 인성교육을 해도 몰래몰래 부스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몰래 서도화를 괴롭혔던 과거에서 지금까지 인성적으론 전혀 성장하지 못한 장우진.

서도화가 입 다물고 있지 않았더라면, 연습생들이 서도화를 견제하느라 동조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퇴출되었을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우진이는 데뷔 못 해.”

한야가 싱긋 웃으며 멤버들의 앞그릇에 고기를 얹어주었다.

“아버지랑 대화를 좀 했어. 뵙는 거 오랜만인데 여러모로 협조해주시더라.”

물론 협조를 받아내기까지 김유진의 설득과 몇 가지 증거가 필요했지만.

서도화와 장우진이 포함되어 있던, 서도화를 대상으로 주된 괴롭힘이 진행되던 단체 메신저와 게시글의 출저를 알기 위해 고소도 불사하겠다는 약간의 협박으로 협조를 받아낼 수 있었다.

“탈퇴… 시키겠대요?”

“어쩌겠어. 탈퇴 안 시키면 고소하겠다고 했는데.”

데스티니 입장에서도 귀하게 올려보낸 신인 그룹인데 논란의 싹은 미리 잘라내고 데뷔시키고 싶을 것이다.

서도화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거 너무 일이 커진 것 아닌가? 아무 말도 못 하는 서도화에게 한야가 말했다.

“우리 그룹 멤버는 지켜야지. 네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대로 가만히 두면 안 되지.”

케이가 한야의 말을 엿듣고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한 만큼 돌려줘야지!

한야야말로 진정한 복수의 화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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