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밀리언 아이돌은 수많은 화제를 남기며 방영을 마쳤다.
최종라운드만큼은 방송과 스트리밍이 동시에 진행된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방송이 끝난 직후 모든 sns와 커뮤니티의 핫픽, 트렌드에 ‘어메스’가 등장하며 떠들썩해졌다.
이후 방송사의 후속 홍보와 방송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너튜브에 어메스 채널을 개설하고 비하인드 영상 등을 폭풍 업로드한 유제이의 빠른 일처리 덕분에 나날이 어메스의 팬은 늘어가는 추세였다.
한편, 화려하게 우승하고 경연을 끝마친 멤버들은 일주일간의 달콤한 휴식을 누리는 중이었다.
“케이, 살이 좀 찐 것 같다?”
한야의 말에 케이가 제 몸을 할폈고 옆에 나른히 누워있던 서도화가 툭 말했다.
“살쪘어요. 쟤.”
살이 안 찔 수가 있나. 경연이 끝나며 엄청난 여유가 생겼다.
유제이는 대놓고 쉬라고 짧은 레슨 일정을 제외하면 연습 여부를 모두 멤버 자유의사에 맡겨두었고 당연하게도 케이는 거의 자율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
‘지금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 아닌가? 명분 없는 연습이 아니라면 협조하지 않겠다.’
라고 말했었다. 물론 밥을 처먹었으면 양심적으로 연습은 해야 한다고 서도화가 간간이 끌고 연습실로 향하긴 했지만 대체로는 연습보다 휴식이 훨씬 많았다.
거기다 경연 때에 비해 밥도 잘 먹지 잠도 잘 자고 스트레스도 덜 받다 보니 며칠 새 케이는 티 나게 살이 올랐다.
핵을 찾느니 마느니 하더니 딱히 핵을 찾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지금이 딱 보기 좋아서 상관은 없는데 더 찌면 안 돼. 관리 잘 해야 해. 형이랑 운동 다니기로 한 거 안 잊었지?”
한야의 말에 케이가 인상을 푹 찌푸렸다.
“운동이 뭔가요.”
“수련, 수련.”
서도화가 빠르게 케이 식으로 말을 바꿔 주었다. 그러자 케이가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수련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수련 따위 이젠 하지 않아도 이렇게 완벽한-”
“네놈은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아덴이 케이의 말을 끊고 TV를 가리켰다. 케이의 입이 꾹 다물렸다.
“풉.”
아덴의 허벅지에 다리를 떡하니 올린 채 소파에 거의 드러누워 있던 서도화가 키득거렸다.
케이가 ‘허’ 혀를 차며 아덴과 서도화를 꾸짖듯 검지로 가리켰다.
“난 네놈들이 싫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솟구치고 열이 받는다.”
그러곤 씩씩거리며 주상현에게 말했다.
“너는 저런 것들 닮지 말거라!”
“네? 아니 저는 안 웃어요.”
주상현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었다.
“형이 저 때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요.”
“저 콤비는 케이 놀리는 재미로 사는 것 같다니까.”
이병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TV에선 밀리언 아이돌 7화가 방송되고 있었다.
물론 방영된 지는 좀 되었지만 그간 이런저런 사건도 있었고 경연 준비에 집중하느라 보지 못했던 걸 한 번에 몰아보는 중이었다.
그중 가장 많은 유입이 이루어져 일명 ‘입덕 회차’라고 불리는 7화는 3라운드 합동 경연을 위한 합숙의 마지막 날을 촬영한 방송분이었다.
어메스에게 있어서는 비주얼 멤버인 줄만 알았던 케이의 성장 서사와 서도화의 천재 모먼트, 주상현의 변함없는 막내미, 아덴의 마이페이스, 한야의 부드럽고 어른스러운 모습 등으로 팬들에게 개개인의 이미지를 확고히 한 회차였다.
모두가 힘을 합쳐 케이의 연습을 돕고, 또 놀이 시설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시종일관 연습만 하는 모습, 서도화와 케이의 개인 레슨과 아덴의 산책 사랑, 한야의 연습실 구하기 대작전까지.
그뿐만이 아니고 서도화, 아덴, 케이 동갑내기들의 장난치는 모습과 피곤함에 찌들어 밥도 포기하고 잠든 서도화의 머리맡에 간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두는 등 본인들끼리만 사이좋은 모습을 보이며 팬 유입을 크게 이끄는 데 성공한 방송분이기도 하다.
특히 아덴의 경우 산책을 할 때마다 이를 찍으러 온 VJ와 조금씩 친해져서 등산길 대화하듯 VJ와 나누는 유유자적한 대화가 팬들 사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나이 들면 이런 푸른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살면 되지. 아덴, 여기 도롱뇽 있다. 도롱뇽 알아?”
“도롱뇽? 몰라요. 어디 있어요?”
“이야. 여기 물이 맑긴 한가 보다.”
산책을 할 때마다 VJ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
서도화는 그 모습을 보며 ‘아덴이 드디어 이 세계에 적응을 마쳤다’고 허탈하게 생각했었다.
당사자인 멤버들조차 몰랐던 각자의 모습이 속속들이 나온 합숙 편, 그중에서도 단연 화제가 된 건 단연 지금 나오고 있는 이 장면.
“와, 이렇게 보니까 되게 신기하네. 내가 아는 케이 형 아닌 것 같아요.”
“조용-”
“그러니까. 우리 케이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어.”
“그게 아니-”
“그러게요~ 파트 되찾은 게 얼마나 좋았으면 눈물을 뚝뚝-”
“음유시이인!”
“개웃기네.”
“용사!”
화면 속 케이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마지막 파트 뺏기 시간의 한 장면이었다. 계속해서 파트를 뺏기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겨우 한 파트 뺏어왔을 때 케이는 감격해 눈물을 보였다.
-진짜네?
-진짜 우네?
-정말 우네?
한야와 우는 케이를 안쓰러워하며 달래는 동안, 주상현이 케이의 우는 모습에 본인이 더 통곡할 동안.
-진짜야? 눈물 흘러?
-그렇다니까?
-침 아니고?
-아니야. 눈에서 흘러.
뒤에서 서도화와 아덴은 이딴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 도화 형, 아덴 혀엉!”
TV 속 케이의 눈물에 또 울컥 그때의 감정이 올라와 눈시울을 붉히던 주상현이 으엉 우는 소리를 내며 서도화와 아덴을 흘겼다.
아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와 이게 다 들어갔네. 그냥 작게 말한 건데.”
그렇다. 이 장면이 큰 화제가 된 건 케이의 눈물 나는 성장 서사에 울컥하다가도 이를 지켜보는 서도화와 아덴의 찐친 반응이 웃음을 자아냈기 때문이었다.
밤까지 같이 새며 케이를 돕던 동갑내기들이 막상 친구가 울자 이를 놀리니, 이 장면은 오늘까지 세 사람의 찐친 모먼트로 불리며 쇼츠 등으로 돌아다니곤 했다.
아무튼 반응이 좋았다는 말에 멤버 모두 기대하고 본 회차였는데 기대만큼 분량도 많고 재밌는 부분이 많던 합숙 편이었다.
방송이 끝나자 멤버들이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오늘은 여기까지만 볼까요? 저희 오늘 하루종일 TV 앞에만 있었던 거 알아요?”
주상현이 몸을 풀었다. 일어나자마자 앉아서 무려 4편을 연달아 봤다. 몸이 뻐근할 만했다.
“몇 시야. 와, 벌써 다섯 시야? 연습하러 갈 사람 있어? 형 지금 회사 갈 건데 갈 사람 있으면 날라줄게.”
이병수의 말에 주상현과 한야가 손을 들었다. 그러곤 주상현이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형들은 안 가요?”
그의 시선은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데스티니 시절부터 대단했던 연습벌레답게 연습엔 빼지 않던 서도화였다.
그러나 오늘 그는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오늘은 좀 쉬려고.”
“아쉽다. 네, 알겠어요. 케이 형은요?”
주상현은 아덴을 지나쳐 케이에게 물었다. 아덴이야 웬만해선 서도화와 일정을 함께하고 싶어 하므로 굳이 물을 필요 없었다.
케이는 고개를 저으려다가 한야의 시선을 받고 멈칫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 오늘은 연습해야지? 어제 연습 안 했잖아.”
“네…….”
참 일관적으로 한야의 말은 잘 듣는 케이다.
“그럼 저희 다녀올게요!”
“조심히 잘 다녀와.”
“오는 길에 뭐 사 올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먹고 싶은 건 없는데 장은 봐야 할 것 같아요. 형. 식재료가 다 떨어져 가서.”
“알았어.”
서도화와 아덴을 제외한 멤버들이 숙소를 나섰다. 좁은 숙소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남은 두 사람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고 다시 소파로 향했다.
“그럼 한번 해보자.”
“어.”
서도화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조그마한 보석이 달린 브로치를 꺼내 가져왔다.
“오.”
아덴이 작게 감탄했다.
“그거 되게 오랜만이다. 통신석.”
서도화의 손에 들린 브로치는 통신석이 박힌 물건으로 시스템에게 받은 보상 중 하나였다.
어젯밤 자려고 누운 서도화의 눈앞에 띠링! 소리와 함께 텍스트 창이 떠올랐다.
[1차 보상 지급]
-대마도사 하이넬의 통신석과 연결된 통신석(영상화 가능, 악세사리형)
-마왕 픽케이로스톤의 신분 생성 및 신분증
-오차가 있었던 한 달간의 기억 및 기록 조작(사건이 사라지지 않는 선에서 제공)
※플레이어님 죄송합니다ㅠ 2차 보상은 조금 더 기다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ㅜ 최대한 빨리 결재받아보겠습니다.
빠르게 준비할 수 있는 걸 1차로 미리 준 모양이고 아마 아덴의 신분과 스탯 재분배 등은 조금 시간이 걸리려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서도화는 1차 보상을 받아들였고, 누워있는 그의 배 위로 브로치형 통신석과 케이의 신분증이 떨어졌다.
또한 한 달의 공백 동안 석화가 되어 묘연했던 서도화의 행적은 사건 이후 입장문에 쓴 대로 병원에 있었던 것으로 조작되었다.
아무튼, 받은 보상을 써봐야 하지 않겠는가? 케이의 신분증은 나중에 그에게 전달하면 되고.
일단 오늘은 하이넬과의 통신 연결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서도화도 아덴도 마왕과 용사가 사라진 그 세계와 그곳의 동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나 알고 싶었기에.